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110화 (110/201)

110화

김진석과 넬. 그리고 제이다는 서울에 들어섰다.

“멸망한 세계 같군.”

김진석의 평가는 정확했다. 안개에 휩싸여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자동차가 방치되어 있으며 건물이 반파되어있고 인간의 것인지 아닌지 모를 피가 이곳저곳에 흩뿌려져 있었다.

도로가 박살 나 있었으며 지구에서는 있어선 안 될 발자국들이 널려있었다.

“제이다 씨. 서울에 애니타임이란 편의점이 몇 군데 있는지 아십니까?”

김진석이 신세 진 편의점 점장인 한영석은 서울에 올라가서 애니타임이란 편의점에 점장이 되었다고 한다.

비록 큰 브랜드는 아니었지만 나름 이름 있는 편의점인 애니타임이란 편의점은 서울에 꽤 나 많았고 한영석이 정확히 어디에 점장인지는 몰랐다.

그래서 최소 자신보단 많이 서울에 대해 알 것 같은 그녀에게 물었는데 제이다의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았다.

“윽.”

서울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머리를 부여잡고 쓰러진 제이다였지만 금방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그녀의 눈동자가 점점 흐릿해지고 있었다.

김진석은 이 상황이 어딘가 익숙했다.

“괜히 데려왔네.”

그 말과 동시에 화살이 날아왔다. 과연 A급 플레이어였는지 곧바로 머리를 노렸지만 김진석은 화살을 가볍게 손등으로 쳐냈다.

하지만 김진석은 화살이 날아왔음에도 그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활을… 사용하네?”

김진석은 서울의 상황을 대충 눈치챌 수 있었다. 안개. 그리고 안개를 들이마시면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하는 인간.

광기의 굴과 똑같지 않은가.

하지만 분명 놈들은 이성을 잃은 채 무기를 사용할 지능도 못 하는 미물인 몬스터였다. 딱 한 놈을 빼고.

“으… 죄송…합니다.”

제이다는 자신이 활을 쏜 것에 놀랐는지 활을 떨어뜨리며 고개를 숙였다. 아직 머리가 아픈지 말도 더듬으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정화해 줄까요?”

“…음?”

넬의 말을 김진석은 이해하지 못했다.

“정화가 가능한가?”

“제가 만든 건데요?”

“……?”

“?”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광기의 굴. 그 또한 악마들이 만들어 낸 것이고 안개 또한 마찬가지. 그리고 눈앞의 넬은 악마였다.

“모르고 계셨어요?”

“…아.”

설령 다른 세계의 악마들이라고 한들 넬은 악마다. 그것도 대 악마. 과연 그녀가 로스트 월드에서 얼마의 인간을 죽였을까. 그건 알 수 없었다.

“치료 해줘. 되도록 또 이런 일 없도록 해주고.”

“네~”

저 여고생같이 해맑은 넬을 보면 얼마든지 착각하겠지만.

넬은 제이다의 머리채를 잡고 뭔가 중얼중얼거리더니 이내 제이다의 호흡이 안정화 되며 제정신을 되찾았다.

“당신이 만들었단 게 무슨 소리죠?”

제이다는 제정신이 아닌 와중에도 넬과 김진석의 대화를 들은 것 같았다. 하지만 당황할 필요는 없었다.

“알 필요 없다.”

* * *

서울에 들어오자마자 한바탕 소동을 끝낸 후 셋은 천천히 걸으며 서울을 둘러보고 있었다.

“몬스터가…?”

마치 산책하듯 둘러보고 있었지만 아무런 몬스터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저 흔적만이 존재할 뿐.

제이다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김진석은 아니었다.

이미 주변에는 수많은 몬스터가 숨죽인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성을 잃었을 몬스터가 분명한데 왜 달려들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을까.

“넬.”

“…네?”

천연덕스럽게 대답하고 있는 그녀. 넬 때문이었다. 제이다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넬의 몸에서 아주 짙은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기. 몬스터들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달려들면 죽는다는 것을.

김진석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고개를 저으며, 됐다고 말했다. 비록 지금의 서울은 부서지고 파괴되었지만 5년 전만 해도 살고 싶은 곳이었다.

물론 김진석에게 안타깝다는 마음 따위는 없었지만 그때를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 안개에서… 살아계신다고 한들 멀쩡하진 않으시겠네.”

