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우리가 먼저 공격했으니 봐주지.”
이신은 자신의 총알을 고작 손으로 막았다. 아니 막은 게 아니라 잡았다. 최상위 S급 플레이어인 이신의 총알을 막을 수 있는 자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눈앞의 김진석은 해냈다.
그의 봐준다는 말. 어느 누가 최상위 S급 플레이어에게 봐준다는 말을 하겠는가. 하지만 이신은 그럴 수 있다고 본능적으로 생각했다.
눈앞의 있는 남자는 분명 인간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괴물이다.
“이신. 너의 여동생 이설은 이미 몬스터다. 네가 말했다시피 S급 플레이어도 PK 플레이어에게 노려지는 마당에 아예 몬스터인 그녀는 죽여도 별 상관이 없겠지.”
PK 플레이어라고 거창하게 말하고 있지만 그들은 범죄자. 살인자였다. 사람도 죽이는데 몬스터를 죽이지 못할 이유가 어딨겠는가.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 뭐죠?”
그 말에 이신보다도 이설이 김진석을 경계했다. 이신은 깨달았다. 김진석과 넬은 이레귤러다.
플레이어란 말에 담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제야 황혼 길드에 길드원도 아닌데 루크가 그를 챙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제이다와 같은 비서 플레이어를 붙여준 것도. 김진석이 부탁한 건 전부 들어주는 루크의 모습도. 아무리 최상위 S급 플레이어라지만 한국 1위 길드의 부길드장인 루크가 그럴 이유가 없었다.
루크는 이미 알고 있던 것이다. 김진석이 뭘 하든. 그를 막을 힘이 없다는 것을. 그저 차선책으로 그의 말을 전부 들어줬을 뿐.
김진석이 원하는 건 어떻게든 이뤄지게 된다.
지구는 약육강식의 세계로 바뀌었다. 플레이어가 존재하고 몬스터가 존재하는 이상 그건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김진석은 지금 이신조차 어찌할 수 없는 강자다.
그렇게 되니 오히려 이신의 긴장이 풀려버렸다. 처음부터 저들은 서울에 오면서 피크닉과 같은 분위기를 냈다.
지구에서 가장 위험한 곳 중 하나인 서울. 전장에서 말이다.
과연 자신의 총알을 손으로 잡는 괴물을 무슨 방법으로 이긴단 말인가.
체념에 가까운 감정이 들은 이신이었다.
“괴물이군.”
“딱히. 그저 물어봤을 뿐이야. 최상위 S급 플레이어의 가족인 최상위 S급 플레이어를 건드릴 자가 누가 있을지. 궁금해서 말이야.”
이신의 혼잣말과 김진석의 말이 겹쳤다.
김진석은 그저 순전히 궁금했을 뿐이다. 몬스터인 그녀를 가족으로 인정할 수 있냐고. 물론 그 대답은 이설의 손가락이 잘리자마자 즉각 대응한 이신을 보니 대답이 되었다.
그런데 이신은 그의 말에 의문을 가졌다.
“최상위 S급 플레이어의 가족인… 최상위 S급 플레이어라뇨?”
“이설 플레이어. 그녀는 지금 최상위 S급 플레이어에 맞먹을 겁니다. 아니. 어쩌면 이신. 당신도 그녀를 이기지 못할 수도 있죠.”
김진석의 말에 이신은 휘둥그레한 눈으로 이설을 바라봤다. 정작 이설은 자신의 힘을 잘 모르고 있었다.
서울 안에서 소란을 일으키면 몬스터들이 몰려오는 데다가 안개를 되도록 들이마시려고 하지 않았으니 몬스터들이랑 정면으로 맞닥뜨린 적이 거의 없었다.
“어차피 최상위 S급 플레이어로 판명 날 것인데 PK 플레이어들에게 노려지는 건 똑같겠지.”
PK 플레이어. 그 범죄자들은 게임과 현실을 혼동한 자들이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정신병원에서 뛰쳐나온 자들이다.
게임 속 세계에서 죽음을 맞이한 그들은 몬스터에게 죽은 자들도 많지만 인간에게 죽은 자들이 더더욱 많았다.
인간에게 속아 죽은 자. 인간에게 배신당해 죽은 자 등등. 수많은 사인(死因)이 존재했으니 그들은 살아남으려면 누구든 의심하고 강해져야 했다.
마치 김진석처럼.
