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너… 언제 그런 힘을 가지게 된 거야?”
비네는 넬의 힘을 보고 깜짝 놀랐다.
넬의 능력은 환각. 그것도 실체를 가진 환각으로 사실이나 다름없는 능력이었다. 그런 그녀가 지금. 지구 전체를 향해 환각을 걸었다.
“최근에. 그래도… 이건 좀 힘드네.”
넬은 코에서 떨어지는 피를 닦다가 현기증에 몸을 비틀거렸고 비네가 그녀의 몸을 잡아주었다.
지구의 사람들이 본 붉은색 하늘과 검은색 글씨. 그건 바로 넬의 환각이었다.
김진석의 부탁에 넬이 힘을 쓴 것이다.
“응……. 그런데 넌 안 가봐도 괜찮겠어? 그 흡혈귀. 우리랑 비슷한 힘을 가졌던데.”
비네 또한 느꼈다. 자신의 몸에 이식한 뼈는 가지고 있던 가디언의 뼈를 이식한 것이다. 그런데 그 가디언의 뼈를 단숨에 부쉈다는 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자라는 거다.
그리고 넬이 김진석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물론 김진석이 쉽게 당하진 않겠지만 만에 하나 치명상을 입고 정말 죽게 된다면. 그때는 비네와 넬, 대 악마들 전부가 사라지게 되겠지.
“그거 알아, 비네? 아직도 더 강해지려고 하고 있어. 그 정도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당연히 알지. 내가 그 담당인데.”
어쩌면 넬 보다 비네가 더 잘 알 것이다. 즐기고 있긴 했지만 김진석이 부탁한 실험이 전부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 싶어서 말한 것이니깐.
하지만 언제나 곁에 있었던 넬만큼은 아니었다.
“아니. 내가 수많은 정기를 먹어봤지만 그 남자는 질이 달라. 정기의 질이 좋다거나 하는 느낌이 아니야. 설명하긴 어렵지만… 뭔가 인간 같지가 않아.”
넬은 처음 김진석의 정기를 먹었을 때 위화감을 느꼈다. 서큐버스는 인간의 정기를 먹고 산다. 밥과 같은 것인데 당연히 그 밥이 전부 맛이 같을 리가 없었다.
김진석의 정기는 넬이 먹어본 적 없는 최고의 정기라고 말해도 무방했지만 도저히 인간의 정기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달랐다.
“뭘 말하고 싶은 거야?”
“뭐… 그 남자는 우리가 상대했던 때와 달라. 이미 괴물이 됐어. 그가 자신의 힘을 정확히 모르고 있어. 만약 제대로 사용한다면… 그 흡혈귀 따위는 아마 가지고 놀걸?”
비네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나한테 자기를 죽일 놈들을 만들라고 했구나?”
“아! 그리고 우리에게 말한 게 있는데…….”
* * *
김진석은 피를 토하고 있었다.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피를 참기는 어려웠고 참을 이유도 없었으니 일부로 게워낸 것이다.
뱀파이어의 시조. 드미트리는 고고하게 서 있었지만 그도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엄청난 정신력으로 참고 있을 뿐. 지금 드미트리는 깜짝 놀라 있었다.
“신의 힘을 가진 나에게… 이 정도까지 하다니.”
드미트리가 말한 신의 힘. 그건 각 종족에서 단 한 명만이 받는 힘이었다.
대부분 지도자나 가장 강한 자에게 주어지는 힘이며 신의 힘을 받은 자는 전부 사명이 주어진다.
다른 신의 힘을 받은 자를 죽이거나. 아니면 신의 힘을 받은 자와 연합을 할 것인가.
그들은 본능적으로 다른 신의 힘을 받은 자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인간에게는 신의 힘이라곤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드미트리의 몸에 마력을 대부분 쏟아부었는데도 불구하고 눈앞의 인간은 버텨냈다. 버텨낸 것만이 아니었다.
다른 뱀파이어가 피를 조종한다면 드미트리는 피를 지배한다.
모든 생명체에겐 피가 존재했으니 상대가 다쳐 피를 흘리는 순간 드미트리의 마력은 다시 회복된다.
신의 힘을 가지게 된 드미트리는 정말 아무 도움도 없이 혼자서 지구를 멸망시킬 수 있는 괴물이었다.
“네 피는 왜 지배되지 않는가.”
하지만 김진석의 피는 지배되지 않았다.
