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133화 (133/201)

133화

“날 부른 이유가 뭐지?”

김진석은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며 말했다. 그리고 올림푸스의 12신의 상태창을 확인하고 이내 실망했다.

레벨 80이 넘어가는 자가 없던 것이다.

그때. 미국에서도 희귀할 법한 백발의 머리를 가진 남성이 말했다.

“그전에. 옆에 있는 자들은 누구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 아레스가 답했다. 비록 신화 속 이야기긴 하지만 망나니 같은 전쟁의 신 아레스가 깍듯이 대하는 자는 한 명뿐이었다.

“그런가… 올림푸스의 대표. 제우스라고 한다.”

분명 대표. 신화 속에선 모든 신이 달려들어도 제우스 하나를 못 이긴다고 알려진 그 제우스는 김진석의 감정으로 상태창을 확인했다.

[제우스.]

김진석은 이들이 불렀을 때부터 올림푸스가 뭐 하는 곳 인지 어느 정도 조사를 했다. 자신을 제우스라 말한 그는 세간에서 불리는 별명이 있었다.

최강의 플레이어이며 최약의 플레이어.

그런데 이름이 진짜 제우스인건 둘째치고 상태창에 레벨이 나오지 않았다.

기이했다.

감정을 못하더라도 그러려니 했을 거다. 세상은 넓고 신기한 능력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많았으니깐.

그런데 감정은 제대로 작동을 하는데 레벨이 나오지 않는 경우는 처음 봤다.

“김진석이다.”

서로의 통성명도 없이 그저 이름만을 주고받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김진석은 기이한 감정을 억누르고 턱짓으로 먼저 말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어떻게 보면 그 거만한 모습이 올림푸스의 심기를 거슬렀지만 제우스가 손짓해 그들을 진정시키고 대표로 물었다.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 자네는 이방인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만 그들과 무슨 관계지?”

“내가 이들을 구하고 이들이 나를 따를 뿐. 그게 전부다.”

제우스는 가웨인과 모르간을 비롯한 그들이 김진석을 따르는 이유를 물었다. 김진석은 거짓은 없이, 하지만 엄청나게 축약해 말했다.

“거짓은 없습니다.”

그런데 김진석의 말을 거짓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플레이어가 있는 것 같았다.

제우스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마저 물었다.

“뒤에는 중국의 S급 플레이어. 웨이저밍의 아이들이지. 그리고 그 웨이저밍은 실종되었다. 실종되기 직전에 자네를 찾아갔었지.”

루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 이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적어도 미국 최강 길드였으니 루크보다 정보력이 부족하면 실망했을 거다.

이미 그들의 레벨을 보고 실망했지만.

김진석은 말없이 가웨인을 쳐다봤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발 앞으로 나와 말했다.

“우리는 지구의 인간들에게 핍박받았다. 우릴 소환한 자. 그도 마찬가지. 하지만 거기서 우릴 구해준 게 바로 이분이다. 그렇게 우린 해방됐다. 그리고 우린 우리와 같은 이들을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우리의 동포들이 하나둘 늘어났고 우린 이분의 곁에 있기로 한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지구의 인간들보다. 이미 우릴 구한 이의 곁에.”

물론 가웨인은 아직도 김진석을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믿고 싶은 건 사실이었다. 자신들을 구해준 김진석을.

제우스는 거짓을 간파하는 자를 보고 거짓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 제우스는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에 대한 악감정은 없었으니 그들이 핍박받고 있다는 것에 안타까워했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실종된 이들은 어디 있지? 이방인들을 구하기 위해선 알겠지만…….”

“그들은 전부 죽어 마땅한 이들이다.”

가웨인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우린 노예보다 훨씬 못하고 더러운 삶을 살아왔다. 그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근처 지나가는 개새끼들도 부러워해야 하는 처지가 바로 우리였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적어도 우린. 그들을 죽일 이유도 있고 죽일… 가치도 있다.”

기사의 억눌린 증오와 분노는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얼마나 힘을 줬는지 눈가에 실핏줄이 터질 것만 같이 부풀어 올랐고 그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은 하나였다.

적의.

