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131화 (131/201)

131화

퍼시벌과 같은 기사들은 대부분 그와 같은 선택을 했지만 모르간과 같은 마법사나 다른 이들은 상세하게 말해주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기사들은 대부분 남성이었고 마법사들은 대부분 아름다운 여성이었기에. 그들은 더욱 험한 짓을 당했다.

기사 중에서도 여성 기사들도 그들과 비슷한 요청사항을 말했다.

“넬.”

“재밌겠네요. 한번 해보죠.”

“나머진 죽여서 데려가.”

비네는 말없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동시에 그녀의 온몸에서 뼈가 튀어나오더니 죽여도 되는 이들을 순식간에 채갔다.

거대한 뼈로 된 손처럼 보였던 그것들이 비네의 몸에서 튀어나온 모습은 꽤 나 놀랍고 징그러웠지만 김진석은 다른 의미로 놀랐다.

“뭐야?”

“당신 말에 왜 그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싶어서 가디언을 제 몸에 이식해봤어요. 이젠 전처럼 그리 쉽게 안 당할걸요?”

김진석이 원한 건 본인 또한 몬스터로 변하고 싶다는 것. 정확히는 몬스터의 이점만을 받아서 몸에 이식할 수 없을까. 이설과 같이 말이다.

비네는 그걸 자신의 몸으로 실험. 뼈로 된 가디언을 자신의 몸에 이식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김진석이 말도 없이 곧바로 그녀를 죽인 것에 아직도 앙금이 남아있었다.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나?”

“됐어요. 비록 쓰레기들이지만 인간들의 실험체가 많이 늘어난 거로 용서해드릴게요.”

비네의 투정 아닌 투정에 김진석은 피식 웃었다. 원래 넬이 항상 저랬는데 비네가 저런 모습을 보이니 다양한 면모를 엿볼 수 있어 신기했다.

그렇게 그 가녀린 몸에서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수없이 많은 뼈로 된 손이 죽을 이들을 데려갔다.

“넬. 괴롭히는 건 좋지만 저 없을 때 죽이면 안 돼요. 시간 지나면 저도 못 살린답니다?”

“그냥 여기서 실험하는 건 어때?”

넬의 제안에 비네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멀린이 피를 토했다.

“쿨럭… 이건……?”

“아 네가 여기 주인이야? 미안하지만 내가 가져갈게.”

멀린의 비밀 공간. 사방이 막혀 있고 동굴과 같은 곳에서 갑자기 새하얀 풍경으로 바뀌며 현대에서 있을 법한 책상과 컴퓨터 의자 등등 이 갑자기 땅에서 솟구쳤다.

멀린의 공간이었던 이곳은 순식간에 비네의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말도… 안 돼.”

멀린 그리고 그의 무력을 잘 아는 퍼시벌도 무기력하게 당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자. 빨리 볼일 없는 사람들은 나가고 볼일 있는 사람들은 빨리 해결해.”

* * *

김진석은 졸지에 자신의 별장에 수십의 기사들을 데리고 들어섰다.

다행히 멀린이 모습을 숨겨주어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았지만 땀내 나는 남자들에게 뒤섞여 있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아니 더러웠다.

마찬가지로 이미 복수를 마친 가웨인과 모르간은 그들의 갑옷에 잔디가 상하자 울상을 짓고 있었다.

아직 그들의 거주지로 생각한 서울이 아직 몬스터들에게 해방되지 않았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에 김진석은 곧바로 제이다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

“길드는 창설 됐나?”

“…네. 그것 때문에 마중도 못 나갔습니다. 죄송합니다.”

김진석은 전화로 대답해 모습이 보이지도 않았지만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고 대답했다.

“최상위 S급 플레이어라 그런지 우선 2인. 아니 3인 길드로도 우선 창설이 됐습니다. 하지만 한 달 이내로 길드원을 모집하라고 하더군요.”

“혹시 인원수가 제한돼 있다거나 하진 않겠지?”

“네. 실제로 중국에서는 길드원들이 수만에 다다르는 길드도 있으니깐요. 물론 지금은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지만…….”

제이다는 중국을 쑥대밭으로 만든 이가 김진석이란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김진석은 그녀의 말에 기사들을 곁눈질하며 말했다.

“길드원들 데리고 왔어. 그리고 미안하지만 곧바로 일을 하나 구해줬으면 하는데.”

“그럴 것 같았습니다. 어떤 일이죠?”

