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몸이 터져 죽은 악마의 아래에서 붉은색과 검은색이 섞인 구슬이 떨어졌다.
스토르는 그 구슬을 줍더니 뭔가 이상하다는 듯 집안을 둘러보다가 밖으로 떠나갔다.
집안이 악마의 피로 점칠 되었지만 그 가정은 아무렇지도 않게 집안에 묻은 피를 닦기 시작했다.
마치 그게 당연하다는 것처럼 말이다.
“…넬.”
“생각보다 오래 걸리셨네요?”
넬도 결국 김진석의 스킬이었으니 김진석은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넬을 소환해주려고 했지만 알아볼 것이 생겨서 바로 소환하지 못했다.
“저 사람들 보여?”
“음~ 뭐지? 난 여기 사람들 안 건드렸는데.”
확실히 저들의 영혼이 빠진듯한 모습은 넬의 고문을 받고 난 이후의 모습처럼 보였다. 그녀의 고문은 끔찍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고문하는 그녀의 고문을 받고 멀쩡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치 저들처럼 넋이 나간 것같이 변했지.
“악마를 발견하긴 했는데, 놈들이 인간들에게 한 짓인 것 같은데.”
“잠시만요.”
넬은 부모로 보이는 자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대며 눈을 감았다. 그녀는 대 악마. 서큐버스. 대상의 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꿈이란 모든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는 장소. 넬은 대상의 꿈으로 들어가 상대의 기억을 전부 읽을 수 있었다.
전에 만났던 한국 정부 쪽 A급 플레이어 김상훈의 기억을 읽는 능력을 완벽히 간파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능력 덕분이었다.
그리고 김진석이 야쿠자와 삼합회의 위치를 알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음… 별다른 건 없네요. 그저 붉은 하늘을 바라본 순간부터 지금처럼 변했다는 거? 아. 그리고 폭력적으로도 변했어요.”
“폭력적? 잠시였지만 지금껏 그런 모습은 본 적 없는데.”
“밤에요.”
“…….”
굳이 대꾸해주지 않았다.
이들은 플레이어도 아니었고 이런 일반인으로서는 알 수 있는 것이 너무 제한적이었다. 넬은 같은 악마로서 이들이 하는 짓이 궁금했다.
“뭘 하는 걸까요?”
“나도 모르지. 인간에게서 뭔가를 채취하는 것 같았어. 스토르란 악마가 갑자기 다른 악마를 죽이더니 이상한 구슬 같은 걸 가져가더군.”
아직은 의문투성이였다.
하지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저들은 절대 인간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
“레벨 80의 악마가 위대한 자라고 부르는 놈이 있다. 무시할 순 없겠어.”
이미 레벨 80만으로도 경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악마였다. 이름이 있다는 건 다른 악마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의미했는데 그런 악마가 위대한 자라고 부르는 놈이 있다는 건 예삿일이 아니었다.
“어떤 게임에서 나온 악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놈이 부르는 녀석은 레이드 몬스터겠군.”
스토르란 악마가 말하는 거로 봐선 그들이 영국에서 벌인 일은 전부 위대한 분이란 녀석을 위함인 것 같았다.
“우선… 상황을 살펴보자고.”
* * *
“…비네에게 먼저 날개를 달아달라고 해야 하나.”
“전 즐거운데요?”
김진석과 넬은 행동이 제한됐다. 정확히는 넬이 그러하였는데 그녀는 주변의 몸을 숨기는 능력은 없었다.
환각으로 비슷한 일을 할 순 있지만 그 환각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건 너무나도 귀찮은 일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넬이 김진석을 안고 김진석이 그림자 밟기를 통해서 그녀 또한 스킬 적용 대상으로 모습을 숨기는 것이다.
김진석을 안은 이유는 간단했다. 넬이 김진석을 안고 날아 영국 상공을 날기 위해서였다.
산만한 덩치를 가진 김진석이 가녀린 넬이 안고 있다는 것부터가 웃긴 광경이었고 김진석은 난생처음으로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다.
효율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당연히 그 모습은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런 감정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넬은 백허그로 김진석을 안고 날아다니고 있었고 그녀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고 있었다.
“뭐가 그리 좋아?”
“그냥요.”
괜히 퉁명스럽게 말하는 김진석이었지만 실실 웃는 넬의 얼굴을 보고 네가 귀찮으면 안 되겠냐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악마가 무슨 파리 떼보다 많은 것 같은데.”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지만 그 하늘에는 수많은 악마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영국의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더욱 많아졌다.
