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제이다는 이방인 길드의 길드원들을 모으고 있었다.
안 그래도 폐쇄적인 분위기에 평판도 좋지 않은 길드였는데 중국에서의 일 때문에 플레이어들이 슬금슬금 시비를 걸고 있었다.
너희들이 벌인 일 아니냐. PK 플레이어 밑에 있는 놈들답다 등등. 김진석의 경고에 가만히 있던 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어뜯었다.
그래서 제이다는 무슨 일이 벌어지기 전에 급히 길드원들을 불러 모은 것이다.
이방인 길드의 정신적 지주인 제이다와 처음부터 그들을 구해준 이 중 한 명인 가웨인이 길드원들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저희가 언제까지 참아야 합니까?!”
이미 길드원들은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 물론 이들이 몬스터를 잡는 이유는 대의를 위해서 라던가 그런 건 아니다.
그들도 이 세계의 법칙이 적용됐으니 고작 몬스터를 잡는 것만으로도 강해질 수 있었다.
그들 모두가 자신의 세계에서 뼈를 깎는 훈련을 겪으며 영웅으로 추앙받은 이들이다. 소환당한 이들이 전부 영웅인 건 아니었지만 김진석이 일부로 골라서 구한 것이다.
지구의 인간에게 감화된 이들도 있었으니 그런 놈들은 내버려 두었다.
“우선 길드장님을 기다려 주십시오. 어차피 그들과 우리가 무관하다는 게 밝혀지면…….”
“이미 피해자가 나왔습니다!”
사실이었다. 죽은 건 아니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쏘아낸 저격이 어깨를 꿰뚫었다. 하지만 영국에서 보낸 힐러 덕분에 금방 나을 수 있었지만 문제는 공격을 받았다는 거다.
게다가 누가 공격했는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인간에 대한 혐오는 더더욱 깊어지게 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영국에서 공개적으로 이방인 길드를 지지한다는 말은 하지 않고 조용히 힐러만 보내주었기에 영국에는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게다가 다른 길드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몬스터를 죽여나가서 힐러들은 아무것도 안 해도 일당을 받았기에 그들에게도 이방인 길드에 안 좋은 시선은 없었다.
이방인 길드원들도 위급한 상황일 때 자신들을 치료해주는 힐러들에게 공정한 배분을 주는 거에 아무런 불만도 없었다.
그 모든 걸 길드장인 김진석이 이루어낸 것이니 처음에 같은 지구의 인간인 김진석에게 반발하는 자는 이젠 없었다.
그사이에 제이다는 인원 체크를 하고 있었다.
이방인 길드의 총인원 수는 자그마치 520명. 그것도 전부 A급 플레이어 이상인 괴물들이다.
여담으로 제이다가 이들 전부를 제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으니 없었던 길드 지부를 서울에 지었고 그곳에 모인 이방인 길드였다.
그런데 지금 모인 길드원의 수는 515명. 5명이 보이지 않았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몬스터를 잡는 그들의 기본적으로 모여 다니는 숫자가 바로 5명이었다.
정확히 한 파티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퍼시벌 씨 파티가 안 보이네요?”
그 말과 동시에 길드 지부의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자가 있었다.
“힐러! 힐러가 필요합니다!”
퍼시벌과 그의 동료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분명 퍼시벌 팀에도 힐러가 있었는데 왜 그가 힐러를 찾을까.
5명 전원이 들어왔기에 그들의 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 답은 퍼시벌의 등에 업혀 들어온 자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퍼시벌의 등은 피가 흠뻑 젖어있었고 그 피는 퍼시벌의 것이 아니었다.
바로 영국에서 온 힐러였다.
이곳에 모인 건 오로지 길드원들뿐이었고 그 많은 인원 중에서 힐러는 없었다. 그렇기에 김진석이 영국의 힐러를 데려온 것이지만 하필 지금 그 힐러가 없었다.
“빨리 연락을……!”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허공에서 손이 튀어나와 퍼시벌이 땅에 눕힌 힐러의 입을 강제로 열고 붉은색 액체를 집어넣었다.
“…길드장님?”
이내 허공에서 전부 몸이 나온 그는 김진석이었다.
“마침 다 모여있군.”
* * *
김진석은 제이다의 연락을 받고 곧바로 길드 지부로 바로 직행했다.