물론 제이다도 김진석이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을 해방하려고 한 것을 알고 있었고 그들을 길드원으로 들이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사실상 중국이 항복 선언을 했으니 금방 그들을 데리고 올 줄 알고 있었다.

“서울 봉쇄지역. 탈환하는데 우리가 참석한다고 알려.”

“…네?”

하지만 그 뒤에 올 말은 예상하지 못했다.

* * *

서울의 안개를 없앤 장본인인 최상위 S급 플레이어 김진석이 서울 봉쇄지역 탈환 작전에 참가하겠다는 말을 했다.

게다가 이번에 그는 황혼 길드에서 나와 자신만의 길드를 만들어 그 길드원들과 나오겠다고 말했다.

이방인 길드. 특이한 이름인 그 길드는 방금 막 만들어졌기에 알려진 것이 없었고 길드원도 고작 3명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는 기존 서울 탈환 작전에 있던 플레이어들과 합심하는 게 아닌 자신의 길드원들과만 따로 가겠다고 말했다.

게다가 지금 탈환 작전에 플레이어들을 이끄는 이설과 이신은 서울에서 돌아와 쉬고 있었고 사람들은 염려의 반응을 보냈다.

하지만 서울 봉쇄지역 앞에 나타난 김진석과 그의 길드원들은 고작 셋이 아니었다.

온갖 통일되지 않는 갑옷을 기사들과 함께 김진석은 서울을 향해 들어갔다. 한국 사람들은 어디서 저런 기사들이 나타났는지. 그리고 왜 김진석을 따르는지 알 수 없었고 알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김진석과 기사들이 서울에 들어간 지 고작 3일. 3일 만에 서울 안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을 말 그대로 학살하다시피 쓸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흑기사가 날뛰는 중국에서 김진석이 데리고 온 기사들을 보고 항의했다.

왜 우리 NPC들이 거기에 가 있냐. 돌려줘라. 등등 많은 의견이 나왔고 흑기사가 김진석 본인이 아니냐는 의문까지 나왔다.

하지만 당연히도 GPS를 통해 언제든지 김진석의 위치를 알 수 있었으니 그런 의문은 전부 사라졌다.

그리고 김진석은 그 모든 의견과 의문을 단 한 마디로 일축 시켰다.

“그들은 자유의지가 있다.”

즉 강제하지 말란 거다. 전처럼.

이미 해방한 이들이었으니 그들은 자유의지가 있고 김진석을 따르는 것도 그들의 자유의지란 것이다.

그리고 아직 흑기사의 침공은 끝나지 않았다.

중국에서 숨어 지내던 NPC를 소환하는 플레이어들이 외국으로 도망 나오자 흑기사도 마찬가지로 외국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중국에서만 보인 흑기사가 외국에도 등장하자 다른 나라도 비상이었다.

최상위 S급 플레이어 여럿과 S급 플레이어 수십이 달려들어도 그들에게 절망만을 안겨준 괴물. 흑기사가 그들의 나라에서도 날뛰게 된다면 큰일이었다.

자신의 나라에서 날뛰는 흑기사를 내버려 둘 순 없었으니 플레이어들이 나섰지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한 채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흑기사는 오로지 도망친 그 중국인만을 노렸고 그 외에 어느 플레이어도. 민간인도 건드리지 않았다.

흑기사의 존재로 인해 NPC.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의 인권을 보장하자는 말이 나왔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지만 김진석에게 몰려드는 그들을 보고 그 의견은 더욱 가속되었다.

그 끝은 서울 봉쇄지역을 김진석과 그의 길드원.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로 인해 탈환하자 전 세계는 결국 인정했다.

김진석 길드의 이름. 이방인.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은 고작 NPC 따위가 아닌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김진석에 대한 의심은 거둘 수 없었다. 왜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이 하나같이 김진석의 곁에 있는가.

결국 전 세계 중에서 가장 강한 플레이어와 가장 강한 세력을 가진 미국이 대표로 김진석을 불렀다.

이유는 취조하기 위해.

* * *

“전세기도 다 타보네.”

김진석은 미국에서 직접 보낸 전세기를 타고 미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희는 왜……?”

지금 그의 옆에는 제이다. 가웨인과 퍼시벌. 그리고 둘이 완전히 똑같이 생긴 모르간과 비비안이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

[비비안 LV:68]

레벨마저도 똑같은 둘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둘의 인격은 전혀 달랐다.

선의 인격이 비비안이라고 한다면 악의 인격이 모르간이었다.

사실 요정이라고 불린 것은 비비안이었고 마녀라고 불린 자는 모르간이었다.

