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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173화 (173/201)

173화

“…여긴 어디지?”

“그쪽 악마들이 알면 난리가 날 테니깐요.”

김진석은 웬 폐허 한가운데에 두 남녀와 함께 있었다.

무슨 큰 전투가 있었던 것인지 땅에는 피가 메말라 검은색이었고 중세 시대에서나 볼 법한 건물들이 무너져 있었다.

두 남녀는 어떻게 된 일인지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었다. 김진석은 그들이 이끄는 그대로 따라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따로 어디론가 안내한 것이 아닌 폐허 한가운데에 의자를 가져와 앉았고 김진석에게도 의자 하나를 주었다.

폐허에 걸맞지 않게 의자의 재질은 고급스러웠지만 그게 김진석에겐 어이가 없었다.

그때 하늘에서 거대한 매가 나타나 앞 남자의 어깨에 앉았다. 그러더니 잠시 남자와 김진석을 번갈아 보더니 김진석의 어깨로 다가와 앉았다.

김진석은 그 매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호크.”

3M에 다다르는 매의 이름은 호크. 김진석은 딱 한 번 매를 만난 적이 있었다. 로스트 월드에 들어갔을 때. 처음 카인과 동기화했을 때. 그때 처음 봤었다.

호크. 로스트 월드의 직업 카인의 동반자였다.

즉 눈앞의 남자는…….

“너희를 직접 눈앞에서 볼 줄은 몰랐는데. 카이.”

“그건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진석이 로스트 월드에서 키웠던 메인 캐릭터. 카이였다. 그리고 옆의 여성은…….

“저를 눈치 채신 거죠?”

“아마도. 말이지. 마엔.”

비록 열심히 키웠던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단검을 사용하는 캐릭터로서 나름대로 애정이 있어 키웠던 도적 캐릭터. 마엔이었다.

자신이 키웠던 캐릭터들이 이렇게 눈앞에서 살아 숨 쉬며 행동하고 있는 것을 보니 뭔가 감정이 묘해지는 김진석이었다.

게임 캐릭터답게 매우 잘생긴 남자. 검은 로브와 후드를 입은 마치 검은 연기와도 같은 카이와 마찬가지로 단검을 들고 싸우는 직업이지만 특이하게도 붉은 원피스를 입은 마엔.

뭔가 현실감이 없었다.

김진석은 로스트 월드에서 여러 캐릭터를 키웠지만 레벨을 99까지 키워가며 애정을 주었던 캐릭터들이 총 셋이 있었다.

그중 둘은 눈앞의 카이와 마엔. 그리고 남은 하나는.

“키잔은 없나?”

키잔. 김진석의 메인 캐릭터는 카인이었지만 캐릭의 성능 때문에 오히려 두 번째 캐릭터인 키잔이 더욱 강했다.

그런데 정작 그 키잔은 보이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온 겁니다.”

“음……?”

왜 카이가 키잔 때문에 자신을 찾아온 것인가. 김진석은 예상가는 게 전혀 없었다.

* * *

이지현은 잠에서 깨어났다.

“어… 내가 왜?”

수풀 속에서 일어난 이지현은 왜 자신이 잠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주변 이방인 길드원들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부스스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들 또한 그녀와 같은 상황인 것 같았다.

다들 어리둥절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유일하게 상황을 아는 것처럼 보이는 이방인 길드의 부 길드장 제이다와 로스트 월드에서 나온 사람들은 안색이 하얘져 있었다.

“…돌아가죠. 노라 씨와 다이아 씨. 그리고 세라스 씨라고 했죠. 세 분은 저랑 얘기가 더 필요할 것 같군요.”

그런데 제이다와 로스트 월드에서 나온 이들은 자신들끼리 일을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며 다른 이들을 해산시켰다.

이지현은 생각했다.

“…그럼 우린 왜 부른 거야?”

* * *

“여기가 녀석이 일하는 곳이란 거지? 좋네~”

“거의 나와본 적은 없지만 말이죠.”

제이다는 길드장의 사무실로 로스트 월드에서 나온 대표 인물 셋인 노라와 다이아. 세라스를 안내했다.

