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144화 (144/201)

144화

성녀라고 불리는 플레이어가 있는 나라. 영국에서 몬스터가 나타났다.

힐러들이 유명한 나라이긴 했지만 힐러들이 많다는 건 그들의 케어를 받아 더욱 효율적으로 몬스터를 잡아 성장한 플레이어들도 많다는 거다.

플레이어의 숫자만 보더라도 처음 몬스터들의 침공 때 힐러들 덕분에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이 많았다.

게다가 플레이어 강국인 중국과 일본이 김진석에게 크게 휘청거린 지금. 미국을 제외한 영국이 가장 많은 플레이어를 보유한 국가였다.

그런 영국에 현재 감당할 수 없는 몬스터가 나타났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저희를 도와주세요.”

성녀가 직접 나서서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평범한 일이 아니란 거다. 하지만 당연히 다른 나라에서 있는 일인데 굳이 나서서 도와줄 이유는 없었다.

물론 그만한 보상이 있다면 플레이어들이 움직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영국이 멸망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을 플레이어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연하겠지만 플레이어들도 전부 목숨을 걸고 일하는 이들인데 무상으로 일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한국 정부가 대안을 제시한 거다.

“그래서. 나보고 가라고? 왜 직접 안 오고.”

“…김진석 씨가 무섭나 봅니다.”

한국 정부는 김진석에게 직접 건네는 게 아닌 루크를 통해서 알려주었다. 한국의 대통령조차도 김진석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으니.

루크는 이제 한국 1위 길드의 길드장이 아니었다. 그 자리는 김진석이 차지했으니.

비록 전 세계에서도 유명하고 한국 1위 길드이긴 했지만 김진석을 좋아하지 않는 자들이 많았고 이방인 길드의 길드원들을 반기지 않는 자들도 많았다.

물론 그걸 겉으로 내비치면 어떤 일을 당할지 몰랐기에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방인 길드원들도 오히려 이런 분위기를 더욱 좋아했다. 지구의 인간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니 역겨운 시선보다는 저런 공포 섞인 시선이 차라리 나았다.

김진석이 길드장인 길드였으니 길드원들도 멀쩡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김진석을 부르는 말은 많았다.

가볍게 연쇄살인범부터 피도 눈물도 없는 학살자. 역사에 길이 남을 최악의 PK 플레이어 등등.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별명이 있었으니.

“자기가 잡아간 플레이어들하고 다른 게 뭐지? 아직도 자신이 게임 속에 있는 줄 아나…….”

“그거 알아? 6년 전에 게임 속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가 나왔다고 하더라.”

“자그마치 6년이나 그곳에 있었다고? 허… 왜 그리 강한지 알겠네.”

“그러면 그 세계에 가장 먼저 빨려 들어간 사람 아니야?”

게임 속으로 가장 먼저 최초로 들어간 자. 하지만 아직 게임 속 세계에 들어가 있는 듯한 무대뽀인 행보.

“그거 아십니까? 지금 밖에서 김진석 씨를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 힘은 인정하지만 그 정신은 아직도 게임 속인 줄 아는 듯한 뜻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 김진석을 부르는 말이었다.

“모를 리가.”

“…언제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모습을 보이셨으면서 그건 전부 연기였습니까?”

“아니. 그때는 진짜 몰랐지. 하지만 이 세계는 모르면 손해 본다는 걸 깨달았다. 설령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말이야.”

루크는 그 말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아직 첫 질문에 대답을 얻지 못했기에 그에게 다시 물었다.

“그래서. 가실 겁니까? 가신다면 그나마 김진석 씨에 대한 여론이 좀 좋아질 겁니다.”

“뭐 여론 같은 건 신경 쓰지 않다만… 나온 몬스터는 흥미로워서 말이지.”

김진석은 계속해서 집에 처박혀 지내며 몸에 곰팡이가 필뻔했다. 안 그래도 좀이 쑤셨는데 오랜만에 흥미로운 몬스터가 나왔다.

거리가 지구 반대편에 있을 정도로 멀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가자, 흑호야.”

흑호와 함께라면 지구 반대편 거리도 단숨에 달려갈 수 있었다. 흑호의 속도는 웬만한 제트기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수준이었다.

음속은 가볍게 돌파하는 속도를 지닌 흑호였지만 당연히 그 속도로 달리면 그만한 저항이 생긴다.

