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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167화 (167/201)

167화

이현과 MIA의 지부장 월턴. 그리고 김진석 셋이 만난 곳은 고급 뷔페였다.

사실 요즘 김진석은 넬이 갑자기 음식을 하겠다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그녀의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하필 그녀는 요리에 재능이 없었다.

온갖 타고 짜고 싱거운 음식을 먹다 보니 아무리 생고기를 먹던 김진석이라도 한 번쯤은 뷔페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이루었다.

물론 김진석은 뷔페 전부를 빌리거나 하지는 않았고 그저 3명 예약해서 다른 사람들이 다 있는 데다가 방을 잡은 것도 아니었다.

셋이 대화를 나누기에는 좋은 장소는 아니었지만 워낙 기이한 행보를 자주 보이는 김진석이었으니 월턴은 그러려니 했다.

김진석은 인사가 끝남과 동시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음식을 담기 시작했다.

월턴은 이현을 바라봤지만 이현은 그저 어깨를 으쓱이며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나 뷔페답게 음식을 담았다.

월턴도 가만히 있긴 뭐 했으니 음식을 담아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아 미안하군. 요즘 워낙 잘 못 먹어서 말이야.”

김진석도 사람을 불러놓고 그게 예의가 아니란 건 알았는지 사과했지만 그의 입에는 음식이 들어가고 있었다.

이현과 월턴은 김진석이 그런 말을 하는 게 이해가 안 됐지만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그렇게 남자 셋은 아무 말도 없이 음식을 먹었다.

이내 긴장해서 음식을 먹으면 체할까 가장 음식을 적게 가져온 월턴이 먼저 접시를 비우고 조심스럽게 운을 띄었다.

“혹시… 저희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까?”

월턴은 플레이어조차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게 더 위안이 되었다. 김진석은 강자에겐 강하게. 약자에겐 약했으니깐.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 다른 사람을 불렀을 거다.

“다름이 아니라 뱀파이어들 때문에 말이야.”

그런데 김진석의 입에서 나온 말은 고작 사람들이 널려있는 뷔페에서 말할 법한 사안은 아니었다.

“뱀파이어… 말입니까?”

“김진석 플레이어 덕분에 한국은 청정 구역이 되었을 텐데… 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이현은 가볍게 이 자리에 온 것인데 김진석은 생각보다 중한 사안을 말하고 있었다. 사실 전 세계에서 뱀파이어에게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곳이 바로 MIA였다.

뱀파이어의 지능은 인간보다 뛰어났고 그들이 몇몇 플레이어를 제외하고 그들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게 바로 총이란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걸 만드는 곳이 바로 MIA라는 것을 알아낸 뱀파이어들은 MIA의 지부를 습격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몇몇 지부는 뱀파이어에게 함락을 당했다.

총의 성능은 뛰어났지만 그걸 다루는 인간이 일반인이었고 그들의 동체 시력으로는 뱀파이어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웠다.

게다가 그들의 장점을 살려 밤에 침입해 경비들을 암살하며 안으로 들어가 마치 사냥하듯 야금야금 잡아먹었다.

“설마… 햇빛 말고 새로운 방법이 생겼습니까?”

“과연. 눈치가 빠르시군요. 하지만 그건 제가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예?”

처음 김진석의 말을 듣고 안색이 환해졌다가 말의 끝에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햇빛 말고 새로운 방법이 생기면 생긴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김진석은 품속에서 유리병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 안에 든 건 마치 피처럼 붉은 액체였다.

“뱀파이어의 피입니다.”

“…네? 그게 무슨…….”

그의 말은 믿기 어려웠다.

김진석이 처음 뱀파이어를 죽였을 때. 그때 뱀파이어는 온몸에 피가 쏟아져 나와 죽어버렸다. 그리고 그 피도 증발했다.

그건 다른 전 세계에서 나오는 뱀파이어들에게도 마찬가지였으니. 그런데 눈앞에 뱀파이어의 피가 있었다.

“자세한 건 묻지 마시고 입 밖으로 꺼내지도 마세요. 뱀파이어의 능력 중 하나는 피를 쫓는다. 그건 인간뿐만 아니라 같은 뱀파이어의 피도 마찬가지. 그 피로 알아보세요. 그쪽이 제일 잘하는 거잖아요? 몬스터의 소재로 실험하는 것.”

