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김진석은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제이다를 먼저 찾았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선물입니다. 근접 신체 능력 플레이어는 아니시지만 그래도 쓸만할 겁니다.”
“…네?”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수 없는 그녀는 김진석의 손에 들린 이상한 책을 바라봤다.
“스킬북인가요? 고마워요. 잘 쓸게요.”
김진석이 주는 것이니 제이다는 그게 어떤 스킬이든 감사히 받았다. 하지만 김진석의 이어진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나 더 줄 테니 이건 루크에게 부탁드립니다. 그가 좋아할 만한 스킬일 겁니다.”
김진석은 마치 스킬북의 스킬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는 듯 보였다. 게다가 루크가 원하는 스킬은 딱 하나뿐이었으니.
“설마… 재생 스킬인가요?”
제이다는 일말의 의심도 없이 김진석의 말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에게 무슨 능력이 있어도 제이다는 이제 안 놀랄 자신이 있었으니깐.
별말 없이 떠나가는 김진석을 보고 제이다는 고민했다.
“이거… 내가 읽어도 되는 건가?”
물론 그 고민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김진석의 선물이었으니 파는 것도 실례였고 스킬북을 표지를 열었다.
* * *
[재생]
[색적]
[간파]
등등. 김진석이 스킬북을 산 기준은 전부 패시브로 보이는 스킬들이었다. 재생은 당연히 그 재생이었고 색적은 이름 그대로 적을 찾아내는 스킬이다.
그중 간파는 김진석이 스킬북을 사면서 처음으로 잘 배웠다고 생각한 스킬이었다. 간파는 이름 그대로 간파하는 스킬이었다.
거의 미래 예지나 다름없는 스킬이었다.
가볍게 상대의 공격 경로를 간파해 피할 수도 있었으며 내일 비가 올지 아닐지조차 간파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교감. 다른 생물과의 교감이 가능해진다.
도약. 뛰어난 도약력을 가진다.
근성. 엄청난 인내력이 생긴다.
몰입. 어떠한 것에 극도의 집중력을 가지게 된다.
잡다하다면 잡다하겠지만 성장이 멈춘 김진석에게 이런 조그마한 변화라도 엄청난 나비효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비행이었다.
비행 스킬을 사용하면 날아다닐 순 있었지만 자유롭지 않았다. 마치 무중력의 상태와 같다고 해야 할까.
날아다닐 순 있었지만 김진석이 원하던 방식은 아니었다.
“비네.”
“재생 스킬도 배웠다고 했죠? 바로 가죠.”
전의 망설임은 온데간데없고 비네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추지 않고 있었다.
드디어 제대로 된 실험을 할 수 있게 되니 도저히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비네였다.
“날개 말고도 많아요! 리자드맨의 비늘을 몸에 두를 수도 있고 목에 구멍을 뚫어 어(魚)인의 아가미도 만들 수 있어요! 원하는 걸……?!”
“알겠으니 우선 날개부터 하자고.”
김진석은 흥분한 비네를 진정시키며 그녀의 실험실로 따라갔다.
비네는 수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에게 칼이나 그런 건 필요가 없었다. 그녀의 손톱은 지구의 그 어떤 물체보다 날카로웠으니깐.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인간들을 상대로 그냥 수술하다가 쇼크사해서 넬에게 마취를 부탁했었는데 당신은 괜찮겠어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수술을 진행했다가 인간이 죽어버려서 당황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다시 되살려서 사용했지만 김진석에겐 그게 불가능했다.
넬의 환각이 통할 리도 없었고 되살릴 수도 없었다.
물론 김진석이 쇼크사한다는 생각은 하는 것부터가 웃겼지만 비네의 수술은 궤를 달리했다.
김진석이 원하는 날개를 단다거나 하는 건 쉬웠다. 그냥 달기만 하면 됐으니깐. 하지만 그 날개를 자신의 몸처럼 마음대로 다루는 건 차원이 달랐다.
그러기 위해서 비네는 피를 수혈했다.
처음 보았던 악마 날개를 단 여성에게도 악마의 피를 수혈했었다. 아주 조금씩, 몸이 악마의 피에 적응할 수 있게.
다행히 악마의 몸은 대부분 인간과 비슷했으니 금방 실험에 성공할 수 있었고 재생 능력을 가진 플레이어라 더욱 빨리 피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악마의 피가 인간의 몸을 돌아다닐 피부와 세포 근육 등등이 적응할 동안 어떤 고통을 느낄진 비네도 몰랐다.
