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108화 (108/201)

108화

“…….”

루크는 김진석과 넬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누가 봐도 신체 능력만 가진 둘이 아니었지만 뻔뻔하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물론 모든 S급 플레이어가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밝힌 건 아니었지만 둘은 정도를 넘어섰다.

“신체 능력이 전부 맞습니까?”

“맞는데. 무슨 문제 있나?”

김진석의 말에 둘의 능력과 플레이어 등급을 적는 사람은 루크의 눈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루크는 둘을 어이없다는 식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신체 능력이 전부가 아니었지만 할 일만 하는 공무원의 자세를 그대로 본받아 S급 플레이어. 김진석, 넬의 능력은 신체 능력이라고 적었다.

“간단한 검사가 있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품에서 비늘과 비슷한 것을 꺼냈다.

“지구에서 나타난 가장 단단한 몬스터의 소재로 부서져도 다시 재생하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이 소재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흠집이라도 낸다면 S급 플레이어. 만약 부수신다면 최상위 S급 플레이어로 판정됩니다.”

김진석은 그 소재가 리카이스, 루크의 갑옷을 만든 몬스터의 소재라는 걸 곧바로 알았다. 과연 다른 게임이지만 최강의 몬스터였는지 지구상에서도 가장 단단한 몬스터라 늑대인간의 발톱도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하면 됩니까?”

“언제든지 하셔도 됩니다.”

김진석은 넬을 보고 먼저 하라고 눈치를 줬고 넬은 가볍게 검지 손톱으로 소재를 긁었다. 세상 끔찍한 칠판 긁는 소리가 나며 소재에 흠집이 났지만 넬은 그에 만족하며 물러섰다.

너무나도 가볍게 고작 검지로 소재에 흠집을 냈음에도 그녀는 김진석에게 순서를 양보했다.

“제가 더 강하면 안 되잖아요?”

윙크하며 말하는 넬의 모습은 소문 그대로 여신 같이 아름다웠다. 정작 윙크하는 대상인 김진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정부 쪽 인물과 루크는 고작 손톱으로 소재에 흠집을 내는 넬을 보고 경악했다. 게다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소재의 재생도 늦었다.

김진석은 소재가 재생되기까지 기다리지 않고 먼저 소재를 만져보았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비늘은 따듯했다. 그런데 재생이 끝나자 얼음에 곧바로 댄 것처럼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신기했다. 정작 게임 속 세계에 있을 때는 몬스터들을 제외하곤 게임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는데 오히려 현실이 더더욱 게임과 같았다.

“영원히 재생합니까?”

“마나를 주입하면 영원히 재생하긴 합니다만 완전히 부서지면 재생하지 못합니다.”

마나. 플레이어 중에서 게임에서와 같이 마법사도 존재했고 마법사는 마나를 다룬다. 현실에서의 마법사는 과학자 중 하나로 분류되는데 그들이 발명한 대표 물건이 바로 몬스터 탐지기였다.

루크의 갑옷을 확인했을 때 분명 재생한다고 적혀있었는데 내구도가 깎여 있던 게 그 탓인 것 같았다.

김진석은 인벤토리에서 부서지기 직전에 고블린 단검을 꺼냈다.

루크는 김진석이 손에서 단검을 뽑아내는 또다시 마법 같은 일을 벌이자 이제는 포기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김진석은 급소를 노리듯이 단검으로 비늘을 찔렀지만 부서지기 직전의 단검은 그 마지막 일격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그 모습에 넬을 비롯해 루크와 정부 쪽 인물은 비늘을 바라봤지만 비늘엔 흠집조차 가지 않았다.

넬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루크와 정부 쪽 인물은 날이 다 빠진 단검으로 가장 단단한 소재를 부수려고 시도한다는 것부터가 이해가 안 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기를 빌려드릴……?!”

루크는 말하다가 갑자기 던져진 비늘을 받았다.

“루크 씨가 한번 해보시죠.”

김진석의 말에 루크는 의문을 가졌지만 자기도 오랜만이니 한번 힘을 주려는 시도함과 동시에 부서져 버렸다.

고블린의 단검과 같이 산산조각으로.

“제가 안 부쉈습니다?”

김진석은 이미 알고 있었다. 고블린의 단검에 비늘이 닿았을 때 비늘의 내구도가 정확히 딱 1이 남았었다.

