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하…….”
김진석은 지루했다.
척결자가 언제 올까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지만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게다가 인류에게 보급된 몬스터 소재의 총. 그건 큰 변혁을 가져다주었다.
군인들이 효과적으로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게 되니 A급 플레이어보다 아래 등급의 플레이어들은 할 게 많이 없어졌다.
많은 플레이어가 도태되었고 낮은 등급의 플레이어들은 더 성장하기 위해 몬스터를 잡거나 아니면 플레이어가 되기 전 원래 직업을 갖고 있던 자들은 본래의 직업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낮은 등급의 플레이어들도 전만큼은 아니었지만 돈을 벌면서 성장해 악착같이 A급 플레이어로 올라가려는 모습이 보였다.
물론 그건 김진석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그냥 PK 플레이어로 남게 하지… 괜한 일을 하셨습니다.”
“하하…….”
김진석과 루크는 이방인 길드 지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알렉산더의 일이 있었던 이후. 김진석은 PK 플레이어임에도 길드원들을 이끌고 알렉산더를 토벌한 공을 인정받아 플레이어 역사상 처음으로 PK 플레이어에서 일반 플레이어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렇다는 건 즉 명함도 다시 받아야 하고 감시도 다시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으니 김진석은 그게 매우 귀찮았다.
그렇게 만든 장본인인 루크는 그저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루크가 김진석을 직접 찾아온 경우는 별로 없었다. 이방인 길드를 제외하면 여전히 황혼 길드는 한국 1위 길드였고 그만큼 바빴다.
요즘 할 것도 없어서 핸드폰도 전보단 자주 보는데 직접 찾아왔다는 건.
“별건 아니지만 김진석 씨에겐 별일 맞을 겁니다.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에게 소집이 걸렸습니다. 알렉산더가 나온 이후로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끼리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가 생겼다는 거 잘 알고 계시잖아요. 이미 3번 불참하셨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하…….”
루크의 말대로 알렉산더가 나온 그때. 사실 김진석만이 아니라 다른 전 세계에서 중국을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정복자 알렉산더를 잡기 위해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이 뭉친 적이 있었다.
그 중국이 멸망 당하기 직전이었으니 그들은 방심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합도 전혀 안 맞고 능력도 정확히 몰랐다.
사실 서로의 능력을 모르니 합이 안 맞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은 알렉산더와 같은 괴물이 등장했을 때. 합심해서 싸워야 할 때를 대비하기 위해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물론 제멋대로인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이 고작 한 번 위기를 겪었다고 고쳐질 이들이 아니었으니.
사실 중국 때 한 번 모인 것도 기적이었다. 그래서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 바로 3달에 한 번 모임을 가지는 것이다.
원래는 한 달에 한 번이었는데 그럴 바에 그냥 지구 멸망하는 게 낫다는 최상위 S급 플레이어가 있어서 3달로 간신히 늘렸다.
총 3번의 불참할 수 있었고 지금 동안 총 3번의 친목회가 있었는데 당연히 김진석은 한 번도 안 갔다.
그리고 지금. 4번의 친목회가 있는 지금. 김진석은 불참할 기회가 없었다.
“김진석 씨와 같은 플레이어가 많았으니 이번 친목회는 과연 볼만 하겠군요.”
루크. 그는 1년의 세월 동안 그 누구보다 노력했으니 A급 최상위 플레이어에서 S급을 넘어 최상위 S급 플레이어가 되었다.
김진석이 그에게 선물해준 장비와 함께 그는 이명도 받았다. 흑백의 기사. 갑옷은 순백의 하얀색이었지만 루크 본인이 흑인이라 붙여진 이명이었다.
그는 한 길드의 길드장으로서 인맥을 늘릴 기회가 있는 그 친목도모회를 불참할 이유가 없었으니.
실제로 그는 거기서 수많은 최상위 S급 플레이어를 만나며 인맥을 쌓아왔다.
“나와 같은?”
“당연히 김진석 씨와 같은 S급 플레이어는 많습니다. 제멋대로인 플레이어들이니깐요. 하지만 이 친목도모회에 불참하는 순간 PK 플레이어로 전락한다고 합니다. 아무리 제멋대로인 그들이라도 PK 플레이어는…….”
“그럼 난 별 상관없는데.”
“…그래도 참가하시면 좋은 경험이 되실 겁니다.”
