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어차피 김진석과 이신의 행선지가 서울로 알려졌으니 그 앞에서 기다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 봉쇄지역 근처를 다시 한번 봉쇄해버렸다.
그 많은 인파가 몰리게 됐을 때 자칫 몬스터가 튀어나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아예 그 근처도 못 가게 막아버린 것이다.
결국, 황혼 길드의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은 최상위 S급 플레이어가 아닌 제이다만을 볼 뿐이었다.
당당히 그들의 앞에 선 제이다는 기자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이 기다린 S급 플레이어들은 이미 서울로 떠났습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제게 물어보세요.”
“왜 갑자기 최상위 S급 플레이어가 전장에 들어가려고 하는 겁니까?”
“김진석 S급 플레이어의 목적은 무엇이죠?”
어차피 최상위 S급 플레이어를 그리 쉽게 만날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 않았던 기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에게 질문했다.
* * *
서울. 봉쇄지역 장벽 안으로 들어온 김진석과 넬. 그리고 이신은 방독면을 썼다.
하지만 당연히 안개가 통하지 않는 둘은 귀찮다는 듯이 방독면을 다시 벗어 이신에게 돌려주었다.
“괜찮습니까?”
“어차피 그리 오래 안 걸려.”
이신은 사주경계를 하며 몬스터가 오는지 확인하고 있었지만 넬 때문에 몬스터들은 전과 같이 그저 주변을 서성이고 있을 뿐이었다.
“…?”
분명 이런 조그마한 말소리에도 반응해 달려드는 몬스터들이었지만 지금은 몬스터들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은 상황에 의문을 가질 그때.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극도로 긴장한 상태의 이신은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총을 조준했다. 하지만 그 소리의 주인은 정장을 입은 평범한 할아버지였다.
“…당신은?”
이신은 분명 민간인이 이곳에 있어선 안 될 것인데.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뭔가 익숙했다.
“기억을 지울 수도 있었나? 신기하군.”
“그냥 해보니 되던데?”
넬과 정답게 대화하고 있는 정장을 입은 할아버지. 바포메트였다.
이신이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을 때 김진석은 그에게 물었다.
“여동생. 이름이 이설이라고 했나? 인상착의를 비롯한 그녀의 특징을 말해.”
김진석은 강한 인간은 안개에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이다를 통해 지구에서도 적용되는 사실이란 걸 알았고 그 뜻은 즉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갈룸의 왕. 광기의 굴의 안개에서 제정신을 유지한 그는 극히 드물게 태어나는 존재였고 어쩌면 이신의 여동생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몬스터가 됐어도 그의 탓은 아니었지만 김진석은 한영석의 일 때문인지 안타까운 감정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검은 허리까지 오는 장발에 안경을 썼는데 알은 없습니다. 눈이 비교적 크고 오른쪽 눈 아래에 점이 있습니다. 키는 170 정도에 실종됐을 당시에는 하얀색 셔츠에 무릎 살짝 위로 올라오는 치마를 입고 있었습니다.”
이신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김진석의 말에 곧바로 말했다. 분명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방독면을 벗고 헬멧도 벗어 그 안에서 이신은 자신의 여동생. 이설의 사진을 꺼내 보여주었다.
김진석이 부들거리며 떠는 그의 손에서 이설의 사진을 건네받아 바포메트에게 건네주었다.
“알고 있나?”
“흠… 제가 안내했던 그 위치에 인간 몬스터들이 점거했었습니다. 빼앗았었는데 거기서 본 것 같습니다.”
바포메트가 있었던 곳. 남산타워는 원래는 인간형 몬스터의 본거지였다. 하지만 바포메트가 등장하고 그곳을 주거지로 삼아버리니 그들은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딨지?”
“전 자연을 사랑해서요.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을 좋아합니다.”
웃기는 말이었다. 악마인 건 둘째치고 자연을 사랑하지만 몬스터들을 잡고 실험하는 녀석이 있는 그대로를 좋아하다니.
“제가 하는 건 자연을 최대한 해치지 않고…….”
“됐고. 지금 어딨는지 모른다?”
“…아뇨. 그들은 지하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지하철역을 통해 밖으로 나갈 궁리를 하는 듯 보였습니다.”
