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김진석이 미국에서 돌아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정신병원이었다.
정신병원은 로스트 월드를 비롯한 다른 게임 속 세계에 들어가서 끔찍한 일을 겪고 빠져나온 이들이다.
물론 본의 아닌 강제로 죽어 빠져나오게 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김진석이 이곳에 찾아온 이유가 무엇일까.
“어?! 김진석 플레이어 아닌가요? 저 완전 팬…….”
“로스트 월드를 다녀간 플레이어를 찾고 있습니다.”
정신병원에 카운터를 보고 있던 여성은 김진석의 싸늘한 말투에 흠칫했다.
이방인 길드가 급속도로 커지며 그 길드장인 김진석도 유명해지고 있었고 그의 얼굴도 점점 알려지고 있었다.
최상위 S급 플레이어였으며 신비주의인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은근 생기고 있었다.
카운터의 그녀도 김진석을 좋아하는 부류였는데 김진석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게 많은 지금 그의 심기를 거스르는 건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들은 지금 정신과 의사들과의 면담을 받고 있습니다.”
김진석이 정신병원에 찾아온 이유. 사실 그들은 로스트 월드에서 겪은 끔찍한 죽음으로 인한 PTSD 때문에 정신병원에 갇힌 게 아니었다.
한빈혁이 말한 악행. 그 악행으로 인해 그들은 현실에서도 위협이 될 것 같았기에 주기적으로 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의사에게 면담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김진석 플레이어라도 면회는 불가…….”
“아뇨. 그들의 인적사항만 알면 됩니다.”
하지만 김진석은 그들의 이름과 나이, 성별 등등만을 알아내고 떠났다.
* * *
“무슨 짓을 벌이시려는 겁니까?”
김진석의 기행에 루크가 찾아왔다. 언제나 조용히 지내는 김진석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로스트 월드에 들어갔다 살아나온 플레이어를 찾고 다닌다는 소문은 한국 전체에 퍼졌다.
당연히 그 소문은 루크의 귀까지 들어갔고 그는 김진석을 직접 찾아온 것이다.
“황혼 길드장. 내게 숨기는 게 있지?”
이제는 서로가 한 길드의 길드장이 된 그들은 공적인 자리에서는 서로를 길드의 길드장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곳은 공적인 자리가 아니었다.
“로스트 월드를 다녀온 플레이어. 그들의 악행을 이미 알고 있었지?”
김진석은 이미 알고 있었다. 딱히 다른 플레이어에게 관심이 없어서 그들을 찾아보려 하지도 않았지만 찾아보기 위해 인터넷에 검색했더니 그들에 대한 기사 하나 나 있지 않았다.
C급 B급 플레이어라도 조그마하게 기사 하나 정도는 나는데 자그마치 로스트 월드에 다녀온 플레이어에 대한 기사 하나가 없다?
이건 누가 의도적으로 지운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걸 저지를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
“…당신이 알게 된다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테니깐요.”
루크도 이미 알고 있었다. 김진석이 게임 속 세계에서 겪은 일을 중요시하는 자라는걸. 그리고 그들의 악행을 알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변명하지 않아서 좋군.”
김진석이 계속해서 루크와의 관계를 끊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언제나 사사건건 참견해왔지만 내버려 둔 이유.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변명하지 않았다.
김진석 자신에게.
이미 괴물 같은 힘을 가진 김진석의 힘을 알고 있는 루크였지만 언제나 그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그리고 들켰을 때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아무리 김진석 씨라도 그들 전부를 죽이면 사람들이 눈치 챌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당신이 그들을 찾고 있다는 걸 사람들이 전부 알고 있으니깐요.”
원래라면 김진석은 제이다나 다른 이에게 시켜 그들을 알아 오라고 했을 거다. 하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발로 뛰며 하나하나 알아가고 있었다.
“정상적으로 돌아온 로스트 월드의 플레이어도 있습니다. 그들도 죽이실 참입니까?”
“그럴 리가. 내가 여러 정신병원을 돌아다녔지. 그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 그 이유는 모르나?”
당연히 한국에 정신병원이 하나밖에 없을 리 없었고 김진석은 지금 이미 모든 정신병원에 들른 상태였다.
“…정신과 의사에게 면담을 받은 자만 죽이실 셈이군요.”
