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김진석은 칠죄종을 살려 두기로 했다. 자그마치 레벨 95의 전력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이였으니깐.
하지만 그 거대한 몸을 가진 칠죄종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순 없는 노릇이었다만 다행히 녀석은 폴리모프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인간을 동경한 악마들과 같이 칠죄종은 인간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그 모습은 마치 바포메트가 인간으로 변한 모습과 비슷했다. 중후한 인상과 베레모가 잘 어울리는 노신사의 모습이었지만 바포메트와의 차별점은 머리 색이었다.
백발의 바포메트였지만 칠죄종은 검은색이었다.
칠죄종은 김진석의 비서를 자처했다. 어차피 제이다도 부 길드장의 일을 해야 했고 귀찮은 일이 있을 땐 칠죄종을 부르면 될 테니 김진석도 허락했다.
레벨 95 수준이면 얼마든지 김진석을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졌는데도 허락한 건 간단했다. 칠죄종은 김진석의 대 악마들을 동경했다.
“그런 악마들이 따르는 인간이라… 흥미가 돋는군요.”
적어도 그 궁금증이 사라지기 전까진 김진석을 공격하지 않을 거다.
물론 공격할 때는 수준을 보여주면 되었으니 괜찮았다.
“그런데 네 능력은 거의 신에 필적하는 힘이던데.”
“감사합니다.”
과장 하나 없는 사실이었다.
칠죄종의 힘은 가히 대단했다. 그의 하위에 있는 악마들에게 한해서였지만 그들이 한 짓을 전부 없던 일로 할 수 있었다.
시간을 되돌린 것처럼.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힘이었다. 그리고 칠죄종의 본래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미쳐버려야 했다.
강한 인간이라면 미치진 않을지언정 칠죄종에게 본능적인 혐오감이라거나 거부감이 들었어야 했는데 김진석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칠죄종의 능력은 거대한 덩치에 맞지 않게 대부분 정신 능력이었다. 사람의 정신을 붕괴하고 파괴하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데 김진석에겐 전혀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신은 인간이 맞습니까?”
“나도 몰라.”
이젠 김진석도 자신이 인간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솔직히 해보진 않았지만 건물을 들라고 하면 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트롤과 비견될 재생 능력까지. 누가 그를 인간으로 생각할까.
“뭐 어때.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런데 문제는 김진석이 한국에 돌아왔을 때 터졌다.
“뭐야? 저것들은.”
김진석의 집 앞에 웬 플레이어들 무리가 있었다.
“길드장님께서 연락을 안 받으셔서… 지금 한국에서 길드장님을 PK 플레이어라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제이다는 김진석의 연락처를 가지고 있었지만 애초에 핸드폰을 거의 사용하지 않던 김진석이었는 데다가 악마들이 펼친 결계의 안으로 들어가니 핸드폰도 작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진석이 오기만을 기다렸다가 급히 그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피신했다.
“왜 갑자기? 보류하고 있지 않았나?”
어차피 김진석은 PK 플레이어가 되건 말건 상관없었다. 이미 레어마켓과의 교류로 인해 아무런 손해도 없었다.
다른 길드와의 교류도 하지 않는 이방인 길드였으니 별 타격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김진석 자신을 PK 플레이어로 만들 이유가 있었나. 그것도 한국 정부가 직접? 손해만 더 클 텐데?
“그들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길드장님이 아무런 말도 없이 갑자기 영국으로 떠나셨으니 영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항의한 겁니다. 그가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데 왜 영국으로 오게 내버려 두었냐고.”
김진석이 비행기를 타고 갔다면 영국에서 거부할 수 있었겠지만 그냥 흑호를 타고 달려간 것이니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영국은 그를 관리하지 못한 한국 정부를 탓한 것이다.
미국과 더불어 최강의 플레이어 국가라 불리는 영국의 압박을 버티지 못한 한국 정부는 결국 김진석을 PK 플레이어로 만든 것이다.
“아니 그쪽이 먼저 도움을…….”
김진석은 말하다가 깨달았다. 칠죄종이 직접 사과한다고 악마들이 벌인 모든 일을 전부 없애버린 것이다.
즉 성녀로 폴리모프 해서 영국 밖 다른 나라에게 도움을 요청한 일도 없어진 것이다.
