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처음 보았을 때와는 많이 바뀌었군. 그래.”
“꽤 시간이 많이 지났죠. 물론 지금도 당신을 이길 순 없겠지만 적어도 할 수 있는 건 많아졌어요.”
이현은 MIA와 협력한 이후 군대에서 제대하고 막대한 부를 벌어들였다.
사람들의 사이에서 전 세계에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인물이 누굴까 토론할 때는 항상 이현이 거론될 정도로.
MIA도 원래부터 꽤 거대한 총기를 다루는 회사였지만 이현과 협력한 이후로 마찬가지로 막대한 부를 벌어들였다.
김진석은 이현을 처음 보았을 때는 언제나 동생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긴장한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은 훨씬 여유로워졌고 사람이 안정되어있었다.
“전부 당신 덕분입니다. 김진석 씨. 감사합니다.”
그 모든 건 김진석이 이현을 도와 이설을 서울에서 구해준 결과. 나비효과였다.
만약 김진석이 서울에서 이설을 구해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이현도 없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최상위 S급 플레이어이며 전 세계에서 막대한 부를 벌어들이는 이현이 김진석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바로 타시면 됩니다. 따라오시죠.”
그때 전세기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는 한 직원이 나타나 공항에 있는 모든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에게 말했다.
“가시죠.”
“…그러지.”
타이밍 좋게 나타난 직원으로 인해 말이 끊겼고 김진석은 뭔가 말하기도 전에 이현의 뒤를 따라갔다.
* * *
전세기 안에서도 시선이 계속됐다.
한국에는 많지는 않지만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이 있었고 그들 모두가 이현과 김진석의 관계를 궁금해했다.
분명 둘의 접점은 서울에서의 일밖에 없었다. 그때 김진석은 이현의 활약이 컸고 자신은 숟가락만 얹었다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의 모습을 보면 아닌 것 같았다.
사실 세간에 알려진 김진석의 힘만 보아도 절대 그가 이현의 뒤만 따라다닐 리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눈 내리지.”
“크흠…….”
물론 김진석이 그런 불편한 시선을 계속 내버려 둘리 없었고 곧바로 조용한 경고를 보냈다.
김진석은 가는 것도 귀찮았는데 지금부터 이런 시선은 원하지 않았고 조용히 가길 원했으니 비즈니스석에 몸을 파묻고 눈을 감으려고 했다.
그런데 직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었다.
다른 최상위 S급 플레이어도 그걸 눈치챘고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승무원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와이번이 나타났다고 합니다만 괜찮습니다. 이미 대비를 끝마쳤습니다. 기다려주십시오.”
와이번. 알렉산더와 흑기사가 나타나기 전 괴물이라 어울리는 수많은 강한 플레이어들을 죽인 몬스터였다.
김진석도 한 번 본 적 있는 몬스터였고 지금과 똑같이 전세기 안에서 만났다.
“데자뷴가.”
과연 그들이 대비를 어떻게 했는지 궁금한 김진석은 전세기 바깥쪽 창문을 열어서 밖을 바라봤다.
그런데 승무원들이 대비한다고 하는데 왜 이현이 자랑스러운 눈빛을 하고 있을까.
이 전세기는 평범치 않았다. 최상위 S급 플레이어라고 한들 와이번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지만 승무원들은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이현이 자랑스러운 이유. 전세기에는 이현과 MIA가 협력해서 만든 건 총뿐이 아니었으니. 전세기가 아닌 거의 전투기나 다름없는 화기를 장착해두었다.
전투기에나 달 법한 미사일 등이 와이번을 겨눴다.
하지만 와이번은 전과 같이 와이번의 눈엔 거대한 생명체로 보이는 거대한 비행기를 경계하고 있을 뿐이었다.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지.”
“…네?”
김진석은 저 화기들이 와이번한테 통할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게 통하든 통하지 않든 와이번의 심기를 거스르는 건 확실했다.
승무원들은 어느새 일어나 자신들에게 다가온 김진석을 바라봤다.
이미 그들은 전원 한국에 가는 전세기에 탔을 때부터 위험인물인 김진석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굳이 건드리지 않으면 알아서 지나갈 거다.”
“…….”
승무원은 김진석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설령 이 비행기가 터져도 살아남을 수 있는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이겠지만 승무원들은 아니었다.