“정확해.”
면담을 받은 플레이어는 즉 문제가 있는 플레이어란 거다. 하지만 그게 김진석이 죽여도 되는 자들이란 건 아니다.
“이미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은 플레이어도 있습니다. 그들도 죽일 셈입니까?”
“…호오.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하군.”
조사를 한 것이 아닌 이상 그들의 행적을 알고 있을 리 없었다.
“나도 이미 조사를 마쳤지. 플레이어에겐 사망 보험금이란 것이 있더군. 그리고 연금도 받지. 그거면 충분하겠지. 남은 가족이 먹고 살아가기엔.”
물론 김진석이 악마도 아니고 그들의 가족까지 전부 죽일 건 아니었다. 오로지 목표는 하나. 악행을 벌인 자다.
“갱생을 했건 안 했건 내 알 바 아니다. 과거는 지워지지 않으니. 물론 내가 정의도 아니야. 그저 이건 힘을 가진 자의 행포일 뿐이다.”
김진석은 자신이 정의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그도 로스트 월드. 아디스에서 살인은 수도 없이 많이 저질렀으니깐.
그들이 범죄자라고 해서 그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 김진석이 하는 일은 김진석의 말 그대로 행포일 뿐이었다.
“…PK 플레이어가 되더라도 말입니까?”
“걱정하지마. 다 생각이 있으니깐. 그쪽에게 피해는 안 가게 하지.”
김진석은 이미 확정시하고 있었다. 최소 지구엔 김진석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루크는 그저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 * *
최상위 S급 플레이어 김진석이 갑자기 플레이어 다수를 불렀다.
신비주의였던 김진석이 서울에서의 일 두 번을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공식적인 활동이었다. 그 두 번도 아무런 김진석에 대한 정보가 풀린 것이 없으니 말 다 했지.
그런데 그가 처음으로 특정 플레이어의 이름까지 불러가며 이방인 길드의 길드 지부로 초대한 것이다.
이방인 길드는 극히 폐쇄적이다. 길드에 어떤 이들이 있는지부터 길드 지부가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김진석이 갑자기 특정 플레이어만 초대한 것이다.
당연히 그 소문은 금방 퍼졌고 사람들은 김진석이 초대한 이들이 로스트 월드에 들어갔다가 나온 플레이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도 결국 사람인지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끼리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한 건가?”
“그런데 난 그게 더 궁금해. 어떻게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이 전부 김진석에게 간 걸까? 도대체 왜? 다른 좋은 사람들도 많았을 텐데.”
“올림푸스에서 확인했다고 했으니 문제 될 건 없겠지. 그래도 궁금하긴 하네.”
하지만 사람들은 김진석이 그들을 초대한 것보다 올림푸스에 불려갔던 김진석이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무런 말이 없으니 그걸 더 궁금해했다.
자그마치 12명의 최상위 S급 플레이어와 최강의 플레이어가 있는 올림푸스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들의 시선에서도 대단한 곳이었다.
그들이 마치 자신들이 경찰이라도 된 것처럼 앞장서 김진석을 확인해보겠다고 했지만 그 어떤 플레이어도, 나라도 아무도 그 결정에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올림푸스가 김진석은 괜찮다고 말했을 때 자신의 NPC들이 전부 김진석에게 가니 의심하던 중국 플레이어들의 반발이 컸지만 그 반발을 들어주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김진석은 조용히 지냈는데 갑자기 로스트 월드의 플레이어들을 부른 것이다.
또다시 의문이 피어올랐다.
왜 갑자기 김진석이 그들을 초대한 건가. 김진석의 길드. 길드원들은 길드장과 부 길드장을 제외하고 전부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이었다.
그들 전부가 인간에게 핍박받아온 이들이었다는 건 김진석을 아는 자라면 대부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가 초대한 이들은 정신에 문제가 있는 이들이란 게 이미 밝혀졌다.
안 그래도 흑기사와 관계되어있다고 의심되는 김진석이 그들을 초대했다? 대놓고 뒤가 구리다는 건 어린아이라도 알 수 있는 거였다.
그렇게 많은 의문이 있던 다음날. 김진석은 아예 대놓고 자신의 의도를 밝혔다.
