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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118화 (118/201)

118화

“당연히 모든 몬스터를 죽일 마음은 없어. 그건 한국 정부에서 알아서 해야지.”

멍하니 바포메트의 뒤를 바라보는 두 남매가 김진석의 말에 시선을 김진석에게 향했다.

“서울의 안개를 지워주지. 강한 몬스터 몇몇도 죽여줄게. 나머진 알아서 해.”

“예?”

“예?”

그 말을 끝으로 김진석은 넬과 함께 지하철역 밖으로 걸어나갔다.

* * *

“제 안개는 비네가 만들어 준 매개체에서 나오는 거예요. 그 매개체만 찾으면 이 안개는 알아서 사라질 겁니다.”

김진석은 넬과 함께 안개를 만들어내는 매개체를 찾고 있었다.

사실 김진석이 서울을 해방해 줄 이유는 없었다. 귀찮기도 했고 관심을 끌 이유가 없었으니깐.

하지만 한영석이 죽은 곳이고 이 안개는 꼴도 보기 싫었다.

이 안개에 다른 희생자가 생기지 않길 바라는 정의감 따위는 없었다. 그저 정말 꼴도 보기 싫은 그 감정 하나 때문에 벌이려는 일이다.

“하나밖에 안 만들었는데 그럼, 거기엔 없나?”

이 세계에는 여러 세계가 있다는 게 확인되었지만 그 세계에서 가져온 것인지. 만약 가져왔다면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없게 된 그 세계는 어떻게 되는지. 물론 김진석은 그것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넬은 서울에 들어왔을 때부터 매개체가 어디에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고 둘은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라이칸스로프. LV:72]

“호. 라이칸스로프가 그냥 있네?”

늑대인간의 진화 형태. 비록 늑대인간보다 지능은 떨어지지만 그 모든 걸 육체 능력으로 커버하는 몬스터였다.

김진석도 로스트 월드에서 놈을 잡은 적이 있었다. 샤칸. 늑대인간 중 가장 강한 그자가 분노를 못 이겨 진화했을 때.

스킬 광기를 사용해 죽였었다.

그리고 지금 이 근처엔 라이칸스로프들이 있었다. 분노. 그것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진화하는 특성상 모든 늑대인간이 안개를 마시고 진화하게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공존할 수 없는 그들답게 주변 모든 걸 파괴하고 서로를 죽이기까지 하고 있었다.

안개 속 몬스터들은 대부분 공존하지 못하고 서로를 죽이기까지 했다. 게임 속 세계가 아닌데도 김진석은 서울에서 몬스터의 시신을 본 적이 없었다.

이유는 하나. 서울 안 청소부 몬스터. 갈룸이 시신을 전부 먹어치우고 있던 것이다.

“…역겹군.”

넬이 마기를 뿜어내서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그래도 웬만하면 사람들이 죽는 걸 원하지 않았기에 레벨이 높은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 마기를 뿜지 말라고 했다.

그제야 비로소 보이는 서울의 역겨운 생태계였다.

마치 좀비처럼 사체를 파먹는. 원래 인간이었던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영석의 입가와 발톱에 묻어있던 피가 생각났다.

그도 아마 저런 식으로 시체를 먹었겠지.

김진석은 돌아오지 못할 갈룸들을 보고 활을 쏴 죽여버렸다.

물론 옆에 있던 라이칸스로프도 함께.

“매개체는 어디에 있지?”

“그 남산타워 근처에 있는 것 같아요. 그때 별말씀이 없으셔서 내버려 뒀는데…….”

말을 망설인 그녀였다. 그때는 김진석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으니 딱히 그녀를 탓할 이유도 없었다.

“가자.”

* * *

“저 남자. 도대체 정체가 뭐야?”

이설과 이신은 김진석과 넬에게 달려들다가 갑자기 쓰러져 정신을 잃어버린 그녀의 동료들에게 방독면을 씌우고 있었다.

“나도 몰라. 최근에 갑자기 최상위 S급 플레이어가 된 남자야. 출신도 과거도 아무도 몰라. 정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던데.”

“아니 오빠가 데려온 거 아니야?”

둘은 김진석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인간으로 변하는 미노타우로스도 있나?”

이신은 분명 정장을 입은 할아버지가 갑자기 미노타우로스로 변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일반 미노타우로스와는 조금 다르긴 했다.

외견뿐만 아니라 느껴지는 힘도 비교하는 게 불가능할 수준이었다.

“그 괴물은 미노타우로스 따위가 아니야.”

