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이반은 화염의 비를 정면으로 맞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온몸에 닿아도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며 심지어 눈에 들어갔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아 했다.
“내가 상대한 원소를 다루는 플레이어들 대부분이 정작 자신의 몸을 다룰 줄 모르더군. 과연 넌 어떨까.”
이반의 능력은 신체 강화형 능력이다.
하지만 다른 일반적인 신체 강화형 플레이어들과는 달랐다.
갑자기 이반의 몸에 붙어 있었던 살이 땅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마피아의 좀비를 보게 되는 건가.”
그 모습은 마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좀비의 모습이었다. 이반의 능력은 좀비. 그 자체가 되는 것이었다.
그의 이명 또한 좀비였지만 일반적인 느릿느릿하고 걷는 좀비와는 달랐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니 근육이 찢어지거나 뼈가 부러져도 느끼지 못하는 건 좀비와 똑같았지만 그걸 이용할 줄 알았다.
몸을 사리지 않고 사용하는 이반은 몸이 절반으로 나뉘어도 살아날 수 있는 정말 좀비 같은 플레이어였다.
아무렇지 않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고통을 느끼지 못할 뿐이었다.
“크아악!”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지만 하늘에 떠있는 리아즈 칸에겐 닿기엔 요원한 일 같아 보였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고 이반의 힘은 그 상상을 뛰어넘었다. 다리가 부러지면서까지 하늘로 점프했다.
몸을 사리지 않고 폭발적인 속도로 뛰어오른 이반의 손은 리아즈 칸의 불타는 다리를 붙잡았다.
리아즈 칸은 살짝 놀랐지만 곧바로 손에 화염의 칼을 둘러 손을 잘라버리며 동시에 구워버렸다.
손이 잘린 채로 땅바닥에 떨어졌고 동시에 다리가 부러져 주저앉았다. 그런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읍?!”
정작 소리가 난 곳은 이반이 아닌 하늘이었다.
분명 발목을 잡은 이반의 손을 구워버리며 떨쳐냈지만 잘린 손은 그대로 발목을 잡고 심지어 움직이며 부러질 듯이 꽉 잡았다.
급히 완벽한 화염으로 변해 움직였고 이반의 손은 지상으로 떨어졌다.
이반은 다리에서 뼈가 튀어나오고 무릎이 반대로 접혀있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손을 향해 걸어갔다.
잘린 손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이반에게 다가갔고 이내 붙잡은 손을 다시 제자리에 붙였다.
“…몬스터나 다름없군.”
“오히려 더 좋지 않나? 너희는 인간을 상대해본 적이 적을 텐데 말이야.”
칠판을 긁는 듯한 기괴한 목소리.
이반의 능력은 원래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좀비로 변하긴 했지만 그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아니었기에 리턴보다 리스크가 훨씬 컸다.
하지만 김진석의 선물. 스킬북을 통한 재생을 받은 이반은 김진석도 만족할 수준으로 성장했다.
[이반 LV:83]
1년 사이에 최강의 반열에 오른 이반은 자신의 아버지인 보리스조차도 뛰어넘었다.
레벨 80을 넘었을 때부터 급격하게 레벨이 안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반은 80을 넘어서 83까지 성장했으니.
원래라면 한 번 싸우고 오랫동안 요양을 해야 할 이반이 스킬 재생을 얻자마자 고속으로 성장했다.
리아즈 칸의 발목은 고작 한 번의 잡힌 것으로 발이 돌아가 있었다.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보다 인간을 상대하는 것이 더 어렵다. 인도 왕자인 네가 알 리 없겠지. 몬스터보다 인간이 더 지독하고 끈질기다.”
그 말은 마치 본인을 말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인도 왕자인 리아즈 칸에게 달려들 미친놈은 없었다.
하지만 이반은 달랐다.
사람을 고문하고 죽이고. 온갖 범죄가 난무하는 마피아들은 인간의 생존 본능을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은 몬스터보다 훨씬 강하다.
리아즈 칸은 그의 말을 헛소리로 치부한 채 화염을 다뤘다. 세상 모든 화염이 그에게 모이는 것처럼 보이더니 이내 용의 현상으로 변했다.
별장을 집어 삼킬만한 크기. 동양의 용의 현상을 한 그 화염의 용은 이반을 집어삼키기 위해 달려들었다.