“그렇다고 한들 동료들을 데리고 서울을 빠져나가긴 어려울 테지. 멀쩡히 서울 밖으로 데려다줄 테니 조건이 있다.”
김진석의 말에 이설은 그제야 본색을 드러내냐는 듯 오히려 자신의 오빠를 뒤로 물린 채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뭐죠?”
이신은 총을 사용해 근접 전투에 능하지 않았고 원래 이설은 애초에 몸에 화염을 두르며 정면으로 나서는 전사 스타일이었다.
그녀가 했던 게임 주인공의 능력을 그대로 이어받은 그녀는 화염을 다루다 못해 화염 그 자체가 되는 그녀였다.
화염으로 변해 상대의 공격을 무효화 하고 화염 그 자체로 공격하는 능력은 정말 게임 속 캐릭터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최대 단점은 내구성이다.
화염으로 변하지 않는 이상 그녀는 평범한 인간이나 다름없었다. 레벨만 보면 최상위 S급 플레이어였지만 몬스터의 소재가 아닌 일반 총으로도 그녀는 얼마든지 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손가락이 잘려도 자라나는데 시간이 10초가 채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갈룸의 왕은 목이 잘려나가기 직전이었는데도 재생했다.
레벨이 더 높은 그녀라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랐다.
“딱 하루. 오늘만 실험에 응하면 돼.”
“…실험이요?”
김진석의 말에 바포메트가 감격한 듯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김진석도 궁금했다. 아무리 몬스터가 되었다고 하지만 이설. 그녀의 외견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었다.
사실 김진석이 말을 안 했더라면 그녀 자신도 모르고 있었을 거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몬스터가 됨으로서 엄청난 재생 능력을 가지게 된 거다. 물론 김진석 본인도 따로 상태창에 표시가 되진 않았지만 재생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자세한 건 본인도 모르지만 아마 포션을 거의 입에 달고 살았고 상처에다가 직접 뿌리기까지 하며 상처를 치료하니 어느 새부터 재생 능력이 뛰어나 졌다.
어쩌면 지금 김진석의 몸에는 피 대신 포션이 흐를 수도 있다.
하지만 갈룸이 된 그녀와 비견될 수준은 아니었다. 만약 김진석 본인도 몬스터가 돼서 저런 재생 능력을 가지게 된다면.
굳이 재생 능력만이 아니라 다른 몬스터의 특성을 가지게 된다면.
“하루면 충분합니다.”
김진석은 싸움이 즐거웠다. 처음엔 살기 위해 싸워나갔지만 이제는 그 싸움 자체가 즐거워져 버렸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했던가.
처음부터 레벨이 높았던 천재 몬스터들은 노력하는 인간들을 이겨내지 못했고 노력하는 인간들은 즐기는 김진석을 이겨내지 못했다.
하지만 모든 걸 이겨낸 김진석도 마지막에 와서 이겨내지 못한 몬스터가 있었으니.
로스트 월드에 최종 보스. 악마의 방주, 아크였다.
그리고 지금 넬이 만든 안개가 서울을 뒤덮었고 로스트 월드의 몬스터들이 배회하는 와중에 아크가 지구에 오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마지막 김진석의 일격에 대악마라도 죽을 만한 큰 상처를 내긴 했지만 녀석은 아직 죽지 않았다.
‘로스트 월드를 구하라’
모든 퀘스트를 전부 깼지만 유일하게 이 검은색 글씨가 언제나 김진석의 앞에서 아른거렸으니깐.
게다가 이미 로스트 월드가 여러 세계가 있다는 걸 시험의 탑 대 악마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즉 아크도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거다.
게임 속 세계에서 벗어났지만 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선 강해져야지.”
“……?”
그 괴물 같은 김진석이 하는 말은 이신은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실험인지… 알 수 있을까요?”
이설의 말에 김진석은 바포메트를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 있게 앞으로 나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절대 걱정하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에는 피와 살점을 확인한 다음 그대의 재생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실험해보겠습니다. 넬. 그녀만 있다면 아무런 고통도 못 느끼게 해드리겠습니다.”
넬의 환각에 빠져있을 때 무슨 실험을 할 생각인 것 같았다. 물론 바포메트가 저것만 실험할 리가 없었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안 돼. 나랑 할 일이 남아있어서.”
“…비네. 그녀도 저 인간 여성을 보면 흥분을 감추지 못할 겁니다. 언제나 당신을 죽이고 싶어 했으니깐요. 괜찮다면 같이 해도 되겠습니까?”