그때 구름과 같은 땅바닥에서 갑자기 마법진이 생기더니 가웨인은 몸에서 갑자기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퍼시벌도 마찬가지로 힘이 쫙 빠졌지만 모르간과 비비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미안하군. 신체 능력을 떨어뜨리는 마법이다. 헤라가 만들었지.”

하지만 모르간과 비비안이 미리 장벽을 퍼시벌과 가웨인에게 씌어두었고 둘은 몸의 힘을 금방 되찾았지만 안색이 좋지 못한 것이 완벽한 상태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김진석은 마법진보다 더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제우스 LV:52]

갑자기 제우스 상태창의 옆에 레벨이 생겨났다. 고작해야 45이긴 했지만 갑자기 생겼다는 게 중요했다.

김진석은 본능적으로 가웨인의 레벨을 확인했다.

[가웨인 LV:52]

신체 능력이 저하된 가웨인의 레벨이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레벨은 정확히 제우스의 레벨과 동일했다.

“가웨인.”

“…죄송합니다.”

김진석은 가웨인을 진정시켰고 그에게서 적의가 사라지자 제우스 상태창의 옆에 있던 레벨도 마찬가지로 사라졌다.

“…호오.”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했다. 그렇게 생각한 김진석이었다.

그때 한 여성이 구름 의자에서 박차고 일어나 말했다.

“죽을만한 인간은 이 세상에 없어요! 생명은 소중한……!”

“그 소중한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이들은 죽을 만해. 난 그렇게 생각한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는 여성의 말을 끊고 김진석이 말했다. 굳이 끝까지 들을 이유도 없었다.

“같잖은 선민의식은 그만둬. 다 똑같은 인간이면 사형수들이나 살려주지 그래?”

김진석의 빈정거림에 올림푸스의 12신 중 대부분이 일어나 김진석에게 반발했다. 12신 전부가 최상위 S급 플레이어였기에 알 수 없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가웨인을 비롯한 그의 길드원들은 무기를 뽑으려 했지만 정작 김진석은 자리에 앉아서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길드 이름과 신의 이름을 자신에게 대입해서 본인들이 진짜 신이 된 줄 아나? 어이가 없군.”

올림푸스의 12신은 과연 최강의 플레이어들만이 모인 만큼 최상위 S급 플레이어 중에서도 꽤 나 레벨이 높았다.

하지만 김진석은 그들과 조금이나마 대화를 나누며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본인이 정말 신이 된 줄 알았다.

“미국 최강의 길드가 고작해야 게임 속 능력을 좀 가졌다고 자신들을 신이라 생각하는 얼간이들이라니. 재밌군.”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미국의 기본 사상부터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은 플레이어들은 그저 하나의 직업이라고 생각했고 새로운 특수부대 하나가 더 생겼다고 생각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미국은 기본적으로 플레이어들을 존중한다.

플레이어들은 플레이어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으며 심지어 그건 사람들을 살리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으니 기본적으로 미국 시민들은 플레이어들을 존중했다.

게다가 그런 플레이어들이 존경하는 이가 바로 그들. 최상위 S급 플레이어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지낸 그들은 점점 자신들과 일반인들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훨씬 강대한 존재라고. 그건 점점 심해져 끝에는 올림푸스 길드원들을 제외하고 모든 이가 약자이며 그들이 지켜야 하는. 김진석이 말한 같잖은 선민의식이 뿌리 깊게 박힌 것이다.

“그러고 보니 퍼시벌. 너는 내 힘을 궁금해했지.”

“…예?”

아직 김진석의 말이 없어 창을 들지는 않고 손에만 든 채 긴장하며 있던 퍼시벌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물었다.

김진석도 퍼시벌의 말을 생각해보니 지구에 돌아와서 제대로 된 힘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로스트 월드에선 언제나 상대를 죽이는 것만 해왔고 지구의 몬스터들은 너무나도 약했다. 스킬조차 쓸 필요도 없는.

하지만 지구에 돌아와서 처음으로 김진석은 전력을 내 볼만한 상대를 발견했다.

“우선 여기 쓰인 마법들도 좀 발동시켜보지. 그냥 내버려 두기엔 아쉽잖아?”

김진석은 일부로 이들을 도발하고 있었다. 어차피 이들에게 해명할 필요도 없었고 이유도 없었다.