하지만 그건 김진석에겐 별 타격이 없었으니. 그래도 김진석의 흥미를 끄는 것이 있었다.
“그동안 새로운 S급 플레이어가 꽤 나왔다고 하던데.”
김진석이 집 안에 처박혀 폐인처럼 지내고 있는 동안 전 세계에서 수많은 새로운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이 생겨났다.
S급 플레이어에서 최상위 S급 플레이어가 된 인물도 있었으며 정말 뜬금없이 D, C급 플레이어가 최상위 S급 플레이어가 된 인물도 있었다.
그리고 김진석과 같은 플레이어는 많았지만 그들도 마찬가지로 이번 친목회에는 무조건 참여해야만 했다.
안 한다면 PK 플레이어로 전락할 테니깐.
“흠… 너도 갈래?”
“귀찮은 거 저한테 떠넘기시려고 하는 거죠?”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곳은 이방인 길드 지부. 그것도 김진석을 위해 만든 길드장 룸이 따로 있었다.
이곳에 출입할 수 있는 자는 김진석과 부길드장 제이다. 그리고 초대받은 손님뿐이다. 하지만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대 악마들.
처음부터 루크와 김진석의 대화를 듣고 있던 넬이었다.
그녀는 길드장 룸 한쪽에 왠지 모르겠지만 배치된 최고급 물침대에 누워서 뒹굴뒹굴거리고 있었다.
김진석은 몰랐지만 그녀의 반응으로 보아 넬이 원해서 들인 것으로 보였다.
“음… 할 것도 없는데 가죠. 뭐.”
넬은 한껏 여유로워진 것처럼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미 그녀는 김진석을 안았다. 1년 동안 집안에 처박혀 지낼 동안 넬은 끊임없이 김진석을 유혹했다.
온갖 변명과 핑계를 다 대가면서 어떻게든 꼬셨지만 김진석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마지막 최후의 수단을 취했다.
“저 정기를 못 먹으면 죽을 텐데…….”
넬은 서큐버스. 인간 남자의 정기를 먹는 건 인간이 밥을 먹는 행위와 똑같았다. 그러면 인간이 밥을 안 먹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김진석은 하고많은 남자 중에 왜 자신이냐고 물어보려고 하다가 말았다.
그녀의 고집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정말 자신이 아니라면 그녀는 정말 죽어버릴 거다.
그렇게 결국 김진석은 허락했고 넬은 그날 하루 24시간 김진석을 차지했다.
하지만 김진석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었으니. 넬은 정기를 먹지 못하면 죽는 건 맞았다. 하지만 그녀라면 적어도 김진석이 늙어 죽을 때까지 안 먹어도 살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넬은 한층 여유로워졌다.
서큐버스인만큼 김진석의 정기를 먹은 그녀는 전과 차원이 다른 능력을 가졌다. 신체 능력이 거의 세피드에 다다르는 수준이었다.
넬이 강해지는 건 김진석에게도 좋은 일이었으니 마냥 나쁜 일은 아니었다.
“일주일 뒤에 미국에서 소집이 있으니 준비 부탁드립니다.”
“그러죠.”
* * *
“뭐 예상은 했지만 전세기가 데려오는군.”
“이거라도 안 하면 그 누가 가겠습니까.”
김진석과 넬은 공항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루크와 이미리를 만날 수 있었다.
원래라면 넬은 최상위 S급 플레이어가 아닌, 그냥 S급 플레이어라 참여하지 못했지만 최상위 S급 플레이어가 한 명 한정으로 데려갈 수 있었다.
루크의 말대로 친목의 장이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이미리 씨.”
“오랜만이에요. 김진석 씨~”
여전히 밝은 성격의 이미리였다.
최상위 S급 플레이어인 이미리 또한 친목회에 초대받았지만 자유로운 영혼인 그녀도 김진석과 마찬가지로 한 번도 참가하지 않았었고 이번이 처음이었다.
“제이다 씨는요? 다른 분들은 몰라도 제이다 씨는 참가해야 하지 않나요?”
이방인 길드의 부 길드장 제이다. 그녀 또한 김진석의 지원과 그녀의 노력이 겹쳐져 최상위 S급 플레이어로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미리가 말한 다른 분들은 바로 이방인 길드원들을 말한다.