“그들이 행했던 악행을 게임 속 세계에서의 일이라고 무시한 이들을 대신해 내가 그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주지. 하루의 시간을 주겠다.”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최상위 S급 플레이어라지만 같은 플레이어에게 함부로 대할 순 없었다.
당연히 김진석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던 이들은 그의 말을 눈여겨 듣지 않았다. 그리고 또다시 다음날.
그가 지명했던 플레이어들 전원이 갑자기 사라졌다.
* * *
“…뭐야?!”
“여긴 어디지?”
로스트 월드에서 나와 꽤 나 한 따까리하는 송진식이란 자는 집에서 편히 자고 있다가 깨어났더니 웬 철창 안에 갇혀있었다.
그는 게임 속에서 온갖 살인과 같은 범죄를 일으켰고 그 대상은 무고한 일반인 NPC였다.
게임 속 세계로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사기꾼이었던 그는 로스트 월드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사기를 치며 돈을 벌어갔으며 살아갔지만 결국 기사들로 인해 죽음을 맞이했다.
너무나 순진했던 로스트 월드의 시민들은 간단한 사기에도 쉽게 당했고 그에 혹한 기사들을 이용해 레벨업을 하며 쉽게 살아왔다.
지구에 돌아와서는 사기를 칠 필요도 없이 로스트 월드에서 얻었던 능력을 사용해 몬스터를 잡으며 살아왔다.
가벼운 잡 사기꾼이었던 그를 근처 사람들은 갱생했다고 생각했었고 그렇게 그는 아무 죄책감 없이 생활했다.
“뭐야?! 당신은 누구야!”
그때 옆 철창에 갇힌 한 남자가 소리쳤다. 그는 송진식도 알 정도로 유명한 활을 사용하는 플레이어였다.
로스트 월드에서 나와 차기 S급 플레이어로 성장할 정도의 잠재력을 가진 자. 하지만 지금 그는 고작 철창 안에 갇혀있었다.
심지어 활을 사용해 철창을 쏘아봤지만 아무런 타격도 없었다. 송진식은 주변을 둘러보니 그와 비슷한 처지에 이들이 전부 철창을 때리고 있었지만 흠집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비록 사기꾼이지만 상황판단이 빠른 송진식은 그들처럼 흥분하지 않고 철창 밖을 확인했다. 그런데 그곳엔 이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백의를 입은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저들이 소리치며 철창을 때리건 말건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저 주사기 안에 무슨 액체를 넣는 작업을 집중하며 하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죠? 이 일을 벌인 장본인입니까?”
“그래도 넌 상황판단이 좀 빠르네? 조용히 있어.”
그의 물음에도 주사기에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김진석! 그자가 벌인 일이지?!”
“아무리 최상위 S급 플레이어라도 우릴 이런 식으로 대할 권리는 없다!”
사실이었다. 나라가 대접하는 최상위 S급 플레이어라고 한들 그들은 엄격한 감시 속에 살아가고 있다.
너무나 강한 힘을 가진 이들이라 시민들의 시선을 통해 그들을 감시해야만 했다. 실질적으로 그들을 막을 수단은 같은 최상위 S급 플레이어밖에 없었으니깐.
가끔씩 김진석처럼 막 나가는 이들이 있긴 했지만 그들은 전부 제재를 받았다. 같은 최상위 S급 플레이어를 통해.
“척결자의 존재를 모르고 있나 본데 네놈 같은 신입 최상위 S급 플레이어 정도는 가볍게 처리할 수 있을 거다!”
척결자. 전문적으로 최상위 S급 플레이어를 사냥하는 자들로 PK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그들은 합법적으로 최상위 S급 플레이어를 사냥했다.
바로 김진석과 같이 막 나가는 자를 제재하는 방식을 통해 말이다.
최근에 김진석과 같은 존재가 없었던 이유가 바로 그들의 존재 때문이다.
척결자. 그들은 하나의 길드였다.
“알고 있다. 비공식 최강의 길드 척결자.”
그때 김진석이 어디선가 나타났다.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인종인지. 숫자는 몇이나 있는지 그 어느 것 하나 밝혀지지 않은 이들이지.”
김진석 또한 척결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들이 하나인지 둘인지. 사실은 길드인지조차 밝혀지지 않은 그들.
“그게 너희를 구원해주는 이유가 되진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김진석의 손에는 붉은색 액체가 든 유리병이 들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