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38선을 지키는 군인들은 오로지 남한 측 군대뿐이었다. 북한 측 군인들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연대장님! 속보입니다!”
한 군인이 자신의 핸드폰을 들고 화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연대장이라 불린 이는 38선을 지키고 있었으며 핸드폰을 가진 그 군인을 다그치려고 했는데 그 화면을 보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 화면 우측 상단에는 중국의 국기가 있었고 좌측에는 CNTV. 차이나 채널. 즉 중국 공식 채널이었다.
그런데 그 화면에 보이는 자는 동양인이 아닌 붉은 스포츠 머리와 40대 중 후반의 나이인 그는 신기하다는 듯 화면을 보고 있었다.
“뭐야. 이거 나오고 있는 거 맞아?”
“예? 예. 예! 맞습니다!”
중국어로 들리는 두려움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오는 그 소리는 이 방송이 생방송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 아. 이 지구란 세계에 있는 인간 여러분. 알렉산더라고 합니다. 이 지구에 용건은 별다른 건 없고, 정복하러 왔어요. 그러니 발악해 주세요~ 제가 더 즐거울 수 있게~”
그 말을 끝으로 화면에 피가 튀며 방송 송출이 끊겼다.
고작 1분 남짓한 시간. 김진석이 본 그는 쾌락 살인마였다. 김진석이 가장 오래 머무른 곳이 바로 범죄자들의 도시. 아디스였다.
그는 범죄자들의 특성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알렉산더. 그는 그저 좋아서 사람을 죽이고 지구를 정복하러 온 것이다.
“가자.”
그 화면을 이방인 길드 전원이 바라봤고 이내 먼저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향하는 김진석의 뒤를 따라갔다.
군인들은 그들의 뒤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 *
이방인 길드는 처음으로 활동하는 김진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직책만 길드장일 뿐 딱히 뭔가를 한 게 없는 김진석이었었다. 그들을 구해주었다는 가장 큰 역할을 하긴 했지만 그게 전부.
사실상 길드를 만들고 제이다에게 모든 걸 일임한 바지사장이었다.
그나마 최근에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영국의 힐러들이 전폭적으로 그들을 지지했고 그 이후로 원래부터 사상자는 없었지만 부상자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치유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몬스터를 잡는 속도는 더더욱 빨라졌다.
하지만 그게 전부. 물론 그것만으로도 길드에 크게 기여한 것이지만 제이다가 그들에게 해 준 것에 비하면 부족했다.
집이나 몬스터의 위치 등등. 잡다한 모든 것을 전부 제이다가 확인한 후 길드원에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녀의 정성어린 보살핌에 길드원들이 그녀에게 마음을 열었었다.
그런데 지금. 처음으로 김진석이 겉으로 나온 것이다.
길드원들 대부분이 김진석의 괴물 같은 힘을 알고 있었다. 중국에서 벌어진 흑기사 사건. 그 흑기사의 주인이 김진석이란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김진석이 뭔가 직접 하는 게 없다 보니 나중에 길드에 들어온 길드원들은 그의 힘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갤러해드가 그러했다. 강경파의 수장인 그는 엄청난 정신력으로 주인의 명령에 거부하고 이방인 길드에게 도움 요청을 했다.
그때 가웨인과 모르간이 나서서 그를 구해주었으니. 그 이후로 강경파의 수장이 되어 길드원들을 이끌었지만 그들이 선을 넘을 뻔한 적이 있었다.
몬스터를 잡는데 D급 C급 플레이어가 방해했을 그 당시. 갤러해드의 팀은 실수인 척하고 플레이어를 죽일 뻔한 적이 있었다.
아니 그 공격을 막지 않았다면 분명히 죽었을 거다. 그 공격을 막은 자는 바로 가웨인. 갤러해드를 예의주시했던 가웨인이 직접 나서서 막은 것이다.
그 사실이 김진석의 귀에 들어가자 그가 한 행동은 간단했다.
“날 이기면 네 마음대로 해라.”
어떠한 존중도 없이 김진석은 하나의 몬스터로 갤러해드를 대했다. 그때의 김진석은 갤러해드는 잊을 수 없었다.
그 이후로 지금. 길드원들의 맨 앞에 서서 중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방인 길드원들에게 이만큼 든든한 존재는 없었으니.