그런데 곧바로 눈앞에 죽어가는 자가 있었으니 그는 영국에서 파견 온 힐러였다. 언제나 대비 완료 상태인 김진석은 인벤토리에서 비네가 만든 포션을 꺼내 입에다 부었다.
상처에 직접 뿌리는 게 훨씬 좋겠지만 그 고통은 버티기 어려울 테고 이 정도 상처는 비네의 포션으로도 충분했다.
“길드장! 우릴 구해준 당신이라면 이해하실 겁니다! 우리가 얼마나 참고 있는지를!”
[갤러해드 LV:80]
자그마치 레벨 80인 그는 나중에 이방인 길드로 오게 된 인물이었다. 퍼시벌, 가웨인과 같이 아서 왕 전설에 나오는 인물이었으며 그는 가장 완벽한 기사로 불리는 인물이었다.
가웨인과 퍼시벌도 한 수 접는 실력을 가진 인물이었지만 그도 결국 지구의 플레이어에게 소환돼 핍박받은 인물 중 하나였다.
언제나 완벽을 추구한 갤러해드였지만 그건 기사로서였으니. 고지식했지만 정의로운 그는 인간의 악함이 익숙하지 않았다.
김진석은 잘 몰랐지만 모르간은 선천적으로 사람의 색을 볼 수 있었으니 그녀가 말하길 원래는 아름다운 금색이었던 그의 색이 탁해졌다고.
하지만 금색은 잃지 않았다고 말했었다.
갤러해드는 결국 완벽한 기사란 칭호를 자신이 직접 집어던졌다.
지금 이방인 길드는 지구 인간과의 공존이 가능하다는 온건파와 인간과의 공존이 불가능하다는 강경파로 나뉘었다.
갤러해드는 그 강경파의 수장이었다.
“가웨인! 저들은 이제 자신들과 같은 인간조차 공격한다! 과학은 발달했을지언정 야만적인 이들과 같이 지내라니. 구역질이 치솟지 않나?!”
반대로. 온건파의 수장은 가웨인이었다.
가웨인또한 처음에는 지구의 인간들을 혐오하다시피 했지만 몬스터를 잡으며 세계를 돌아다닌 그는 모든 인간이 다 똑같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가웨인이 갤러해드의 말에 반박하려는 순간.
“갤러해드.”
김진석이 그를 불렀다.
낮고 감정이 없는 그의 목소리에 갤러해드라도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봐도 김진석의 기분은 좋지 않아 보였다.
강경파임에도 정작 행동하지 않은 이유는 오로지 김진석 때문이었다.
“어차피 너희들이 싸우지 않아도 이미 밖에서 너희들과 중국에서 나온 놈들은 같은 취급 받고 있다. 위험분자로 분류됐지.”
제이다는 메시지는 중국에서의 상황과 이방인 길드원들을 모집한 것을 말해주었다.
이미 밖에선 중국이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에게 점령당했고 그들과 같은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이 모인 이방인 길드를 위험분자로 분류했다.
결국엔 그들도 몬스터나 다름없는 거 아니냐는 말도 나오면서 이방인 길드를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그들의 공격에게서 대응할 수 있게.
“웃기더군. 그거 아나? 중국에서 나온 그들도 너희와 같은 기사들이더군.”
중국에서 나온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은 전부 기사였다. 온몸에 철갑을 두른 기병들은 불도저같이 중국을 쓸어버렸다.
건물 인간 할 것 없이 말은 탄 그들에게 부딪히면 전부 박살 나 버렸다.
“그리고 마법사들까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와 완벽히 똑같은 구성원이다.”
김진석이 노린 건 아니었지만 다른 세계에서 소환된 이들은 대부분 기사 아니면 마법사였다. 그리고 지금 두 집단은 똑같은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지금 동안 우리는 우리만을 위해서 몬스터를 잡아 왔지. 그래놓고 우리의 평판을 좋게 봐달라고 하는 건 애새끼보다 못한 생각이지. 이번에 처음으로 내가 그대들에게 부탁하지. 저들과 우리의 차이를 보여주길 바라지.”
굳이 이들이 중국까지 가서 그들을 죽여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언제나 이방인 길드는 그들만을 위해서 몬스터를 잡아왔다.