아쉽긴 했지만 문제는 이걸 부수면 자신이 물어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루크를 시킨 거고 그대로 부서진 것이다.

누가 봐도 김진석의 짓임을 알 수밖에 없었다. 정부 쪽 인물과 루크는 어이가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는 김진석을 쳐다봤고 넬은 그럼 그렇지라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한국의 새로운 S급 플레이어가 정체를 밝혔다.

정확히 한 달이란 시간을 꽉 채워서 마지막 날에서야 밝힌 것이다. 다들 왜 S급 플레이어 둘이 정체를 숨긴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결국엔 꼬리를 내린 것으로 생각했다.

한국이 밝힌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둘 중 한 명은 최상위 S급 플레이어라는 것. 그것도 신체 능력으로 말이다. 한국엔 고작 넷의 S급 플레이어밖에 없는데 그중 둘이 최상위 S급 플레이어였다.

전 세계가 한국이 플레이어가 적은 나라라고 욕해도 절대 최상위 S급 플레이어인 이신을 욕하진 않았다.

은신에 능하고 총을 사용하는 그를 욕하다가 언제 머리가 날아갈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데 이젠 그와 같은 괴물이 둘이 된 것이다. 그것만으로 한국은 더는 플레이어 약자 국가가 아니게 되었다.

* * *

“어때요? 감시당하는 기분은.”

“…더러운데.”

김진석과 넬은 눈앞의 S급 플레이어라고 증명하는 증표를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바로 그 리카이스의 소재로 만들어진 명함. 사칭이나 가짜 따위는 의미가 없었다. 그냥 인터넷에 치면 그 S급 플레이어가 어디 있는지 나오기 때문에.

그리고 마법사들이 GPS를 발명한 자와 함께 마나를 결합해 이 명함에 집어넣었다.

컴퓨터로 자신의 이름과 넬을 검색하기만 해도 곧바로 위치가 떴다. 다행히 황혼 길드가 관리하는 곳이라 근처에 사람들이 없었지만 문제는 빌딩 밖에 기자와 일반인들이 S급 플레이어를 보겠다고 줄을 서 있었다.

김진석은 저들이 꼴도 보기 싫었다.

“됐다. 어차피 죽이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으니.”

S급 플레이어는 딱 한 번의 한해 범죄의 면죄부를 가진다. 게임 속 세계에서 과격한 방법으로 힘을 얻은 플레이어들은 현대에서도 범죄를 저지르기 일쑤였다.

간단한 예로 현대에서 상사에게 괴롭힘을 받다가 게임 속 세계에 들어갔다 나와 그 세계에 감화된 플레이어가 화를 참지 못하고 상사를 죽인 다던지.

그래서 그럴 바에 지구에서 S급 플레이어의 한해 범죄를 저질러도 면죄를 줘버린 것이다.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지만 어차피 S급 플레이어는 그리 많지 않았고 S급 플레이어가 된다면 범죄를 저질러도 된다는 마음에 그 아래 단계의 플레이어들은 이를 악물고 올라가려는 성향이 생겼다.

그리고 애초에 S급 플레이어가 되면 그 지위 때문인지 잘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았다.

“괜히 시간만 버렸네.”

하지만 알아낸 것이 있었으니. 살아남은 마을 사람은 중국으로 도망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뭔가 찔리는 것이 있는지 곧바로 이름도 바꾸고 아예 새로운 삶을 꾸렸다는 것.

그래서 황혼 길드에서도 알아내는 데 오래 걸린 것이다.

“하… 점장님도 그렇고 풀리는 게 없네.”

게다가 김진석이 신세를 졌던 편의점의 점장님은 생각보다 돈이 많았는지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하필 그때 몬스터들의 침공이 시작된 것이다.

이젠 S급 최상위 플레이어로 판명된 그가 전장에 가려고 하면 얼마든지 갈 수 있었지만 주변에서 만류할 게 분명했다.

“서울에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긴 힘듭니다. 루크 님이 김진석 님이 전장에 가려면 극구 말리라고 했습니다.”

[제이다 LV:46]

깔끔한 정장을 입고 김진석의 집 소파 앞에서 설명하고 있는 여성은 A급 플레이어이며 루크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김진석을 케어하기 위해 보낸 비서와 같은 존재였다.

푸른 눈의 금발인 장발. 아름다운 서양의 미녀인 그녀였지만 특이한 점은 그녀는 절름발이였다.

