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후…….”
돈은 심호흡하고 있었다.
오히려 보리스보다 더 긴장하고 있는 돈은 조직원들을 데리고 김진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리스는 이미 각오하고 있었지만 김진석이 어떻게 나올진 아무도 몰랐다.
혹여나 안 좋게 생각할까 봐 아예 플레이어까지 제외한 조직원들만 불렀다. 그리고 이 사실을 전부 김진석에게 알렸다.
보리스는 돈이 나오는 것을 반대했지만 돈의 고집에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대부께서 나오시면 제가 이러고 있을 이유가…….”
“이미 그자는 전부 알고 있을 거다. 숨어있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어.”
김진석은 야쿠자와 삼합회의 일원들은 그 어디에 숨어있어도 악착같이 찾아내서 죽여버렸다. 오히려 숨어있었다면 더더욱 잔인하게.
김진석의 잔혹함은 고위직 간부들이 자살까지 하는 사건도 벌어질 수준이었다.
보리스는 김진석에 대해 전부 알아보고 벌인 일이었었다. 한국에서 그에 대한 평가도 좋았고 그가 하는 행동도 전부 길드원을 위하였으니.
최상위 S급 플레이어인 보리스는 오히려 김진석을 높이 평가했었다. 동료애가 뛰어난 그가 보기엔 김진석은 자신의 길드원들을 지키기 위해서 면죄부도 사용한 인물이었으니깐.
“하지만… 그는 위험인물입니다. 제 사과를 받아준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만.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난 여기 있다. 지금부터 숨는다고 한들 그자가 못 찾을 것 같나?”
“그의 말이 맞으니 이제 같잖은 촌극은 그만하지.”
갑자기 둘의 사이에서 거대한 남자가 나타났다. 돈은 그 거대한 덩치에 맞지 않게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했다.
보리스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지만 최상위 S급 플레이어답게 금방 정신을 다잡고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검은색 머리의 검은 눈. 거대한 덩치와 험상궂은 인상은 마피아인 그들과 정말 잘 어울린 남자. 김진석.
그가 갑자기 둘 사이에 나타났다.
“미리 말하지만 이미 알고 있다. 그쪽이 날 끌어들이기 위해 C, D급 플레이어들을 미끼로 던졌으며 그 계획을 누구보다 가장 먼저 실행한 자라는 것을.”
보리스는 김진석에게 직접 D급, C급 플레이어들을 보내 실제로 죽으면 그만한 가치를 그 사망한 플레이어 가족에게 보내주려고 했다.
하지만 김진석은 집에 틀어박혀 나오는 일이 드물었으며 나온다고 한들 그들이 따라잡을 수 없을 수준의 속도로 움직였기에 차선책으로 그의 길드원들을 끌어들인 거다.
그 모든 계획은 전부 보리스. 그가 세운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제가 죽으리라는 것쯤은. 하지만 제가 당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이유는 저 하나만으로 만족해주시길 바라서입니다.”
“최상위 S급 플레이어면서 저항 한 번 안 해볼 건가?”
마치 그걸 바라고 있는 것 같은 김진석의 모습에 보리스는 의문을 가졌지만 이내 잡생각을 떨쳐내며 말했다.
“제가… 당신에게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아니.”
즉답이었다.
사실 보리스도 김진석의 무력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혼자서 야쿠자와 삼합회를 박살내고 수많은 S급 플레이어와 최상위 S급 플레이어 4명을 죽였다고 하지만 오히려 너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머리가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보리스는 김진석의 눈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자신들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 자라고.
보리스는 유명한 PK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그의 뒤에는 마피아가 있었으니 그 누구도 함부로 보리스를 공격할 수가 없었다.
그런 보리스보다 더 많은 인간을 죽인 자가 바로 김진석이다.
그 인간들이 플레이어인지 아닌지는 이미 중요하지가 않다.
김진석이 야쿠자와 삼합회의 일원인 플레이어를 죽인 숫자만 생각해보더라도 보리스 자신보다도 많이 죽였겠지.
“그래도 신기하군. 야쿠자와 삼합회는 어떻게든 나를 죽이려고 하던데. 그건 궤멸 상태인 지금도 멈추지 않았어.”
