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결국 김진석은 칠죄종에게 하는 일을 중단하라는 말을 했다.
벌써 플레이어가 20%가 사라졌지만 현재진행형이었으니 이 이상 플레이어가 사라지는 건 그들에게도 김진석에게도 좋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사라진 것도 아니었으니 알아서 그들의 갱생 상태를 보고 각 나라의 정부들이 그들을 풀어주겠지.
그래도 김진석이 얻은 건 있었다.
“부작용 없이 실험 성공한 결과가 있어요. 비록 당신과 같은 인간은 아니었지만 한 번 보러 오실래요?”
처음으로 비네의 실험이 성공했다는 말이 들려왔다.
전에 보았던 실험체의 끔찍한 모습을 본 김진석은 걱정이 앞섰지만 우선 비네의 초대를 받아들이고 그녀의 실험실로 들어갔다.
“당신이 원했던 날개를 접목하는 데 성공했어요.”
철창 안에 갇힌 인간의 모습은 기이했다.
그건 여성이었다. 처량하게 누워있는 나신의 뒷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다음 등에 자연스럽게 붙어있는 박쥐의 날개가 눈에 보였다.
그런데 그 날개에는 살색의 피막 같은 것이 씌어있었다.
김진석이 바라보자 나신인 그녀는 자신의 몸을 날개로 감싸 감췄다. 날개를 다루는 것이 매우 능숙해 보였다.
“하지만 저 날개를 당신에게 붙여도 당신의 생각대로 되진 않을걸요?”
“그게 무슨 소리지?”
김진석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악마와 싸울 때도 김진석은 그렇게까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악마들은 김진석에게 접근하는 순간 죽어가니 그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고 했었다.
아니 김진석과 4명의 대 악마들에게서 전부 도망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넬의 환각으로 악마의 결계에 장난쳐 밖으로 나가는 순간 곧바로 돌아오게 하였다.
악마 전원이 전부 날개가 달려있었고 도망가기만 하니 김진석이 잡기 쉽지 않았다. 활을 사용한다면 쉽게 잡긴 했지만 대량 살상은 힘들었다.
김진석이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은 일정 범위형 광역 스킬이었고 파리 떼만큼 많은 악마를 죽이는데 효율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답답했다.
그렇기에 김진석은 날개를 펼쳐 하늘을 날아다니고 싶었다.
“날개가 있다고 그리 쉽게 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새들도 날기 위해 연습하다가 죽는 일이 수두룩해요. 물론 당신이 고작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죽진 않겠지만 그리 쉽진 않을 겁니다. 거기서 검을 휘두른다는 것도 마찬가지죠.”
물론 그건 김진석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비네가 뭔가 이상했다. 마치 그녀는 김진석이 날개를 달지 말았으면 하는 듯해 보였다.
“왜 기껏 결과가 나왔는데 부정적이야?”
“날개 달면 실험이 끝나잖아요……?”
그 말에 김진석은 그녀가 무얼 걱정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실험은 언젠가 끝나게 된다. 그럼 언제 끝날까. 당연히 실험이 완성될 때 끝나겠지.
“고작 날개만 달라고 이 실험을 지시한 건 아닌데 말이지.”
김진석의 최우선 목표가 날개였을 뿐이다. 단지 날개만 달면 될 뿐이니 실험하기도 편할 테고 금방 끝날 테니 말했을 뿐.
원래의 목표는 몬스터의 특성을 자신에게 이식하는 거였다.
“됐고. 저걸 성공하기 전에의 부작용은 뭐였지?”
“우선 기본적으로 이식만 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그걸 자신의 몸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다루는 건 많이 달랐죠. 근육과 피부가 날개를 이식하기만 해도 괴사해서 이식한 부분이 썩어들어갔죠.”
사람의 몸이 날개를 받아들이지 못해 점점 썩어들어간 거다. 과연 그런 부작용을 감수할 정도의 메리트가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저 인간은 재생이란 스킬을 가지고 있었죠. 피부가 괴사하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재생하다 보니 피부와 근육이 재생하면서 점점 저 날개를 감싸게 되었죠. 사실 저 인간도 실패한 실험체였는데 어느새 보니 저렇게 돼있더군요.”
즉 완벽한 실험의 성공은 아니었다.
저 여성이 재생이란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실험. 하지만 김진석은 재생 스킬과 비견될 수준의 재생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우물쭈물했군?”
