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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113화 (113/201)

113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리카이스의 한쪽 팔은 금방 재생되었다.

그런데 정작 당한 리카이스조차도 자신이 뭘 당했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제이다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그녀의 시선은 김진석의 손으로 향했다.

그는 특이하게도 한 손엔 단검 한 손엔 대검. 등에는 활을 메고 있었지만 지금은 대검만을 들고 있었다.

“제이다 씨. 혹시 단검 하나만 더 가져와 주실 수 있을까요?”

“…아! 네!”

김진석의 말에 곧바로 대답한 제이다는 혹시 몰라 가져왔던 예비 보급 단검을 곧바로 던져주었고 김진석은 자연스럽게 그 단검을 받았다.

“단검도 던질 줄 아세요?”

“옛날에 자주 던졌어.”

로스트 월드에 갓 들어갔을 때 자주 애용했던 단검 던지기. 김진석을 여러 번 살린 스킬 아닌 스킬이었다.

“오랜만에 던져봤지만 생각보다 쓸만한 것 같은데.”

가볍게 던졌는데 벌어진 일에 만족한 김진석이었다. 하지만 그는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자신의 레벨이 99라고 한들 레벨 70의 몬스터를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이렇게 가지고 노는 건 이상했다.

물론 금방 재생했지만 게임 속에서, 정확히는 로스트 월드에선 레벨이 전부가 아니었다. 레벨이 높으면 기본 능력이 좋아지긴 했지만 그건 부수적인 것이고 메인은 아이템을 착용하기 위함이었다.

MMORPG에서 흔히 말하는 만렙부터 시작이다. 그전까지는 튜토리얼이다, 는 로스트 월드에서도 적용됐다.

“그래. 그 빌어먹을 튜토리얼.”

플레이어들은 전부 게임 속 세계에서 튜토리얼을 겪고 나온다. 하지만 유독 오래 있었던 김진석이었고 지구에 돌아와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김진석은 제이다에게서 받은 단검을 들고 앞을 쳐다봤지만 리카이스는 녀석은 이미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늠름한 모습은 어디 가고 없고 그저 부들부들 떨며 환각에 빠진 주인인 이미리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결국엔 짐승인가?”

물론 갓 잡은 몬스터라고 했고 주인과의 유대감은 그리 크지 않겠지만 형용할 수 없는 힘을 가진 괴물을 만났을 땐 도망가기 바쁜 것 같았다.

그래도 녀석은 도망치지 않고 어떻게든 해보라는 식으로 이미리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김진석의 눈에는 그게 그거였다.

“쯧.”

“풀까요?”

김진석은 맥이 풀려버렸다. 차라리 죽일 듯이 달려드는 몬스터였다면 즐거웠을 텐데. 넬은 김진석에게 환각을 풀지 물었고 김진석은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번뜩이듯 생각나는 게 있었다.

“제이다 씨. 활을 쓰신다고 했죠?”

“네? 네… 네?!”

멍하니 구경하던 제이다가 갑자기 자신의 이름이 불리니 당황하며 대답했다.

“올라와 보시겠어요?”

“네… 예?”

그렇게 대답했을 땐 홀린 듯 이미 링 위로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어?”

“혹시 이 활을 사용하실 수 있으신가요?”

김진석은 인벤토리에서 고요한 카인의 활을 꺼내 제이다에게 건넸다. 그녀는 정신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활을 건네받았다.

마치 그림자가 활로 변한 듯 보인 그 활은 무게가 없다시피 했다. 구름을 만지면 이런 느낌일까. 그때 갑자기 손에서 활이 사라지더니 김진석의 손에 생겨났다.

“역시 안 되나.”

김진석은 아쉬운 마음으로 고요한 카인의 활을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었고 등에 멘 보급 활을 다시 건네주었다.

“화살도 필요한가요?”

“네? 아, 있어요.”

하도 김진석이 화살 없이 활을 사용하다 보니 화살을 사용한 적이 더더욱 적었다. 물론 제이다는 이미 화살을 챙겼다.

“쏴보세요.”

“네? 저 아이한테요?”

“아뇨. 저한테요.”

