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159화 (159/201)

159화

“끄…아아악!”

“음? 뭐야. 반항하지 마. 그냥 받아들여.”

갤러해드는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붙잡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계속 알렉산더의 말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신의 말에 절대복종하라.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순간 알렉산더의 기사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죽을 수도 없다. 철갑 기병들은 전부 귀속된다. 바로 알렉산더의 스킬로서.

[정복왕 알렉산더의 기사단]

김진석은 처음 감정으로 그를 확인했을 때 본 스킬로 확신했다. 저 철갑 기병들이 무수히 많이 나온 이유. 바로 그의 스킬이라서였다.

흔히 알고 있는 소환형 스킬이 아닌 세뇌와 비슷한 스킬로 보였다. 그가 말하길 자기 밑으로 오라고 말했으니깐.

그래서 김진석은 갤러해드에게 몰래 다가가 귓속말로 말했다.

“기사단에 들어가겠다고 말해. 너라면 버틸 수 있겠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갤러해드는 김진석을 알고 있었다. 그는 쓸데없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김진석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다.

그리고 김진석이 굳이 자신을 콕 집어 말했다는 건 그만이 버틸 수 있으리라 믿은 거다. 그렇다면 자신도 그 믿음에 보답해야 하겠지.

이제는 아니지만. 한때 가장 완벽한 기사로 불린 갤러해드는 버티고 있었다. 알렉산더의 세뇌에.

“호오. 블러핑이었나?”

그와 동시에 마치 노리듯 살아남은 가웨인과 길드원들이 그들의 앞으로 온 알렉산더를 공격했다.

비록 마법사들이 살아남지 못해 병장기밖에 없었지만 살아남은 길드원들은 최정예 인원들. 아무리 알렉산더라도 무시할 수준은 아니었다.

챙!

“안 되지.”

하지만 이곳엔 알렉산더만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알렉산더의 정예 기병들이 그들의 병장기를 막았다.

“끄… 그만 죽이면 끝난다! 죽여!”

이를 악물었음에도 고통에 입에서 새어 나오는 침을 참으며 갤러해드는 말했다. 김진석의 말을 곱씹어보았을 때 철갑 기병들은 알렉산더의 스킬이다.

지구에서 오래 지낸 갤러해드는 당연히 스킬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으니. 만약 알렉산더만 죽인다면 철갑 기병들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머리를 바늘로 쑤시는 듯한 고통을 참으며 갤러해드는 검과 방패를 들어 바로 근처에 있는 알렉산더의 팔을 그을려 했다.

“아쉽군.”

알렉산더는 가볍게 뒷걸음질을 치며 갤러해드의 검을 피했다. 그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이들 전부가 정예 기병이 될 수 있는 인재들이었다.

그는 손을 흔들며 철갑 기병들 사이로 빠져나갔고 기병들이 그들을 감쌌다.

그때 들려오는 박수 소리.

짝. 짝. 짝.

“기대 이상이군. 너희들의 투지도 인정하지.”

“응?”

알렉산더와 같이 천천히. 하지만 기만하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박수치는 자는 바로 김진석이었다.

그의 뒤에는 사라졌던 400여 명의 길드원이 멀쩡히 서 있었다.

당연히 김진석은 길드원들을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았고 그들이 위험한 순간 비네의 공간으로 집어넣었다.

그들은 그 안에서 상처를 치료하며 살아있었다.

“…어디 있다가 이제 나타났습니까.”

가웨인은 그제야 나타난 김진석을 보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넌… 누구지?”

“네 눈앞 기사단의 기사단장이다.”

김진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철갑 기병들을 밀어내며 그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길드원들에게 다가갔다.

“기사단장이라고? 가죽 갑옷을 입은 것이?”

알렉산더 또한 김진석이 가죽 갑옷을 입고 있는 것에 의문을 가졌다. 기사단의 기사단장이 가죽 갑옷을 입는다는 것은 그의 세계에서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이내 지쳐 쓰러진 길드원들까지 전부 챙긴 김진석은 길드원들을 구석에 몰아 두었다.

“배수진 뭐 그런 거냐? 그래봤자…….”

“말이 많군. 약한 세계만 골라 정복하는 왕은 원래 그런가?”

“…….”

알렉산더. 레벨 90의 괴물인 그였지만 김진석의 도발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사실 지구도 김진석이 아니었다면 정복당했을 거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로스트 월드만 하더라도 알렉산더에게 정복당할 만큼 약한 세계가 아니었다.

