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사실 김진석은 제우스를 죽이려 하지 않았다. 그의 여러 능력 중 하나인 분신을 죽이다가 본인도 죽은 거지.
정확히는 분신이 아니라 분신도 다치면 본인도 다치는 능력이었던 것이다.
이름만 분신이지 신경 써야 할 몸이 더 생긴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몸이 생긴 건 사실이었으니 그 몸만 완벽히 다루게 된다면 최고의 스킬이었다.
자신의 모든 걸 복사하는 분신은 제대로 다룰 수만 있다면 말이다.
실상 분신을 스킬북으로 얻은 자는 없는 스킬로 취급하는 게 일방적이었지만 제우스는 달랐다.
아무도 사용하지 못한 분신을 단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의 분신을 사용한다는 것. 그뿐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능력까지.
최강이라 불리기에 충분한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그 최강이라 불린 플레이어도 김진석의 스킬 하나를 견디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두 개였다. 광기. 그리고 궁극기 광전사의 비기.
제우스는 분신을 통해 스킬을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건 압도적인 힘 앞에선 아무 의미 없었다.
김진석은 분신과 분신이 아닌 제우스를 자연스럽게 구분할 수 있었고 일부로 제우스만을 남겨둔 채 분신을 죽였지만 분신과 본신이 연결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렇게 제우스는 분신이 죽은 것처럼 똑같이 반으로 갈라져 죽어버렸다. 상체 하체로 나누어진 것이 아닌 좌우로.
제우스 본인이 죽어서인지 아니면 김진석의 스킬. 광기와 광전사의 비기를 통해 그의 영역이 부서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둘은, 한 명은 죽어서 그 공간에서 나왔다.
하지만 제우스의 반으로 갈라진 양쪽 몸이 기이하게도 스스로 움직이더니 두 개의 몸이 하나로 붙으며 서서히 재생하고 있었다.
“과연. 최강의 플레이어라고 불린 건 이유가 있나 보군.”
김진석은 스킬 한 번에 날이 다 빠져버린 성기사단의 대검을 들고 재생하는 제우스의 몸에 달려들려고 했지만 그 앞을 가로막는 자가 있었다.
“잠깐… 만요!”
그자는 헤스티아. 올림푸스의 일원들을 치료하느라 지쳐 쓰러졌지만 힘든 몸을 이끌고 간신히 제우스의 앞에 서서 김진석을 막았다.
다른 올림푸스의 일원들이라면 뒤도 보지 않고 곧바로 공격했겠지만 헤스티아라면 말이 다르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숨도 가쁘게 몰아쉬면서까지 김진석의 앞을 막는 그녀는 그를 막을 힘이 있을 리 만무했지만 그런데도 그녀는 김진석의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오랜만에 전투다운 전투를 기대한 김진석이었다.
“내가 그쪽을 공격하지 않은 이유는 그쪽이 유일한 힐러이기라는 걸 잊었나?”
날이 다 빠진 성기사단의 대검을 헤스티아의 목을 향해 겨눴다. 날 끝부분이 그녀의 목에 살짝 들어갔지만 날이 다 빠진 상태라 다행히 피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김진석의 뜻은 명백한 위협이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헤스티아는 침도 삼키지 못할 정도로 들어온 대검을 살짝 밀어내며 그녀의 뒤, 제우스를 가리켰다.
이내 반으로 갈라져 죽은 제우스의 몸은 붙어 재생했고 죽었을 리 분명한 제우스는 그렇게 되살아났다.
“여긴…?”
그런데 제우스는 어리둥절한 채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마치 방금까지 있었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백업 스킬이라고 했어요. 기억과 몸을 그때 그 당시에 저장해두고 불러오는 스킬이라고…….”
그렇게 말하며 헤스티아는 제우스에게 뭔가를 말하며 품속에서 일기장 같은 걸 꺼냈다.
김진석은 다른 올림푸스의 일원들을 바라봤지만 그들도 제우스의 저 스킬에 대해선 모르고 있던 것 같았다.
백업. 컴퓨터를 백업하듯이 설령 죽더라도 그때 당시로 돌아가는 스킬이었다. 가히 사기적인 스킬이긴 했지만 기억도 같이 잃었으며 중요한 것은…….