리카이스는 전의를 잃은 채 구석에 그 거대한 몸을 숨기듯이 있었고 김진석은 자기에게 화살을 쏘라고 하고 있었다.

제이다는 처음으로 몬스터보고 안타깝다는 감정이 들었다.

일반 양궁 선수가 루크 수준의 상위 등급 플레이어에게 쏜다면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A급 플레이어 수준. 그것도 활을 전문적으로 사용한 플레이어가 사용한다면 파괴력이 차원이 달랐다.

제이다라면 나무 화살로도 강철판을 부술 수 있는 위력을 가졌다. 아무리 보급 활과 화살이라고 한들 일반 철이 아닌 몬스터로 만든 소재였다.

하지만 상대는 최상위 S급 플레이어였다.

제이다는 김진석의 말에 군말 없이 곧바로 화살을 날렸지만 김진석은 피하지도 않았다. 아니 피할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제이다가 김진석이 맞을 것을 염려해 비켜 쐈으니깐.

자신의 바로 얼굴 옆으로 화살이 지나갔음에도 김진석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고 오히려 제이다를 나무랐다.

“진심으로 저를 죽이려고 해보세요.”

최상의 S급 플레이어. 김진석이 단호하게 말하자 제이다는 재차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는 오랜만에 능력까지 사용해가며 김진석을 공격하려 했다.

“수색.”

중세 시대에 활을 사용하는 게임을 한 제이다는 그 세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스킬. 수색을 사용하였다.

수색은 사냥감을 찾기 위해 사용하는 스킬이었고 숙련이 되면 사냥감에 급소까지 알아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지구에 오니 그 스킬은 대상이 어디에 숨든 찾을 수 있으며 급소까지 찾아내며 화살을 쏘아내면 자동추적하는 최강의 스킬로 변모했다.

“…….”

하지만 그 스킬은 김진석의 어떠한 급소를 찾지 못했다. 화살을 쏘아내면 자동으로 급소를 추적해 맞추는 수색은 급소를 찾지 못하면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제이다는 화살을 쏘아냈지만 그 화살은 맥빠진 것처럼 땅바닥에 툭 떨어져 버렸다.

물론 김진석도 제이다의 스킬을 이미 봐서 알고 있었고 궁금한 나머지 진심으로 자신을 죽여보라고 말했지만 지금의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

“…….”

둘은 그저 서로의 얼굴만 바라볼 뿐이었다.

* * *

과연 김진석은 최상위 S급 플레이어답게 이미리의 몬스터. 리카이스를 상대로 이겼다.

최강의 몬스터 중 하나라고 불리는 리카이스와 최상위 S급 플레이어의 싸움은 관중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난 리카이스가 이길 줄 알았는데 말이지.”

“과연 최상의 S급 플레이어라는 건가? 그러고 보니 이신은 이길 수 있을까?”

사람들은 둘의 싸움이 끝났음에도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겼지?”

하지만 그들은 김진석이 리카이스를 어떻게 상대했는지. 왜 이겼는지는 기억에 없었다.

“그래서 김진석의 능력은 뭔데?”

“…….”

그렇게 물어도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분명 재밌게 보았지만 제대로 기억하는 게 없었다. 하지만 이미 끝난 일이었고 즐겁게 보았던 기억이 남아있으니 그들을 그걸로 만족했다.

단 한 명만 빼고.

“당신은 알고 있죠?”

“…뭘 말이지?”

또 다른 최상위 S급 플레이어 이신. 그가 김진석을 찾아와 제일 먼저 하는 말이 그것이었다.

“저도 당신과 리카이스의 싸움을 보았습니다. 물론 숨어서요.”

“…분명 황혼 길드원들한테만 열어줬을 텐데.”

어차피 넬을 통해 기억을 조작할 것이었지만 그래도 귀찮은 건 귀찮은 거였으니 황혼 길드원들한테만 보여주었었다.

물론 이신에게 그런 제약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전장에서 있었던 기억이 끊겨있습니다. 마치 조작된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그걸 최근에 한 번 더 겪었습니다.”

그게 바로 김진석과 리카이스의 결투 아닌 결투였다.

