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김진석은 너무나도 게임에서 볼 법한 양아치 같은 그를 보고 피식 웃었다.
“웃어? 너 이름이 뭐지?”
김진석의 웃는 모습에 기분이 상한 카무라는 김진석의 어깨를 밀치며 이름을 물어봤다. 하지만 거대한 돌과 같은 단단함에 전혀 밀리지 않는 것을 보고 흠칫 놀랐다.
“김진석.”
“넌 죽……?!”
그 이름이 들림과 동시에 똥이 더러워서 피했던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이 급히 그의 입을 막았다.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
“학살자 김진석 플레이어.”
“맞군. 거구의 동양인 남자라고 했지.”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인 김진석. 척결자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최상위 S급 플레이어를 죽인 자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PK 플레이어에서 일반 플레이어로 바뀐 자였다.
김진석을 수식하는 단어는 많았지만 그 모두가 뜻하는 건 같았다. 괴물 같은 힘을 가진 자를 말하는 것.
일을 막힌 카무라조차도 그의 별명들을 듣자 할 말을 잃었다. 지금 자신이 누구에게 뭐라 했는지를 생각한 것이다.
“왜 그러지? 나불거리던 입이 멈췄군.”
김진석의 말에 반문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패닉 상태였다.
그의 안하무인은 김진석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수준이었다. 김진석이야말로 안하무인의 정석이었다.
고작 길드원들을 건드렸다고 전 세계에서 유명한 범죄 조직을 혈혈단신으로 궤멸시켰다.
거기에는 당연히 최상위 S급 플레이어도 수두룩했지만 그 모두를 자비 없이 전부 죽여버렸다.
최악의 PK 플레이어. 그게 김진석이었다.
안하무인은 안하무인을 알아본다. 거칠 것 없이 날뛰던 카무라는 김진석에게 극도의 공포심을 느꼈다.
죽음의 공포.
어느새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은 향락의 거리에서 김진석의 주변을 둘러싼 모양새로 변해 있었다.
“같은 최상위 S급 플레이어면서 뭘 그리 두려워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되는데.”
김진석은 그들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자신은 저들과의 차이를 알고 있었지만 정작 저들은 자신의 힘을 정확히 모르면서 두려워하는 꼴이라니.
“고작 이런 곳에 있을 놈들답군.”
그 어떤 최상위 S급 플레이어도 같은 최상위 S급 플레이어 상대로 이런 폭언을 내뱉을 순 없을 것이다.
모욕을 당한 거나 다름없었지만 그들은 김진석의 힘을 두려워했고 김진석이 걸어서 밖으로 나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 *
“감사해요. 저런 곳인 줄 몰랐어요.”
“마찬가지입니다. 동물의 왕국이 따로 없군요.”
별장 밖으로 나가는 김진석을 뒤따라온 이미리는 그에게 감사를 전했다.
김진석은 한껏 기대했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 이미 감정으로 최소 눈에 보이던 상태창을 전부 확인해보았지만 별 것 없었다.
그때 루크가 다른 플레이어와 웃으며 지나가고 있었다.
“차라리 저기 붙으시죠.”
“그래야겠어요. 김진석 씨도 조심…하세요?”
이미리도 말하면서 의문이었다. 과연 이 자리에서 김진석이 조심해야 할 인물이 있을까.
김진석은 이미리가 루크에게 붙으며 대화하는 것을 보고 이내 그림자에 숨어들었다. 할 것도 없는데 자신도 부 길드장인 제이다가 뭘 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자신이 방해될 수도 있었으니 모습을 숨겼다.
별장 안은 꽤 나 넓었지만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제이다는 김진석과 마찬가지로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에게 화제의 인물이었다.
PK 플레이어를 길드장으로 둔 이방인 길드의 부 길드장이었으며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만이 있는 길드의 길드장을 빼고 유일한 지구의 인간이었다.
제이다는 친목의 장이 이번이 두 번째로 처음과는 달리 익숙하게 돌아다니며 다른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의 얼굴을 읽었다.
지금 제이다의 옆에는 김진석도 눈여겨볼 만한 인물이 있었다.
