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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119화 (119/201)

119화

김진석은 이설의 옆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이신에게 다가갔다.

“뭔 일 있었어? 무슨 피를 과격하게 뽑았나?”

“…아뇨. 그냥 헌혈할 때 쓰는 그것과 똑같았는데…….”

그런데 이설은 왜 저 모양인가.

그때 둘의 말소리를 듣고 이설이 멍하니 하늘, 지하철역 안이라 보이지도 않아 그저 천장만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던 그녀가 말했다.

“로스트 월드의… 생존자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천장을 보며 말하는 이설이었지만 김진석에게 말하는 것이 분명했고 그는 답했다. 그런데 이설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당신이 꾸민 짓입니까?”

이설의 시선이 김진석에게 닿았을 때. 김진석은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동료를 잃은 분노. 하지만 그 뒤로 느껴지는 공포와 두려움이 보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죠?”

“당신의 옆에 있는 여성. 넬. 로스트 월드의 대 악마 중 하나. 그녀가 만든 대표적인 작품이 광기의 굴과 그 안개.”

이설의 말에 김진석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바포메트. 화염을 지배하며 몬스터들을 다루는 대 악마. 비네. 죽은 자들을 되살리는 네크로맨서 대 악마. 모든 게 맞물리지 않나요? 서울을 안개로 막고 몬스터들을 풀어 인간을 죽인 뒤 네크로맨서가 그들을 되살린다.”

너무나 확실시 말하고 있는 그녀라 김진석을 할 말이 없었다. 어차피 넬의 이름을 숨길 생각도 없었으니 언젠가 들킬 거라 예상하긴 했었다.

하지만 그 로스트 월드를 아는 자들이 죄다 정신병원에 있다 보니 아무도 넬의 정체를 몰랐는데 눈앞의 이설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광기의 굴은 그냥 지나가는 던전일 뿐인데 그 컨셉까지 알고 있는 정도라면 로스트 월드에 꽤 나 진심이었겠지.

“당신은 누구죠? 인간으로 변한 악마입니까?”

하지만 크게 헛다리를 짚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오해군요. 로스트 월드를 얼마나 플레이하셨죠?”

“…비네까진 잡아봤습니다.”

김진석은 그녀의 말에 비네를 힐끗 쳐다봤지만 그녀는 이설의 피에 집중하고 있어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비네까지 잡았다고 하지만 사실 별거 없었다. 그녀는 첫 번째 레이드 보스 몬스터였으니.

로스트 월드는 MMORPG 게임 중에서도 특이한 축에 속했다. 스토리를 전부 깨지 않더라도 레이드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

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MMORPG 게임인데 스토리를 전부 보려면 최소 60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레벨만 충족하면 레이드를 갈 수 있게 된 것.

하지만 그런 스토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기에 로스트 월드가 최소 한국에선 유명한 게임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스토리를 전부 보고 게임을 접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미 그것만으로 그 사람은 최소 60시간 이상을 로스트 월드를 즐긴 것이다.

그리고 이설은 스토리를 즐긴 사람 측에 속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레이드는 비네 밖에 경험하지 못했다.

“제가 한국에서만 있어서 한국의 플레이어 전력만 좀 알고 있는데… 고작 이 정도면 하루면 충분할 겁니다. 서울에서 멈춰 서 있을 이유가 없죠.”

왜 굳이 서울에만 안개를 퍼트리고 서울만 점령하겠는가. 전 세계를 돌아보지 않아 플레이어의 전력을 잘 모르지만 최소 한국은 대 악마 중 하나만 나서도 하루면 충분해 보였다.

이신과 이설은 당연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김진석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플레이어 약소국가인 한국이라고 하지만 하루면 충분하다는 말을 본능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말 끝났어요? 살점이 좀 필요한데. 되도록 큰 거면 더 좋고.”

비네는 그들의 대화에 관심이 없다는 투로 말을 껴들었다.

“조금 지났어도 상관없나?”

“…얼마나요?”

“1~2시간 된 것 같은데.”

“그 정도면 상관없어요. 보존은 잘 됐죠?”

김진석은 그녀의 말에 이신에게 말했다.

“손가락 주세요.”

“예? 아… 알겠습니다.”