김진석은 리카이스에 정신이 팔려 이신이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었지만 넬은 그 안에 있는 모든 자의 기억을 조작했고 이신도 포함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넬이 기억 조작이 전문이 아니었고 이런 문제가 생길 줄은 알고 있었다. 과연 최상위 S급 플레이어였는지 그가 가장 먼저 눈치챘을 뿐.

하지만 눈앞의 이신은 그걸 탓하러 온 것 같지가 않았다.

“전장을. 서울을 되찾아주실 수 있습니까?”

분명 이신은 김진석이 서울에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저 그의 곁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났기에 넘겨짚었을 뿐이었다.

이신은 이미 확신했다. 알 수 없는 방법으로 김진석은 서울에 몰래 들어갔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평범히 생활하고 있었다.

김진석은 이신이 서울에 파견돼 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하고 있단 걸 인터넷을 통해 나중에 알았다.

대통령의 부탁으로. 라고 적혀있긴 했지만 김진석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그가 현직 군인이라도 최상위 S급 플레이어.

대통령조차도 쩔쩔매야 하는 게 당연했다. 그가 다른 나라로 망명하면 한국은 고작 S급 플레이어 하나뿐인 나라가 돼버리니깐.

왜 이신이 서울에 집착하는 것일까.

“제 유일한 가족. 여동생이 서울에 들어가서 실종되었습니다.”

그의 여동생. 그녀는 과거의 서울을 되찾기 위해 파견된 플레이어 중 하나였다. 그것도 전장에 파견된 플레이어 중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 A급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전장에 들어가서 실종되었다.

“그 안개를 들이마시면 괴물로 변하는 걸 알고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됐다면… 제 손으로 해결해야겠죠.”

이신의 여동생. 이설. 만약 A급 플레이어인 그녀가 몬스터로 변했다면. 그리고 만약에 그녀가 봉쇄지역에서 빠져나와 사람을 해치게 된다면.

그는 군인답게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있었고 그렇게 되기 전에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몇 날 며칠이고 서울을 뒤져보았지만 그녀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도 불가능했다.

A급 플레이어조차 그 안에서 하루도 채 버티지 못했으며 S급 플레이어는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그 안으로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최상위 S급 플레이어인 이신조차도 죽을 위험을 감수하는데 당연했다.

그런데 눈앞의 김진석은 달랐다. 서울에 들어가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녔으며 모종의 방법으로 자신의 기억을 지웠다.

자신보다 강하면 강했지 약할 리가 없었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최상위 S급 플레이어라도 가족 앞에선 어쩔 수 없었다. 이신은 김진석의 집까지 찾아와 소식을 듣고 뒤늦게 제이다가 찾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무릎까지 꿇으며 김진석에게 부탁하고 있었다.

“살아있다면 구출하겠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건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찾아만 주십시오. 이후엔 제 손으로 해결하겠습니다. 제발…….”

원래의 김진석이라면 눈앞의 이신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에게 가족이란 없었고 오로지 혼자서 살아왔으니깐.

하지만 최근에 어쩌면 가족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를 인물이 몬스터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무릎 꿇은 이신과 같은 선택을 했다.

이후에 자신도 알 수 없는 감정을 떨쳐내고자 우연히 이미리의 아이. 리카이스와 싸워봤지만 그대로였다.

제이다는 말없이 김진석을 바라보고 있었고 넬은 기억을 제대로 지우지 않은 것에 자책하며 김진석을 보고 있었다.

다행히 이미리는 일이 있어 밖에 나가 그들밖에 없었다.

정적이 흐르고 있을 그때. 제이다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루크 님이 오고 있습니다.”

“하…….”

그 말에도 이신은 미동도 없었다. 김진석은 이 상황이 루크가 보게 되면 귀찮아질 게 뻔했기에 한숨이 나왔다.

“바포메트는 어딨지?”

“아직 거기에 있어요.”

넬의 말에 김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로 가지. 이번엔 정식으로.”

그의 말에 제이다는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어디론가 전화하며 나갔다. 문 앞에는 루크가 있었고 급히 나가는 제이다를 바라봤다.

그 사이에 이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김진석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대신 조건이 있다. 그 안에서 있는 모든 일을 함구할 것.”

“알겠습니다.”

루크는 어리둥절한 채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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