세상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은 화염은 이반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이반의 온몸이 불타오르는 모습은 마치 사악한 것이 정화돼 불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제이다.”
“…오셨나요?”
그 모습을 바라본 김진석은 제이다에게 말을 걸었다.
“아무리 봐도 네가 이 상황을 만든 것 같은데. 왜지?”
제이다가 둘을 부추긴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김진석이 생각한 건 달랐다. 제이다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고 리아즈 칸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일부로 이반의 앞을 지나가며 김진석을 거론했다.
물론 사소한 말다툼 정도로 끝날 수준이었지만 김진석은 제이다의 눈이 다른 플레이어에게 향하는 것을 정확히 바라봤다.
그 플레이어는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다른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의 이목을 끌어 지금 이 상황을 만들어냈다.
“리아즈 칸이란 사람이 궁금했어요. 특히 그 본인 자체가 왕자였으며 저희 길드에게 나쁜 감정은 없었으니. 그래서 저희랑 어울리는 사람인가. 그걸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즉 힘을 시험해보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김진석은 이해가 안 됐다.
“제이다 씨가 직접 해도 되지 않나요?”
[제이다 LV:78]
이미 그녀 또한 최상위 S급 플레이어에 다다른 자. 그것도 자그마치 레벨 78이었다. 길드원들을 보조하는 사람이 생겨난 이후 개인 시간이 많아진 그녀는 다른 길드원들과 마찬가지로 몬스터를 잡으러 갔었다.
이내 과거. 김진석이 선물해준 활을 사용할 레벨이 된 그녀는 그것으로 인해 더더욱 성장의 속도가 빨라졌고 이내 최상위 S급 플레이어가 되었다.
리아즈 칸의 상대도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큼.
“저렇게요? 죽일 듯이?”
제이다가 가리킨 곳은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이반은 화염의 용에게 당했지만 죽지 않았다. 좀비와도 같은 생존력으로. 아니 좀비 그 자체로 온몸이 구워져 근육 조직도 제대로 남지 않았지만 그런데도 그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이반의 능력은 하나가 아니었다.
“끄끼아악!”
사람이 죽기 직전에 낼 것 같은 목이 갈라진 괴성.
이반이 괴성을 지르자 별장 안 잔디를 헤집고 또 다른 시체들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이반이 후에 벌일 일은 상상도 못 했으니.
좀비들이 리아즈 칸을 공격하는 것이 아닌 이반의 몸에 달라붙고 있었다.
피부에 달라붙는 것이 아닌, 그냥 손과 발을 이용해 붙잡고 붙잡으면서 몸이 점점 커졌다.
이내 만들어진 건 바로 시체 골렘이었다.
시체로 만들어진 골렘. 시체가 서로 붙잡으며 버티는 그 기괴한 광경은 아무리 주변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이라도 역겨운 것이었다.
어느새 대결 구도는 시체 골렘과 화염의 용을 탄 인간으로 변해있었다.
화염의 용으로 시체 골렘의 불에 탄 시체들이 떨어져 나갔지만 계속해서 잔디를 헤집고 나오는 시체들로 인해 원상복구 되었다.
시체 골렘은 화염의 용을 찢어발기고 있었지만 리아즈 칸이 멀쩡한 이상 화염의 용 또한 계속해서 재생되었다.
“저게 인간의 싸움으로 보이세요?”
“확실히 볼거리는 있어. 하지만 제이다 씨라면 할만할 것 같은데요.”
“…재생이 있다고 고통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제이다 또한 김진석의 선물로 재생을 얻었었다.
물론 재생이 있다고 모든 플레이어가 제이다처럼 성장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고통을 견디고 몬스터를 잡으며 살아남아야만 성장할 수 있었다.
제이다도 그런 과정을 전부 겪었지만 그렇다고 고통을 즐기는 건 아니었다.
“아쉽군. 제이다 씨가 싸우는 모습도 별로 본 적이 없는데 말이죠.”
“그런데 전에 제가 이름으로 불러 달라 하지 않았나요? 왜 또 갑자기 씨가 붙었담.”
“…죄송합니다. 까먹었습니다.”
화염의 용과 시체 골렘이 싸우고 있는 와중에도. 제이다와 김진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마치 그게 익숙하다는 듯이.
사실 김진석은 이방인 길드가 둘로 나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강경파 온건파. 웃기는 일이었다.