“…네.”
분명 실험에 성공했으면 기뻐 날뛸 사람. 아니 악마가 바로 비네였는데 묘하게 침착했고 기분이 다운되어있었었다.
결국 김진석의 몸에 날개를 달면 피부가 괴사하고 다시 재생하는 고통을 계속해서 느껴야 했으며 이식하는 수술의 고통도 견뎌야 했다.
물론 그 정도 고통은 김진석에게 버틸 만했지만 이게 확실한 방법인지 비네에게는 확신이 없었다.
“어차피 난 널 믿고 맡겼으니 네 선택이야. 지금 하든 말든… 음?”
해도 상관없고 안 해도 상관없었다. 빠르면 좋겠지만 어차피 아직 그에게 대항할 몬스터가 나오지 않았으니.
그런 말을 하려고 할 때 핸드폰이 울렸다.
제이다에게 왜 이리 연락을 안 받냐고 한 소리 들어서 김진석은 핸드폰에 알람 소리를 최대한 키워놨었다.
“…아니. 조금 나중에 하지. 찾았다고 하네.”
비네의 실험만큼 기대하고 있었던 일이 있었다.
* * *
악마와의 싸움에서 김진석은 스킬북을 얻었었다.
그 수많은 악마를 잡으면서 나온 스킬북은 고작해야 백여 개. 김진석은 감정으로 인해 그 스킬 하나하나를 전부 확인할 수 있었지만 하나같이 전부 쓰레기만 모여있었다.
왜 플레이어들이 스킬북을 사서 쓰지 않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조금 죄책감이 들긴 했지만 쓰레기 스킬북은 전부 팔아버렸다.
하지만 포기할 건 아니었다. 백여 개를 확인해서 안 됐다면 천여 개 혹은 그 이상을 확인하면 될 거 아닌가.
물론 그걸 그때처럼 구할 필요는 없었다.
“스킬북을 사시려면 러시아의 비스나가 대량 취급하고 있습니다. 땅이 커서 그런지 그만큼 몬스터도 많아서 스킬북이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하고요.”
정보의 출처는 한빈혁 CEO였다.
그는 김진석이 PK 플레이어가 됐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김진석과의 연을 끊지 않았다. PK 플레이어와 친하다는 건, 그것도 그게 김진석이라면 꽤 나 큰일이 될 것이 분명한데도 그는 김진석을 믿었다.
적어도 이유 없는 살인을 저지를 이가 아니라는 것을. 다른 말로는 이유가 있다면 살인을 저지른다는 뜻이었지만 김진석이 죽인 자는 그만한 쓰레기들이었다.
러시아의 비스나. 한빈혁의 레어마켓과 같이 러시아를 대표하는 곳 중 하나였고 가장 큰 매장을 가진 곳이기도 하였다.
레어마켓이 질로 승부한다면 비스나는 양으로 승부한다고 해야 할까.
흔히 불리는 보급형 아이템은 전부 비스나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보급형이란 건 그만큼 일반화가 되어있고 절대 쓸모없진 않았다.
비네는 스킬북으로 배울 수 있는 스킬에 관심을 가졌다가 결과를 알고 흥미가 사라져버렸다.
“아 뭐야. 우린 못 배워요? 재미없네.”
실험이 성공했었던 이유가 스킬을 배운 인간 덕분이었으니. 하지만 비네는 그 스킬북의 스킬을 배우지 못했다.
김진석이 악마들을 잡고 나온 스킬북을 확인하다가 욕구라는 스킬북을 확인했다.
감정으로도 스킬 이름만 나오고 설명이 나오진 않았지만 그건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김진석의 눈엔 거의 욕구의 화신으로 보이는 넬에게 스킬북을 읽어보라고 시켰지만 스킬북은 작동하지 않았다.
원래라면 읽는 척만 해도 스킬북이 사라지며 스킬을 배워야 하는데 넬에겐 그런 게 적용되지 않았다.
그렇게 비네는 관심을 끈 지금. 김진석은 러시아에 와있었다.
물론 김진석은 이미 PK 플레이어로 등록된 상태. 그를 반기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PK 플레이어란 건 즉 법을 따를 이유가 없다는 뜻과 같았다.
이미 명함은 집어 던진 지 오래. 김진석이 러시아에 와 있다는 건 극소수를 제외하곤 아무도 몰랐다.
