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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104화 (104/201)

104화

“고향이었던 거죠? 죄송해요. 대부분 플레이어는 가족을 잃는 경우가 많아요. 게임 속 세계에서 돌아오는 순간 항상 그 근처에는 몬스터가 있거든요.”

이지현은 혼자서 슬퍼하고 혼자서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고블린이 나타난 이유가 바로 김진석 자신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김진석은 굳이 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저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진 그녀의 말에 김진석은 돌아가려는 그녀를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도움을 요청한 마을 사람은 살아있어서 다행이에요.”

“…다시 말씀해보세요.”

“…예?”

갑자기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김진석을 보고 이지현은 당황했다.

“마을 사람이 살아있다고요?”

“예? 예…….”

“지금 어디 있죠?”

김진석은 당장이라도 찾아갈 것 같은 모습을 보이자 이지현은 또다시 오해했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라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하지만 지금 당장은 불가능했다.

“우리 한국이 플레이어로서 약한 국가라… 외국으로 떠났어요.”

그 말에 김진석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지현은 그 미소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가 알아보겠다고 말한 뒤 떠났다.

하지만 그녀는 입가의 미소만 바라봤다.

김진석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살아있다라…….”

황혼 길드에 그 마을 사람이 찾아와 자신의 마을에 몬스터가 나타난 것 같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헌터들을 파견하려는 도중에 몬스터를 감지하는 기계에서 고블린이 그들이 말하는 마을이란 곳에 나타났다는 것을 깨달은 거다.

그 마을 사람은 겁에 질린 채 황혼 길드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돌아오니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알아보니 한국에 못 있겠다고 외국으로 떠났다는 거다.

물론 시간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으니 아직 한국에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놈의 얼굴도 이름도 아무것도 모르는데 찾을 방법이 없었다.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해야겠네.”

다른 의미로 말이다.

이미 밤은 늦었고 그들이 찾아준다고 했으니 김진석은 거대한 침대에 누워서 그를 어떻게 죽일지 생각하며 자신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그리고 거기서 까먹고 있던 스킬이 있었다.

“시험의 탑.”

그와 동시에 김진석의 주변에서 빛이 나더니 4명의 인영이 나타났다.

바포메트와 넬. 비네와 세피드였다.

“…정순한 기운이 가득한 세계군요.”

세피드는 소환되자마자 바로 다른 세계인 것을 직감했다. 넬과 비네는 익숙한 듯 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악마들의 세계도 현대와 같은 시대가 매우 발전한 세계였으니 현대의 이곳과 다른 게 없었을 테니깐.

“내가 있던 방보단 작네.”

“재질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난 별로다.”

비네와 넬은 방을 둘러보며 쓸데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김진석은 천장에 뿔이 닿고 있는 바포메트를 보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좀 작아질 수 있나?”

“알겠습니다.”

바포메트는 김진석의 말에 몸에 마법진 같은 걸 두르더니 이내 모습이 온화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했다.

하지만 키가 거의 김진석과 비슷했고 정장까지 입고 있으니 마치 영국에서 볼 법한 집사 같은 바포메트였다.

“여기가 당신이 원래 살던 세계입니까?”

바포메트는 바로 눈치챘다. 김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는데 문제가 있었다.

“너희가 살던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을 모르는데.”

악마들이 살던 세계인 로스트 월드로 돌아갈 방법을 몰랐다. 알았더라면 이미 진작에 갔겠지. 그런데 4 악마들은 별 상관 안 했다.

“괜찮습니다. 그 세계에서 나온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그럼 저희 해방은 어떻게 된 거죠?”

세피드는 그렇게 말했지만 비네는 현실적으로 생각했다. 그들이 상대해야 할 그들과 대칭되는 악마들이 사라졌으니 김진석과 한 계약은 어떻게 된 건가.

“사라졌으니 너희 맘대로 해.”