“비록 절름발이지만 당신을 보좌하는 데 문제는 없을 겁니다.”

김진석이 로스트 월드에서 빠져나온 날. 그녀는 몬스터에게 당해 절름발이가 돼 강제로 플레이어로서 은퇴 당했다.

“왜 절름발이가 되었죠?”

의문이었다. 레벨 46이나 된 그녀가 절름발이가 된 것부터 온갖 포션도 있는 지금 세계에서 왜 회복을 못 하고 있을까.

제이다는 그 상처를 직접 보여주었다.

“슬라임에게 당했습니다.”

방심 따위는 없었다. 현 지구에서 가장 위험한 몬스터가 슬라임이다. 사람들의 인식 때문이었다.

RPG 게임에서 흔히 나오는 슬라임. 그렇기에 매우 약하다고 생각하는 플레이어가 많았다.

하지만 슬라임은 절대 약하지 않았다. 액체와 고체 둘 다돼는 형용할 수 없는 괴물 슬라임은 그 종류도 다양했는데 대부분 색으로 등급을 정했다.

물론 같은 색이라도 다른 등급의 슬라임도 있었으니 플레이어가 가장 조심해야 하고 기피 해야 하는 몬스터였다.

그리고 지금 제이다의 다리는 아기 발 같았다. 비유가 아닌 진짜 아기 발. 종아리의 절반도 되지 않는 기이한 발이 종아리 아래에 간신히 붙어있었다.

“시간의 슬라임이라는 몬스터였습니다. 닿는 모든 걸 퇴화시키는 몬스터였죠.”

사실상 절름발이조차 아니라 한 발로 걷고 있던 것이다.

김진석은 흥미를 가졌다.

“현대에 있는 모든 포션을 사용해도 치유가 안 된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은 체념한 듯 보였다. 실제로 그녀는 모든 방법을 사용해봤다. 그 발을 잘라서 재생하게도 해보았지만 다시 아기 발이 나올 뿐이었다.

“막을 방법은 있습니까?”

“최상위 신체 능력을 가진 S급 플레이어라면 막을 수 있다곤 하지만… 실험한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 말에 김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자신의 신체를 가지고 영구적인 상처가 생길 수 있는 실험을 하겠는가.

“혹시 포션 같은 거 있나요?”

“네…? 예. 보여드릴까요?”

김진석은 고개를 끄덕였고 제이다는 품에서 붉은색 액체가 일렁거리는 유리병을 꺼내 보여주었다.

“S급 플레이어인 김진석 님이 혹여나 다칠까 마련된 최고급 포션입니다.”

[엘릭서 한 방울이 섞인 액체가 담긴 유리병.

모든 걸 치료할 수 있다고 알려진 비약이 한 방울 섞여 있는 액체. 상처를 치료하는데 탁월하다.]

“한국 정부와 루크 님이 협력해 구한 엘릭서입니다. 죽기 직전의 사람도 살린다는 비약입니다.”

김진석은 감정으로 엘릭서란 걸 확인했다. 흔히 게임 속에서 만병통치약으로 불리는 엘릭서였고 과연 게임 속 세계처럼 변한 지구에서도 존재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희석되어있다.

“돈이 있어도 구하기…….”

“순수 엘릭서가 맞습니까?”

“…예?”

그녀의 반응으로 보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희석된 수준도 아니었다. 고작 한 방울만이 들어가 있었으니깐.

김진석은 그녀에게 엘릭서 한 방울이 든 유리병을 빼앗아 넬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어디서 구한 겁니까?”

“그건 저도…….”

그 말에 김진석은 한숨을 쉬었다.

“뭔지 알겠어?”

“음… 저도 처음 보는 거라… 비네가 있으면 가능할 수도?”

제이다는 김진석과 넬의 뜬금없는 대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비네?”

“보셨잖아요? 실험실. 거기 비네 소유예요.”

김진석은 넬의 말에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넬에게 말했다.

“해방해줬는데 다시 부르는 건 염치가 없지. 혹시 어딨는지 알고 있어?”

“그럼요. 마기가 없이 깨끗한 이 세계에서 우리는 서로가 어딨는지 전부 알고 있어요.”

“얼마나 걸리지?”

“몰라요? 저도 얼마나 걸릴지.”

“최대한 빠르게 해.”

“네~”

넬은 발랄하게 대답하며 창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내렸다.

제이다는 여전히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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