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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132화 (132/201)

132화

가웨인과 퍼시벌은 갑옷만을 제외하고 무기는 빼앗겨 팔렸다.

비참했다. 기사란 자가 자신의 무기를 빼앗겨 팔리고 그 무기에 비하면 쓰레기와 같은 무기를 받아 사용했으니.

하지만 그들은 노예나 다름없었으니. 지구의 인간에 대한 증오심만 더 커질 뿐이었다.

김진석도 그걸 알고 있었지만 증오심만 가지고 지구에서 살아갈 수 없었으니 김진석은 그들에게 1차 목표를 준 것이다.

돈을 벌어 자신의 무기를 사는 것.

“여경래 할아버지는 의인이다. 하지만 이 세상 어딘가엔 그런 사람은 많아. 가족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 그런 이들까지 혐오하지 말아라.”

멀린의 주인. 여경래 할아버지가 대표적이었다.

그렇게 김진석과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 그의 길드원들은 비행기 안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승무원이 급하게 그들에게 달려오며 말했다.

“몬스터입니다!”

김진석은 그녀의 말에 조그마한 비행기 창문 사이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희미하게 보이는 서양 용의 형태.

[와이번 LV:80]

물론 진짜 용은 아니었다. 고작해야 용의 아룡. 하지만 그런 와이번의 레벨이 70이었다. 처음 보는 유형의 몬스터인 걸 본 김진석은 관심이 온통 와이번에게 향했다.

길드원들은 긴장한 자신들이 무색하게 김진석의 즐거운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여긴 하늘이다. 창공 몇백 미터 위에 있을지 모르는 이곳에서 만약 비행기가 파괴돼 떨어진다면 꼼짝없이 죽는 것쯤은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저런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라니.

“아니… 스물다섯이라고 하셨지.”

실제로 김진석은 많은 나이가 아니었다. 고작해야 스물다섯. 비비안과 모르간에겐 어린아이나 다름없는 그였다.

패닉에 빠진 승무원들과 급한 안내 방송으로 긴장이 극에 달한 기장들을 뒤로하고 김진석은 와이번의 모습을 바라봤다.

비록 악마의 방주. 아크처럼 위용 넘치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10M에 다다르는 그 모습은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플레이어에게조차도 재앙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날개를 펼치고 날아다니며 비행기를 바라보는 와이번은 마치 비행기를 경계하는 듯했다.

세피드가 등장하기 전까지 최고 등급을 받은 와이번은 발견도 어려웠고 어디에 사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지금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김진석은 곧바로 녀석을 죽이려 하지 않았다. 이미리와 함께 에베레스트에 오르며 전설의 몬스터. 블루를 대하는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실제로 그녀가 직접 몬스터를 죽이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에베레스트에 오르면서도 몬스터를 죽이는 건 흑호와 김진석의 몫이었으니깐.

“어쩌면 너희도 이들과 다름없는 처지겠구나.”

비상문을 열어 마법을 사용하려는 모르간과 비비안은 김진석의 말을 듣고 멈췄다. 그리고 퍼시벌이 창을 던지려는 걸 막았다.

와이번은 비행기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날아가자 녀석은 순식간에 구름 사이로 사라졌다.

“문 닫지. 승무원들이 숨을 쉬기 어려워하니깐.”

승무원들은 일반인이었고 날아다니는 와중에 비상문을 열어버렸으니 급히 산소마스크를 쓰긴 했지만 기압 차이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김진석은 와이번이 사라지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자리에 앉았고 상황 파악이 빠른 가웨인은 곧바로 문을 닫고 가장 먼저 자리에 앉았다.

뻘쭘하게 서 있던 모르간과 비비안. 그리고 퍼시벌은 마찬가지로 자리에 앉았고 혹시 몰라 안전벨트도 단단히 맸다.

* * *

“와이번을 만나셨다고 들었습니다. 다행히 운이 좋으셨군요. 반갑습니다. 브레드라고 합니다.”

[브레드 LV:55]

이름이 빵이었다. 간단한 영어는 알고 있던 김진석은 그저 그렇게 생각했다.

단순히 김진석을 마중 나온 이였는데도 A급 플레이어. 그것도 S급 플레이어가 되기 직전인 그였다.