김진석은 그들을 잡을 이유가 없었다. 얼마든지 그들을 강제로 사라지게 하고 소환할 수 있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들을 그냥 풀어두면 최상위 플레이어가 고작 57레벨인 걸 생각하면 지구가 악마에게 넘어가겠지.

악마들이 지구를 점령한다고 한들 솔직히 변하는 건 딱히 없을 것이다. 로스트 월드에서도 악마들은 인간을 노예로도 부리는 게 아닌 그저 너무 많아서 죽이는 거였으니깐.

인간들도 새집 들어가는데 벌레가 있다면 죽이는 듯. 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죄 없는 인간들이 자신 때문에 죽는 건 죄책감이 들었으니 악마들을 그냥 풀어둘 순 없었다.

“그 말씀은…?”

“이 세계를 구경하는 것이든 뭐든 아무 상관 없어. 하지만 사람들 함부로 죽이지 마. 너희들에게 덤비거나 하는 놈들은 예외. 나머진 마음대로 해.”

물론 김진석의 말을 들을지는 의문이었다. 시험의 탑에서 해방이라곤 하지만 제한된 해방이었고 풀어줬으니 그들이 다른 곳으로 가서 뭘 하든 김진석이 알 방법은 없었다.

악마들에게 말하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그들의 양심에 맡겨야겠지.

4 악마는 드디어. 라는 표정과 함께 김진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은 이미 알고 있는 듯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어차피 그들에게는 그 어떠한 제약도 없겠지.

김진석은 그들이 나간 방문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가 거대한 침대에 누워 처음으로 긴장을 놓은 채 푹 쉬며 잠을 청했다.

그렇게 다음 날 아침.

벨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김진석은 잠에서 깼다. 로스트 월드에 들어선 이후 처음으로 푹 잠을 청한 김진석은 고개를 저으며 잠을 깼고 집 문을 열었다.

이지현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부 길드장인 루크가 직접 찾아왔다.

“찾았습니까?”

“아니. 그런데 내가 제일 중요한 걸 까먹었더군.”

루크의 말에 김진석은 의문을 가졌는데 답은 금방 돌아왔다.

“자네는 아직 미등록 플레이어니깐…….”

그런데 루크는 말하는 도중에 한심함과 실망한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벌써 여자를 들였나?”

그 말에 김진석은 뒤를 돌아보니 넬이 서큐버스답게 헐벗은 복장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었다.

김진석은 한숨과 함께 손짓해 그녀를 방으로 보냈고 루크에게 말했다.

“등록해야 합니까?”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최대한 조용히 심사할 테니 걱정하지 말게.”

로크는 김진석의 성격을 대화 몇 마디 나눈 것만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에게 참견하는 걸 싫어한다는 것을.

그래서 원래는 정부가 따로 관리하는 곳에 직접 가 심사를 받아야 했지만 1위 길드인 황혼 정도면 얼마든지 그들을 부를 수 있었다.

김진석은 어쩔 수 없다는 말에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뒤를 따라가려다가 머리가 부스스한 것을 보고 양해를 구했다.

“씻고 가도 됩니까?”

“…마음대로 하게.”

물론 대답을 받기도 전에 김진석은 씻으러 들어가고 있었다. 루크는 한숨을 쉬며 닫지도 않고 들어간 방에 문을 마저 열고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여기 앉아보는 것도 오랜만이군.”

루크는 과거 이미리와 함께 황혼 길드를 설립하면서 이미리는 자기가 가장 좋은 방을 갖고 싶다고 해서 이곳에 왔었다.

길드장인 이미리는 이 방을 차지했지만 당연히도 방에 머무르긴커녕 여행을 빙자한 놀러 다니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루크는 추억에 잠겨 주변을 둘러보는데 어느새 눈앞의 방금 보았던 헐벗은 여성이 자신을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A급 최상위 플레이어인 그가 눈앞의 여성이 방에 나와서 앉을 때까지 눈치채지 못한 것이 이상했지만 딴생각하고 있어서 그랬거니 했다.