“한 번 밖에 못 쓴다고 했어요.”
“쯧.”
그 말에 김진석은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망가지지 않는 단단한 장난감인 줄 알았는데 너무나도 형편없었다.
김진석이 대검을 집어넣고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길드원들에게 걸어가자 그제야 올림푸스의 일원들은 제우스를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그들은 제우스를 걱정하는 것이 아닌 왜 자신들에게도 숨겼냐는 등 지금에 와서는 아무짝에 쓸모없는 얘기만 할 뿐이었다.
“도대체 지구는 어떻게 버틴 거지? 저것들을 데리고?”
김진석은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최강의 플레이어가 있는 길드가 저 모양인데 약한 몬스터만 지구에 왔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신 상태도 글러 먹었다. 김진석조차도 어린 나이였지만 사회생활을 저들보다 훨씬 빨리했으니 저들보다는 성숙하긴 했다.
사실 플레이어들 대부분이 어린 나이였다. 게임을 좋아하는 자들이 대부분 어린 나이였으니.
그리고 그중에서는 저들처럼 사회생활도 별로 안 해보고 힘만 가진 플레이어들이 다수 있었다.
올림푸스의 일원들은 그런 그들이 모인 집단이라고 생각하면 됐다.
“그나마 헤스티아가 있으니 저 정도인가?”
원래 직업도 있던 헤스티아였고 힐러로서 저들의 어머니처럼 다루고 있었으니깐. 겉으로 보기에는 김진석과 나이 차이가 그리 나지도 않아 보이지만 그녀는 성숙해졌다.
성숙해져야만 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처음으로 가웨인은 깍듯이 김진석을 대했다. 퍼시벌도, 비비안과 모르간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본 김진석은 자신들을 위해 분노하고 싸운 것처럼 보였다. 그의 힘이 어떻든 목적이 어떻든 그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물론 김진석은 싸우고 싶었을 뿐이었지만.
“그러고 보니 우리 어떻게 돌아가지? 쟤네 전세기로 온 건데 데려다주기 싫다고 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김진석도 대책 없는 것은 올림푸스와 똑같았다.
“그러게 적당히 하시지 그러셨어요.”
“난 적당히 한 거야.”
통역과 이외의 다른 일로 따라온 제이다는 김진석에 관한 그 어떠한 걱정도 하지 않았고 그저 얌전히 구석에서 구경하다가 끝난 것 같이 보이니 다가오며 말했다.
“…어디에 계신 겁니까?”
“제 능력이에요.”
퍼시벌도 그녀가 사라진 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으니 그녀의 능력은 꽤 나 대단한 수준이었다.
“이럴 줄 알고 대비책은 마련해 뒀어요. 미국 정부에 연락하면 전세기든 뭐든 다 준비해줄 겁니다.”
플레이어들에게 복지가 좋은 미국이었고 그중에서도 특히 최상위 S급 플레이어가 원하는 거라면 다 들어줄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최강 길드. 올림푸스의 초대로 온 것이었으니 그 정도 대우는 당연했다.
김진석은 곧바로 돌아가려고 하다가 날이 다 빠진 성기사단의 대검을 보고 방향을 돌렸다.
“한빈혁 디렉터에게 가지.”
“…저들은 내버려 둬요?”
제이다의 의문은 가볍게 묵살했다.
* * *
“함부로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최고의 아이템을 자랑하던 레어마켓은 아이템은 좋았지만 그 아이템 자체가 적어지다 보니 점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최고의 아이템들을 막 뽑아내고 팔더니 아이템을 취급하는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만큼 그 기업의 CEO인 한빈혁 디렉터를 만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사이에 건물을 옮겼는지 더 커졌고 건물 앞에 경비원들도 있었다.
그리고 김진석은 그 건물 앞 경비원들에게 막혔다.
“아무리 최상위 S급 플레이어라도 예약을 잡지 않고선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김진석이 최상위 S급 플레이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예외는 없었다.
게다가 경비원들도 A급 플레이어였다. 김진석이 모르는 사이에 너무 커버린 레어마켓이었다.
김진석도 몰상식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괜히 이곳까지 와서 헛걸음하기는 조금 귀찮은 건 사실이었다.
“한빈혁 디렉터 연락처가 있었나?”
