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116화 (116/201)

116화

“미등록 플레이어. 알고 계시겠죠.”

당연히 알고 있다. 지구에 오자마자 바로 미등록 플레이어가 되었었으니깐. 물론 고의는 아니었다.

이신은 품에서 엘릭서를 꺼내 보여주었다.

“이건 말 그대로 최후의 수단입니다. 세계에는 미등록 플레이어는 이제 몇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심각한 이들이 있죠. PK 플레이어입니다.”

PK. 통칭 Player killer. 플레이어 킬러들은 말 그대로 플레이어를 죽이는 자들로 그들은 이 세계에 힌트를 알고 있었다.

“저희 플레이어들은 몬스터를 죽이거나 아니면 여러 능력을 수련하는 바탕으로 성장합니다. 하지만 그것 외에도 성장하는 방법이 있었으니 바로 같은 플레이어를 죽이는 자들입니다.”

MMORPG 게임을 하는 자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물론 플레이어를 죽인다고 경험치를 못 받는 게임도 있었지만 현실인 지구는 아니었다.

“그들을 구분하는 방법 따위는 없습니다. 어디에나 있고 바로 당신 곁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를 대비하기 위해 있는 게 바로 이 엘릭서입니다.”

엘릭서. 다른 나라는 모르지만 한국은 S급 플레이어가 절대 죽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이신과 이미리 또한 엘릭서를 받았다.

하지만 S급 플레이어가 엘릭서가 없다는 게 들키면 어떻게 되겠는가.

“타겟이 될 겁니다.”

PK 플레이어는 강한 플레이어를 언제나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그건 최상위 S급 플레이어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S급 플레이어는 면죄부를 받는다고 했지. 만약 S급 플레이어를 죽이고 S급 플레이어가 돼 면죄부를 사용한다면 그 누구도 그를 탓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된다면 김진석이 싫어하는. 극도로 귀찮아지게 될 것이다.

“구분할 수가 없다고 했지. 내가 습격을 받게 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지?”

“즉각 사살하세요.”

하지만 뒤에 온 그의 말에 김진석의 미소가 새어 나왔다.

“나쁘지 않네.”

“네?”

“아. 그리고 그 엘릭서 가짜야.”

“…예?”

그때 앞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마치 다급하게 이곳으로 달려오는 듯했고 이신은 곧바로 총을 들어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조준했다.

하지만 김진석은 달려오는 무언가의 정체를 먼저 파악하고 이신의 총구를 쳐올렸다.

“무슨…?!”

이신이 당황하며 물었지만 김진석은 말없이 턱짓으로 앞을 가리켰다.

이내 눈앞의 나타난 건 인간이었다. 아니 과연 인간이 맞을까. 손톱은 길고 머리도 산발에 옷도 다 찢겨 있었다.

갈룸의 특징인 흐릿한 눈을 가지고 있었지만 김진석은 감정을 통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이설 LV:70]

“…설아?”

“…오빠?”

이신은 총을 바닥에 떨어뜨린 채 그대로 달려가 그의 여동생. 이설을 품에 안았다.

분명 감동에 찬 순간이어야 하지만 이설은 그대로 자기 오빠를 밀어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뒤를 바라보며 손바닥을 펼쳤다.

“멈춰!”

그녀의 뒤로 갈룸들이 보였다. 아직 완벽히 갈룸이 된 것 같진 않아 보였다. 제대로 옷도 입고 있었고 손톱도 제대로 다듬어져 있었다.

오히려 이성을 유지하는 이설의 손톱이 더 길었다.

“내 가족이야. 건들지 마.”

그녀의 말에 갈룸들은 뒤로 물러났다.

김진석은 그녀의 모습에서 갈룸의 왕을 엿보았다.

* * *

“허…….”

이설은 한국. 자신의 오빠를 포함한 플레이어들이 자신들을 포기한 줄 알았다. 그래서 처음에 원망 섞인 눈으로 그를 바라본 것이다.

이신은 이설에게 바깥의 상황을 전했고 마찬가지로 이설도 서울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전했다.

그녀와 함께 온 플레이어와 군인들은 안개를 들이마시고 서로를 향해 총과 능력을 사용했고 결국 대학살이 일어났다.

거기서 살아남은 그녀와, 같은 플레이어들은 몬스터로 변했지만 유일하게 그녀만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온전치 않았으니 안개에 정신이 잠식되기 전에 어떻게든 해결 방법을 찾으려고 했고 그곳이 바로 남산타워 위였다.