넬이 보여준다고 이설의 손가락을 잘랐었다. 금방 재생되긴 했지만 이신은 혹시 몰라 자신의 손을 담았던 보따리에 그녀의 손가락을 보관했었다.

저 보따리 또한 몬스터의 소재로 만든 것인지 이신이 꺼낸 그녀의 손가락에서는 정말 잘린 그 당시처럼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 정도면 됐나?”

“지금은요.”

손가락을 주자 옆에서 조용히 구경하던 바포메트도 그제야 실험에 참여했다.

“당신은 누구죠?”

그때 이설은 처음 물었던 질문을 다시 했다.

“대 악마와 친하게 지내는 것도 모자라 대 악마들을 마음대로 부리기까지 하는 자는 로스트 월드 스토리 상 없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죠?”

이설의 시선은 김진석의 옆 넬에게 향해있었다. 그녀는 실험에 관심이 없는 듯 김진석의 주변을 서성였지만 대화에 방해가 될까 아무런 말도 없이 있었다.

마치 강아지 같은 모습이었지만 실상은 한국을 혼자서 지구상에서 없앨 수도 있는, 대 악마였다.

물론 김진석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 그저 죽여야 할 대상일 뿐이었는데 자신의 스킬로 들어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김진석은 그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로스트 월드를 클리어한 사람. 아니… 클리어할 뻔한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로스트 월드를 구하라.’

그의 눈앞에는 아직 검은색 글씨가 있었다.

* * *

3명의 S급 플레이어가 서울에 들어간 지 하루. 고작 하루가 지났을 때 한국의 전장에 껴있는 안개가 갑자기 사라졌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전장에 들어가서 무사히 나오기만 해도 성공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플레이어가 유독 한국 전장에만 들어가지 않으려 했던 원인인 안개가 사라진 것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일을 벌인 3명의 플레이어는 당당히 돌아왔다. 그런데 돌아온 플레이어는 셋이 아니었다.

총 24명의 플레이어. 한국의 최상위 S급 플레이어인 이신의 동생. 이설을 더불어 과거 서울로 들어간 플레이어들이 살아 돌아왔다.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리던 한국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비록 성녀 쪽 힐러는 아니었지만 대기시켜 두었던 힐러들을 곧바로 그들에게 보냈다.

서울 안에서 돌아온 그들은 3명을 제외하고 전부 방독면을 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그 3명 중 한 명. 이신의 동생인 이설이 다가오는 힐러들을 손을 뻗어 오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아직 이들은… 이성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힐러들이 가져온 정보는 충격이었다.

처음 서울로 들어간 3명의 플레이어를 제외하고 심지어 멀쩡히 말하는 이설조차 안개를 들이마셔 몬스터로 변했다는 거다.

처음엔 믿지 않았다. 다른 자들은 걸음걸이와 하는 행동이 조금 이상했지만 이설은 멀쩡히 사람 말을 하고 있는데 누가 그들을 몬스터라고 생각하겠는가.

하지만 그녀는 직접 눈앞에서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근처에 혹시 몰라 대기하고 있던 플레이어의 단검을 빌려 직접 손바닥을 그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순식간에 재생되었다.

물론 그 정도는 스킬북을 통해 재생을 얻었다면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이설이 빌린 단검에는 B급 몬스터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수준의 마비 독이 발려있었다.

이설은 손바닥이 잠시 뻣뻣해진다는 느낌이 들더니 금방 재생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화염을 다룬다는 걸 제외하고 그녀의 신체 능력은 고작해야 일반인보다 조금 뛰어난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콘크리트를 손으로 잡아뗄 수준에 이르렀다.

독까지 해독하는 건 이설 그녀도 모르고 있었지만 비네와 바포메트로 인해 알아낸 사실이었다.

이설의 모습과 말에 힐러들은 뒷걸음질을 쳤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서울 안 몬스터가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니깐. 이런 경우를 대비해 주변에 수많은 플레이어와 군인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그녀의 조그마한 말소리를 들은 플레이어와 군인들은 무기와 총구를 저들에게 겨눴다.

그리고 서울 봉쇄지역 총 책임자이자 전투모와 어깨에는 대령이란 표시가 달린 이병천 연대장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짧은 검은 머리에 정갈한 군복. 전형적인 군인의 모습이었다.