아무리 김진석이라도 그 많은 야쿠자와 삼합회에 관계된 이들 전부를 죽일 순 없었고 대부분 큼지막한 고위 간부들만을 노렸다.
하지만 그 숫자는 너무나도 많았고 아직 남아있던 간부 중 몇몇은 어떻게든 김진석을 죽일 수단을 찾고 있었다.
실제로 야쿠자 쪽 최상위 S급 플레이어의 능력은 독을 다루는 능력이었는데 공기 중에 흩뿌린 독을 계속해서 마신 김진석은 위험할 뻔했었다.
그 독은 인간의 장기를 전부 녹여버리는 독이었고 그건 김진석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강했는지 독은 그 플레이어가 죽었음에도 계속 남아있었다.
지금도 김진석의 장기는 녹아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그 고통을 참고 있었으며 치유되고 있었다.
그 독의 이름은 사(死)독.
걸리면 죽는다는 뜻의 사가 아니다. 말 그대로 죽은 자들에게서 채취할 수 있는 독이 바로 사독이었다.
야쿠자의 밑에서 수백, 수천, 수만 명의 사독을 채취해 농축시켰고 그걸 김진석에게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버텨냈다. 버티고 있었다.
비네조차도 그 독에 깜짝 놀랐다. 김진석에게 통할 독이 있었다면 이미 진작에 그녀가 사용했을 거다.
시험의 탑에서 수많은 독을 사용한 그녀였지만 그때마다 김진석은 버텨냈고 이겨냈다.
그로 인해 사실상 만독불침이나 다름없는 상태인 김진석이었지만 그런 그에게 통한 독이 고작 인간들에게서 발견된 것이다.
최근 비네는 그 사독이란 것을 연구하고 있었다.
“심지어 내 지인을 비롯한 길드원들도 노리고 있더군.”
야쿠자와 삼합회는 워낙 신출귀몰한 김진석을 발견조차 못 하고 있다 보니 아예 그를 끌어들이려고 길드원을 노렸다.
하지만 길드원들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던 김진석은 세피드에게 몰래 그들을 노린 이들을 전부 죽이라고 말해 두었다.
다행히 세피드도 김진석의 말을 따라주었다.
“…작은 성의입니다. 받아주십시오.”
보리스는 알기 쉬운 그의 경고에 고개를 끄덕이며 미리 준비해두었던 선물을 김진석에게 건넸다.
보리스의 말에 근처에 서 있던 마피아들이 유리 상자를 가져오고 있었다. 여러 마피아들이 조심스럽게 들고 오는 유리 상자 안에 있던 건 다름아닌 무구였다.
순백의 창과 대검. 누가 봐도 성스럽다고 느끼게 하는 그 대검과 창은 김진석도 알만한 보구였다.
[롱기누스]
[갈라틴]
바로 퍼시벌의 무기 롱기누스와 가웨인의 무기 갈라틴이었다. 그들은 주인이었던 이들에게 무기를 빼앗겼고 그 무기는 비싼 값을 주고 다른 플레이어에게 팔렸다.
하지만 주인이 정해진 무기인 롱기누스와 갈라틴은 일반 플레이어들이 사용할 수 없었고 주인을 찾기 위해 그렇게 팔리고 팔려서 결국 마피아의 손에까지 들어오게 된 거다.
물론 마피아가 그런 물건에 관심은 없었지만 이 무기들이 김진석의 길드원의 무기라는 것을 알아차린 보리스가 부랴부랴 구한 물건이었다.
김진석에 대한 선물보단 김진석이 아낀 길드원들을 챙겨준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죽은 자들도 살린다는 엘릭서입니다. 총 10병으로 원하신다면 제조법도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그 말에 김진석은 알 수 있었다.
“너로군. 그 가짜를 만든 것도.”
“…역시 알고 계시는군요.”
엘릭서를 제조하는 법을 알고 있다. 그렇다는 건 즉 가짜를 만드는 방법도 알고 있다는 것. 시중에 유통된 엘릭서는 전부 가짜였고 그 모든 걸 계획한 이 또한 보리스였다.
김진석은 유리 상자와 함께 롱기누스와 갈라틴 그리고 엘릭서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성의는 잘 받지. 하지만 조건이 있다.”