“우선 100mL 주입하겠습니다. 이상이 있으면 말해주세요.”
“그래.”
악마의 날개를 다는 곳은 등. 거기다 날개뼈였기에 비네가 피를 주사한 곳은 허리 쪽 주사였다.
어디 아픈 적 없는 김진석은 생에 처음으로 주삿바늘이 몸에 들어오는 기분은 뭔가 나쁜 느낌이었다.
악마의 피가 인간의 몸으로 들어오게 되면 악마의 피가 인간의 몸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변 세포를 전부 잡아먹고 대신 자리 잡는다.
하지만 악마라고 다 같은 악마가 아니었으니 지금 김진석의 몸에 주사하는 피는 칠죄종의 피였다.
최강의 악마인 칠죄종의 피를 수혈한 인간은 그게 몇 mL 던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온몸이 비틀리며 죽어버렸다.
인간의 몸이 악마의 피에 적응하지 못해 몸 내부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에 날뛰다가 팔이 꺾이고 뼈가 부서져도 그 고통조차도 느끼지 못한 채 죽어 나간 것이다.
비교적 약한 악마의 피를 수혈한 그 인간 여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여자도 진작에 쇼크로 죽을 수준이었지만 재생 특성으로 인해 정신조차 재생돼 살아남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 칠죄종의 피가 김진석의 몸에 들어오고 있었다.
주삿바늘에서 흘러들어온 칠죄종의 피는 김진석의 몸 안에서 뜨겁게 흐르고 있었다. 예견했던 대로 몸 내부서부터 피부와 세포가 괴사하고 있었다.
“과연… 끔찍한 고통이군.”
찰과상 자상 화상 독 등등. 김진석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이라면 전부 느껴봤지만 이번 고통은 손에 꼽을 수준이었다.
그래도 장기와 피부가 녹아내릴 수준의 독을 맞고 끊임없이 재생했던 그때와 비교하자면 이 정도는 버틸 만했다.
하지만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지 눈에 실핏줄이 터져 피눈물이 흐르고 있는데도 그런 말을 하는 걸 비네는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선 그 피가 당신의 몸에 자리를 잡아야 하니 하루 정도 지켜볼게요. 재생을 가진 인간은 눈에 띄게 빠르게 자리 잡으니 당신이라면 하루 정도면 충분하겠죠?”
* * *
김진석이 악마의 피를 수혈하고 있는 한편.
중국의 한 게이트 안에서 누군가가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하나가 아니었다. 무리가 나오고 있었다.
“여기가 지구라는 세계인가?”
“네. 우리보다 과학은 발달했지만 마법은 없다시피 합니다.”
그들은 인간들이었다.
중세의 기사처럼 갑옷을 입은 이들이 게이트 속에서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이미 지구를 알고 있다는 듯 그들은 게이트 안에서 나오자마자 자연스럽게 계획을 짰다.
“우리의 무력과 이들의 과학이 합쳐지면 끝내주겠는데?”
“곧바로 시작할까요?”
“당연하지. 기다릴 게 뭐 있나?”
그 말에 중세의 기사들은 품에서 풀피리를 꺼내더니 피리를 불었다. 그와 동시에 어디선가 발굽 소리와 함께 말이 달려왔다.
말들은 기사들과 같이 철갑을 두르고 있었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말에 올라탔다.
그 모습은 마치 철갑 기병처럼 보였으니. 그들의 목적은 절대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지금 여기에서 선언하지. 나 정복자 알렉산더는 이 지구라는 세계를 정복하겠다! 언제나처럼!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저들에게 죽음을!”
정복자 알렉산더. 그는 세계를 정복하며 돌아다니는 한량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 * *
김진석은 비네의 공간에서 거의 일주일을 지냈다.
하루면 적응될 줄 알았던 칠죄종의 피는 고작 12시간 만에 사라졌다. 그렇다. 적응하는 게 아닌 사라져버린 것이다.
비네는 당황해서 김진석의 피를 뽑아 확인했지만 그의 몸속 어디에도 칠죄종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김진석의 몸이 칠죄종을 이겨낸 것이다.
결국 칠죄종의 피를 김진석의 몸에 집어넣다시피 해서 결국엔 몸 안에. 그리고 비네가 직접 기운을 움직여 피를 날개뼈에 집중하게 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단계만이 남았다.