플레이어들은 서로 간의 싸움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으니깐.

김진석이 나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흑기사와 관계된 것도 심증만 있지 물증이 없었으니 함부로 그를 PK 플레이어라고 확정할 수도 없었다.

플레이어들의 싸움이 허락된 경우는 딱 하나였다. 서로가 동의했을 때. 하지만 올림푸스의 플레이어들은 김진석이 싸움을 걸어오는 것에 불쾌감을 표할 정도로 선민의식에 찌들어 있었다.

우월한 자신들이 하등한 다른 플레이어의 싸움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렇다면 김진석이 쓸 방법은 하나였다. 그들이 먼저 자신에게 싸움을 걸게 하는 것.

그나마 이 중에서 제정신이 박힌 이는 제우스였지만 그가 말리기도 전에 김진석의 발밑에서 마법진이 발동됐다.

“너희들은 빠져있어.”

마법진의 발동은 느렸고 퍼시벌을 비롯한 그의 길드원들은 마법진의 발동 범위에서 벗어났지만 김진석은 굳이 그 위에 서 있었다.

정확히는 발동이 느린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발동되고 있던 것이다.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저주다.”

헤라로 추정되는 적발의 여성이 말함과 동시에 전에 보았던 아레스가 구름 의자에서 내려와 김진석의 앞에 섰다.

“저 뒤에 아름다운 여성들은 내가 가져가지. 너 같은 험악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아.”

여전히 아레스는 모르간과 비비안을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투는 김진석의 심기를 거스르고 있었다.

“저들은 저 자신의 소유다. 내 것도 네 것도 아니다.”

“그건 맛을 봐야……?!”

듣기도 싫은 그의 말을 무시한 채 김진석은 폭발적인 속도와 함께 달려나갔다.

아레스는 깜짝 놀라 허리춤에 있는 검집의 검을 뽑으려 했지만 어느새 다가온 김진석은 검집에 발을 올려 막은 뒤 그대로 반대쪽 무릎으로 투구를 쳐올렸다.

투구를 벗길 셈이었는데 그 투구는 갑옷과 일체형이었는지 아레스의 몸이 붕 떴는데도 투구는 벗겨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김진석도 살짝 놀랐지만 이내 나가떨어져 충격이 컸는지 다리를 부들거리며 일어나지도 못하는 아레스에게 다가가 투구에 손을 올렸다.

“어디 잘난 네 얼굴 좀 보여주지 그래?”

“끄…아악!”

김진석은 한 손으로 투구를 잡고, 있는 힘껏 힘을 주었다.

투구는 김진석의 손 모양 그대로 찌그러지고 있었으며 그 뜻은 투구 안에 있을 아레스의 머리도 함께 찌그러지고 있단 것이다.

투구 속에서 피가 흘러나올 때쯤 땅에서 또 다른 마법진이 발동됨과 동시에 뒤에서 창이 날아왔다.

김진석은 날아오는 창을 가볍게 휘둘러 쳐내려고 할 때 갑자기 땅에서 뭔가가 잡아당기는 느낌과 함께 창을 제대로 쳐내지 못했고 손바닥이 찢겼다.

아마도 이 마법진은 중력을 바꾸는 것 같았다. 그것도 정확히 김진석만. 날아오는 창은 전혀 이 중력에 영향이 없었다.

아레스는 머리에서 느껴지는 고통과 몰려오는 형언할 수 없는 공포에 기절해버렸다.

김진석이 쳐낸 창은 부메랑처럼 한 남자의 손으로 돌아갔다. 머리 색으로는 기이한 색인 푸른 빛의 장발의 남자는 굳이 자기소개를 하지 않아도 그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그가 던진 창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삼지창이었으니.

그리고 그 뒤로 검은색 낫을 든 남자와 성스러워 보이는 순백의 창을 든 여성이 그 뒤로 내려왔다.

검은색 낫을 든 남자는 온몸에서 검은 기운이 몰아치더니 낫을 든 해골의 저승사자와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순백의 창을 든 여성은 마찬가지로 순백의 기운이 온몸을 감싸더니 등 뒤에 천사 날개가 나오며 신화 속에 나올법한 여전사. 발키리의 모습으로 변했다.

“…힘든 싸움이 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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