김진석 또한 흑호의 위에 타게 되면 그 엄청난 바람 저항을 겪게 되지만 그 정도는 버틸만한 수준인 그였다.

“넬. 너도 갈 거지?”

“당연하죠. 오랜만에 애들 다 만나겠네.”

“그럼, 거기서 소환해줄게.”

“저도 오랜만에 즐겁겠는데요?”

오히려 김진석보다 넬이 더 몬스터에게 관심을 가지는 모습에 루크는 의문을 가졌다. 아직 영국은 도움만 요청했을 뿐 몬스터에 그 어떠한 정보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게 더 이상했다. 도움을 요청할 순 있지만 정작 몬스터에 대한 정보는 알려주지 않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김진석과 넬은 이미 영국에서 나온 몬스터를 알고 있는 듯 보였다.

루크는 김진석이 알고 있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왠지 김진석이라면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이미 뇌리에 박혀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가.

숨어있는 야쿠자와 삼합회의 일원들을 죽이는 것도 그렇고 이미 그들의 거주지를 알고 있는 것도 그렇다.

마치 모든 걸 아는 듯한 김진석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루크는 이미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해하지 않으면 편해.”

* * *

영국 최고의 플레이어. 순백의 머리칼과 새하얀 피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성녀는 김진석의 행보를 딱히 지지하지 않았지만 그의 생각은 존중하는 자 중 하나였다.

물론 말만 성녀지 그녀 또한 다른 평범한 사람과 다를 게 없었다. 딱히 그녀는 자신이 정의롭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성녀로 불리는 게 오히려 오해를 일으켜 싫어했다.

게다가 아름다운 외모와 창백하다시피한 새하얀 피부는 마치 병든 것처럼 보이게 해 보호 본능을 일으키게 했다.

물론 최상위 S급 플레이어인 만큼 일반인은 한 손가락으로도 이기는 그녀였다.

성녀. 엘리자베스는 중국에서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이 핍박받는 걸 안타깝게 여기는 인물이었다.

흑기사란 존재로 인해 다행히 그들은 풀려났고 그들을 거둔 김진석에게 나쁘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설령 김진석이 다른 일반인과 플레이어를 죽였다고 한들 말이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새로운 유형의 몬스터가 게이트 속에서 나타났다.

게이트 속에서 나온 몬스터는 특이했다. 아니 몬스터가 아니었다. 하나의 종족이었다.

인간과 비슷한 외형. 등 뒤에는 박쥐와 같은 검은 날개, 그리고 아름답지만 뭔가 섬찟하게 생긴 그들의 외견은 마치 악마를 연상케 했다.

게다가 인간의 말을 할 줄 아는 그들이었기에 엘리자베스는 무작정 게이트 안에서 나왔다고 몬스터로 단정 짓지 않고 먼저 그들에게 대화를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시도하기도 전에 무산되었다.

“우리는 인간과의 공존을 원하지 않는다.”

아예 그들이 못을 박은 것이다. 게다가 게이트 속에서 악마들이 정말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이내 순식간에 영국 하늘을 전부 뒤덮은 악마들은 중얼거리더니 그와 동시에 하늘이 붉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인간들의 욕망으로 인해 태어난 존재. 인간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인간들과 공존할 이유는 없다.”

붉은 하늘은 인간의 더러운 욕망을 표현한 거였다. 그리고 그 욕망을 먹고 사는 악마들은 자신들이 살기 편하게 근처 전부를 테라포밍 한 것이다.

악마의 세계. 지옥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영국은 지옥으로 변하고 있었다. 영국 안에 있는 모든 인간. 일반인을 포함한 플레이어조차도 점점 변하고 있었다.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고 분출하고 있었다.

지금 영국은 아비규환이었다. 길거리에는 온갖 범죄가 발생하고 있었고 은행이 플레이어에게 털리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

문제는 그걸 중재할 사람도 없다는 거다.

그나마 엘리자베스를 비롯한 힐러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정신력이 뛰어났고 그들의 정신 공격에 버틸 수 있었지만 악마들이 그걸 두고 보고만 있진 않았다.

곧바로 저항하는 인간들을 잡아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을 말하더니 이내 그걸 들은 인간들은 마치 무언가에 세뇌당한 듯 거리로 나가 범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악마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엘리자베스의 모습을 흉내네 자신의 영역 바깥의 인간들을 불러모았다.