이설도 미노타우로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게임에서 흔히 나오는 미노타우로스로 지구에 있는 미노타우로스는 A급 정도였다.

그녀도 A급 플레이어였고 미노타우로스를 상대해 본 적이 있었지만 그 괴물은 아예 차원이 달랐다.

“손가락을 까닥하는 것만으로 내 동료들이 사라졌어. 내 옆에 남아 있던 동료들은 그저 우연이었어.”

남산타워 위에서 잘 지내던 그들이었는데 갑자기 그 괴물이 나타나고 모든 게 엉망이 되었다.

무슨 일을 당했는지도 정확히 몰랐다. 그저 그 괴물이 손가락을 튕겼을 뿐인데 동료들이 검은색 무언가에 빨려 들어갔다.

그게 끝이었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다행히 그건 제한이 있었는지 자신을 포함한 전원이 당하진 않았지만 이설과 동료들은 몬스터로 변함으로써 짐승과도 같은 감각으로 느꼈다.

눈앞의 괴물은 포식자라고.

“의문인 건 그 괴물이 그 남자의 말을 따른다는 거야. 김진석… 이라고 했지? 정말 아는 거 없어?”

“로스트 월드의… 생존자라고 하던데.”

서울에 있었던 시간이 더 길었지만 그녀도 로스트 월드의 악명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도 서울 안을 진전하면서 이미 알아냈다.

이 사달이 난 이유가 로스트 월드에서 나온 안개 때문이라는 것을.

남산타워 근처에 자리 잡은 이유도 안개가 닿지 않았던 이유도 있지만 그 안개가 생성되는 곳이 남산타워 근처 아래라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나도 로스트 월드는 했었어. 다행히 그곳으로 들어가진 않았지만…?”

이설은 말하다가 갑자기 머릿속에 번뜩이는 게 있었다.

“김진석. 그 남자가 그 괴물을 부르는 이름이 뭐였지?”

“…분명 바포메트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그 옆에 여성은?”

“넬. 그녀는 한국의 4번째 S급 플레이어로 그 남자와 함께 나타났어.”

게임을 좋아했고 비디오 게임은 물론이고 로스트 월드까지 했어, 이 안개가 광기의 굴에서 나온 안개라는 것까지 아는 그녀였다.

로스트 월드. 바포메트와 넬.

“…미친.”

모든 걸 알아차린 그때.

“저 여자야?”

“맞네. 신기하지 않나?”

어느새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돌아온 바포메트와 그의 곁에 있는 넬과 비견될만한 아름다운 여성. 하지만 그 여성은 도저히 인간 같아 보이지 않았다.

창백한 피부와 금발과 검은색이 섞인 기이한 장발 머리.

“…비네.”

“뭐야. 내 이름을 아네?”

이설은 두 괴물을 감당할 방법이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 * *

“이거야?”

[안개의 돌

주변의 모든 생명체를 몬스터로 보이게 하는 환각에 빠져 서로를 공격하다가 결국 몬스터로 변이시키게 만들어진 안개를 뿜어내는 돌. 불완전하다.]

“네, 맞아요.”

김진석과 넬은 어느 한 가정집으로 보이는 아파트 안에서 돌을 발견했다. 광기의 굴에서 본 적이 없지만 갈룸의 왕을 죽인 그 순간 안개가 사라졌었다.

그렇다면…….

“이설을 죽이면 사라지나?”

어쩌면 새로운 갈룸의 왕이 된 이설을 죽여야 안개가 사라질 수도 있었다. 그 뒤에 설명이 불완전하다고 적힌 것도 그 때문이겠지.

물론 죽일 필요도 없지만.

“부술 방법이 뭐지?”

“제가 안개를 빼버려서 그냥 돌로 만들어도 되고 아니면 큰 힘을 가하면 부서지겠죠.”

그 말에 김진석은 가정집 방문 안에 떡하니 있는 돌을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있는 힘껏 꽉 쥐었다.

파사삭.

그 돌은 마치 모래처럼 부서져 김진석의 손에서 흘러 내려왔다.

“아.”

김진석은 괜히 해보고 싶어서 한 것인데 까먹고 있던 게 있었다. 그녀의 환각은 그에게 통하지 않았고 돌의 무슨 수작을 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김진석이 만진 순간부터 그냥 평범한 돌로 변했을 거다.

고작 평범한 돌이 김진석의 힘을 견딜 리가 없었다.

“쯧. 안개는 전부 없애 줘.”

“네.”

안개의 돌을 부쉈지만 갈룸의 왕을 죽이지 않아서 그런지 안개가 전부 사라지진 않았지만 어차피 넬이 없앨 수 있었으니 상관없었다.