“잠시만요. 찾아볼게요.”
그때.
“잠시만요! 그냥 들어오시면 됩니다!”
갑자기 뒤에서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뛰어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김진석 플레이어. 한빈혁 CEO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이제는 한빈혁 디렉터가 아닌 한빈혁 CEO라고 불리는 그는 단순히 직책만 가진 게 아닌 사업 아이디어를 직접 만들었고 레어마켓을 이렇게까지 키운 장본인이 되었다.
그는 마침 김진석의 정보를 검색하다가 위치가 그들의 건물 앞에 있는 걸 보고 급히 사람을 내려다 보낸 것이다.
물론 경비를 보던 플레이어는 아무 잘못한 것이 없었지만 그는 괜히 같이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어디 계시죠?”
“안내하겠습니다.”
경비원이면서도 플레이어인 그가 최상위 S급 플레이어에게도 직업 정신을 펼친 건 대단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 뒤에 분들은?”
“제 길드원입니다.”
“…아! 그분들이군요. 반갑습니다.”
그게 끝이었다. 그들을 안타깝게 본다거나 신기하게 본다거나 하는 게 아닌 그저 밋밋하게 샐러리맨이 영혼 없이 말하는 것 같이 말한 게 전부.
신기하다는 시선이나 안타깝다는 시선, 그리고 더러운 시선은 그들에게 더더욱 역겹게 다가왔다.
마치 동물원 속 동물에게 가지는 감정과 같아서.
그들은 고작 저 무관심한 목소리에 드디어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좋아하지 마. 너희 S급 플레이어고 최상위 S급 플레이어야. 대우받아야 한다고.”
김진석은 그들의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자신과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할 이들이 고작 저 영혼 없는 말에 좋아하는 모습이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지금껏 그들이 받았던 대우를 생각해보면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수준이었다.
“오랜만입니다. 김진석 플레이어.”
“오랜만입니다. 한빈혁… 사장님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하하. 아닙니다. 편한 대로 불러주십시오.”
넬과 마찬가지로 김진석이 반기는 모습과 악수를 받으며 웃는 모습은 그들에게 충격적이었다.
올림푸스의 플레이어들을 잔혹하게 힘으로 찍어누르고 반으로 갈라져 죽은 제우스의 모습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김진석과는 너무나도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눈앞의 인간은 아무런 힘도 없어 보이는 자였는데도 말이다.
“저번에 샀던 대검이 날이 다 빠져서요.”
“네? 내구성은 최대한 높였을 텐데…….”
김진석이 대검을 요구했을 때 말한 게 바로 내구성이었다. 그렇기에 무구를 강화하는 플레이어가 내구성을 집중적으로 강화를 해주었다.
그리고 김진석이 대검을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날이 다 빠졌다니.
물론 그 의문은 김진석이 대검을 꺼내 보여 종식되었다.
“정말 날이 다 빠졌군요……. 상품에 문제가 있었습니까?”
“그저 저의 힘을 못 버틴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적어도 제가 보기엔 나쁘지 않았던 물건이었습니다.”
김진석의 힘을 비록 버티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무기의 특성도 있었으니 나쁜 물건은 아니었다.
* * *
김진석이 새로운 무기를 구하는 한편.
그가 휩쓸고 간 올림푸스의 길드 지부는 난리가 난 상태였다. 올림푸스는 12신만 있는 소수 정예 길드가 아니었다.
혹시 있을 흑기사의 등장이 있을까 다른 길드원들을 대피시켰고 그 길드원들이 돌아왔을 때는 그들이 알고 있던 건물이 아니었다.
하필 일까. 아니면 다행일까. 그들이 돌아와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갑자기 건물이 무너져내렸다.
올림푸스의 12신은 김진석은 돌아갔지만 이후에 마법을 잘못 사용해서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고 말했지만 건물이 무너진 형태는 도저히 마법으로 보이지 않았다.
건물이 마치 거대한 칼에 베인 것처럼 깔끔하게 절반으로 잘려있었고 그 단면 또한 깔끔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올림푸스가 새로운 마법을 개발했다. 그 위력은 가히 대단했다. 올림푸스가 또 해냈다 등등. 그들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올림푸스의 12신의 심정은 참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