“왜 하필 우리 둘을 붙였어요?”

“친해지라고. 이제 함께 지내야 하잖아? 서로가 서로를 가장 잘 아니깐 금방 친해지겠지.”

물론 그 이유뿐만은 아니었다.

“난 거기서 별말 안 할 거야. 너희들이 설명해. 너희들의 가치는 너희들이 정해.”

애초에 김진석은 미국이 부른다면 부른다고 바로 달려가는 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세기나 이런 것을 전부 지원해주지 않았다면 가지도 않았을 거다.

미국도 최상위 S급 플레이어인 김진석을 존중해 최대한의 예의를 갖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너희도 먹고살아야지. 내가 지원해주는 건 땅뿐이다. 땅은 길드에 들어오는 보답이고 나머지는 너희가 알아서 해야지.”

비네의 실험. 이들의 주인을 죽이고 살려내 그들에게서 해방하니 이들은 평범한 사람과 같아졌다.

약해졌다는 뜻이 아닌 먹고 자야 하는. 게임 속 인물이 아닌 진짜 그들로 변한 것이다.

그건 서울 안 봉쇄지역으로 들어갔을 때 깨달았다. 원래라면 하루 안에도 끝낼 수 있을 정도의 초인들인 그들이었지만 그때 처음으로 피로감이 느껴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즉 그들도 지구에서 살려면 돈을 벌고 먹고 자야 했다.

“너희 땅값 사는데도 거의 조가 들었어. 이게 얼마의 가치가 있는지는 이제부터 알아봐.”

사실 조도 엄청나게 싸게 산 거다. 당연했다. 넬의 고문 끝에 죽고 비네가 살려 해방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그들이 전부 살 땅을 사려는 것은 김진석이 가진 모든 돈을 쏟아 부어도 안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김진석은 한국에 간접적으로 말한 것이다.

우리가 살 땅은 우리가 찾아올 테니 좀 싸게 해달라고.

“…알겠어요.”

“알겠습니다.”

비비안과 모르간이 대답했다.

지금 그녀들의 품속에는 한국에서 준 명함이 있었다. 바로 최상위 S급 플레이어라는 명함이. 인간으로서 인정받은 이들은 플레이어와 같은 취급을 받으며 명함을 받은 것이다.

비비안과 모르간은 마법사라는 특수성 때문에 최상위 S급 플레이어. 가웨인과 퍼시벌은 S급 플레이어로 명함을 받았다.

넬은 지금 여기 없으니 이 비행기 안에만 최상위 S급 플레이어 3명과 S급 플레이어 2명이 타고 있었다.

“가웨인. 그리고 퍼시벌.”

“예?”

“네!”

가웨인은 의문 섞인 물음을. 퍼시벌은 군기가 든 모습으로 김진석의 말에 대답했다.

퍼시벌의 갑자기 바뀐 모습에 김진석은 피식 웃었다. 사실 퍼시벌은 흑기사인 세피드를 동경하고 있었다.

그 괴물 같은 힘과 퍼시벌과 비슷하지만 다른 창을 사용하는 세피드였으니. 세피드도 딱히 자신과 같은 처지인 이들에게 나쁘게 대하지 않았고 멀린의 비밀 공간. 이제는 비네의 공간이 된 그곳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었다.

그리고 세피드는 거기서 김진석에 대한 환상을 이들에게 너무 많이 심어버렸다.

괴물 같은 힘을 가진 세피드조차도 단 한 번도 김진석을 이겨본 적이 없다고, 한때는 당신들보다 약한 김진석이었지만 이제는 자신도 이기지 못한다고.

물론 거짓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들보다 약했었고 그 한 번이 전부이지만 세피드를 이겼으니깐.

“너희의 무기는 나도 어디로 팔렸는지 몰라. 하지만 최소 몇백억은 할 거다. 원래 너희의 무기니 돌려달라고도 못해. 그들은 정당하게 구매했으니깐. 그 가치가 얼마인지 너희는 아직 모르겠지만 개 같이 벌어라. 내가 할 말은 그게 전부다.”

안타깝지만 이 세상은 돈이 전부다.

물론 김진석이 그 무기를 다시 사다 줄 순 있겠지만 한 명에게 사주면 다른 이들에게도 사줘야 할 테니 그것까지는 감당이 불가했다.

“인간을 증오만 할 생각하지 말고 그들과 공생할 생각을 해 봐. 멀린의 주인만 봐도 알겠지.”

김진석의 말에 둘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