월턴과 이현은 도대체 뱀파이어의 피를 어떻게 구했는지 알 수 없었다. 뱀파이어의 시체는 그냥 피가 전부 몸에서 빠진 인간의 것과 똑같았다.

그 어떠한 것도 알 수 없었고 그건 소재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살아있는 뱀파이어가 있는 겁니까?”

“묻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 말은 곧 긍정이나 다름없었다.

월턴은 김진석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뱀파이어를 잡은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조용한 경고에 더는 물을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 뱀파이어 하나를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김진석이 너무 무서웠다.

“원한다면 피는 더 주겠어.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고.”

그 말에 이현과 월턴은 서로를 쳐다보다가 급히 어디론가 연락하기 시작했다. 김진석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남은 뷔페의 음식을 먹으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MIA는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뱀파이어의 피를 이용해 그들을 추적하는 물건을 만들어냈다.

아니 정확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바로 전류 거미. M-001을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한 몬스터였다.

뱀파이어와 같이 인간의 피를 먹는 전류 거미는 특이하게도 다른 동물이 아닌 오로지 인간의 피만 탐했다.

혹시 몰라 모든 생물의 피를 가져다주었지만 오로지 인간의 피만 먹는 전류 거미. 그런데 뱀파이어의 피는 달랐다.

인간으로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진짜 인간과 똑같은 DNA 등을 가지고 있어서 그럴까. 뱀파이어의 피는 잘만 받아먹었다.

오히려 뱀파이어의 피를 먹으니깐 인간의 피가 맛이 없어진 것인지 한 번 뱀파이어의 피를 먹은 전류 거미는 인간의 피를 먹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둥지에 직접 들어가지만 않는다면 설령 잡아먹기 쉬운 일반인이 앞을 지나가도 덮치지 않게 된 것이다.

물론 배가 고프다면 뱀파이어의 피를 먹은 거미라도 인간을 덮치긴 하지만 배가 부르기만 하다면 얌전해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뱀파이어의 피를 먹은 전류 거미의 전기는 훨씬 강해졌다.

그로 인해 큰 사고가 날 뻔했지만 다행히 뱀파이어의 피를 가지고 실험하다 보니 더욱 삼엄한 경계가 이어져 전류 거미의 탈출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사람의 피만 주면 얌전했던 전류 거미가 갑자기 뛰쳐나가려고 했을까. 바로 뱀파이어를 찾기 위해서였다.

MIA는 혹시 몰라 사람들을 전부 대피시킨 뒤 뱀파이어가 지나간 곳으로 추정되는, 구울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지역에 뱀파이어의 피를 먹은 전류 거미를 풀어주었다.

전류 거미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더니 숨어있던 구울을 찾아내 피를 먹었다. 하지만 구울은 맛이 없었는지 곧바로 다음 타겟을 찾았다.

그런데 찾을 필요가 없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뱀파이어가 전류 거미를 덮친 것이다. 갑자기 벌어진 둘의 싸움에 당황했지만 전류 거미를 잃을 수 없었던 MIA는 급히 뱀파이어를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전류 거미의 능력은 MIA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강해졌으니. 뱀파이어를 가볍게 잡아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

사실 김진석이 준 건 백작급 뱀파이어의 피였고 지금 전류 거미가 죽인 뱀파이어는 고작해야 일반 뱀파이어였다.

전류 거미는 뱀파이어의 피를 빨아먹음과 동시에 전류를 흘려 몸을 마비시킨 다음 이제는 집으로 생각하는 장소.

MIA의 사육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전류 거미가 잡아 온 뱀파이어의 말을 통해서 전류 거미는 그들에게 아주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다.

같은 인간의 피를 먹다 보니 경쟁 상대였고 뱀파이어의 피를 먹은 전류 거미는 그들에게도 위협적이었으니.

뱀파이어의 세계에서 전류 거미는 발견 즉시 곧바로 죽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것으로 뱀파이어와 전류 거미가 같은 게임 속 세계에서 나온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건 별 의미 없었다.

