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170화 (170/201)

170화

“…쿨럭.”

피의 지배자. 뱀파이어의 시조. 드미트리는 몸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신의 힘을 가지지 않는 자가… 신의 힘을 가진 나를 이길 수 있다니…….”

그의 상식선에서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있던 세계에선 인간은 그리 강하지 않은 종족이었다. 과학이 발달한 인간은 개개인이 강하지 않았지만 번식력이 뛰어났고 그들의 무기는 뱀파이어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다.

신의 힘을 받은 자라고 그건 달라지지 않았다.

신의 힘은 똑같지 않았다. 뱀파이어가 여러 힘을 받는다면 인간은 여러 지식을 받는다.

그런데 신의 힘을 받은 뱀파이어가 신의 힘을 받지 않은 인간에게 지다니.

“아니… 저게 인간의 모습인가.”

“사람 앞에 두고 그게 무슨 말버릇이 그래.”

몸에 온갖 피로 된 무기가 박힌 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온몸에 비늘을 두르고 뱀파이어조차 부러워할 아름다운 붉은 날개가 달린 김진석의 모습은 도저히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드미트리는 자신이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했다.

신의 힘을 통해 전기를 다루고 피를 완벽히 지배한다. 피를 무수히 많은 형태로 바꿀 수 있었으며 신체 능력은 공작급 뱀파이어를 맨몸으로 제압할 수 있을 수준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눈앞의 인간은 뭔가.

“오랜만에 즐거웠다. 아, 혹시 목숨을 다시 늘릴 순 없나? 게임에선 죽으면 불러 오기하면 그만인데. 말이지.”

너무나도 여유로웠다.

분명 후작, 공작급 뱀파이어와 싸우고 드미트리와 싸운 것이다. 아무리 상성이 안 좋다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김진석은 드미트리를 총 16번 죽였다.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김진석에게 달려들었지만 그는 도저히 죽지 않았다. 팔이 잘리고 발이 잘리고 몸에 구멍이 뚫려도. 설령 눈을 잃어버려도 재생했다.

“…트롤인가.”

드미트리가 살던 세계엔 재생력이 뛰어난 괴물이 살았다.

하나의 종족이 아닌 적대 세력으로 사실상 그 세계에서 최강의 종족이었다. 지능도 뛰어나며 목이 잘리지만 않는다면 모든 걸 재생하는 괴물이었다.

그 괴물이 지금 눈앞의 남자. 김진석으로 투영돼 보이고 있었다.

둘은 자그마치 4시간을 쉬지 않고 싸웠다. 이제는 결판을 낼 차례였다.

* * *

“오셨어요?”

“아! 뭐야?! 내 실험체들!”

넬과 비네는 전투에서 돌아온 김진석을 반겼다.

그런데 전투에 심취한 김진석이 주변을 신경 안 쓰고 싸우다 보니 기껏 살려뒀던 후작급 공작급 뱀파이어 둘이 고작 전투에 여파로 죽어버렸다.

오랜만에 김진석의 표정은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미안해. 그래서 다른 애들은?”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포메트와 세피드가 날아오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다른 나라는 어때?”

“잘 버티고 있습니다. 저희가 조금 강해 보이는 놈들 몇몇 죽이긴 했지만 그걸 생각해도 나쁘진 않습니다.”

김진석은 대 악마들에게 미리 말해두었었다.

지구에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괴물이 나오기 시작한다면 전 세계를 돌아보라고.

한 번 나왔다는 건 두 번도 나올 수 있다는 뜻이었지만 김진석은 곧바로 죽이라고 말하진 않았다.

그래서 대 악마들은 인간들에게 위협이 될 만한 놈들을 미리 제거했다.

물론 인간 하나둘 죽는다고 문제가 될 건 없었으니 대 악마들은 선별해서 잘 골라 죽였다.

비네가 김진석의 곁에 있을 때. 가디언의 뼈로 된 손을 부순 걸 보자마자 그녀는 곧바로 다른 대 악마들에게 전했다.

그렇게 세피드는 영국. 바포메트는 인도. 넬은 미국으로 향했다.

“그들의 우두머리를 보았지만 네 손을 가볍게 부수리라곤 생각하기 어렵던데.”

세피드는 의아해했다.

우선 드미트리와 같은 세계에서 나온 자들이 확인된 건 저 세 나라뿐이었지만 그들이 본 그들의 무력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들의 기준이었지만 전 영국에서 나온 악마들보다 약했다.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만들어내고 있는 미국의 조인족. 하지만 지능이 부족해 조금 똑똑한 짐승 수준이다.