거기서 바깥이 서울을 확인하려는 시도를 많이 발견했다.

헬기를 보낸다거나 드론을 보내는 등. 하지만 그 시도들은 전부 무산으로 돌아갔다. 안개에 잠식된 군인들.

그들이 전부 파괴한 것이다.

“그들도 정신을 유지하고 있지만 아예 다른 존재가 된 것 같아.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에게 적대적이야. 심지어 나와 내 동료들까지.”

지금 이설의 뒤에 있는 갈룸들은 그녀와 함께 온 플레이어들이었다.

이설처럼 제정신을 유지하지도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 하지만 옷도 제대로 입고 최대한 지성인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만약 안개를 계속해서 들이마셨다면 아마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이설은 끔찍하다는 듯 몸을 떨었다.

“그게 언제인지 아십니까?”

“…누구세요?”

서울 안에서 살아남은 이설이라 김진석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새로운 최상위 S급 플레이어야.”

“…최상위 S급 플레이어가 또 있다는 말이야 그럼?”

“난데?”

“…?”

이설은 몬스터의 침공이 있던 이후로 극히 초반에 서울로 파견되었다. 이신은 그 당시에는 그냥 S급 플레이어였으니 그녀가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그래서 시간의 슬라임도 안 통한 거구나.”

그녀가 처음에 이곳으로 급히 달려온 이유. 바로 이 근처가 시간의 슬라임 서식지여서 그랬다.

그녀의 동료들에겐 언제나 이 근처를 얼씬거리지도 말라고 말해두었지만 제대로 이성을 되찾지 못한 그들이 언제 사고 칠지 몰랐으니.

소리가 들리기에 달려왔더니 자신의 오빠와 그의 일행이 있던 것이다.

“내 질문엔 대답 안 해줬는데.”

“아 죄송해요. 그리고 언제일 것도 없어요. 남산타워에 괴물이 와 저희를 쫓아내기 전까지만 해도 항상 마찰이 있었으니깐.”

남산타워의 괴물. 김진석은 바포메트를 바라봤다.

그는 멋쩍은 듯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오빠가 최상위 S급 플레이어건 뭐건 남산타워는 절대 가지 마. 거긴 진짜 괴물이 있어. 이 안개에서 태어난 건지 아니면 어디서 흘러들어온 건지 모르지만 놈은 진짜…….”

“걱정하지마. 아! 잠시만.”

이신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 품에서 뭔가를 꺼냈고 그건 방독면이었다.

“넌 안개를 들이마셔도 괜찮아?”

“응. 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괜찮아.”

“그러면… 네 동료라고 했지? 저들에게 이 방독면을 착용시켜줘. 방법은…….”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만약 안개를 들이마시지 않고 계속해서 있다면 어쩌면 저들은 완전한 몬스터가 되지 않아 인간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으니깐.

김진석의 감정으로도 그들은 갈룸이 아니라 그들의 이름이 먼저 표기됐다. 물론 더 확실한 방법은 물어보면 됐다.

“가능해?”

“제 안개는 지속성이니깐요. 저들처럼 이성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자들이라면 언젠가 돌아올 수도 있겠죠.”

넬의 말도 확신은 아니었지만 희망은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저 여성은 안 돼요. 그녀는 이미 몬스터나 다름없어요.”

이설. 그녀는 안개를 들이마셔 갈룸의 왕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김진석의 감정으로 그녀는 이름으로 먼저 보였다. 갈룸의 왕은 갈룸들과 같이 모든 생명체를 적대시하고 잡아먹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완벽히 이성을 차리고 있었고 지하철역에서 보았던 것처럼 통조림 등을 먹고 살아가고 있었다.

이신이 서울 탐색이 오래 걸릴 걸 예상해 가져온 전투식량들을 그녀가 잘 먹는 것만 봐도 그랬다.

그리고 마지막.

“이설 플레이어. 당신은 플레이어로서 어떤 역할을 전담했습니까?”

“…아 직업이요? 음… 마법사? 아니 초능력자라고 해야 할까요?”

그녀가 했던 게임은 영화 보듯 스토리 진행하는 비디오 게임이었다. 거기서 그녀는 주인공. 초능력자가 되었다.

그 게임은 초능력자가 탄압받는 세계. 거기서 이설은 화염을 다루는 초능력자가 되었다.