“내가 너희들을 데리고 온 이유는 셋이다.”

김진석은 말하고 있었다.

“하나는 너희들의 성장을 위해서.”

하지만 그건 알렉산더가 아닌 길드원들에게였다.

“하나는 너희들의 전력을 보기 위해서.”

“뭐해?! 죽여버려!”

알렉산더의 명령이 없어 가만히 있던 철갑 기병들이 히스테릭한 그의 모습에 익숙한 듯 각자 자신의 무기를 들기 시작했다.

“마지막 하나는. 내 힘을 너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그와 동시에 김진석과 길드원들에게 달려드려는 알렉산더의 철갑 기병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여기서 얼마나 더 보여주시려는 겁니까.”

가장 오랫동안 김진석의 길드원으로서 그를 지켜봤던 가웨인은 그에게 물었다.

김진석의 음정은 한치의 떨림도 없이 일정하게 답했다. 이 상황에 긴장한 것이 아닌 평온한 음정.

“무슨 소리지. 난 한 번도 힘을 보인 적이 없다만.”

가웨인은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습니까…….”

“뭐 하는 거지? 죽이라고 하지 않았……?”

알렉산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철갑 기병들의 몸이 허물어졌다. 그런데 그들의 몸이 땅에 닿자마자 절반으로 나뉘었다.

김진석은 갤러해드와 같은 길드원들이 그를 의심할 때 그들 모두를 제압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조차도. 그는 제대로 된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차지 어택.”

김진석은 대부분 그저 신체 능력으로만 싸워왔다. 이유는 딱히 별다른 건 없고 그저 스킬을 사용할 이유를 못 느껴서였다.

길드원들 앞에서 스킬을 사용한 것도 첫 알렉산더의 철갑 기병들을 잡을 때. 그조차도 광기를 제외한 아무런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그가 스킬을 사용한 지도 몰랐을 거다.

“더블 슬래쉬.”

하지만 김진석의 힘은 신체 능력이 아니었다. 그가 로스트 월드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바로 스킬 덕분이었다.

지구의 플레이어들은 쓸만한 스킬을 배우려고 수백 수천의 스킬북을 읽어도 안 될 놈은 안 됐는데 김진석은 그런 스킬들이 한가득이었다.

“카운터.”

그가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무더기로 철갑 기병들이 죽어 나갔다.

한때 애용했던 스킬 카운터. 상대의 공격을 막는 스킬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용법이 어려워 파괴력이 가장 강했었던 스킬.

카운터.

“크아악!”

과연 지금 벌어지는 일이 사람이 하는 일이 맞는 것인가.

김진석이 대검을 휘두를 때마다 폭탄이 터지듯 땅이 뒤집히며 최소 수백의 철갑 기병들이 죽음에 이르렀다.

“…어?”

알렉산더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베이징의 거리를 가득 채웠던 그의 철갑 기병들의 살점이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누가 봐도 그들은 즉사했다.

사지가 날라가고 파편이 튀었다. 마치 재앙이 일어난 것만 같았다.

“이레이저. 슬라이서. 급습.”

게다가 김진석의 무기는 대검만이 아니었으니.

어느새 그의 손에는 자기가 성스럽다고 표현하는 듯한 순백의 아름다운 단검이 들려있었다. 비록 그 단검엔 피가 가득 묻어있었지만 그 자태만큼은 고고했다.

[리딜]

한 영웅이 악룡의 몸에서 심장을 꺼낼 때 사용했다고 알려진 단검. 신화 속의 단검이 김진석의 손에 들려있었다.

악룡의 비늘을 뚫을 만큼 단단한 단검인 만큼 그들의 갑옷은 두부 자르듯 잘려나갔다.

“쉐도우 트랩.”

그리고 마지막. 쉐도우 트랩.

그들의 그림자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더니 철갑 기병들을 그림자의 늪으로 빨아들였다. 어디에 숨어있던 상관 없었다.

김진석의 주변으로 숫자 상관없이 전원이 빨려 들어갔다.

알렉산더의 철갑 기병들의 최고 장점인 숫자를 살릴 수 없게 되자 처음으로 그들에게서 공포의 감정을 느꼈다.

“괴… 괴물!”