조인족들과 반대로 플레이어를 많이 죽인 인도의 웨어울프. 하지만 번식력이 좋지 못해 숫자가 부족했다.

같은 인간이면서 신을 섬기라고 말하는 영국의 성가대. 하지만 그들은 특이하게도 전원이 모여 다녀 민간인은 물론이고 플레이어들의 피해가 적었다.

하나 같이 전부 어딘가 나사 빠진 놈들이었다.

“게임 속 특징과 똑같군.”

당연히 밸런스가 중요한 게임에서 모든 게 완벽한 종족은 없었으니 그들의 단점은 게임에서와 똑같았다.

하지만 그들이 나온 장소가 중요했다.

대 악마들의 얘기에 따르면 조인족들은 MIA가 관리하는 전류 거미의 사육장에 나타났다. 그들에게 가장 큰 위협은 MIA에서 만든 총이었으니 전류 거미를 탈출시켜 혼란을 야기했다.

웨어울프는 인도 왕자가 주도한 플레이어 회의에 나타났다. 강자를 좋아하는 것이 웨어울프의 특징이었으니 인도가 플레이어의 사상자가 가장 큰 이유였다.

영국의 성가대는 성녀의 길드. 레드 크로스의 길드 지부 한가운데에 갑자기 나타났다. 그곳엔 여러 플레이어와 성녀가 있었지만 이단심판관은 이미 알았다는 듯 정확히 성녀를 향해 공격했다.

“유난히 한국만 강한 놈이 나타나는 것 같은데.”

정확히는 김진석의 곁에서.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영국 악마들을 제외하고 전부 김진석이 근처에 있을 때 인간들이 대항할 수 없는 괴물이 게임 속 세계에서 튀어나왔다.

그나마 영국의 악마들은 성녀가 대항할 수 있었고 그들이 죽음을 자초했으니 김진석이 직접 찾아간 거다.

“…슬슬 막바지에 다다른 건가?”

지구라는 세계의 게임이 엔딩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알렉산더의 일 이후로 성장한 인간들은 다른 나라에서 나온 종족들을 알아서 잘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김진석 또한 내색하고 있진 않았지만 피곤한 상태인 걸 부정할 수 없었다.

첫 대 악마와 싸웠을 때와는 부족하긴 했지만 그건 그때와 김진석의 차이가 있어서 그렇다. 만약 그때의 김진석이 드미트리와 싸웠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너희들이 앞으로 해줘야 할 일이 있어. 해방해준다고 말해놓고 부려먹어서 미안하군.”

“아닙니다.”

세피드가 대표로 말했지만 다른 대 악마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김진석의 말에 비네가 가장 크게 반발했다. 매우 귀찮은 일이었으니 그건 당연했다.

그래서 김진석은 비네와 바포메트에게 또 다른 역할을 주었다. 그제야 비네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 * *

드미트리와 싸움 이후. 넬을 포함한 대 악마들이 날아가는 모습을 잠시 바라본 김진석이 말했다.

“그만 나오지 그래.”

분명 그 자리엔 아무도 없었고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김진석은 확신하고 있었다.

요즘 계속해서 자신이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이 친목회의 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원래부터 감시가 있긴 했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김진석 본인조차도 제대로 알아차리기 어려운 수준의 감시. 물론 여러 능력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있긴 했지만 색적을 가진 김진석의 앞에서 숨는 건 불가능했다.

그게 가능한 경우는 딱 하나. 그와 비슷하거나 더 강한 힘을 가진 자가 있을 때다.

지구를 전부 돌아본 김진석이었지만 대 악마들을 제외하고 그와 비슷한 인간이나 몬스터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예상가는 자가 있다.

“척결자. 그만 나오지 그래.”

의심이지만 확신이다.

김진석이 지구에 돌아오기 전부터 범죄를 저지른 최상위 S급 플레이어, PK 플레이어가 된 이들을 말 그대로 척결한 이들이다.

그 누구도 정체를 모르며 길드인지 개인인지조차 모르는 이들이다.

김진석은 대 악마들과 대화하면서 잠시 쉬어 체력을 보충했고 이내 리딜과 모글레이가 아닌 고요한 카인의 활을 꺼냈다.

“안 나오면 내가 가지.”

친목회의장 때. 기분 탓으로 여겼던 붉은색으로 물든 자신의 시야. 그건 숨어있던 척결자의 존재였다.