지하철역 안에 라이터 비슷한 것도 없는데 어떻게 불을 피웠는지 의문이었는데 그게 단박에 해결되었다.

이설은 손바닥 위에 조그마한 불을 피워내며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다. 즉 몬스터가 됐음에도 능력은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녀의 레벨이 높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연구 가치가 있겠군요.”

바포메트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동의한 김진석은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멈췄다. 그랬다간 바포메트가 괜한 사람들 다 붙잡아서 실험할 것만 같았기에.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자들로만 해.”

“…예?”

김진석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설의 말에서 그들을 제외한 갈룸의 무리가 있다고 말했지. 그리고 그들은 화기를 사용하는 등 이설과 다른 방식으로 이성을 찾은 몬스터다.

그런 흥미로운 놈들을 바포메트가 가만 내버려 뒀을 리가 없었다.

“동료들도 돌려주고. 내가 모를 거라 생각하지 마.”

“…네.”

아무리 봐도 그녀의 말을 따르는 갈룸. 동료의 숫자가 너무나도 적었다. 고작해야 다섯. 물론 다른 몬스터에게 희생당했을 수도 있고 다른 갈룸들에게도 있을 수 있지만 분명한 건 그녀는 바포메트를 만났다.

바포메트가 이 서울에 계속해서 있었던 이유. 아마 이설. 그녀 때문일 것이다. 처음엔 그가 말한 목적이 맞았을지 몰라도 그녀를 발견한 이상 달라졌겠지.

익숙한 몬스터들 사이에 김진석 자신이 봐도 신기한 몬스터였으니.

이설은 열심히 이신이 준 방독면을 몬스터가 돼버린 자신의 동료들에게 씌우고 있었다. 그녀는 서울에 갇혀 지내며 말도 통하지 않는 자신의 동료들과 무슨 감정으로 어떻게 지냈을까.

이신을 보았을 때도 무덤덤한 반응인 그녀였지만 동료들이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기자 자신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고였다.

서울에서 1년 가까이 버틴 강인한 여성이었다.

바포메트는 곧바로 큐브를 풀어 그녀의 전 동료들을 꺼냈다. 바포메트의 큐브는 그 상태 그대로 보존하는 능력을 지녔고 그 안에 있던 그들은 사실상 몬스터였다.

“…어?”

어디서 솟아났는지 모를 갈룸들이 갑자기 보이자 이설은 당황하면서도 이신과 함께 전투태세를 갖췄다.

서로의 등을 맞대고 달려들 갈룸을 대비하려 했지만 이설은 그들의 얼굴을 보고 급히 이신의 총구를 쳐올렸다.

벌써 오늘만 2번째인 이신이였지만 생각보다 강한 그녀의 힘에 깜짝 놀랐다.

“…어째서?”

이신은 그녀를 탓할 수 없었다. 그녀의 눈에선 고이다 못해 눈물이 흐르고 있었으니깐.

하지만 그녀의 동료들은 그녀를 알아볼 이성이 남아있지 않았고 그들에게 달려들려는 순간.

“넬.”

그대로 몸에 힘이 빠져 바닥에 쓰러졌다.

“저들과 똑같은 상태에요.”

즉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는 거다. 김진석은 고개를 끄덕인 채 두 남매를 보며 말했다.

“이설 플레이어. 그쪽 동료들. 플레이어들은 인간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없습니다.”

“…네?”

백문이 불여일견. 김진석은 넬을 바라봤고 그와 동시에 그녀는 손톱으로 이설의 손가락을 베어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고 이설의 손가락이 하늘로 솟구쳐 떨어지는 걸 봄과 동시에 이신은 넬을 향해 소총을 쏘았다.

넬에게 아무리 이신이 만든 소총이라고 한들 통할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김진석은 자신이 시킨 일이니 날아오는 총알을 손으로 잡았다.

괜히 자신을 지켜주려는 김진석의 모습에 넬은 기분이 좋아졌다.

물론 그럴 때가 아니었고 방독면을 쓴 갈룸들이 넬을 공격하려 하고 이신도 총구를 김진석에게 향했을 때.

“뒤를 보지 그래.”

“기다려. 오빠도.”

이설은 비명도 지르지 않았고 그저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신은 총구는 여전히 김진석에게 겨눈 채 눈알만 굴려 이설을 바라봤는데 그녀의 손은 멀쩡했다.

“이야기를 다시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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