“쯧. 그래서 아까 그것들은 날 죽이러 온 것인가?”
플레이어들 무리가 김진석의 집 앞에 있는 걸 직접 목격한 김진석이었다. 레벨을 보면 꽤 나 높은 이들이 있긴 했지만 솔직히 영국에서 보았던 플레이어들에 비하면 같잖은 수준이었다.
“아뇨. 오히려 그 반대인 부류입니다.”
“…음?”
김진석은 제이다의 그런 얼굴을 처음 보았다. 마치 역겨운 것을 본 듯한 얼굴.
“이미 PK 플레이어로 변했으니 길드장님은 무엇을 해도 어떤 범죄를 일으켜도 똑같은 PK 플레이어입니다. 즉 길드장님은 거리낄 게 없다는 거죠.”
사실이었다. 플레이어도 감옥에 가고 형을 받지만 그중 최고 형벌은 PK 플레이어가 되는 것이다.
거리에서 죽어도 아무런 신경 안 쓰는 게 PK 플레이어였다.
한정된 인적 자원인 플레이어를 죽인 플레이어에겐 최악의 형벌이었다. 사실상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지만 문제는 그 플레이어를 죽일 수 있냐는 거다.
높은 등급의 플레이어를 죽일 수 있는 자는 마찬가지로 높은 등급의 플레이어뿐이었다.
“그래서… 그것들은 내게 뭘 원하는 거지?”
“모르죠. 대부분 마약, 여자, 돈 등등. 원하는 건 많을 테지만 플레이어란 제약으로 인해 원하는 걸 이루지 못했으니 길드장님에게 대신 부탁할 겁니다.”
웃긴 일이었다. PK 플레이어가 되지 않은 플레이어들이 PK 플레이어에게 부탁하는 꼴이라니.
게다가 김진석은 최상위 S급 플레이어도 죽인 괴물 같은 플레이어였으니 원하는 건 뭐든 들어줄 게 분명했다.
“그래서. 그 대가는?”
“원래라면 자신들이 지켜주겠다는 말을 하겠지만… 길드장님은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렇다는 건 김진석은 원하는 건 뭐든 이룰 수 있는 자라는 거다. 그런 이에게 저들이 도대체 뭐를 김진석에게 줄 수 있을까.
“길드원들에겐 문제없지?”
“네. 아마 길드장님의 경고 때문이겠죠.”
김진석의 경고는 아직 유효했으니 이방인 길드의 길드원들을 건드리는 간 큰 자는 없었다.
“칠죄종.”
“예.”
그때 분명 제이다의 집인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중후한 노신사가 김진석의 뒤에서 튀어나왔다. 제이다는 이젠 익숙하다는 눈빛으로 둘을 바라봤다.
“너도 악마를 만들 수 있겠지.”
“예.”
“인간 사회를 이미 전부 알고 있을 테니 내 집 앞에 있던 놈들과 비슷한 놈들 전부 악마로 만들어. 그리고 껍데기는 비네에게 줘라.”
“알겠습니다.”
김진석의 말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제이다는 또 김진석이 무슨 일을 벌이려는지 궁금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어차피 대답 안 해줄 것을 알고 있었으니깐.
지금 김진석이 하는 일은 간단했다.
자신의 집 앞에 있는 욕망이 가득 찬 이들에게 욕망을 거세한다면 과연 그들은 어떻게 변할까.
어차피 김진석은 정의를 울부짖는 자가 아니었다.
그들의 내면에서 욕망을 뽑아낸다고 한들 어차피 그 욕망은 다시 생겨난다. 하지만 그 뜻은 즉 악마들을 영구히 무한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그렇다 한들 김진석은 칠죄종에게 그 악마들을 다루게 할 생각이 없었다. 김진석은 절대로 칠죄종을 우습게 보고 있지 않았고 언제나 의심하고 있었다.
레벨 95의 칠죄종은 얼마든지 김진석을 죽일 수 있는 힘이 있는 자였다. 놈에게 힘을 쥐여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비네는 좋아하겠지.
무한히 만들어낼 수 있는 실험체라니. 비네가 즐거워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대신 그들이 쓰레기라는 완벽한 증거를 수집한 후. 그다음 악마로 만드는 걸 실행해라.”
“예.”