“이신 상사. 설명이 필요한데.”

아무리 최상위 S급 플레이어라곤 하지만 이신 또한 군인. 원래는 중사였지만 플레이어가 된 이후로 상사로 올라갔다고 하지만 대령인 이병천에게는 한참 낮은 계급이었다.

물론 대통령도 이신에게 쩔쩔매는 마당에 계급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지만 이병천은 달랐다. 높은 직급의 군인들은 당연히 얼마든지 같은 군인인 이신에게 명령할 수 있겠지만 누가 최상위 S급 플레이어에게 그러겠는가.

하지만 이병찬은 뼛속까지 군인이었다. 아무로 서울봉쇄지역을 맡으려 하지 않을 때 혼자 자진해 나선 그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진석 플레이어. 그리고 넬 플레이어. 이곳의 총 책임자 이병천 대령입니다.”

이병천 연대장의 나이는 적어도 50살은 넘어 보였지만 김진석과 넬에게 존대하고 있었다. 군인이지만 몰상식한 자는 아니었다.

“반갑습니다.”

김진석은 이병천의 악수를 건네는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물론 넬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이신 또한 군인이 체질이었고 군대에 들어와 병장으로 전역한 게 아닌 상병 때부터 부사관으로 신청해 군인이 된 케이스였다.

연대장이 상사한테 말을 거는데 떨지 않을 상사가 어딨겠는가.

본인이 최상위 S급 플레이어인 걸 망각한 채 벌벌 떨고 있는 이신을 보고 김진석은 고개를 저었다.

김진석은 감정을 통해 눈앞의 이병천을 확인했지만 나오는 게 없었다. 사람에게 이런 경우는 하나. 그는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제가 대신 설명할 테니 총구는 내리게 하시죠.”

“그럴 순 없습니다. 사람의 말을 하는 몬스터.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저들이 우릴 속이려는 걸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김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미 예상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품에서 아직 잃어버리지 않은 걸 발견한 이상 최소 군인들은 저들을 향해 총을 쏠 수 없을 것이다.

“저들은 전부 플레이어입니다. 플레이어로서 서울을 구하기 위해 들어갔고 몬스터로 결국엔 몬스터로 변했죠.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돌아올 겁니다. 이신 플레이어.”

김진석이 부르자 몸의 떨림이 간신히 멈춘 이신은 품속에서 명함으로 보이는 것을 여러 개 꺼냈다.

“총 21개. 이신 플레이어의 동생. 이설 플레이어의 것까지 합친 저들의 신분증입니다.”

“…확인해봐.”

이병천은 김진석에게 건네받은 명함을 옆 부관에게 건네주었다. 확인할 방법은 간단했다.

전장. 서울에 파견된 플레이어들을 기리기 위해 비석을 만들어 그들의 이름을 새겨두었다. 그들의 이름은 인터넷에만 적어도 나올 것이다.

“전원 비석에 이름이 있습니다.”

물론 동명이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명함은 거짓을 알리지 않는다.

모든 나라마다 명함을 만드는 방법은 전부 달랐고 저들 중에는 한국의 플레이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온 용병 플레이어도 있었다.

이 명함만 국과수에 보내면 금방 확인이 될 것이다.

“그때까지 저들을 감시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들에게 티끌이라도 상처를 낸다면 우리 황혼 길드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우리?”

* * *

“일을 너무 크게 벌이셨습니다만…….”

“부 길드장이 알아서 하겠지.”

제이다는 A급 플레이어였으니 서울 봉쇄지역 근처에서 김진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진석에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미리 들었으니깐.

김진석과 넬은 제이다가 운전하는 차의 뒷좌석에 타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렇다고 몬스터를…….”

“몬스터면 뭐 어때. 말이 통하는 몬스터고 인간에게 해를 안 끼치는 지성이 있는 몬스터라면 제이다. 당신은 어떻게 대할 거지?”

“…….”

제이다는 김진석의 말에 대답하기 어려웠다.

“어차피 시간 지나면 돌아올 건데 뭐. 몬스터는 하나뿐이야. 같은 길드원이 될 텐데 친하게 지내.”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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