다 같은 처지인 이들이면서 말이다.
그래서 김진석은 의견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흔히 알려진 기사의 결투를 권했다. 하지만 조금은 다르게.
진심으로 서로를 죽일 듯이 싸워라. 가 기본 조건이었다.
그렇게 강경파와 온건파는 한 명 한 명 길드원들이 전부 모인 곳에서 결투를 했다. 혹시 모를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래서 김진석은 물론이고 제이다도 이런 싸움엔 익숙했다. 비록 투박한 기사의 결투였지만 그 박력만큼은 지금 못지않았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총성이 울렸다.
“뭣들 하시는 겁니까?!”
화염의 용과 시체 골렘이 싸우는데 군인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처음 벌어진 최상위 S급 플레이어의 싸움이었기에 그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게다가 이미 무아지경에 빠진 그들은 총성이 들리지도 않았다.
하늘에 대고 총을 쏜 거는 위협하기 위함이었지만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에게 그게 먹힐 리가 없었다.
“왜 보고만 있습니까? 말리십시오!”
“뭐야. 우리가 왜. 그런 건 너희 역할 아닌가?”
주변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도 총성에 깜짝 놀랐을 뿐 위협은 전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이 싸움이 즐겁기만 했을 뿐.
군인들도 이런 상황은 예상치 못했으니 그들은 어찌할 줄 몰랐다.
“…시험은?”
“제가 선택하는 게 아닌데요? 길드장 님이 선택해야죠. 마음에 드시나요?”
제이다의 시험은 별거 없었다. 오로지 힘. 힘이 충족되면 그다음이 있지 힘이 부족하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 모든 걸 제이다는 김진석에게 배웠다.
“나쁘진 않네.”
그 말을 끝으로 김진석은 인벤토리에서 모글레이를 꺼냈다.
“거기 있는 사람들? 비켜주시겠어요? 죽고 싶지 않다면.”
제이다는 그런 김진석의 모습을 보고 이반과 리아즈 칸의 뒤에서 구경하고 있던 최상위 S급 플레이어와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김진석 플레이어?”
“이런……!”
“이제 그만하지.”
그와 동시에 내려쳐 진 모글레이.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그것이 벌인 결과는 간단하지 않았다.
화염의 용과 시체 골렘의 사이에 거대한 검격이 그어졌다. 둘에겐 아무런 피해가 없었지만 그 사이에 있던 땅과 그 뒤로 세워진 별장은 아주 깔끔하게 절반으로 나뉘었다.
“군인분들이 곤란해하지 않나. 사과하지.”
“죄송합니다.”
김진석의 말에 곧바로 시체들을 떨어뜨리고 좀비에서 인간으로 돌아온 이반은 고개를 숙였다.
“나 말고. 저쪽.”
“죄송합니다.”
김진석에게 숙인 고개는 그의 말에 군인들을 향해 바꾼 다음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이반과 리아즈 칸. 그리고 별장 사이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제이다의 말을 긴가민가했었지만 그 이방인 길드의 부 길드장이었으니 속는 셈 치고 믿었는데 그게 그들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그들은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조심히 훔쳤다.
“그쪽은 안 하나?”
김진석의 시선은 리아즈 칸에게 가 있었다. 하지만 리아즈 칸은 정신이 없었다.
플레이어들 대부분이 죽음의 위기를 겪었다. 그게 게임 속에서든 지구에서든 말이다. 리아즈 칸도 마찬가지.
그는 방금 죽음의 위기를 넘겼다.
그것도 방금까지 싸우던 이반 덕분에. 마지막 검격이 날아오기 직전에 그가 자신의 몸을 밀치지 않았더라면 꼼짝없이 그 검격을 맞았을 거다.
사실은 이반 본인이 살기 위해 밀치며 자신 또한 날아간 것이었지만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리아즈 칸은 고개를 돌려 별장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나체로 껴안고 있는 남녀들이 눈만 꿈뻑꿈벅거리며 무슨 일인지 살피고 있었다. 그 어디에도 피나 살점 등은 없었다.
즉 죽거나 다친 자는 아무도 없었다.
“…미안하군. 내 자비로 전부 처리하겠네. 소란을 피웠군.”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군인들에게 숙이는 리아즈 칸이었지만 그 시선은 오로지 김진석에게 향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