“제 동생이 몬스터로 변한 겁니까?”
김진석과 바포메트의 말에 이신은 무덤덤하게.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차갑고 냉혹하게 물었다.
김진석은 저게 만들어진 감정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자신의 가족을 죽여야 하는데 그 누가 무덤덤할 수 있을까.
“…어디 역이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 * *
넬과 바포메트. 김진석과 이신은 바로 근처 지하철역으로 들어갔다.
전기가 통하지 않는 서울이었고 지하철역 안은 정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있었다.
물론 그 넷에겐 그깟 어둠은 아무런 제약도 되지 않았다.
바포메트의 말을 따르면 지하철역 전부가 그들의 아지트이며 거주지였다. 그들이란 인간형 몬스터. 즉 갈룸들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들 전부가 이성을 잃지 않았다는 거다.
“넬.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있나?”
어차피 눈앞의 안개를 만든 당사자가 있는데 굳이 바포메트에게 물을 필요가 없었다.
“인간 세계를 침공했을 때 인간들이 그리 강하지 않았었어요. 그걸 계산해서 만들었던 건데…….”
넬이 만든 안개는 인간을 몬스터로 변하게 만들어 바포메트가 다룰 몬스터를 늘리는 역할이었다.
잔인하고도 확실한 안개였지만 넬의 계산을 벗어난 인간들은 어떻게 변할지는 그녀 자신도 몰랐다.
김진석은 지하철을 거의 타 본 적도 없었다.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 평생을 편의점에서 생활하다 보니 멀리 나갈 일도 없었고 멀리 가기도 싫었다.
역이 얼마나 많은지도 잘 몰랐고 그냥 무작정 지하철역으로 들어왔지만 오히려 지하철역 안은 안개가 들어오지 않았다.
칠흑 같은 어둠에서 김진석은 가장 먼저 사람의 흔적을 발견했다.
“…누군가 살고 있던 것 같은데.”
땅에는 불을 지핀 듯 잿더미가 있었고 여러 통조림과 과자 봉지 등. 사람의 흔적이 잔뜩이었다.
그리고 몬스터와 싸운 듯한 흔적까지.
“인간… 몬스터가 맞나?”
불을 지피는 건 얼마든지 지능을 가진 몬스터들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갈룸들은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잡아먹는다.
이렇게 통조림을 먹고 과자를 먹는 등. 게다가 지하철역 구석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 가보니 배설물들을 모아두고 있었다.
체계가 잡혀있었다.
“그러고 보니 남산타워 위. 거기도 안개가 별로 없었지.”
서울의 정중앙. 비록 그리 높진 않았지만 안개가 그 위까지 닿지 않았다. 그리고 지하철에도 안개가 닿지 않았다.
“넬. 안개를 들이마셔 몬스터가 된 자들이 안개를 오랫동안 안 마시면 인간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나?”
“이성을 잃은 채 몬스터가 된 자들이면 확실히 안 된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하지만 이성을 잃지 않은 자들은 제 예상 밖인 자들이라…….”
티끌만 한 희망이지만.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이신은 절대 방심하지 않았다.
희망을 품었다가 그 희망이 사라지게 된다면. 거기서 몰려오는 감정은 S급 플레이어라도 주체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이신은 감정을 죽인 채 그 흔적을 조사했다.
“최소 5명 이상인 것 같습니다. 발자국의 모양이 5개 이상입니다. 적어도 신발은 신고 다니는군요.”
수분이 말라비틀어져 갈라진 듯한 그의 목소리였다.
바포메트와 넬, 김진석은 이런 흔적을 조사할 줄 전혀 몰랐다. 대 악마인 그들이 흔적 따위를 조사할 필요가 없었고 김진석은 그저 몬스터가 있을 곳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흔적을 조사할 일이 없었다.
셋은 이신의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레벨 99인 셋이 고작 레벨 70의 뒤를 쫓아다니는 것을 제 3자가 본다면 어이가 없겠지만 등급만 따지자면 같은 최상위 S급 플레이어.
각자 잘하는 것이 있고 못 하는 것이 있으니.
그리고 감정을 숨겼지만 그 누구보다 간절한 것은 가장 선두에 이신이었다.