모든 피를 지배할 수 있는 드미트리가 지배할 수 없는 피란 없었다. 같은 신의 힘을 가진 자라고 한들 몸 안에서 떠난 그 순간 통제를 잃어버렸기에 상처를 입히면 회복할 수 있는 건 똑같았다.
그런데 김진석은 아니었다.
“그걸 나한테 왜 묻나.”
김진석은 속에서 피를 전부 게워내고 말했다.
드미트리의 주변에는 피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지만 거기에 김진석의 피는 없었다.
김진석은 꽤 나 지쳐있었다. 후작과 공작 뱀파이어들을 죽인 직후 곧바로 드미트리를 상대하고 있는 거다.
드미트리가 있을 줄 모르고 힘을 아끼지 않고 뱀파이어들을 죽여왔다. 오랜만에 해방감을 느꼈지만 그것이 오히려 지금을 힘들게 했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고 마찬가지로 오랜만에 비네가 만들어준 포션을 마시고 몸을 한 번 풀었다.
드미트리는 과연 대 악마들과 비견 될 만했다.
뱀파이어라면서 피뿐만 아니라 전기까지 다뤘다. 하늘의 먹구름에서 계속해서 떨어지는 천둥은 꽤 나 까다로웠다.
피부를 구워버리며 동시에 지혈을 해주었지만 근육이 마비돼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다행히 유도성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지만 한 번이라도 맞으면 치명적이었다.
게다가 놈의 능력은 부활까지 있었다.
처음에 드미트리가 방심했을 때 궁극기를 이용해 곧바로 목을 베어버렸지만 10초도 지나지 않아 되살아났다.
신의 힘을 받은 대상의 피를 먹을 때마다 드미트리의 목숨이 늘어났다.
김진석이 처음 곧바로 궁극기를 사용해 한 번. 그리고 후에 활을 이용해 놈의 심장을 꿰뚫어 두 번.
그 뜻은 즉 2명 이상의 신의 힘을 받은 자를 먹었다는 거다.
문제는 그 게임 속에서 최소 20명 이상의 신의 힘을 받은 자가 있다는 거다.
“즐거워. 너무나도 즐거워.”
그런데도 김진석이 느끼는 감정은 즐거움이었다.
드미트리가 제일 당황스러운 게 바로 이것이었다. 목숨을 벌써 두 번이나 잃은 드미트리는 신의 힘을 가지지 않았다고 무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인간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죽기 직전의 상처였는데도 순식간에 재생했다. 분명 고통은 그대로일 것이 분명한데 눈앞의 인간은 웃고 있었다.
드미트리가 지금 공격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마력이 전부 떨어졌기에.
물론 피를 지배하지 못했기에 마력 회복이 더디기도 했지만 이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의 한계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이 세계의 인간으로 보이는 자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아마 눈앞의 인간의 동료일 것이겠지만 드미트리에겐 호재였다.
김진석은 갑자기 드미트리가 피로 된 날개를 펼쳐 어디론가 날아가는 것에 의아해했지만 그 뒤로 보이는 인간들을 보고 무슨 목적인지 깨달았다.
원래라면 김진석이 그들이 다가올 때까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지만 너무 이 전투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게 뒤를 보이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은데.”
김진석의 스킬. 차징 샷.
무방비하게 등을 보인 드미트리에게 사용하기 아주 좋은 스킬이었다.
고요한 카인의 활과 차징 샷의 조합은 최강의 파괴력을 자랑했고 그건 신의 힘을 받은 드미트리에게도 통했다.
그런데 분명 드미트리 정도라면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을 텐데 왜 등을 보이고 달아났을까. 간단했다.
목숨 하나를 희생한 것.
차징 샷의 심장이 정확히 꿰뚫린 드미트리였지만 날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고 날아가 인간의 앞에 섰다.
목숨을 잃었단 증거로 순식간에 꿰뚫린 상처가 재생되었고 드미트리는 인간들을 노렸다.
하지만 그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다가온 인간들의 무력.
“파워 스트라이크.”
“위합!”
“홀리 블레스.”
“인피니티 애로우!”
비록 김진석과 비교하기엔 많이 부족했지만 그들 또한 S급 플레이어. 마력이 부족한 드미트리 상대로 허무하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S급 플레이어 이상들은 하나 같이 전부 기본적으로 스킬을 가지고 있었고 김진석이 피를 토하고 있는 모습을 본 이상 그들은 눈앞의 뱀파이어가 경시할 수 없는 괴물이란 알아차렸으니.
처음부터 전력이었다.