대부분이 레벨이 낮은 일반 악마였지만 일정 구역마다 스토르와 같은 네임드 악마들이 배치되어있었다.
일반 악마들의 역할은 인간들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가는 거였으며 그걸 빨간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구슬로 만들어 네임드 악마에게 바쳤다.
그러면 네임드 악마는 그 구슬을 영국 전역 곳곳에 흩뿌려놨다. 하지만 마구잡이로 흩뿌린 게 아닌 꼼꼼히 확인해가며 구슬을 놓아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통해 대충 무슨 짓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위대한 분을 소환하는 의식이군.”
저 구슬은 인간의 욕망을 현상화한 것이다. 그리고 저 구슬로 인해 태어난다.
마치 인큐베이터처럼 구슬이 숙성되면 그 안에서 하나의 악마가 태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네임드 악마가 어떠한 조치를 취해 구슬 안 악마를 가둬두고 있었다.
아마도 위대한 분을 소환하기 위한 절차인 거겠지.
“너무 조직적인데. 마치 이곳에 올 걸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게임 속 세계에서 나온 몬스터들은 하나같이 전부 당황한 것이 느껴졌다. 마치 그들도 지구의 플레이어들처럼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저 악마들은 타의가 아닌 자의적으로 지구로 온 것처럼 행동했다. 실제로 몬스터들이 나온다고 한들 저만한 숫자가 갑자기 나타난 적은 없었다.
지금 바로 옆을 날아가는 악마의 무리만 보더라도 최소 수백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김진석이 본 무리만 20이 넘어갔다.
게다가 악마들은 기본 레벨이 60이었다. 지구의 기준으로 S급 플레이어였다.
그런 놈들이 최소 2000이 넘어갔다. 그나마 그것도 1시간도 둘러보지 않고 찾은 악마들이었다. 영국에 얼마나 더 많은 악마가 있는지 모른다.
“플레이어들은 뭘 하고 있는 거야?”
그제야 김진석은 영국의 플레이어들이 생각났다.
물론 갑자기 게이트 속에서 엄청난 숫자의 악마들이 튀어나와 영국을 점령한 것까지는 알겠다만 아래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인간 중에서 플레이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건 둘 중 하나였다. 플레이어들이 무슨 계획을 세워서 숨어있다거나. 아니면 이미 전부 잡혀서 악마들에게 따로 관리되고 있다거나.
그걸 아는 방법은 간단했다.
“레벨 높은 악마 하나 잡자.”
네임드 악마들은 고고하게 하늘에 날아다니며 다른 악마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처음에 보았던 그 악마같이 행동하는 자를 잡아내기 위함인 것 같았다.
다행히 일정 구역 안 네임드 악마는 하나만이 존재했으니 잡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물론 여럿 있어도 넬과 함께라면 별 상관없었지만 체계가 잡힌 악마 중 고위 악마가 사라진다면 금방 눈치챌 것이 뻔했다.
최대한 빨리 잡고 정보를 캐내고 놔줘야 했다.
문제는 잡는 방법이다. 아무리 김진석이라도 네임드 악마는 레벨이 80이 넘었다. 상대를 죽이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생포하는 건…….
“잡아 왔어요!”
“…그래. 잘했어.”
고민할 가치도 없었다.
넬은 고작 이런 것에 시간이 끌리는 것이 싫었는지 김진석을 어디에 내려다 두고 날아가더니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네임드 악마 하나를 잡아 왔다.
[니치아 LV:81]
여성형 악마였다. 이들에게도 성이 존재하는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여성이었다.
말단 악마든 네임드 악마든 하나 같이 전부 아름답다고 해도 무방한 외견을 가졌지만 뭔가 이질적이었다.
불쾌한 골짜기가 느껴졌다.
넬이 잡아 온 악마는 그녀가 뭔 짓을 했는지 기절해 있는 상태였다. 넬은 곧바로 여성 악마의 꿈속으로 들어가 정보를 캐냈다.
“인간들이 모여있는 장소는 찾았어요.”
“다른 건 없나? 위대한 분이 누구라던지 아니면…….”
“네. 뭔가에 잠겨있는 것처럼 안 보이네요. 물론 강제로 열라면 할 순 있겠지만…….”
“그럼 됐어. 시간은 많으니 나중에 알아보자고.”