사실 당연한 이야기였다. 누가 남을 위해서 몬스터를 잡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방인 길드원들의 목적은 돈이 아닌 강함이었다. 돈은 부수적일 뿐. 그런데 지금은 강함을 위해서 그들을 죽이고 인간을 위해서라고 얼마든지 말할 수 있었다.
실상 목적이 어떻든 결과는 그렇게 될 테니깐.
“갤러해드. 너희가 말한 그 야만적인 인간들을 죽이는 야만적인 인간. 아니 기사가 있는데 가만히 내버려 둘 텐가?”
완벽한 기사. 한때 그렇게 불린 이로서 같은 기사가 패악질을 부리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이번만입니다.”
그 말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김진석이었다.
사실 김진석이 고압적으로 명령하면 따를 수밖에 없는 이들이었지만 김진석은 언제나 그들을 존중해주었다.
그렇기에 이들이 이방인 길드에 남아있는 것이기도 했다.
“제이다 부 길드장. 우리 길드의 전력을 드디어 전 세계에 밝힐 때가 왔다.”
“…네!”
“이방인 길드. 우리는 지구의 인간이 아닌 우리의 강함을 위해서 몬스터를 잡는다.”
“출진이다! 기사들이여! 검을 들어라!”
“예!”
김진석은 끝까지 절대로 지구의 인간들을 위해서 싸우라고 말을 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강함을 위해서 싸우라는 말이었다.
그 말이 강경파의 마음을 움직였다.
* * *
갑자기 서울 한복판에서 수백 명의 기사가 나왔다.
사람들은 중국의 철갑 기사들이 한국에도 나온 게 아닐까 두려워 플레이어들을 파견했지만 서울에서 나온 기사들은 외견은 중국에서 나온 기사들과 조금 달랐다.
중국의 기사들은 전부 통일된 갑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나온 이들은 하나같이 전부 각자 입은 갑옷들이 달랐다.
개개인의 개성이 뚜렷한 갑옷은 그들의 정체성을 뜻했다.
그리고 기사들 무리의 맨 앞에. 유일하게 가죽 갑옷을 입은 자가 그들을 막으러 온 플레이어들의 앞에 섰다.
“…김진석 플레이어?”
그건 한동안 자취를 감춘 김진석이었다.
괴리감이 들었다. 전장인 서울에 들어갈 때조차 추리닝 차림이었던 김진석의 가죽 갑옷을 입은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나마 한국은 김진석이 PK 플레이어라고 한들 평판이 좋았기 때문에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우리 이방인 길드는 중국으로 향한다.”
그 말을 끝으로 김진석과 그가 말한 이방인 길드는 플레이어들 사이를 헤치고 나아갔다. 플레이어들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봤지만 이미 그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그들의 외침은 그저 허공에 울릴 뿐이었다.
* * *
이방인 길드가 중국으로 가는 방법은 간단했다.
걸어서.
물론 걷는 속도가 일반인들이 전력으로 뛰는 속도보다도 훨씬 빨랐고 이내 남한과 북한의 경계선인 38선에 도달했다.
언제나 군인들이 삼엄하게 지키는 38선은 지금도 마찬가지였고 그들은 갑옷을 입고 달려오는 이방인 길드를 발견했다.
하지만 이미 이방인 길드가 중국으로 간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난 이후 분명 이곳을 들를 거라 예상한 한국은 이미 언질을 준 상태였다.
“멈추십시오! 그 이상 다가오면……!”
“쏠 건가?”
“히익!”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장 선두에 있던 이방인 길드의 길드장. 김진석이 어느새 그들의 앞에 서 있었다.
그런데 그에 너무 놀란 나머지 옆에 있던 군인이 김진석을 향해 총을 쏴버렸다.
“…음?”
총을 쏜 군인도 놀라고 김진석의 앞에 있던 군인도 놀라고 정작 그 날라오는 총알을 손으로 잡은 김진석 본인도 놀랐다.
일반 총알이라도 그 속도만큼은 무시할 수 없었지만 김진석은 날아오는 그 총알을 맨손으로 잡아버린 것이다.
김진석 본인도 그게 가능할 줄은 몰랐다.
“뭐 어쨌든 총은 우리에게 안 통합니다. 그리고 당신들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북한 측 군인들이 전부 사라졌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