1년이 지난 지금. 총 따위에 기대지 않고 몬스터를 꾸준히 잡아 온 그들은 전원 S급 플레이어 이상 수준이 되었다.
최상위 S급 플레이어 수준도 절반이 넘었으니 그들 모두가 친목회의 참여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특수성과 위험도로 인해 유일하게 선택할 권리를 주었다. 참여할지 아니면 불참할지.
당연히 그들 모두가 불참을 선택했다.
“준비할 것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공항 한구석에서 제이다의 모습이 보였다.
원래부터 전형적인 서양의 미녀였던 그녀가 한껏 꾸민 모습은 공항 안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쏠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넬은 환각으로 그저 그런 외모인 여성으로 변한 상태였다.
제이다는 오자마자 이미리와 루크랑 대화를 나누었다. 사실상 김진석이 일을 안 하니 외교 같은 것도 전부 그녀의 몫이었고 황혼 길드와는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물론 이미리도 김진석과 비슷했었지만 알렉산더의 사건이 있던 이후로 한국에 머무르는 일이 많아졌다.
루크가 길드원들이 불안해하니 한국에 있어 달란 말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황혼 길드랑 연을 쌓아온 제이다였다.
“그러고 보니 제이다 씨. 직원들 대거 고용했다면서요?”
“네. 이젠 그들의 경계심이 수그러들었으니깐요.”
이방인 길드원들은 M-001이 보급화된 이후로 경계심이 더욱 심해졌다.
아무리 그들이라도 몬스터에게 통하는 총은 위협적이었고 실제로 군인의 오인 사격으로 인해 피해를 입을 뻔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근처 다른 길드원이 총알을 방패로 막아주었지만 방패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느낌은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가웨인을 비롯한 다른 온건파의 인물들은 서서히 인간들의 사이에 녹아들었으니. 평범한 옷을 입고 연인도 만드는 등. 지구에서 새로운 삶을 찾았다.
사실 그들이 변한 것도 군인의 오인 사격. 그 때문이었다.
북한이 사라진 지금 군인들은 보급화된 총으로 북한의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몬스터만을 바라본 길드원들은 북한으로 들어간 것이다.
모든 게 인간에 대한 무지로 인해 생긴 일이었고 그제야 온건파 강경파 할 것 없이 지구의 지식을 읽히기 시작했다.
그때 제이다는 인간을 알려면 곁에 인간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었고 그 핑계로 직원을 대거 고용한 것이다.
자신이 김진석을 보조했던 것처럼 그들을 보조하는 이들로 말이다.
물론 조건은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인들로만. 그리고 범죄 경력이 없는, 사회성이 뛰어난 이들로만.
그렇게 이방인 길드원들은 지구에 서서히 녹아들기 시작했다.
김진석은 이제는 제이다의 자유로운 모습에 괜히 그녀에게 모든 일을 시켰나 생각했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이다의 모습이 보기 좋은 것도 사실이었다.
“길드장 님도 오랜만입니다.”
“빨리도 말하네.”
퉁명스럽게 대답했지만 김진석의 입가엔 눈치채기도 어려운 미소가 담겨있었다. 그 미소는 오로지 넬만이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기 대스타가 오네요?”
이미리의 말에 김진석은 시선을 옮겼다.
공항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제이다가 나타났을 때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공항이 떠들썩해지고 있었다.
이미리의 말대로 대스타가 나타난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정체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쫙 빠진 하얀색 정장. 웬만한 인물이 입으면 부담스러울 정도였지만 그에겐 아니었다. 마치 피부인 것처럼 어울리는 남자였다.
“오랜만입니다. 김진석 플레이어.”
“…오랜만이군. 군복을 입은 모습만 보다가 그런 모습을 보니 신기하군.”
전 세계에 총기를 보급화시킨 주인공. 최상위 S급 플레이어 이현이었다.
“그쪽도 오랜만이군.”
“…저는 뭐 덤이에요?”
퉁명스럽게 말하는 이현의 옆에 있던 여성. 그녀는 이현과 대비되는 색인 검은색 여성용 정장을 입은 여성. 이현의 여동생 이설이었다.
이외에도 1년 사이에 한국에도 여러 최상위 S급 플레이어가 생겨났지만 다들 김진석과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꺼려했다.
당연했다. 그는 최상위 S급 플레이어 여럿을 죽인 괴물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