넬이 보지 못하는 기억은 당사자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길 뭔가에 잠겨있다고 하니 아마 누군가가 기억을 지웠거나 한 것이다.
일반적인 서큐버스라면 거기서 그쳤겠지만 넬은 그 잠겨진 기억조차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당사자 또한 기억하게 되니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낄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된다면 기껏 이렇게 숨어서 다닌 이유가 없어진다.
“성녀가 불린 인간이 무슨 장벽 같은 걸 쳤다네요. 악마들이 모여 들어가려 하지만 말단 악마는 그 장벽에 닿기만 해도 소멸된다고.”
과연 성녀라고 불린 이유가 있었다.
위대한 분을 부르기 위한 의식으로 영국 전체에 인간의 욕망이 든 구슬로 진을 만들고 있었는데 성녀가 만든 장벽으로 인해 막힌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악마의 천적이라 불릴 이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김진석은 그 성녀에게 관심이 갔다.
“레벨 80이 넘는 악마들이 가득한데도 못 뚫는다고?”
“네. 원래라면 진작에 위대한 분을 불렀을 텐데 장벽이 진을 막고 있다고.”
아무리 천적이라고 한들 그 천적이 수십 수백 마리가 달려들면 천적이란 건 의미가 없어진다. 그런데 성녀는 그걸 버텨내고 있었다.
“그곳이 어디지?”
“조금 멀긴 한데 금방이에요.”
흑호만큼은 아니었지만 넬 또한 엄청난 속도를 자랑했다. 속도 하나만은 세피드보다도 빠를 정도.
“가자.”
“네~”
* * *
성녀. 엘리자베스는 입에서 피를 쏟고 있었다.
“성녀님?!”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원래라면 소리쳤겠지만 그럴 힘도 없었다. 성(聖)벽을 만든 것은 오로지 그녀의 힘이었다. 엘리자베스가 성녀라고 불린 이유는 그녀가 신실한 신자여서가 아니었다.
성(聖) 속성 마법을 사용했기에, 그리고 그게 그 누구보다 강력했기에 그녀를 성녀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녀는 단순한 힐러가 아니었다.
물론 치료도 가능하지만 하늘에서 망치를 소환해 공격하고 자신을 지키는 기사단을 소환하는 등. 엘리자베스는 마법사였다.
하지만 성 속성이라는 마법으로 인해 정반대의 성향인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태어난 악마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처음은 갑작스럽게 공격하는 악마들에게 엘리자베스를 중심으로 뭉쳐 잘 대항했다.
엘리자베스 또한 성 속성을 다른 사람의 무구에 부여할 수도 있었으니. 문제는 인간과 너무 비슷한 외형 때문에 거부감이 든 플레이어들도 있었다는 거다.
살인을 하는 것과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이다. 악마들은 오히려 그걸 역으로 이용해 인간들의 동정심을 이용해 그들을 꼬드겼고 그렇게 하나둘 플레이어들을 장악해나갔다.
엘리자베스가 급히 플레이어들을 이끌었지만 늦었다.
그나마 남은 플레이어들을 규합해 성벽을 만들어 그 안으로 데려왔으며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성벽 안에서 쏘아낸 공격은 성벽에 아무런 타격이 없었기에 성벽 안에서 남은 플레이어들이 악마들을 요격하고 있었지만 악마의 숫자는 너무나도 많았다.
게다가 악마들이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성벽으로 달려들어 죽어 나갔다. 정작 악마의 숫자가 줄어든 것은 눈에 띄지도 않았다.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성벽을 유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자신의 생명력을 전부 요구하는 일이었다. 악마들이 들이닥쳐 성벽에 죽어 나갈 때마다 그녀의 생명력이 점점 깎여나가고 있었다.
지금 피를 토하는 것도 그 때문. 그녀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벌써 성벽을 유지한 지 3일.
성벽을 사용할 수 있는 자도 엘리자베스가 유일했다. 그녀가 지금껏 가장 오래 유지한 것도 고작 하루였다.
그런데 이미 3일이나 지났음에도 버티고 있는 건 바로 그녀의 정신력 덕분. 성벽의 크기를 계속해서 줄이며 버텼지만 이미 그것도 한계였다.
“이렇게 죽는 거야……? 우리?”
허망한 목소리가 들릴 때쯤. 엘리자베스는 뭔가가 성벽을 뚫고 들어온다는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