“그런데… 옆에 분들은?”

유창한 한국말로 김진석을 마중 나온 그는 분명 김진석만을 불렀을 터인데 제이다를 제외하고 웬 기사 갑옷을 입은 자 2명과 대놓고 나 마법사라고 보여주는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성 2명이 김진석의 곁에 있으니 의문을 가졌다.

“그쪽이 나를 이쪽으로 부른 이유.”

“아… N…”

그 이상은 말하지 못했다. 어느새 그의 목에는 검과 창이 겨눠져 있었으니.

“입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죄송합니다. 실언이었습니다.”

NPC. 그건 이들을 부르는 멸칭이나 다름없었다.

“안내하시죠.”

“…알겠습니다.”

* * *

김진석을 초대한 건 미국의 한 길드. 올림푸스였다.

이름도 거창한 길드인 올림푸스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길드였다. 길드원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 길드에 들어가는 기본 조건이 바로 S급 플레이어였다.

최상위 S급 플레이어인 김진석이 흑기사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 그들은 최고이자 최강의 플레이어들을 모아 그를 만나볼 생각이었다.

그들은 혹시 언제 등장할지 모를 흑기사를 대비해 올림푸스 소속 마법사들이 설계한 함정. 마법진을 김진석을 초대한 건물에 말 그대로 덕지덕지 발랐다.

그런데 문제는 겹치고 겹쳐서 설령 마법사 플레이어라면 누구라도 알 수준의 엄청난 마나가 느껴진다는 거였다.

“어차피 그의 곁에는 마법사 플레이어가 없다.”

하지만 김진석도 신체 능력자로 알려져 있었고 그의 곁에 넬도 마찬가지였으니 올림푸스는 그 의견을 수용했다.

숨기는 건 무례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김진석은 모를 테고 흑기사와 관련됐을지도 모르는 자이니, 아니라면 그저 함정을 해체하면 그만이니깐.

그리고 그들은 김진석이 비행기를 통해 도착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준비하지.”

* * *

“역겨울 정도로 마나가 느껴지네요.”

“아직은 악의가 느껴지지 않아요. 아직은.”

브레드가 안내한 곳으로 오자마자 모르간과 비비안은 피부로 마나를 느끼고 있었다.

“대비는 해 둬. 전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길드이긴 하지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깐.”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대놓고 전세기까지 내주며 자신을 자기들이 있는 곳으로 불렀으니깐.

모르간과 비비안은 뭔가 중얼거리며 자신의 몸에 방벽을 세움과 동시에 가웨인과 퍼시벌에게도 해줬다.

“…해드려요?”

“됐어.”

둘은 괜히 김진석을 힐끗이며 말했지만 김진석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김진석은 자신의 약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바로 자신의 내구성.

다행히 포션의 부작용 때문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간단한 찰과상 정도는 1초도 안 돼서 치유되는 엄청난 재생 능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게 전부.

김진석의 몸 자체는 그리 강하지 않았다.

물론 다른 플레이어들이 본다면 어이가 없겠지만 사실이었다. MMORPG 게임의 특성상 레이드 보스 몬스터와 맞으면서 싸울 수가 없었다.

한두 대 맞는다고 죽는다는 건 아니었지만 현실은 다르다.

게임 속에서 한두 대 맞으면 체력만 까일 뿐이었지만 현실은 끔찍한 고통이 뒤따른다. 아무리 고통에 익숙한 김진석이라도 상처를 무시하고 싸울 순 없는 노릇이다.

서론이 길었지만 김진석이 원하는 건 하나였다. 올림푸스가 만든 함정을 정면으로 깨부수는 것.

전부 몸으로 받아서 말이다.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봐야지.”

김진석의 말에 미친놈 보듯이 바라본 그의 길드원들이다. 사실 흑기사를 통해 김진석의 얘기를 많이 들어봤지만 정작 그의 무력은 그 누구도 본 적이 없었다.

그가 무슨 무기를 사용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상대와 싸우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하지만 맨몸으로 상대의 공격을 맞겠다는 말은 미친놈이 맞았다.

“그… 준비는 되셨습니까?”