[리아즈 칸 LV:80]
인도 남자인 그는 자그마치 레벨이 80으로 적어도 별장 안 쭉정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카무라 같은 쓰레기라도 스킬만 많으면 최상위 S급 플레이어가 될 수 있었지만 레벨 80의 벽은 그 누구도 넘지 못했다.
리아즈 칸은 제이다에게 호감이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이성으로서가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서.
인도 왕자인 그는 턱수염을 비롯해 남자 같이 생겼다고 말하면 그가 저절로 생각날 정도로 잘생겼다.
하지만 그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다.
그의 관심사는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이었다. 그는 자신의 강함이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 이방인 길드원들에게도 통하는지 그게 궁금했다.
“이방인 길드원들이 그렇게 강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알렉산더를 이방인 길드만이 나서서 토벌했으니깐요.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김진석은 그의 말투도 마음에 들었다.
한 나라의 왕자인 그인데도 제이다에게 존대하며 의견을 물어보고 있는데 별장 안 카무라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길드원들의 의견을 들어봐야 하죠. 차라리 제가 아니라 길드장님한테 물어보시는 게 더 좋을 겁니다.”
그런데 제이다의 말에 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이방인 길드가 전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길드장. 김진석 플레이어가 단독으로 활약한 내용은 찾기 어렵습니다. 마피아들이 벌인 일이라는 말도 많고요.”
김진석이 가장 잘 알려진 사건이 바로 전 세계로 퍼져있는 가장 큰 범죄 조직. 삼합회와 야쿠자. 그리고 마피아를 학살한 사건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마피아는 아니었다. 야쿠자와 삼합회는 궤멸하다시피 했지만 마피아는 오히려 조직이 더 커졌다.
사람들은 그게 마피아의 소행이 아닐까 생각했다.
유일하게 마피아만이 한 명만이 죽고 끝났으니깐. 물론 그 한 명이 부두목에 최악의 PK 플레이어라고 평가받는 인물이었지만.
하지만 마피아 조직이 그 이후로 급속도로 불어나 전보다 훨씬 더 거대해진 조직이 되었으니 그 의혹은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또 그의 힘에는 너무 터무니없는 소문이 많습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게 없죠. 여쭙고 싶습니다. 정말 김진석 플레이어는 그 모든 소문에 걸맞는 힘을 가진 괴물 같은 플레이어입니까? 아니면… 그저 과장된 소문으로 부풀려진 길드원의 힘을 빌린 마피아. PK 플레이어입니까?”
리아즈 칸의 생각은 타당했다.
김진석에 대한 소문이 워낙 터무니없는 것이 대부분이라 사람들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최근 1년간 전혀 활동도 하지 않았으니 그 의혹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확실히 길드원들이 강한 건 리아즈 칸도 알고 있었다.
오히려 총의 존재로 수많은 플레이어가 도태된 지금 총을 사용해도 상대하지 못할 정말 괴물 같은 몬스터만을 상대하는 이방인 길드원들은 유명했다.
그런데 김진석은. 소문만 무성할 뿐 그의 힘을 본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 말. 취소하는 게 좋을 텐데.”
몇몇을 제외하곤.
어느새 다가와 제이다와 리아즈 칸의 말에 끼어든 자는 바로 이반. 마피아의 최상위 S급 플레이어였다.
“…넌?”
“난 내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모습을 직접 눈앞에서 바라봤다. 적어도 그 괴물에 대한 험담은 그 괴물이 있을지 모를 이곳에서는 하지 않는 게 좋을걸.”
이반. 그는 마피아 부두목. 보리스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김진석의 힘을 눈앞에서 본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마피아인 이반을 알아본 주변 사람들은 하나둘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이미 러시아를 점령하고 세력을 펼치기 시작한 마피아의 위세는 최상위 S급 플레이어라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다.
특히 지킬 것이 있는 자들이라면. 하지만 리아즈 칸은 아니었다.
“그 마피아가 고작 최상위 S급 플레이어 하나 때문에 그렇게 벌벌 떠는 것부터가 웃기군요.”
“…인도 왕자라고 뻗대는 걸 봐주는 것도 한두 번이다.”
리아즈 칸의 세력도 절대 마피아들에게 밀리지 않았다.