이방인 길드는 북한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금방 몬스터를 발견할 수 없었다. 첫 몬스터가 침공했을 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나라 중 하나가 바로 북한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플레이어 자체가 얼마 하지 않아 그만큼 몬스터도 적게 나왔기에 멸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단지 간신히 수습했을 뿐이고 지금도 북한의 거리에는 몬스터가 돌아다닐 정도로 치안이 좋지 않았다.
[붉은 늑대 LV:40]
김진석이 보기에는 낮은 레벨이었지만 일반인들에겐 재앙이나 다름없는 몬스터였다. 일반적인 늑대와 똑같이 생긴 데다가 그저 붉은색이었을 뿐.
몬스터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북한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만들어낸 몬스터 중 하나가 바로 이 늑대였다.
“뭐야 이 개새끼들은.”
깨갱!
물론 김진석은 물론이고 이방인 길드원들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는 붉은 늑대였다. 그들은 마치 지나가는 들개 대하듯이 붉은 늑대를 쳐냈다.
북한의 거리. 처음 보는 북한의 상태였지만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이곳이 어딘지 잘 모르겠지만 꽤 나 깊게 들어왔는데도 거리에는 사람이 없고 몬스터만이 가득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북한도 한 나라인데 고작 이 정도 몬스터에게 멸망할 리가 없었다.
“인간의 흔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몬스터들의 흔적보다 한참 전의 것으로 보입니다.”
길드원 중 한 명이 흔적을 조사하고 결과를 도출해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북한 사람들은 이미 떠났고 그 위로 몬스터들이 이 거리를 점령한 것이다.
“즉. 이미 북한에 무슨 일이 생겼다… 이 말이군.”
몬스터들이 들이닥쳐 전부 죽은 게 아니다. 몬스터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어디론가 피난 간 것이다.
그 증거로 피는 많이 보였지만 인간의 피는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김진석의 감은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금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장소는 한 집 안이었다. 인원수가 워낙 많아 나누긴 했지만 각, 팀마다 리더가 있었고 그 리더들은 김진석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김진석이 자리 잡은 장소는 매우 낡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판잣집이었다. 꽤 오랜 시간 달렸으니 김진석은 무리가 없었지만 길드원 중 지친 자가 나왔으니 쉬기 위해 멈춘 것이다.
김진석은 얼마든지 북한의 집 중 가장 좋은 집에서 쉴 수도 있었는데 왜 굳이 이곳을 선택했을까.
그는 아주 미세한 소리를 들었다. 극히 미약하지만 들려오는 숨소리. 필사적으로 숨을 참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진석은 길드원들이 보는 앞에서 판잣집의 바닥을 맨손으로 뜯어버렸다.
“…아이?”
길드원들은 갑자기 땅바닥을 뜯어버리는 김진석의 기행에 놀랐다가 지하 공간에 숨어 지낸 남자아이를 발견했다.
판잣집 바닥. 지하에 숨어있던 자는 바로 평범한 아이였다.
아니 평범하진 않았다.
[김민준 LV:30]
8~9살 남자아이로 보이는 그는 플레이어였다.
“정확한 사정은 물어보면 되겠지.”
* * *
“흠… 믿기 어려운 이야기인데.”
김민준이란 꼬마 아이는 버려졌다. 플레이어이면서 싸우지 못하는 남자아이는 북한에서 전혀 쓸모가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일반인보다 튼튼했던 아이를 아오지 탄광으로 보내버렸다.
고작 플레이어란 이유로 말이다.
다행히 아이는 은신에 특화된 능력을 가졌고 그 아오지 탄광에서 도망칠 수 있었지만 금방 그 사실을 들키게 됐고 북한 전체에서 아이를 받아줄 곳이 사라져버렸다.
북한 마을에서는 아이의 얼굴을 모르니깐 그냥 아이 전체를 안 받아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살다가 마을 사람들이 피신한 것을 모르고 몬스터들이 돌아다니는 이 마을에 갇혀버린 것이다.
“즉 너도 잘 모른다고?”
“네……. 하지만 긴급 피난 방송이 나온 경우는 거의 없어요! 정말 위험한 상황이란 거죠!”
“그건 나도 알아.”
김진석은 한숨만 나왔다.
기껏 구한 아이가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그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긴급 피난 방송에서는 우국인 중국에서 침공했다고 했어요!”