그녀들은 처음 오는 곳이었고 웬 이상한 마차 같은 것이 말도 없이 돌아다니는 것에 신기했지만 내색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특히 노라는 그게 자연스러워 보였고 사무실 안에서도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 발을 올리는 모습은 영락없는 이곳의 주인처럼 보였다.

하지만 세라스가 발을 찰싹 때리자 제이다의 눈치를 보며 발을 내렸다.

“제이다라고 했지? 넌 그 악마랑 무슨 사이야?”

“…그 악마가 길드장 님의 연인입니다만.”

“…뭐?”

“예?”

“네?”

세 여성은 제이다의 말에 의문을 가졌다.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세계를 침략한 악마인 것은 분명한데 그 여성과 연인이라고?

게다가 그 김진석이?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길드장 님이 다른 세계로 사라졌다는 거죠.”

대 악마. 넬이 말한 것이니 그건 분명했다.

그녀 또한 김진석을 찾아다니고 있었고 다른 대 악마들과 의견을 종합해 결론 낸 것이 바로 다른 세계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다행히 그녀의 말에 김진석이 죽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길드장 님이 직접 가신 거라면 상관없지만 그렇다면 저희에게. 아니 그녀에게라도 언질을 주었겠죠. 하지만 길드장 님이라면 분명 돌아오실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저희입니다. 당신들은… 악마들에게서 도망쳤다고 했죠?”

“맞아. 우리 세계는 끝났어.”

덤덤하게 말하는 노라였지만 제이다는 그 말이 이 지구에 가장 큰 위협이라는 것을 알았다.

로스트 월드에서 나온 이들은 지구와 같았다. 하지만 달랐다. 그들은 실패한 세계였다. 몬스터 아니 악마들의 침공을 막지 못한 세계.

“어떻게 저희 세계로 온 겁니까?”

“웬 이상한 악마가 우릴 이곳으로 이끌었어. 우린 선발대야. 이곳이 안전한 곳인지도 모르고 악마의 함정일 수도 있으니깐. 적어도 그건 아닌 것 같네.”

노라의 말에 따르면 살아남은 인간의 무리가 있었다. 그들이 그들의 세계를 침공한 악마의 말을 듣고 이 세계로 넘어왔다?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제이다에게 노라가 말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우리도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그 악마의 말을 믿어본 거니깐. 원한다면 보여줄 수도 있어.”

“…보여준다고요?”

제이다는 그녀의 말에 의문을 가졌다.

“이름만 부르면 나온다고 했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단…….”

“단탈리온.”

그때 어디선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엔 여성밖에 없으니 노라는 당연히 그 목소리의 정체가 단탈리온이라고 생각했다.

“아~ 맞네. 지금…….”

“…길드장 님?”

제이다의 말에 노라는 눈을 번뜩이며 뒤를 돌아봤다.

그곳엔 김진석이 있었다. 분명 김진석인데 도저히 그로 보이지 않았다. 한쪽 팔이 잔인하게 잘려있었으며 몸에는 화살이 박혀 피가 계속 새고 있었고 재생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상처 난 몸에는 비늘 같은 것이 붙어있었으며 등에는 붉은 박쥐 날개가 처참하게 찢겨있었다.

로스트 월드에서 나온 세 여성은 그가 김진석이라고 알 방법은 피범벅인 얼굴뿐이었다.

“…너?”

“언제 만족할 셈이냐. 단탈리온.”

김진석은 피가 들끓는 목소리로 악마. 단탈리온을 불렀다.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시군요.”

그때. 어디선가 들리는 기이한 목소리.

여성의 것도 남성의 것도 아닌, 아이의 것도 성인의 것도 아닌 기이한 목소리.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악마. 단탈리온이었다.

“설령 저를 죽이셔도 이 사태는 끝나지 않습니다. 인간들이 자초한 일일 뿐입니다. 그들은 너무 많은 세계를 만들어두고 방치했지. 이건 그 대가일 뿐이야. 나 또한 그런 세계의 인물 중 하나이지. 단지 나는 그걸 즐기고 있다.”