더 많은 인간을 모으기 위해.

그들의 욕망에서 태어나는 새로운 악마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이 숭배하는 대 악마를 위해.

* * *

“음?”

김진석은 갑자기 변한 풍경에 놀라며 흑호를 멈춰 세웠다.

몸이 뭔가를 뚫고 지나가는 느낌이 듦과 동시에 하늘이 붉어졌다. 이런 기이한 현상은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김진석은 곧바로 그림자 밟기를 활성한 채 흑호에서 내려 거리를 걸어 다녔다.

아무리 흑호를 타고 초고속으로 달려왔다고 하지만 붉은 하늘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즉 이 안에서만 붉은 하늘이란 것인데 특이했다.

“결계 같은 건가?”

왔던 길로 되돌아가고 있을 때 김진석은 투명한 벽에 부딪혔다. 분명 겉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없고 길이 쭉 이어져 있는데 그 앞엔 투명한 벽이 있었다.

“…몰려오겠지?”

부술 수 있는지도 몰랐고 부수려고 하는 순간 저 하늘 위에 날아다니는 놈들이 몰려올 것이다.

마치 파리 떼처럼 모여 다녀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악마들은 뭔가를 찾는 것처럼 계속해서 하늘을 날아다녔다.

그리고 그건 아마 인간들이겠지.

김진석은 영국에 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지금은 대략 오후 2~3시. 피크타임인 지금 길거리에 사람이 아무도 없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 근처에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분명히 건물 안에선 인기척이 느껴지고 있었다.

분명 악마 또한 이걸 느낄 수 있을 텐데 그들은 건물 안까지 들어가진 않고 있었다. 그게 이상해 김진석은 주변 아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평범한 주택으로 보이는 건물로 한 가정이 살기엔 적절한 크기로 보이는 그 주택에 들어서자 분위기가 이상했다.

김진석의 예상과 같이 사람이 있었고 평범한 가정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눈엔 초점이 없었고 마치 기계처럼 자신이 할 일만 다 하고 있었다.

엄마로 보이는 자가 밥을 차리고 아빠로 보이는 자가 TV를 보다가 테이블로 다가왔다. 큰아들과 작은딸로 보이는 이들은 서로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엄마의 부름에 밥을 먹으러 왔다.

그 광경은 분명 평범한 하나의 가정이었지만 그들의 눈엔 감정이 담겨있지 않았다. 마치 의무적으로 하는 행동과 같달까.

감정이 의도적으로 거세된 것 같았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그런데 갑자기 아이들의 눈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내 초점이 사라진 눈에서 정상으로 돌아오더니 평범한 아이들처럼 꺄르르 웃으며 밥 먹을 때조차 시끄럽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말썽꾸러기 아이들과 같은 느낌이었지만 정작 부모인 아빠와 엄마는 그들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밥만 먹고 있었다.

그때. 악마가 당당히 집 문을 열고 들어왔다.

[LV:60]

이름도 없는 말단 악마였지만 레벨이 60으로 꽤 나 높았다. 그 악마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다가가더니 아이의 얼굴을 잡고 들어 올려 마찬가지로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댔다.

그와 동시에 붉은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연기 같은 게 악마에게 빨려 들어갔다. 아이의 몸이 부들거리며 떨리는 모습은 보기에 좋지 못했다.

이내 아이는 전과 같이 초점이 사라진 채 감정 없이 의무적으로 차려진 밥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확실히 아이들의 순수한 욕망은 너무나도 정순하군… 조금만 먹으면 모르겠지?”

그렇게 말하며 뭔가 눈을 감고 음미하듯 가만히 있는 악마였지만 김진석의 눈에는 놈의 변화가 보이고 있었다.

[LV:61]

순식간에 레벨업을 한 것이다. 그때 갑자기 악마가 열어놓은 문 사이로 갑자기 쇠사슬이 날아들더니 악마를 속박했다.

“분명 위대한 분을 위한 것이라고 했을 텐데.”

그리고 그 뒤로 한 악마가 걸어들어왔다.

[스토르 LV:80]

“용서…….”

하지만 그 말을 다 하기 전에 쇠사슬이 악마의 몸을 조이더니 그대로 터져버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