김진석의 말에 근처 대기하던 마피아들은 식은땀을 훔쳤다. 티 나지 않게 가만히 있을 뿐 그들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었으니.
단 한 명뿐이라지만 그 한 명이 야쿠자와 삼합회를 궤멸시킨 장본인이었고 그 장본인이 마피아 또한 궤멸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태연스럽게 대화하고 있는 보리스가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무슨 조건입니까?”
“간단해. 저항하지 않는 인간을 죽이는 건 나도 좀 걸려서.”
즉 저항하란 거다. 김진석 자신에게.
김진석이 보리스에게 이렇게까지 관심을 두는 이유는 하나였다.
[보리스 LV:80]
“비네의 말이 맞네. 애새끼들이 아니었어.”
* * *
김진석이 마피아를 찾아갔다는 소문은 널리 퍼졌다.
마피아가 직접 공개적으로 말했으니 당연했다. 사람들은 마피아가 꼬랑지를 내렸다고 생각했다.
야쿠자와 삼합회가 무너지고 있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을 테니 그 결정은 어쩌면 당연했다.
하지만 김진석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건 다른 문제였다.
사실상 분위기는 이미 김진석을 PK 플레이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수많은 플레이어를 죽였으니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막 나가기로 결정한 김진석이 굳이 마피아의 사과를 받을 이유가 있을까?
보상을 준다고 한들 그냥 전부 죽여서 강탈하면 그만인데. 물론 삼합회와 야쿠자의 재산은 일절 건드리지 않은 김진석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김진석은 마피아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대가로 마피아의 부두목. PK 플레이어라 제외됐지만 오히려 PK 플레이어였기에 최강을 논할 만큼 강한 보리스를 죽였다.
그렇게 야쿠자와 삼합회. 그리고 S급 플레이어 수십과 최상위 S급 플레이어 5명을 죽이고서야 김진석의 분노가 잠재워졌다.
이제 문제는 김진석의 처우다.
우선 한국 정부는 힘이 없다. S급 플레이어도 없을뿐더러 한국의 모든 S급 플레이어들은 김진석에게 친분이 있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 두기에는 그가 저지른 죄가 너무나 컸다.
게다가 바로 주변 나라인 중국과 일본에서는 깽판을 쳐놓고 러시아에 가서는 단 한 명만 죽이고 그들을 용서해주었다.
중국과 일본이 지금 한국의 행보를 주의 깊게 보고 있겠지.
물론 속으로는 나라의 암 덩어리들을 제거해 준 김진석에게 감사하다고 말해도 모자랐지만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나라에서 사람을 죽인 김진석을 봐주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된다면 김진석은 더더욱 날뛰게 되겠지.
김진석은 범죄자를 죽이는 정의로운 악당 같은 게 아니었다. 그저 그의 경고를 무시한 자들이 범죄자였기에 죽인 거다.
만약 김진석의 경고를 무시한 자가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어도 김진석은 그를 죽였을 거다.
그만큼 위험한 인물이다.
하지만 김진석의 힘은 필요했다.
과거 김진석이 올림푸스에게 불려갔을 때 전세기에 타 있던 승무원은 김진석이 와이번조차도 물리게 하는 강자라고 말했다.
와이번이 토벌된 적은 단 한 번. 올림푸스가 나섰을 때를 제외하곤 토벌된 적이 없었다.
그나마 그것도 올림푸스의 전원이 나서서 간신히 토벌한 것이지만 올림푸스도 그때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었다.
그런 괴물을 혼자서 물리게 하다니.
계속해서 몬스터들이 나오는 지금. 김진석을 PK 플레이어로 전락시켰다간 그가 얼마나 더 많은 플레이어를 죽일지 몰랐다.
이미 김진석은 폭주를 멈췄다.
그 수많은 플레이어와 일반인들을 죽인 김진석이었지만 그는 한국에 돌아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전과 같은 생활을 이어나갔다.
똑같이 집에 처박혀 은둔생활을 했다.
도저히 그가 무슨 생활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그는 건드리지 않으면 터지지 않는 폭탄이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는 한국 정부는 일부로 최대한 그에 대한 판정을 미뤘다.
그렇게 점점 사람들의 관심이 없어질 무렵. 김진석이 필요한 사건이 결국엔 터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