전류 거미를 이용해 뱀파이어를 찾을 수 있게 됐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하지만 전류 거미가 잡아 온 뱀파이어의 피를 조금이라도 빼가면 전류 거미가 미친 듯이 날뛰기 때문에 새로운 피는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MIA는 더욱 궁금했다. 도대체 어떻게 김진석이란 자는 뱀파이어의 피를 얻었고 그렇게 흔쾌히 넘겨줄 수 있을까.

뭐가 어찌 됐든 김진석. 그리고 MIA 덕분에 뱀파이어를 잡아내며 또다시 세계는 안정될 줄 알았다.

김진석을 제외하곤 말이다.

* * *

김진석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후.”

깊은 한숨을 쉬었다.

몸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이었다. 뜨거운 피가 온몸에 점칠 되어있었지만 이 열기는 피에서 올라오는 것이 아니었다.

“오랜만이네. 이런 기분.”

전투의 열기. 그동안 김진석은 지금껏 만족스러운 싸움을 해 온 적이 없었다. 언제나 자신보다 약한 몬스터들을 죽여왔으며 그것도 원해서가 아닌 남을 위해서였다.

넓게 보면 자신을 위해서라고도 볼 수 있었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더욱 거슬렸다.

살아남기 위해서. 게임 속 세계에서도 지구에서도 몬스터를 죽이는 이유는 똑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김진석은 회의감을 느꼈다.

왜 몬스터를 죽였을까. 그건 바로 강해지기 위해서였다. 강해져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런데 지구에 돌아왔을 때부터. 김진석은 적어도 몬스터를 잡아서 강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레어마켓의 아이템. 비네의 실험 덕분에 로스트 월드 속에서보다 강해졌다고는 말할 수 있겠지만 김진석이 느끼기에는 너무나도 미미했다.

자신이 정말 강해졌는지. 그걸 실험할 대상이 없으니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상대들은 달랐다.

[제니아 LV:92]

[비간 LV:88]

“무슨 이런 인간이…….”

마치 영화 속 드라큘라의 복장을 한 남성형 후작급 뱀파이어. 비간은 김진석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곳에는 비참하게, 끔찍하게 죽어있는 자신의 동료들이 수두룩하게 널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정신 차려라. 아직도 저것이 인간으로 보이나?”

소름 끼칠 정도로 아름다운 공작급 뱀파이어. 제니아는 눈앞의 인간. 아니 괴물 김진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작급 이상 뱀파이어들은 다른 뱀파이어들과 차원이 달랐다.

압도적인 신체 능력과 박쥐로 변하는 능력. 그리고 피를 다루며 자신의 권속을 소환하는 능력까지.

권속의 숫자도 많고 다양하기까지 한데다가 제일 중요한 피를 다루는 건 매우 치명적이었다.

후작급 뱀파이어. 비간은 손가락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뱀파이어의 피를 먹은 전류 거미의 몸속에 있는 피를 전부 빼내 버렸다.

마치 피를 지배하는 듯한 그 모습은 가히 강대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김진석의 피는 조종하지 못했다.

김진석은 매우 강력한 뱀파이어가 한국에 나왔다는 소식에 길드원들과 함께 갔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까지 김진석이 키워왔던 길드원의 목숨 하나를 순식간에 앗아갔다.

온몸에 피가 쏟아져 나와 죽어가는 그의 모습은 김진석의 뇌리에 똑똑히 박혀있었다.

처음으로 그때. 김진석은 극심한 분노를 느꼈다.

그 이후로 뱀파이어들이 본 건 괴물이 된 김진석이었다.

등에는 거대한 붉은 박쥐 날개. 피가 흐르는 몸을 털어내고 보이는 몸에는 도마뱀과 비슷한 비늘. 동공은 고양이의 것처럼 찢어져 있었다.

그리고 온몸의 붉은색 핏줄이 올라와 있었다.

공작급 뱀파이어. 제니아는 느낄 수 있었다. 피를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 지내며 먹기까지 하는 그녀였지만.

“저건… 괴물이야.”

눈앞의 괴물은 자신보다도 피에 가까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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