이 전세기에 타기 위해 전문적으로 훈련받긴 했지만 그들은 대부분 일반인이었다.
창문 밖에서 보이는 거대한 눈이 그들을 바라보는 모습은 소름이 돋았다. 다른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은 그 어떠한 의견도 내지 않았다.
그저 김진석의 눈치만 보고 있을 뿐.
“그의 말대로 하시죠.”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현이 말하자마자 고민하는 기색 없이 승무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다른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은 데려오는 전세기는 이렇게 개조되지 않았었다. 이현의 요청으로 사실 전세기를 개조한 게 아닌 전투기를 개조한 것이다.
혹시 모를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
이현의 말에 승무원들은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한 앉는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긴장을 늦추진 않았다.
그들의 옆에는 승무원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언제나 상비된 총기들이 있었다.
비행기 창문 밖으로 와이번의 눈이 비행기 안을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저렇게 조용히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했다.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도 긴장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 말이다.
물론 승무원들도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는다는 것부터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넌 왜 자꾸 나타나니?”
마치 따라다니는 것처럼 착각할 정도였다. 하늘에는 전세기뿐만 아니라 온갖 비행기들이 날아다니고 있을 텐데 왜 김진석이 탄 비행기만 쫓아다닐까.
그런데 김진석의 의문을 마치 해결하려는 듯 와이번의 감정이 느껴져 왔다. 전에 새로이 배운 스킬. 교감의 효과였다.
공포. 불안감. 그리고 알 수 없는 애정.
“너… 나 때문에 온 거 맞구나?”
짐승의 본능. 비행기 안에 탄 김진석에게 포식자로서의 느낌이 들어 경계하기 위해 와이번이 다가온 것이다.
게다가 자세히 보니 비행기보다 더 커 보이는 와이번의 옆에 조그마한 와이번 하나가 보였다.
새끼. 자신의 아이 때문에 비행기를 경계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와이번은 경계하다가 비행기에서 별다른 움직임이 없자 금방 구름으로 들어가며 사라졌다.
“할 일 하세요.”
김진석은 자리로 돌아가 다시 비즈니스석에 몸을 파묻으며 눈을 감았다.
승무원들은 물론이고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도 그 여유로움에 할 말을 잃었다.
* * *
“뭔 놈의 사람이 이리 많지?”
비행기에서 내려 직원의 안내를 받고 차를 타 꽤 오랫동안 이동한 뒤에 보인 광경은 김진석에겐 생소한 광경이었다.
그가 도착한 곳은 김진석의 집과 비슷한 별장이었다.
물론 비교하기도 미안할 정도의 거대한 크기였고 수많은 사람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별 쓸모없는 놈들밖에 안 보이는데.”
김진석은 오자마자 곧바로 그들의 상태창을 확인해보았지만 별다른 능력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몰랐지만 1년 동안 시간이 지난 지금 최상위 S급 플레이어의 허들이 많이 낮아졌다.
약해지기도 했지만 그만큼 플레이어들이 성장했으니 전 세계에는 수많은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이 존재했다.
그들이 한자리에 모이니 사람이 많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바로 돌아가고 싶네.”
“안 됩니다.”
근처에서 듣고 있던 군인이 그 말에 대답했다.
이곳의 규칙은 간단했다.
별장 안에서 능력 사용을 금할 것.
무조건 24시간을 이 안에서 지낼 것.
그 전에 돌아가려고 하면 제재가 있을 것.
이 세 개가 전부였다.
M-001을 비롯한 여러 총기로 무장한 군인들은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이 모여서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기에 파견된 군인들이었다.
그들은 그 어떤 플레이어가 말을 걸어도 사무적인 대답을 하며 총기를 들고 사주경계를 할 뿐이었다.
군인들은 최소한의 억제 장치로 정말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이 단체로 나가려고 한다면 턱도 없겠지만 하나둘 정도는 가볍게 막을 수 있는 전력이었다.
이현은 자연스럽게 그 무리에 어울렸고 다른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은 친목의 장을 잘 즐기고 있었다.
유일하게 김진석의 옆에 있는 자는 넬뿐이었다.
주변엔 평범한 여성으로 보일 뿐인 넬에게 다가올 자는. 그것도 옆에 거대한 거구의 남자가 있는 와중에 아무도 없었다.