* * *
한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적으로 플레이어들의 범죄행각이 밝혀지고 있었다.
한두 명이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너무나도 많았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플레이어가 동시다발적으로 밝혀지고 있었다.
갑자기 경찰서나 정부가 주도하는 플레이어 관리 시설에 USB가 전달되었다.
문제는 그 USB 안에는 플레이어의 사생활과 끔찍한 과거가 담겨있었다는 거다.
남편이 있는 여성을 납치해 남편이 보는 앞에서 겁탈하고 돈을 줘서 무마한다거나.
일반인을 잔인하게 죽여놓고 플레이어란 이유로 풀려나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하는 자.
같은 플레이어를 납치해 가두고 몬스터의 방패막이로 사용해 죽여 등급을 높인다거나.
미성년자를 꼬드겨 마약을 먹여 정신을 혼란하게 한 다음 범죄행위에 가담하게 한 다음 모든 죄를 미성년자에게 떠넘기는 등.
작은 거부터 역겨운 것까지 하나하나 전부 USB 안에 담겨있었다.
충분히 PK 플레이어로 등록돼도 문제없을 수준의 범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들은 오로지 플레이어란 이유로. 그리고 그 지위를 이용해 번 돈으로 그 범죄들을 전부 무마했다.
언론에서조차 기사 하나 남지 않았던 사건들이라 일반인들은 그 플레이어가 범죄를 저질렀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USB의 곁에는 각 나라의 말로 쓰인 쪽지가 있었다.
[다음은 누굴까?]
명백한 경고의 의미였다.
* * *
김진석은 처음으로 회의감이 들고 있었다.
“플레이어의 20%가 사라졌다고?”
“네.”
제이다가 김진석의 집으로 찾아와 알려준 정보는 참담했다.
자그마치 현재 있던 플레이어의 20%가 전부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었다. 심지어 하나같이 전부 강력 범죄다.
마약 강간 살인 등등.
하지만 그렇게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겉으로는 평범히 생활하고 있던 이들이 사라졌고 그게 전체의 1/5였다.
그나마 그것도 김진석이 플레이어만으로 한정해서 그런 것이다.
“갑자기 전력에 공백이 생겨 몬스터들에게 피해를 보는 나라가 많아졌습니다.”
TV나 인터넷을 굳이 뒤져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갑자기 플레이어들이 사라지니 그만큼 몬스터를 잡는 플레이어들의 공백이 생겨났고 그로 인해 몬스터에게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어이가 없군.”
말 그대로 어이가 없었다.
김진석도 이런 일을 대비해 가벼운 경범죄. 갱생이 가능한 이들은 칠죄종보고 알아서 판단하라고 했는데도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누가 인간이고 누가 악마인지 모르겠군.”
앞서 말했다시피 김진석은 정의를 위해서 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비네의 실험을 돕기 위해 벌인 일이었지. 그런데 이렇게 많은 플레이어가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을 줄 몰랐다.
게다가 지레 겁먹고 먼저 자수하는 플레이어들이 생겨났고 결국 감옥이 미어터지고 있었다.
사실상 일반 감옥으로는 플레이어들을 가둘 수 없었으니 형식 상이 대부분이었고 플레이어가 원하면 탈옥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형벌이 더욱 커지게 되니 자발적으로 가만히 있는 게 플레이어들이었다.
수많은 플레이어가 감옥에 갇히게 되니 그로 인해 전력에 공백이 생겨 몬스터들에게 틈을 주었고 피해를 입은 것이다.
정작 피해를 입은 자들은 대부분 민간인이었다.
“그들을 옹호할 셈은 아니지만… 이런 결과를 바란 건 아닐 테지요.”
제이다는 이미 이 짓을 벌인 자가 김진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그저 감이었지만 전 세계적으로 이런 일을 벌일 자는 김진석밖에 없었다.
범죄자를 잡는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사라지고 난 뒤에 생긴 일이었다. 플레이어. 한정된 인적 자원은 그게 문제였다.
그래서 범죄를 저지르고도 멀쩡히 있을 수 있는 그들이었지만.
물론 칠죄종으로 인해 욕망이 사라진 그들이라 사회에 풀어놔도 지금 당장은 별다른 일을 벌이지 않겠지만 저들은 그걸 모르겠지.
“제대로 일이 풀리는 게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