김진석이 보기에는 철갑 기병들은 그저 숫자만 많은 일반 몬스터 수준이었다.

신체 능력은 압도적으로 뛰어나다고 말해도 무방하지만 그에 맞지 않는 인간이라곤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단순한 공격 방식.

오히려 A급 플레이어가 훨씬 위협적이었다.

“멍청하고 단순해. 비슷한 수준만 되더라도 학살당하다시피 하지. 그렇군. 지구의 인간들이 정말 모두 협력만 한다면 이겨낼 순 있겠어.”

김진석은 그저 게임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지구가 게임 중 하나였다면 얼마든지 헤쳐나갈 수 있는 게임이었다. 물론 김진석이 주인공이었다면 말이다.

그중에서 다른 인물이 죽든 말든 별로 신경 안 쓰는 게임이다.

원래라면 김진석이란 존재가 없었다면 이런 알렉산더와 같은 자는 지구에 나오지 않았을 거다. 지구의 수준에 맞게 나오던 김진석이 주인공이던 똑같이 말이다.

하지만 김진석이 그것에 책임감을 가지고 알렉산더를 죽이러 온 것이 아니었다.

“그럼… 너흴 이대로 내버려 두면 다른 놈들이 안 나타날까?”

도대체 왜 이들이 여기 오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게임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보스가 있는 상태에서 다른 보스가 과연 나타날까?

만약 그렇다면 악마의 방주. 아크에 관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뿐만 아니라 알렉산더와 비슷한 몬스터들이 더는 나타나지 않겠지.

얼마든지 실험할 가치가 있었다.

“뭔 개소리냐?!”

알렉산더 또한 레벨 90의 괴물. 그저 그의 스킬 중 하나가 기사단일 뿐 그는 절대 약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진석은 이미 그의 스킬을 전부 알고 있었다.

[패왕] [카리스마] [축복받은 자]

등등. 아무리 봐도 전투에 관련된 스킬은 없어 보였다. 저 모두가 수많은 철갑 기사단을 완벽히 다루기 위한 것이었다.

특이하게도 알렉산더는 양손에 스파이크 해머와 철퇴를 든 채 김진석에게 휘둘렀지만 그런 뻔한 공격을 맞아줄 자가 아니었다.

고작 한 발자국 움직이며 깻잎 한 장 차이로 피하는 김진석은 그를 농락하고 있었다.

그를 구하기 위해 달려오는 철갑 기병들은 그림자 늪으로 빠져 이내 사라져버렸다. 궁기병들이 화살을 날려봤지만 김진석은 소드 댄스란 스킬로 모든 화살을 쳐냈다.

하지만 수만, 수십만 개의 화살을 혼자서 막기에는 버거웠으니. 그렇다면 다른 스킬을 쓰면 됐다.

어느새 손에서 단검과 대검이 아닌 그림자가 일렁이는 듯 검은 연기의 활을 든 김진석은 하늘을 향해 겨누며 화살을 쏘았다.

“애로우 샤워.”

하늘에서 화살로 된 비를 덜어뜨리는 스킬. 하늘에서 화살과 화살이 맞부딪히며 결국 그 화살은 궁기병들에게로 돌아갔다.

그사이에 알렉산더가 김진석을 노렸지만 김진석은 보지도 않은 채 철퇴를 맨손으로 잡았다.

“지구에게는 최악의 인재(人災)겠지만 고작 이 정도인가.”

그와 동시에 알렉산더의 철퇴를 든 손이 잘려나갔다.

“크아악!”

“사지를 전부 자르고 혹시 모르니 입을 막아. 입으로도 세뇌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살려만 두면 뭘 해도 되죠?”

“그래. 네 마음대로 해.”

어느새 그의 옆에 나타난 비네는 아름답지만 소름 끼치는 웃음을 지으며 손톱으로 알렉산더의 사지를 자르기 시작했다.

뒤에서 들리는 끔찍한 소리를 들으며 김진석은 도망가는 궁기병들을 바라봤다.

“너희들은… 내 실험 상대가 돼야겠어.”

그 말을 끝으로 김진석의 등. 가죽 갑옷의 사이로 거대한 붉은 박쥐 날개가 펼쳐졌다. 이방인 길드원들은 그런 김진석을 보고 생각했다.

“…악마.”

길드원들의 말을 끝나기 무섭게. 거대한 붉은 박쥐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런데 그 모습은 뭔가 어정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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