일반인인 그가 안개를 들이마시고 멀쩡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넬도 완벽히 안개에 잠식당한 이들은 되돌릴 수가 없다고 했다.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넬이 몸에서 마기가 나오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그녀도 지금 김진석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자기의 안개 때문에 그의 은인에게 피해가 간 것 같아서 기분이 언짢은 상태였다.

그녀의 감정에서 흘러나오는 마기 때문에 애꿎은 몬스터들만 도망가고 있었다.

김진석은 넬의 머리를 그저 톡톡 두드리며 위로해줄 뿐이었다. 사실 김진석은 이름조차 최근에 안 편의점 점장님에게 그렇게까지 은혜를 갚을 생각은 없었다.

어렸을 때는 잘 몰랐지만 한영석도 그를 싸게 부려먹었고 김진석도 그의 아래에서 신분을 비롯한 의식주를 받았으니깐.

물론 그가 아니었다면 제대로 정착하지 못할 수도 있었으니 해줄 수 있는 건 해주려고 했는데 말이다.

“어쩔 수 없지 뭐.”

그보다 아쉬움이 더했다. 강한 몬스터들이 즐비할 거라고 분명 말했는데…….

“아.”

그제야 김진석은 생각났다. 이곳이 왜 전장으로 변했는지를.

로스트 월드에 들어갔다가 정신이 망가진 채 돌아온 플레이어들이 많았다는 건 로스트 월드의 강한 몬스터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김진석은 이미 로스트 월드에서 안 잡은 몬스터는 없다시피 했다.

“내 실수였네.”

김진석은 혀를 차며 허무한 발걸음을 돌리려고 할 때.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어? 저기 사람이… 걸어오고 있어요?”

제이다는 말하면서 이상함을 느꼈다. 평범한 사람이 서울에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

사실 한국 정부는 안개에 닿으면 광기에 물들어 몬스터로 변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숨겼다.

초기 대처를 서울에 플레이어들과 군대를 파견했다고 했지. 하지만 그건 한국 정부의 가장 큰 실수였다.

그들 전부가 안개에 잠식돼 몬스터로 변해버린 것이다.

물론 안개가 인간을 몬스터로 변하게 한다는 것을 예상할 수 없었던 건 사실이었지만 군대와 플레이어를 그것도 S급 플레이어도 없이 너무 성급하게 파견해 허무하게 잃은 것이다.

플레이어 약소국가가 된 이유도 그때 많은 플레이어를 잃은 것 때문이었다.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한국이 플레이어 약소국가가 된 이유가 그저 서울의 안개와 S급 플레이어조차 어찌할 수 없는 괴물이 나와서 그런 거로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랬다면 어떻게 서울을 봉쇄할 수 있었겠는가. 물론 그런 괴물이 나오기는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섣부른 대처 때문이었다. 제이다는 그 사실을 고작 자신의 상태가 안개를 들이마시고 이상해졌다는 걸로 알아차렸다.

그런데 눈앞의 걸어오는 자는 멀쩡해 보였다. 안개를 들이마셔도 멀쩡한. 마치 김진석과 넬처럼.

“오랜만입니다.”

그리고 걸어오는 자. 정장을 입은 평범한 할아버지는 김진석을 아는 듯했다.

김진석도 그를 알았다. 모를 수가 없었다. 그들의 주변에 진을 치고 있던 몬스터들을 그저 손짓으로 물려 보낸 그를 모를 리가 없었다.

“오랜만!”

“바포메트.”

넬과 같은 대 악마. 바포메트는 서울에 있었다.

제이다는 여전히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 * *

“넬. 그대는 왜 같이 다니지?”

“음… 그냥? 심심해서?”

제이다는 S급 플레이어 둘과 아는 사이인 서울에 있는 할아버지의 정체가 궁금했다. S급 플레이어 둘의 정체도 정확히 모르지만.

셋. 이제는 바포메트라 불린 자까지 합쳐 넷은 서울의 중심부로 향하고 있었다. 물론 걸어서는 멀었고 날아가고 있었다.

“저기…”

“음?”

“아… 아니에요.”

제이다는 자신을 잡고 날아가는 몬스터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몬스터라고 해야 하나. 그저 평범한 남자에게 날개가 달린 자가, 말도 통하는 그가 자신을 잡고 날아가고 있었다.