“그래서 바포메트. 넌 이곳에 무슨 볼일이 있지?”
“제게 익숙한 몬스터들이 보여서요. 조사는 이미 끝났습니다.”
“난 익숙해서 금방 질리던데?”
이신조차도 마치 셋의 피크닉 온 듯한 모습에 긴장이 풀렸다. 그는 김진석을 비롯한 둘이 그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한 줄 알았다.
물론 넬과 바포메트는 별 상관이 없었고 김진석은 이신이 안타까웠지만 그뿐. 고작 이곳에서 대 악마 둘까지도 있는 마당에 긴장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온갖 몬스터들이 즐비한 마당에 그의 감정은 둘째치고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뒤에 셋의 말소리를 라디오처럼 들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어차피 이런 지하에 사는 생명체들은 시각보다 청각을 위주로 사용하니 뒤에 셋을 먼저 습격하겠지.
이신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고 그 생각이 맞았다.
이신이 선두로 걸어가고 있을 때 위에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고 그는 조용히 피해 지나갔지만 뒤에 셋은 여전히 두런두런 말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 그 물방울이 갑자기 뚝 끊기더니 진흙이 떨어지는 듯한 철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
김진석은 그 무언가에 흥미를 가졌다.
하지만 투명한 액체 같은 건 이신도 알고 있는 극악무도한 몬스터였다.
[시간의 슬라임 LV:75]
“손대지 마십시오!”
이신은 조용히 해야 하는 것도 까먹고 급히 소리쳤지만 시간의 슬라임은 하이톤의 목소리가 가장 컸던 넬에게 달려들었다.
“어머?”
시간의 슬라임은 하필 최상위 S급 플레이어 김진석이 아닌 그냥 S급 플레이어 넬에게 달라붙었다.
게다가 그 슬라임은 일반적인 시간의 슬라임보다 훨씬 거대했고 넬의 온몸을 감쌌다.
이신은 본능적으로 김진석과 바포메트를 넬에게서 밀쳐 떨어뜨렸고 뒤이어 벌어질 일에 침을 꿀꺽 삼켰다.
먼저 옷. 그녀가 입고 있는, 이미리에게 강제로 빌린 옷이 바닥에 뚝 떨어지며 가공되지 않은 원자재로 돌아갔고 이내 땅바닥으로 사라져버렸다.
이내 드러난 그녀의 새하얀 나신. 정확히는 가릴 곳만 가린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만들어진 속옷을 입은 듯한 그녀가 보였다.
“지하를 둘러보진 않았는데 이런 몬스터도 있군요.”
뒤에 벌어질 일을 모른 채 할아버지. 바포메트라 불린 그는 흥미 깊은 눈으로 그녀에게 달라붙은 슬라임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신 또한 최상위 S급 플레이어이기 전에 남자. 본능적으로 그녀의 몸으로 시선이 갔다. 그리고 이상함을 느꼈다.
“…왜?”
그녀의 몸이 퇴화하고 있지 않았다.
넬은 귀찮다는 듯이 몸에 달라붙은 슬라임을 떼어 던져버렸고 이신은 흠칫 놀라 그 슬라임을 피했다.
“이게 그 제이다를 절름발이로 만든 몬스터의 정체군.”
김진석은 이신의 과민반응을 이해했고 마찬가지로 시간의 슬라임에게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그대로 손을 타고 몸으로 올라오려고 했다.
소매가 그대로 사라졌지만 손은 멀쩡했고 김진석은 물기를 털어내듯 가볍게 쳐냈다.
“이것에 다른 능력은 있나?”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김진석이었다. 그의 곁에 있는 비서와 같은 여성. 제이다는 이신도 알고 있는 자였다.
시간의 슬라임에게 당한 플레이어였고 김진석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그는 자연스럽게 저것에 손을 가져다 댔다.
“소문이… 사실입니까?”
김진석이 물었지만 그거에 답할 정신이 아니었다.
“소문?”
“한국에서 큰맘 먹고 구한 엘릭서. 그걸 제이다 플레이어에게 썼다는 소문 말입니다. 사실입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려는 김진석이었지만 이신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무슨 문제가 있나?”
“많습니다.”
이신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썼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는 그의 말에 큰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