그리고 눈앞의 여성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남자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게임 속 세계에서 돌아왔을 때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게 살의일 수도 있지만 그걸 해소하지 못하면 성욕으로 뒤바뀌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김진석도 눈앞의 여성 같은 자를 불러 성욕을 해결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일을 하는 여성치고는 너무나 아름다운 데다가 외모도 동양인은 아니었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긴 당신 같은 인간이 올 곳이…….”

“입 닥쳐.”

당연히 황혼 길드에서는 이런 일을 선호하지 않았고 그녀를 내쫓으려고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말에 어이가 없어서 강제로 내쫓으려고 일어나려 했다.

“…?!”

하지만 엉덩이가 소파에서 떼어지지 않았다. 분명 눈앞의 여성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루크의 육감이 그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일어서지 말라고.

“인간 주제에 내게 말 걸지 마. 역겨우니깐.”

그녀의 폭언에도 루크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입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몸이 저절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지만 그는 최상위 A급 플레이어.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루크가 지금껏 보았던 여성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녀였지만 이 알 수 없는 현상 때문에 그런 건지. 그녀의 허리춤에는 박쥐와 같은 날개가 펼쳐져 있었다.

“넬?”

“…후.”

하지만 김진석이 그녀의 이름으로 추정되는 이름을 부르자 귀신같이 그 현상은 사라졌고 심호흡하며 루크는 몸의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저도 따라가도 되나요?”

“…옷은 좀 제대로 입어.”

자신에게 말했던 거와 달리, 마치 옥구슬이 구르는 듯한 소리를 내며 씻고 나온 김진석에게 말을 걸었다.

루크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지만 어느새 그녀의 허리춤에는 날개가 사라져 있었다.

“…잘못 봤나.”

“같이 가도 됩니까?”

김진석의 말에 루크는 여성을 바라봤고 그녀는 이미리의 옷을 마치 자기 옷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고르며 입고 있었다.

루크는 몸을 한 번 털어 딱딱히 굳은 몸을 풀며 말했다.

“…한 명은 괜찮겠지.”

그렇게 말하며 루크는 밖으로 나갔고 이내 캐주얼한 옷으로 갈아입은 넬을 보며 김진석은 의문을 가졌다.

“기껏 해방해줬더니 뭐 하는 거야?”

다른 악마들은 떠났는데 넬은 왜 남았을까. 그녀의 이유는 간단했다.

“별거 없던데요? 우리가 있던 세계와 완전히 똑같다고 해도 무방해요.”

당연했다. 애초에 그 세계를 지금 이 세계를 본 따 만든 것이니깐. 그런데 왜 굳이 자신에게 돌아왔는지.

“전 걔네와 달리 별다른 목적은 없거든요. 전 오로지 재미. 그 하나로 살아가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은 당신 옆이 제일 재미있을 것 같네요.”

그녀는 서큐버스이긴 하지만 인간의 정기를 먹거나 하는 서큐버스가 아니었고 그저 재미와 즐거움을 위해 살아가는 악마였다.

“날개는 어디… 아니 알아서 했겠지.”

* * *

“반갑습니다. 정보부 실장 김상훈이라고 합니다.”

[김상훈 LV:50]

정부 쪽 플레이어인 그는 A급 플레이어로 자신을 정보부 실장이라 소개했다. 그를 만난 곳은 루크를 처음 만난 곳인 그 방이었다.

하루 만에 교체를 한 건지 김진석이 뚫었던 조그마한 바람구멍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김상훈이 악수하려고 내민 손을 김진석은 유심히 바라봤다. 아무것도 없는 그의 손이었지만 김진석은 이미 그의 스킬을 확인했다.

[접촉한 것의 기억과 생각을 읽을 수 있다.]

흔히 불리는 사이코메트리란 능력인 것 같았다. 자신의 생각을 마음대로 읽으려고 하는 것을 보고 기분이 나빠졌다.

문제는 김진석의 감정을 넬도 읽는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루크와 김상훈의 안색이 나빠지고 있기에 김진석은 넬을 바라봤더니 그녀의 몸에서 마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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