한 나라의 왕자가 고작해야 범죄 조직. 마피아에게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면 그 순간부터 왕자 개인이 아닌 한 나라의 위상이 떨어진다.
평범한 최상위 S급 플레이어라면 급이 다른 괴물 둘. 이반과 리아즈 칸의 신경전을 보고 거리를 둘 것이다.
지금 주위에 사람들처럼.
하지만 제이다는 달랐다.
“싸움이 금지되진 않았던 걸로 아는데요. 그리고 ‘별장’ 안에서 능력 사용을 금한다고 했죠?”
별장 안. 다르게 해석하면 건물 안으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했다.
제이다는 그 한 단어에 힘을 주며 말해 둘의 싸움을 부추겼다. 그녀는 길드원들의 결투를 자주 지켜봤었다.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의 싸움은 이미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마피아와 인도의 싸움이다!”
주변에 있던 자들은 불똥이 튈까 겁나 피해있었다. 하지만 둘의 싸움이 확실시되자 그제야 재밌겠다는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둘러쌌다.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이 전부 모인 지금 고작 싸움의 여파에 다칠 자들은 없었다. 그래도 조심하는 것이 좋았으니 마법사 플레이어들이 주변의 투명한 보호막을 씌었다.
플레이어들 모두가 몬스터를 잡고 성장한 자들이다. 그들은 싸움을 좋아한다.
제일 재밌는 구경이 싸움 구경이다.
이런 재밌는 볼거리를 놓칠 리 없었다.
순식간에 판이 깔린 지금. 더는 물릴 수도 없었다.
“고작 감정싸움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차라리 이렇게 된 거 규칙 하나 걸지. 인도.”
둘은 이미 알고 있었다. 싸워봤자 아무런 이득 볼 게 없다는 것을. 그렇다면 얻을 걸 만들어야겠지.
“…뭐지?”
“플레이어들의 자존심은 대단하지. 이렇게 공개적인 곳에서 왕자가 한낱 마피아에게 지게 되면 재밌을 것 같은데.”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전력을 다해라. 그 괴물이 아버지를 죽이기 전에 했던 말이다.”
그 말에 리아즈 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공개적으로 둘이 싸워 한쪽이 이기면 세력의 위세가 훨씬 늘어날 거다.
나중에 힘을 숨겼다는 등 변명거리 없이 전력을 다하라. 이 말이었다.
“보호막 쳤어요. 시작하세요.”
그때 제이다는 기다렸다는 듯이 뒤로 물러나 말했다. 둘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이내 싸움을 시작했다.
시작은 인도 왕자. 리아즈 칸이었다.
그는 전 세계에서 희귀한 화염을 다루는 플레이어였다. 그가 했던 게임은 초능력자가 있었고 그 초능력자가 천대받던 세계였다. 정확히는 괴물이라 여겨지며 초능력자를 억압하는 세계였는데 당연히 그 주인공 또한 초능력자. 화염을 다루는 초능력자였다.
그 주인공의 능력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리아즈 칸은 온몸이 화염으로 변하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동시에 그의 손에서 화염이 모이더니 순식간에 조그마한 폭풍을 이뤘다.
그런데 그 조그마한 폭풍을 이반에게 던지는 것이 아닌 하늘로 던져버렸다.
“…이런 젠장! 보호막을 하늘에 펼쳐! 빨리!”
리아즈 칸의 행동을 이해한 누군가가 보호막을 하늘로 펼치라고 말했고 상황파악이 빠른 마법사들은 곧바로 하늘에까지 보호막을 펼쳤다.
그리고 왜 그렇게 하라고 말했는지 금방 알 수 있게 되었다.
화염의 폭풍이 하늘로 올라가더니 흑연의 구름이 갑자기 생겨났다. 그와 동시에 흑연의 구름에서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피는 붉은색의 액체 형태가 아닌 기체 형태였다.
화염의 비.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는 화염을 다루는 만큼 화염이 근처에 있다면 그 능력이 뛰어나 졌다.
“재밌겠는데.”
그 광경을 전부 숨어서 지켜보는 김진석은 어느새 자리를 잡고 앉아서 구경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