이상했다. 중국은 그럴 힘이 지금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 이미 중국은 알렉산더란 자로 인해 엉망이 된 지 오래였다.
아무리 김진석이 먼저 중국을 휘젓고 다녀 플레이어 전력이 많이 떨어졌다고 한들 아직 중국은 플레이어 강국이었다.
그런 중국을 가지고 놀 듯이 점령한 알렉산더였고 방송으로 다른 나라들까지 우롱했다. 그렇다면 그들의 다음 목표는 바로 근처 나라겠지.
“이미 침공이 시작됐군.”
중국에서 연락이 되지 않은지 일주일. 고작 일주일 만에 그 강대한 나라가 알렉산더에 의해 점령당했다.
* * *
“신기한 기술이로군. 아무리 멀리 있어도 이것만 있으면 바로 연락이 되는 건가?”
“뭔가 더 복잡한 기술이 있겠지만 된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군요.”
알렉산더와 그의 부관은 지구의 기술에 감탄하고 있었다.
“특히 이 새까만 거. 총이라고 했나? 꽤 나 위협적이더군.”
알렉산더의 철갑 기병들이 가장 먼저 맞닥뜨린 것이 바로 총과 총알이었다. 그 소리 하나만큼은 요란했지만 그들의 갑옷은 꿰뚫지 못했다.
“그래도 맨몸이라면 위험하겠군. 우리가 만들 수 있나?”
“아뇨. 너무 고도의 기술입니다. 차라리 저들을 포섭하는 게 더 좋을 겁니다.”
부관의 말에 알렉산더는 부푼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만약 이 총이란 무기가 자신의 철갑 기병들이 들고 사용한다면 훨씬 견고해질 것이다.
“생각만 해도 즐겁군.”
알렉산더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 그때.
“남쪽으로 간 기사들이 연락이 안 됩니다.”
부관의 말에 알렉산더의 입가엔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드디어 쓸만한 놈들이 나타난 건가. 기대되는군.”
* * *
북한의 상태는 생각보다 더더욱 심각했다.
아니 상태랄 것도 없었다. 이미 북한은 알렉산더의 기사들에게 침공을 맞이했고 그들을 막기 위해 사람들을 전부 모아서 대항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북한의 멸망을 앞당겼다.
플레이어 강국인 중국과 그 넓은 땅을 고작 일주일 만에 점령한 괴물들인데 사람들이 모인 조그마한 플레이어 약소국가를 점령하는 데는 하루면 충분했다.
이방인 길드가 아이의 안내에 따라 평양에 도착했을 때는 북한의 독재자. 대통령인 김일정의 목이 날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알렉산더의 철갑 기병 LV:70]
과연 고작 일반 몬스터로 보이는 녀석의 레벨이 70이었다. 지구의 최상위 S급 플레이어의 수준이었다.
그런 기병의 숫자가 적어도 70여 명. 북한이 절대 대응할 수 없을 수준이었다.
그들의 말과 갑옷에는 피가 흥건히 묻어있었으니. 그건 절대로 그의 피가 아니었다.
기병들은 멀리서 걸어오는 이방인 길드를 보았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절대적인 자신감이 그들에겐 있었다.
그들 자신에 힘도 있었겠지만 그들의 뒤에는 알렉산더가 있었으니. 오히려 형형색색의 갑옷을 입은 이방인 길드를 비웃고 있었다.
“소속감이 전혀 없군. 여러 기사단을 봐왔지만 저런 기사단은 처음 보는군.”
“기사단이 맞나? 그냥 용병 수준인데.”
그들의 세계에서 기사에게 용병이라 부르는 건 극찬이었다. 물론 반대의 의미로.
용병은 돈만 주면 뭐든 하는 천박하고 야만적인 직종이었다. 비록 그들이 일반인을 죽이고 약탈하며 학살했지만 그건 전부 기사단의 교리 때문이었다.
알렉산더가 정한 교리. 강한 인간은 무엇을 해도 된다. 라는 말도 안 되는 교리는 그들의 마음속에 뿌리 깊게 박혀있었으니.
그들이 하는 모든 건 허용된다는 믿음으로 용병과는 전혀 다르다. 라고 생각하는 게 바로 그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상대해야 할 자는 용병 같은 것이 아니었다.
“광기.”
어쩌면 그들보다 더한 괴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