“살 위가 아니라 뼈 위에다가 해서 고통이 심하신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냥 해. 웬일로 걱정하고 있데.”
“소중한 실험체가 멘탈 나가면 안 되잖아요?”
“…그래.”
그녀가 걱정한 이유는 오로지 그거 하나 때문이다. 김진석이 엄청난 고통에 수술이든 실험이든 안 하겠다고 하면 지금껏 해왔던 일이 전부 사라지는 것이니깐.
피부 위에다가 날개를 이식하는 것이 아닌 살을 파내고 그 속에 뼈에다가 직접 접목하는 거라 그 고통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할게요?”
“빨리해. 원망 안 할 테니깐.”
비네는 준비한 날개를 옆에 두고 손톱을 길게 뽑아냈다.
그리고 손톱으로 김진석의 등을 파냈다. 살을 파내고 뼈를 드러내고 그 위에 날개를 접목하려고 했다.
하지만 김진석 본인의 재생 능력과 스킬북으로 까지 배운 재생으로 인해 파낸 살이 순식간에 재생되고 있었다.
“후.”
물론 비네는 회복을 해주지는 못하지만 그녀는 네크로맨서. 회복을 저하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녀의 입김에는 사(死)기가 담겨 있었으니 최대한 김진석의 재생을 막아내며 수술을 진행했다.
생살을 파내는 고통과 뼈를 갉는 고통. 그리고 그걸 몇 시간 동안 지속하면 아무리 김진석이라도 견디기 어려웠다.
이미 온몸은 식은땀으로 젖은 지 오래였고 그저 정신력 하나만으로 버티고 있었다.
“후… 끝났어요.”
비네의 말에 김진석은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뼈를 긁는 소리와 피부가 재생하다가 다시 쪼그라드는 소리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였었다.
비네는 사기를 내뿜는 걸 멈췄고 이내 순식간에 재생했다.
“뼈 위에다가 했으니 적응하기 훨씬 편하실 거예요. 그래도 금방……?”
비네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김진석은 등에서 날개를 펼쳤다. 직경 3M는 될법한 박쥐 날개였다.
처음에는 검은색 박쥐 날개였지만 피부가 재생하면서 검은색은 핏기를 두른 붉은색으로 변했다.
“마음에 드는군.”
김진석은 본능적으로 날개를 움직이는 방법을 깨달았다.
이미 날개는 김진석의 몸에 완벽히 적응했고 날개의 피막을 칼로 찢어보아도 김진석의 능력인 재생이 날개에도 적용됐다.
마찬가지로 고통도 느껴졌지만 직접 피부를 칼로 찢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게다가 날개를 접으면 피부 위로 접히는 것이 아닌 뼈가 있는 피부 속까지 들어갔다. 직접 눈으로 봐도 그 누구도 김진석의 등에 날개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였다.
날개가 피부 속으로 들어갈 때의 느낌은 이상했지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럼 바로 나가서 실험을… 음?”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려는 그 순간. 김진석의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문자 메시지였고 김진석은 그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얼굴이 굳었다.
“비네. 공간을 열어라.”
“…알겠습니다.”
방금까지만 해도 미소를 짓던 김진석이 변하자 비네는 곧바로 밖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 * *
중국이 멸망했다!
이러한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정확히는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이 중국에서 무더기로 나와 사람들을 죽이고 물자를 약탈하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곧바로 나서서 즉각 대응했지만 그들은 꿈쩍도 안했다.
갑옷은 마치 플레이어들을 노리고 만들어진 것처럼 그들의 공격을 전부 무효화시켰고 그나마 신체 능력이 주인 플레이어들의 공격은 통했지만 그것도 만만치 않았다.
철갑을 두른 기사단은 압도적인 방어력을 통해 상대를 짓뭉개는 방식을 취했다.
게다가 도대체 어디서 나타났는지 중국 곳곳에서 기사단들이 나타나 민간인 플레이어 가리지 않고 죽이고 약탈했다.
중국은 순식간에 마비됐다.
이내 중국과의 연락이 끊겼다. 그에 똥줄이 타는 건 바로 근처의 나라였다. 그 강대한 중국이 갑자기 들이닥친 기사단에 의해 망가지고 있으니 언제 그들에게 들이닥칠지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정체가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이라는 걸 안 사람들은 가장 먼저 의심했던 게 바로 김진석의 길드.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로 구성된 이방인 길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