그들의 전력은 드미트리를 잠깐 멈칫하게 하였고 그 잠깐이면 김진석이 그에게 다가가기엔 충분했다.
“괜히 목숨 하나만 잃었겠군.”
김진석은 모글레이를 옆으로 들어 검의 면으로 드미트리를 멀리 날려버렸다.
“돌아가세요. 그리고… 대비하세요. 저것만한 괴물이 더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드미트리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한 김진석이었다.
드미트리가 나온 게임에선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하나가 아니었다. 최소 20명 이상의 캐릭터가 있었고 그들 모두를 선택할 수 있었다.
즉 그 20명 전부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는 거다.
물론 종족 특성상 개인이 매우 강한 뱀파이어였지만 그렇다고 신의 힘을 받은 다른 자들이 약하다는 건 아니었다.
“…괜찮겠습니까?”
“누가 누굴 걱정하나. 방해하지 말고 빨리 꺼져.”
김진석의 입장에선 한창 달아올랐을 때 방해받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알아보러 온 플레이어들에겐 이런 급한 상황에도 자신들을 챙기는 김진석으로 보였다.
이중에선 이현이 김진석의 힘을 가장 잘 알고 있었고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뱀파이어의 시체.
운석이 떨어진 듯한 크레이터 자국.
지진의 원인으로 보이는 하늘의 먹구름에서 내려치는 천둥.
구멍이 뚫린 건물과 날카로운 무언가에 베인 건물까지.
그리고 격렬한 싸움 끝에 가죽 갑옷이 버티지 못하고 상체를 전부 드러낸 김진석의 몸에는 셀 수도 없을 만큼의 상처가 가득했다.
흉터조차 새겨지지 않는 그의 몸의 상처란 건 즉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거다.
“돌아갑시다.”
“…안 도와줘도 되겠습니까?”
한 S급 플레이어의 말에 이현은 곁눈질로 김진석과 드미트리의 전투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게 인간과 뱀파이어의 싸움으로 보입니까?”
“…….”
피로 된 창이 몸에 박힌 채 김진석은 드미트리에게 달려들었지만 드미트리는 하늘로 피의 날개로 하늘로 올라갔다.
하지만 김진석도 피처럼 붉은 날개를 등에서 펼치더니 순식간에 따라 올라갔다.
드미트리는 그 모습에 깜짝 놀라 수많은 박쥐를 소환해 김진석의 눈을 가렸지만 김진석은 정확히 드미트리를 보고 날아올랐다.
김진석의 칼을 휘두르면 건물이 무너지고 드미트리가 손을 휘저으면 피의 폭발이 일어나 거대한 구멍을 만들었다.
“괴물과 괴물의 싸움입니다. 한낱 인간이 껴들 자리는 없어요.”
“…알겠습니다.”
이현과 S급 플레이어들은 돌아온 길을 따라 돌아갔다.
그리고 돌아왔을 때. 서울이 망가졌지만 한국은 피해가 적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김진석의 예상대로. 신의 힘을 가진 자들이 지구를 침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각자 자신의 동족들을 데리고.
* * *
“끄아악!”
“꺄아아악!”
미국.
플레이어 강국 중 하나인 미국은 날개 달린 인간. 조인(鳥人) 족이 침공했다. 순식간에 사람들을 낚아채 하늘로 올라가 떨어뜨리는 놈들은 꽤 나 성가신 것이 아니었다.
다행히 개개인이 그리 강하지 않고 지능도 높지 않아 MIA에서 개발된 총을 이용해 쉽게 죽일 수 있었지만 일반인의 피해가 너무나도 컸다.
인도.
마찬가지로 플레이어 강국 중 하나인 인도에선 웨어울프가 습격했다.
뱀파이어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신체 능력을 가진 그들은 인간과 웨어울프로 마음대로 변하며 인도를 혼란에 빠트렸다.
인도 왕자인 리아즈 칸의 인솔하에 모였지만 강력한 웨어울프는 리아즈 칸에게도 버거운 수준이었다.
영국.
플레이어 최강국인 영국에선 다른 세계에서 온 인간들이 나타났다.
성가대. 신을 모시는 이들로 하필 영국과 최악의 상성인 인간들이었다.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하며 신성한 스킬들을 사용하는 그들은 최악이었다.
게다가 선두에 나서서 신을 믿지 않는 이들을 학살하는 이단심판관들이 가장 골칫거리였다.
이외에도 수많은 몬스터가 지구를 침공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동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