“…굳이 저희를 부른 이유가 있습니까?”
“조금 편하게 다니려고?”
그리고 극소수 중 하나. 마피아들을 마중 나오게 시켰다. 이유는 하나. 러시아에서 편하게 돌아다니기 위해서.
오히려 김진석 때문인지 러시아에서 마피아들의 영향력이 더 커졌다.
야쿠자와 삼합회가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는데 유일하게 같은 경고를 받은 러시아의 마피아만이 살아남았으니 살아남은 세력들이 전부 마피아로 모이게 된 것이다.
사실 편하게 다닌다는 말은 그냥 한 말이었고 원래 목적은 따로 있었다.
[이반 LV:70]
눈앞의 마피아 중 하나. 그는 김진석이 죽인 보리스의 아들이었다. 김진석은 죽인 이들 중 유일하게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게 바로 보리스였다.
처음으로 레벨이 80이 넘는 최강의 플레이어 중 하나였고 그 힘은 과연 대단했다.
많이 봐주긴 했지만 처음으로 즐겁게 해준 대상이었으니 그의 아들인 그에게 보답해 주기 위해 데리고 오라고 했다.
“넌 나한테 원망 같은 감정이 없나?”
“전혀요. 아버지는 어차피 그렇게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반은 김진석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인 보리스도 원망하지 않았다.
정말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결국 마피아도 범죄조직 중 하나였고 야쿠자와 삼합회에 뒤지지 않을 악랄함을 가지고 있을 거란 건 누구나 알고 있을 사실이었다.
거기에 부두목이었으니 그 아들인 이반은 아버지가 비참하게 죽을 거란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흠… 그럼 됐다. 비스나로 가지.”
“안내하겠습니다.”
김진석은 마피아들이 운전하는 리무진에 탔다. 가장 뒷좌석에 탔는데 서양의 아름다운 미녀들이 먼저 타 있었다.
“적어도 가는 동안은 즐겁게…….”
“그만.”
“예?”
김진석은 마피아에게 말한 게 아니었다. 눈앞의 헐벗은 미녀들에게 말한 것도 아니었다.
“돈 받고 해야 할 일은 하는 자들이다. 죽이지 마.”
“…쯧.”
어디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김진석은 리무진답게 넓은 좌석이었지만 구석에 앉았는데 어느새 그의 옆에는 서양 미녀들이 눈에 담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 넬이 앉아있었다.
김진석의 옆에 딱 붙어서.
“꺼져. 다 죽여버리기 전에.”
넬은 처음부터 김진석의 옆에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뛰어난 외모로 인해 시선이 몰렸고 그로 인해 옆에 남자가 김진석이란 걸 깨닫는 자가 많았기에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안 그래도 화가 잔뜩 나 있는 상태인데 인간 여자들이 심기를 거스르니 먼저 손이 나가버렸다.
김진석이 말리지 않았다면 저 서양 미녀들의 목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녀들은 마피아의 눈치를 보다가 마피아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리무진의 밖으로 나갔다.
“애꿎은 희생자를 만들고 싶지 않다면 다음부터는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리무진의 안에는 정장을 빼입고 식은땀을 흘리며 가만히 앉아있는 마피아들이 가득하게 되었다.
* * *
“여기가 비스나 본점입니다.”
마피아들이 데려다준 곳은 한국에 백화점만큼이나 컸다. 아마 본점인 만큼 이 안에는 수많은 아이템이 존재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본점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본점은 선택받은 사람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
김진석이 마피아들을 부른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마피아. 그중 보리스만이 비스나의 본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가 죽은 이후로 그 혜택은 이반에게 이어졌다.
보리스에 비하진 않지만 이반 또한 최상위 S급 플레이어 중 하나였다. 그도 충분히 비스나의 본점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게다가 그는 아버지인 보리스와 다르게 그 어떠한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 공개적으로는.
“스킬북을 사신다고 들었는데… 얼마나 사실 생각입니까?”
하지만 이반은 김진석을 원망하진 않았지만 두려움의 감정은 있었다.
이제 갓 최상위 S급 플레이어가 된 그였지만 김진석은 이미 최상위 S급 플레이어를 4명이나 죽인 괴물이었다.
그를 두려워하지 않을 자는 이 세상에 몇 없었다.
“하나도 안 살 수도 있고 여러 개를 살 수도 있겠지. 전부 이곳에 달렸어.”
“……?”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들어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