브레드는 정작 김진석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본인이 긴장한 듯 심호흡하며 말하고 있었다. 그가 안내한 곳은 올림푸스의 길드 지부였다.

겉으로는 그냥 평범한 건물이었다. 하지만 브레드가 안내해 문을 열고 들어간 건물 안은 과연 올림푸스라고 불릴 만했다.

마치 구름 위에 있는 듯한 주변 환경. 실제로 하늘 위에 있는 듯한 모습과 아래를 바라보면 지상까지 있었다.

“문을 여는 게 트리거인 것 같네요.”

모르간은 재밌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문을 여는 것으로 발동되는 마법. 김진석은 구름을 지나 아예 허공을 밟아봤지만 그대로 하늘에 떠있었다.

“환각인가?”

“비슷해요. 건물 자체가 마법이었군요.”

비비안은 모르간과 같이 아름다운 풍경에 관심을 가는 게 아닌 이 주변에 쓰인 마법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왜 사람이 없지?”

물론 김진석도 풍경엔 관심이 없었다. 김진석도 올림푸스에 대해 대충은 알고 있었다. 최소 S급 플레이어 이상만이 들어갈 수 있다지.

그런데 일반 직원도 없다는 건 있을 수 없다. 그들이 할 일도 S급 플레이어가 하진 않을 테니.

“그들은 전부 대피시켜뒀다.”

그때 구름이 열리며 그 사이에서 나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김진석과 비견될만한 덩치에 전신에 적갈색 플레이트 갑옷을 입고 투구에 눈만 살짝 보이는 자.

“반갑다. 아레스라고 한다.”

[대릴 LV:76]

진짜 이름은 대릴이었지만 왜 아레스라고 자신을 소개할까. 그건 올림푸스의 컨셉 때문이다. 올림푸스의 12신을 각자 자신에게 대입하는 그들이었다.

과연 눈앞의 전쟁의 신 아레스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는 김진석이 지구에서 보았던 인간 중에는 레벨이 가장 높았다.

“김진석이라고 한다.”

갑옷을 입은 채 악수를 건네는 손을 김진석은 내버려 두지 않고 받았다.

“그런데… 옆의 분들은 누구시지? 아리따운 여성도 있군.”

과연 여자를 밝히는 아레스라서 그런지 가웨인과 퍼시벌은 눈에도 담지 않고 모르간과 비비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아레스로 인해 제이다가 대신 통역해주고 있었지만 그녀의 목소리에선 최상위 S급 플레이어의 대한 동경이 아닌 혐오감이었다.

모르간과 비비안은 그 역겨운 시선을 참을 수 없었고 결국 고개를 돌려버렸다.

“내 길드원들이다.”

“그럼… 아하.”

이미 김진석이 비행기를 타고 이곳까지 올 동안 김진석의 길드원들에 대한 이야기는 널리 퍼졌고 당연히 올림푸스의 귓가에도 들어왔다.

김진석이 만든 길드. 이방인은 오로지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만 받아들인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가웨인과 퍼시벌은 그 역겨운 시선을 그녀들에게서 감추기 위해 그녀의 앞에 섰지만 아레스의 시선은 멈추지 않았다.

“내 길드원을 그런 시선으로 보지 말지.”

“…읏?!”

그 말이 들림과 동시에 아레스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며 허리춤에 있는 검을 뽑았지만 손이 떨리고 있었다.

“…뭐지?”

자기 자신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됐고. 열심히 준비한 곳으로 안내하지.”

“…알겠다.”

꺼림칙한 기분을 간직한 채 아레스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손을 가져다 대, 문을 여는 시늉을 하더니 그 안으로 안내했다.

거기엔 아마도 올림푸스의 12신들로 보이는 이들이 노골적으로 상석에 앉아있었다.

그들은 아예 지리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구름 의자에 앉아있었고 김진석의 자리는 대놓고 그들의 중앙 한가운데에 자리했다.

하지만 의자는 하나뿐이었다.

“다른 손님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상석에 누군가가 그리 말했지만 김진석은 그저 무시하고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의 길드원들은 그 뒤에 섰다.

아무리 최상위 S급 플레이어라고 한들 김진석의 여유는 올림푸스의 이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올림푸스의 12신은 전부가 최상위 S급 플레이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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