말할 때마다 말투가 바뀌는 단탈리온은 그의 말대로 단지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난 내 창조주인 인간들이 쉽게 죽는 건 원치 않았지. 그래서 너를. 그 누구보다 그 세계를 이해하고 좋아했으며 사랑한 인간인 너를.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기대하고 있다… 이런. 대 악마들이 오고 있군요.”

알 수 없는 말을 늘여놓은 단탈리온은 온몸이 연기로 변해 사라지고 있었다.

“강해져라. 살아남기 위해서.”

그 말을 끝으로 단탈리온은 사라졌다.

이방인 길드의 길드장 사무실에 있는 이들은 갑자기 벌어진 이 상황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너… 괜찮냐?”

“오랜만이네요. 노라. 다이아. 세라스.”

제이다는 처음 보는 미소를 지어 보이는 김진석이었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고통을 억누르는 것이 보이는 그 미소는 아름답지 못했다.

김진석은 남은 하나의 손으로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곧 애들이 올 겁니다. 괜한 오해하지 마시고 이것 좀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하며 노라에게 건넨 것은 바로 김진석 자신의 잘린 팔이었다.

마치 방금 잘린 것처럼 피가 철철 흐르는 팔에는 그의 단검. 리딜을 꽉 쥐고 놓지 않고 있었다.

“그게 무슨…….”

“일어나서 설명하겠습니다. 전… 조금 피곤하군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진석의 몸이 허물어졌다.

마침 근처에 있던 다이아가 허물어지는 그의 몸을 잡으려는 순간.

순식간에 사무실에 창문을 부수고 들어온 대 악마. 넬이 허물어지는 김진석의 몸을 잡았다.

동시에 세피드, 바포메트, 비네가 그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날아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단탈리온은?”

“이미 도망쳤어.”

“먼저 눈치챈 건가. 빠르군.”

로스트 월드에서 나온 노라 다이아 세라스는 갑자기 나타난 네 명의 대 악마들을 보고 급히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하나만 있어도 감당하기 어려운 대 악마들이 넷이나 있다는 건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당할 생각은 아니었다.

넬은 김진석을 안아 든 채 노라의 손에 들린 김진석의 팔을 바라봤다.

“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김진석의 팔을 넬이 잠시 쓰다듬더니 거짓말같이 흐르는 피가 멈췄다. 넬조차도 답답한 기분이었다.

“미련하게… 우릴 부를 것이지.”

정작 그들을 부를 때는 위험한 상황도 아니었고 김진석 혼자서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본인조차도 위험한 지금의 상황 때는 혼자서 타파하려고 했다.

대 악마들은 김진석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해방해준다고 했는데 계속해서 부려먹으면서 미안하다고 계속 말했다.

사실 강제로 부려먹어도 대 악마들은 아무 말도 못 할 텐데.

“…비네.”

“몸이 많이 약해졌어. 알아서 재생하지도 못할 만큼. 웬만한 화살은 이 남자 몸에 박히지도 못할 텐데…….”

김진석은 지금 본인의 기본 능력인 재생조차도 하지 못할 만큼 몸이 약해진 상태였다. 몇 년 동안 모습이 사라졌던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팔 줘 봐. 우선 붙여볼게. 그나마 잘린 그 당시처럼 보관되어있어서 할 수 있을 것 같아.”

비네는 김진석의 잘린 손을 든 노라를 향해 말했고 노라는 어정쩡한 모습으로 손을 비네에게 주었다.

비네와 세피드. 그리고 바포메트는 곧바로 비네의 공간으로 사라졌다.

남아있는 넬은 죄다 부숴버리며 사무실로 들어온 걸 원상복구로 만들어놓고 제이다와 노라. 다이아와 세라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안 죽어. 고작 그 정도 상처가지고 죽을 남자는 아니라는 것은 너희가 제일 잘 알겠지. 우리도 무슨 일인지 모르니 물어보지 마. 우리도 직접 그에게서 들을 생각이니깐. 기다려.”

그 말을 끝으로 넬은 눈앞에서 먼지처럼 사라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너무 많은 일이 한 번에 몰아치니 제이다는 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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