하지만 김진석은 넬과 함께 할 일이 남아있었다. 그러자 바포메트는 비네를 기억해냈다.
시험의 탑에서 나온 몬스터들. 그건 모두 비네와 바포메트의 작품이었다. 필사적으로 김진석을 죽이려고 한, 대 악마들.
그중에서는 지금도 그 목표를 잃지 않은 악마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비네였다.
“상관없어. 하지만 시간은 확실히 지키고. 내 손님이란 걸 각인시켜.”
“알겠습니다. 그녀도 기뻐할 겁니다.”
하지만 비네도 이미 알고 있었다. 스킬로 변한 자신들이 당사자인 김진석이 죽는다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는 김진석과 비슷하게도 즐거워졌다.
김진석을 죽이기 위해 실험체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비록 그 실험체가 허무하게 죽어 나갔지만 실험체를 만드는 것. 그거 자체가 즐거운 그녀였기에 죽든 말든 상관 안 했다.
지금 그녀의 목표는 김진석을 죽일만한 실험체를 만드는 것. 그걸 위해서 그녀는 김진석의 곁을 떠났다.
점점 일이 커지는 것을 느낀 이설은 불안했지만 그녀는 자신을 실험하겠다고 말하는 정장 할아버지에게 더더욱 거부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이설은 모르겠지만 그녀는 화염 그 자체인 플레이어. 하지만 바포메트는 그 화염을 지배하는 대 악마다.
그녀가 화염인 이상 바포메트의 마수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아. 이런. 김칫국을 삼켰군. 그래서 어떻게 할 거지?”
“거절하면… 어떻게 되죠?”
이설은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 그 자체인 정장 할아버지에게서 어떻게든 눈을 떼고 김진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서울에 갇혀 지내는 거지. 밖에 괴물들과 함께.”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셨습니까?”
선택지가 없었다.
이신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제안하는 김진석을 보고 일말의 의심이 피어올랐다. 이 모든 걸 예상하고 자신의 여동생을 찾아온 것인지.
“그쪽이 먼저 찾아오지 않았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는 김진석이었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이신에게는 더더욱 익살스럽게 다가왔다.
“하겠습니다.”
“설아?!”
아무리 이신이 김진석의 힘에 굴복했다고 하지만 여동생의 몸을 가지고 실험한다는 것을 이해할 순 없었다.
하지만 이설의 선택은 변함이 없었다.
“대신 제 동료들을 무사히 바깥으로 꺼내주신다는 약속을 지켜주셔야 합니다.”
“그러지. 그리고 마지막.”
그런데 김진석의 조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신과 이설 남매는 긴장했지만 그의 조건은 별다른 건 없었다.
“이신 씨. 당신에게 말한 조건의 연장선입니다. 이 안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함구할 것. 그리고 내가 앞으로 벌일 일에 그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받아들일 것.”
“어떤…”
“서울을 전장에서 해방한다.”
“…예?”
“…예?”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김진석을 보고 둘은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설령 당신이 강하다고 한들 서울 안에는 수많은 몬스터가 즐비합니다. 1년 가까이 서울을 조사한 저도 새로운 몬스터가 발견될 때도 있습니다!”
이신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서울이 얼마나 큰데 도대체 어떻게 해방한다는 말인가. 그 모든 몬스터를 죽일 수 있다고 쳐도 그 시간은 절대 짧지 않을 것이다.
이설도 마찬가지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불가능 하다는 이유는 이신과 달랐다.
“남산타워에는 괴물이 살고 있습니다! 당신이 정말 강하다고 한들 혼자서 놈을 해치우는 건…!”
“허락받았으니 다녀오겠습니다.”
그때. 김진석의 등에서 날개가 돋아나는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김진석의 뒤에 서 있던 정장을 입은 할아버지에게서였다.
아니. 그는 더는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등에서 날개가 돋아났으며 정장이 찢어질 듯 몸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온몸에 피부가 가죽으로 변하고 털이 나며 머리에는 뿔이 솟아오르고 그 위에는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미노타우로스?”
“…남산타워의 괴물?”
악마 형태의 바포메트. 그는 최대한 빨리 비네를 찾아가기 위해 악마의 형태로 변하면서까지 날아가려 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지하철역을 빠져나가 하늘로 날아오른 그의 뒷모습을 보며 두 남매의 허망한 말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