“돌아다닐까?”
“뭐 할 건데요?”
“모르지. 우선 안으로 들어가지 뭐.”
“음~ 전 대충 알 것 같은데요?”
넬의 말에 김진석은 의문을 가졌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별장 안에도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바깥과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향수를 미친 듯이 뿌린듯한 코를 찌르는 냄새와 여성 플레이어와 남성 플레이어가 붙어 다니고 있었다.
그 분위기가 여지없는 향락의 거리였다.
“친목의 장이 아니라 만남의 장 같은데.”
플레이어들은 엄청난 힘을 가진 만큼 더 많은 욕망을 가진다. 괜히 영국에 나타난 악마들이 플레이어에게 집착한 것이 아니었다.
“저희도 할래요?”
“장난치지 마.”
김진석은 이곳에서 자그마치 24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막막함에 한숨이 나왔다.
“여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자가 있네요?”
넬의 말에 김진석은 시선을 돌렸고 그곳엔 누가 봐도 양아치 같은 남자가 헌팅을 거는 것에 당황하는 아름다운 여성. 이미리가 있었다.
그녀 또한 김진석과 같이 처음 온 인물이었고 마찬가지로 별장 안으로 들어왔지만 아름다운 여성이었던 그녀에게 관심을 가질 자는 매우 많았다.
이미리는 여행을 자주 돌아다녔고 언제나 혼자였었다. 당연히 아름다운 이미리에게 다가가는 남자들은 많았지만 전부 거절했었다.
가끔 더욱 치근덕거리는 남자가 있을 때는 그녀의 몬스터가 해결해주었다.
하지만 이 안에서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의 능력 사용을 금하고 있었기에 그녀도 몬스터를 소환하지 않았다.
사실 그런 규칙 따위는 대부분 무시하는 게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이었지만 이미리는 그런 건 전혀 몰랐다.
“우리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아?”
“아뇨. 그게… 아!”
그때 하필 이미리의 눈에 들어온 인물이 바로 김진석이었다.
그녀는 최상위 S급 플레이어답게 남자를 밀치고 김진석에게 다가왔다.
“이 분이 그……!”
“뭐 남자친구라고 할 생각이야? 너무 뻔한 레퍼토리 아니…야?”
금발의 남자는 자연스럽게 김진석에게 다가왔지만 거구의 남자를 보고 흠칫했다. 최상위 S급 플레이어에게 덩치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지만 본능적인 모습이었다.
[키무라 LV:70]
김진석은 감정으로 그를 확인했지만 온갖 잡다한 스킬로 가득 찬 상태창이었다. 갓 최상위 S급 플레이어가 된 인물이었다.
“깜짝이야. 뭘 먹고 이리 큰 거야?”
사실 카무라는 일본인과 미국인의 혼혈로 우월한 유전자를 더불어 일본에서 가장 거대한 몬스터의 소재를 다루는 기업 회사 CEO의 아들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엄청난 스킬북을 사들여 스킬을 얻어 최상위 S급 플레이어가 된 인물이었다.
어릴 때부터 안하무인의 성격인 그는 유일한 장점인 외모를 이용해 여자를 꼬시며 사는 그는 친목의 장인 이곳에서도 똑같이 행동했다.
처음엔 고작 D급 플레이어였던 그가 최상위 S급 플레이어가 되자마자 그의 안하무인 같은 성격은 더욱 심해졌다.
친목회의 장이 이번이 두 번째인 그를 알아본 다른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은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닌, 더러워서 피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그의 타겟이 된 이미리를 안타깝게 여겼다.
그와 관계를 맺은 여성들은 하나같이 전부 처참하게 버려졌었다. 그건 최상위 S급 플레이어도 마찬가지였지만 카무라는 영리하게도 신체 능력이 없는 다른 플레이어를 노렸다.
“곱게 고개 숙이고 떠나. 우리 아버지의 눈에 띄면 몬스터 소재도 못 판다?”
몬스터 소재를 다루는 회사는 M-001이 개발된 이후 더욱 중요해졌고 일본에서 가장 거대한 회사의 아들인 그를 쉽게 볼 수가 없었다.
그런 회사는 대부분 서로 협력하며 몬스터의 소재 가격을 올리거나 내리는 등을 했기에 자칫하면 몬스터 소재를 못 팔게 되는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