그리고 이미 한 번 색적으로 읽힌 척결자는 지금 어디에 숨어있는지 김진석에게 정확히 알려주었다.

“차징 샷.”

김진석은 눈앞에 보이는 붉은색 점을 향해 스킬을 사용하며 화살을 쏘아냈다. 그런데 붉은색 점에서 보인 것은 차징 샷을 무언가로 쳐내는 모습이었다.

“…넌?!”

무언가에 정체를 알아차린 김진석은 처음으로 감정을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내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이후로. 김진석은 실종되었다.

* * *

“…뭐? 다시 한번 말해봐.”

“김진석 플레이어가 사라졌습니다.”

루크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이현과 S급 플레이어 일행이 서울에 들어갔다가 돌아왔을 때. 괴물과 괴물이 싸우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굳은 얼굴로 곧바로 이현은 MIA로 향했다.

게다가 이방인 길드원 중 한 명이 죽었다는 소리까지 들리니 루크는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과거 알렉산더가 나왔을 때도 그들만이 나서서 중국을 멸망시킨 알렉산더를 토벌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규격 외라고 생각했다.

하나의 길드가 하나의 나라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깐.

게다가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플레이어를 보유한 국가이며 동시에 가장 강대한 국가 중 하나였다.

그런 중국을 멸망시킨 알렉산더를 이방인 길드가 나서서 처리했다.

그런데 그 이방인 길드원 중 하나가 죽음과 동시에 김진석 플레이어가 사라졌다?

“도대체 무슨 괴물이 나타난 거냐…….”

루크에게 그 사실을 알려준 길드원은 루크가 따로 서울을 확인하라고 명한 길드원이었다.

그가 전해준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서울 전체가 파괴되었고 곳곳에 뱀파이어의 시체가 널려있었다.

서울이 망가지면 복구하면 되었지만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서울이 파괴된 이유가 고작 싸움의 여파라는 걸 이현과 같이 서울로 향한 S급 플레이어가 알려주었다.

그가 잠깐 본 모습은 이현이 말해준 그대로였다.

하늘이 갈라지고 땅에는 지진이 일어나며 피로 된 해일이 일었다. 플레이어가 있는 지금도 인간이 어떻게 하지 못하는 자연재해가 고작 둘의 싸움의 여파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믿지 않았지만 후에 공개된 서울의 모습을 보고 입을 쩍 벌리며 바라봤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김진석과 그와 싸운 뱀파이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자연재해가 멈추었으니 둘의 싸움도 끝났을 것이 분명한데 왜 둘 다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동귀어진을 생각했다.

김진석이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뱀파이어의 대장을 죽인 것이다. 후에 전류 거미에 잡힌 뱀파이어의 이야기로 인해 김진석이 상대했던 자는 뱀파이어의 시조라는 것이 밝혀졌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PK 플레이어로 몰리면서까지 그가 행한 일은 세계에 만연한 범죄조직을 전부 죽여 버린 것이다.

마피아는 살아남았지만 김진석이 날뛴 이후 그들의 모습을 보는 일은 극히 드물어졌다.

게다가 김진석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부터. 한국에서 그가 구해줬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리고 핍박받은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을 구해주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중국을 멸망시킨 알렉산더를 토벌했다.

김진석의 행보는 언제나 결과적으로 좋은 일을 불러왔다. 설령 PK 플레이어로 몰릴지라도 그는 결과로 보여주었다.

김진석은 전형적인 강약약강. 강한 자에겐 약하게 약한 자에겐 강한 것이 아닌. 강한 자에겐 더욱 강하게. 약한 자에겐 더욱 약하게, 였다.

실제로 과거 그가 연인과 들렀던 옷 가게에서 그들에게 큰 무례를 저질렀지만 그는 쿨하게 용서했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전혀 다른 그의 이면이었다.

“…부족하다. 아직도 우리는.”

루크는, 인간들은 생각했다.

알렉산더의 일 이후로 플레이어들은 급격히 성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부족했다.

인간은 아직도 약하다.

“살아남으려면. 강해져야 한다.”

김진석이 로스트 월드에서 언제나 생각했던 그 말.

루크는 그제야 깨달았다. 왜 김진석이 그런 강함을 가지고도 자신의 세력을 만들려고 했으며. 왜 그렇게 자신의 몸에 실험까지 하면서 강함에 집착했는지.

인간들은 지금 동안. 김진석의 보호 아래 살아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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