김진석의 말에 넬은 날개를 펼쳐 하늘 높이 위로 날아오르더니 손을 펼쳐 안개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서울 전역에 있는 모든 안개가 넬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고 이내 서울은 전장에서 해방되었다.

“이렇게 금방 끝날 줄 몰랐네. 미안하지만 안개가 사라졌다고 사람들 들어올 수도 있으니 못 들어오게도 좀 해줘.”

하루라는 시간을 줬는데 벌써 사람들이 들어와 그들의 실험을 방해하게 둘 순 없었고 김진석도 이리 빨리 끝날 줄 몰랐다.

넬에게 미안하지만 한 가지 더 부탁했다. 졸지에 할 게 없어진 김진석이었다.

주변에서 안개가 사라지자 갈룸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서울 안 몬스터 중에서 최약체.

특정 몇몇 갈룸을 제외하곤 사실상 안개에 숨어 몬스터의 시신을 처리하는 청소부 역할을 하는 놈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안개가 사라지자 갈룸의 은신처 또한 사라졌으니 놈들을 제외한 다른 몬스터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서울 안은 이제 인간이 살지 않는 몬스터들의 생태계. 안개가 사라졌으니 이제 또 다른 생태계로 변하게 될 것이다.

“실험 구경이나 하러 가자.”

대충 보이는 강한 몬스터들은 전부 잡았으니. 설령 정말 괴물 같은 몬스터가 있더라도 안개가 사라진 이상 김진석이 더 귀찮게 몬스터를 잡아줄 이유는 없었다.

“흑호야. 돌아와.”

바포메트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흑호는 일반 호랑이. 정확히는 로스트 월드에서 대악마들조차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괴물인 호랑이보다 훨씬 포악한 존재라고 했다.

마기에 잠식당하지 않고 오히려 흡수한 흑호였지만 김진석에게 묶여 그 포악함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그건 본성이었으니 김진석에게 묶여있지 않는 지금 어차피 서울 안에 인간은 없고 몬스터들이 없으니 녀석을 풀어줬었다.

그러자 녀석은 좋다고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그 뒤로 몬스터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었다.

김진석은 흑호가 돌아오자마자 바로 온갖 것이 보관된 인벤토리에서 수건과 물을 꺼내 수건에 물을 묻혀 녀석의 입을 닦아주었다.

몬스터들의 피와 살점이 잔뜩 묻어있어 보기 흉했다.

“어휴. 온몸에 다 묻히고 왔네. 그냥.”

크릉.

김진석은 자랑스럽게 으르렁거리는 흑호의 얼굴을 살짝 툭 치며 말했다. 4~5M 될법한 크기의 흑호였으니 몸을 닦는데도 한세월이 걸릴 것 같았다.

“아. 흑호야 작아져 볼래?”

닦다가 생각해낸 것이 바로 흑호는 몸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었다는 것. 비록 완전히 커지는 것과 완전히 작아지는 게 전부였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김진석의 한 손에 안길만한 크기로 변한 흑호에게는 여전히 피가 묻어있었지만 닦을 면적이 확연히 작아졌다.

“…뭐 해?”

“예? 아니… 뭐…….”

딱히 탓하려고 부른 건 아니었다. 김진석은 어정쩡하게 서 있는 넬이 이상해 불렀을 뿐인데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호랑이는 제 천적이라서요…….”

알고 보니 호랑이들도 김진석과 같이 넬의 환각이 거의 통하지 않았다. 로스트 월드의 호랑이. 그들은 강한 항마력을 가지고 있어 마나를 통한 공격은 대부분 통하지 않을 정도의 괴물이었다.

마법사의 천적이었고 그와 비슷한 넬도 마찬가지였다.

“좀 거북하네요.”

“그럼 친해 져야지. 돌아갈 때 날아가지 말고 얘 타고 가.”

“…아!”

* * *

“벌써 돌아오셨… 그녀의 표정은 왜 그렇죠?”

“신경 쓰지 마. 뭐 진전은 있어?”

그, 대악마인 넬이 속이 메스껍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김진석이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왔지만 오랜만에 본 비네는 그를 아는 채도 안 하고 실험실에서 볼 법한 유리병 안에 피를 확인하고 있었다.

정작 이설에게는 별다른 짓을 안 한 것 같은데 그녀의 표정은 마치 혼이 나간 것 같았다.

“뭐 했어?”

“그저 피만 뽑았을 뿐입니다만…….”

바포메트는 억울한 표정으로 김진석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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