처음엔 안개에 잠식돼 변형된 몬스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평범히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분명 아무것도 없었던 등 뒤에서 날개가 나타나 날아가는 둘과 땅에는 어디서 나타난 지 모르는 검은색 호랑이를 타고 둘을 따라가는 김진석을 보고 이제는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 * *

“오?”

김진석은 바포메트가 서울을 잘 아는 듯했고 찾는 사람이 있어 물으니 자신을 따라오라고 해서 순순히 따라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넬이 잡아준다기에 거절하고 맨몸으로 뛰려고 했는데 흑호가 자발적으로 나타났다.

마치 항의하는 듯한 모습에 김진석은 피식 웃으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등에 탔다. 흑호는 그에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나갔다.

그런데 흑호가 오랜만에 나와 흥분했는지 너무 빠르게 달려나갔고 몬스터들이 깜짝 놀라 피할 겨를도 없이 몸으로 박아 버렸다.

몬스터가 순식간에 나가떨어져 더는 움직이지 않았고 김진석은 그 모습에 마찬가지로 깜짝 놀라며 내릴 준비를 했다.

하지만 흑호는 사라지지 않았다.

“왜지?”

흑호가 혼자 나서서 몬스터를 죽일 때는 원래 사라지지 않았지만 김진석이 타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김진석이 전투에 돌입했을 때처럼 똑같이 사라졌어야 했다.

“잠깐만.”

달려가는 흑호의 위에서 그대로 활을 꺼냈고 안개 속에 숨어있는 몬스터에게 화살을 날렸다.

당연히 몬스터는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고 죽어버렸고 김진석은 땅에 착지할 준비를 했지만 흑호는 사라지지 않았다.

“게임이… 아니라 그런가?”

게임 속 세계인 로스트 월드에선 게임의 법칙을 전부 따라야 했지만 여기는 지구. 비록 게임 속 세계보다 더 게임과 같았지만 현대인 이곳은 게임 속 세계가 아니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제이다는 못 봤지만 방금 김진석이 화살을 쏘아내 죽은 몬스터의 레벨은 80. 서울을 가장 많이 파괴하고 무너뜨린 몬스터 중 하나였다.

* * *

“그래서. 굳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이유는 뭐지?”

서울의 중심. 김진석은 몰랐지만 정말 서울의 한가운데인 남산 타워 위로 바포메트가 안내했다.

위에서 바라보니 서울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비록 안개에 휩싸여 있지만 이 안개는 남산 타워 위까지는 올라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당신이 은혜를 입은 자. 이자입니까?”

그렇게 말하며 바포메트의 발아래에서 마법진이 생기더니 흑색 큐브가 나타났고 박스 열리듯이 열리며 그 안에서 나온 건 한 인간이었다.

평범한 중년 남자. 비록 배가 많이 나와 있었지만 김진석이 아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눈이 흐릿했고 손톱이 비정상적으로 길게 자라나 있었다. 전형적인 광기의 굴에 갇힌 몬스터. 갈룸의 모습이었다.

“넬.”

“안 돼요. 이미 저 정도로 변환됐으면 바포메트가 다룰 정도니깐요.”

넬을 불렀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바포메트가 다룬다는 건. 즉 몬스터란 얘기다.

“…짜증나는군.”

은혜 갚을 생각이 그렇게까지 없다. 그건 사실이었지만 두 눈으로 몬스터로 변한 모습을 바라보니 기분이 좋지 못했다.

게다가 손톱과 입가의 말라붙은 피는 이미 뭔가를 잡아먹은 지 오래인 듯했다.

김진석의 말에 움찔거린 넬이었지만 김진석은 그걸 신경 쓸 겨를이 못됐다. 정신을 잃은 듯한 그가 손가락을 부들거리며 일어나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실 겁니까?”

바포메트의 말에 김진석은 깊은 한숨을 쉬며 인벤토리에서 활을 꺼내 이제는 몬스터가 되어버린 한영석의 심장을 꿰뚫었다.

꿈틀거리며 일어나려 했던 그는 이내 숨을 거뒀다.

“네 실험체가 되는 것보단 이게 낫겠지.”

지구에 와서 처음으로 김진석의 감정이 요동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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