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103화 (103/201)

103화

“등록되지 않은 플레이어들은 범죄자로 취급받는다. 힘을 가진 대가가 필요한 법이다.”

게임 속 세계에 오래 있어서 그런지 김진석은 이해가 안 됐지만 이곳은 현대. 힘을 가졌다고 모든 걸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이해했다. 하지만 궁금한 것이 남아있었다.

“그 미등록 플레이어의 힘이 압도적으로 강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게임 속에선 극히 상식적인 질문. 레벨이 높은 PK 플레이어. Player Killing을 하는 플레이어들을 레벨이 낮은 플레이어가 상대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김진석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이곳은 현대.

“아무리 나라도 총을 피하긴 어렵지.”

화기가 있었다.

거대한 몬스터들에겐 총은 별로 통하지 않지만 미사일은 통한다. 플레이어도 마찬가지. 총이 안 통하면 미사일을 쏘면 됐다.

높은 등급의 플레이어는 병기나 다름없었기에 저지하기에는 미사일도 마다하지 않는 시대였다.

“저 정도면 소총까지는 버텨내지만 저격 총과 같이 탄의 크기가 큰 것은 맞으면 아무리 나라도 몸에 구멍이 나지.”

A급 최상위 플레이어면서 신체 능력이 뛰어난 루크 정도나 돼야 총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김진석의 생각은 달랐다.

“미사일도 통하지 않는 상대는?”

“…그런 괴물은 거의 없을뿐더러 그런 자들이면 오히려 플레이어로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간다.”

A급 플레이어는커녕 C급 플레이어만 돼도 남 부럽지 않게 살아가는데 A급 플레이어라면 어떻겠는가.

“그래도 있다면… 괴물은 괴물이 상대한다.”

그럴 땐 플레이어 사이에서도 괴물이라 불리는 자들. S급 플레이어가 나서게 된다.

“계속해서 질문을 받았으니 이젠 내가 질문할 차롄가?”

루크의 말에 김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게임이었지?”

많은 게 생략된 질문이었지만 김진석은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로스트 월드.”

하지만 그 말에 루크는 한숨을 쉬었다. 다짜고짜 곧바로 한숨을 내쉬니 기분이 나빠지려는 김진석이었지만 루크는 그럴만한 상황이었다.

“한국에서 유명한 게임이란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세계에 간 플레이어들은 전부 정신병원에 갇혀있다. 귀신에게 홀린 듯한 자도 있고 사지를 푸들거리며 개 거품을 무는 자까지. 그 세계에서 멀쩡히 살아나온 자는 없다. 다시 묻지. 로스트 월드가 맞나?”

한국에서 유명한 게임인 로스트 월드인 만큼 그 게임 세계로 들어간 플레이어들도 많았다. 하지만 멀쩡히 살아나온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걸 이용해 플레이어들은 자기가 로스트 월드에 들어갔다가 살아나왔다고 말하며 길드에 가입하려는 자들이 많았다.

당연히도 전부 거짓말이었고 그렇게 내쫓은 플레이어만 수두룩이었다. 게임을 가장 잘한다고 알려진 한국이었지만 정작 플레이어의 숫자가 적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로스트 월드에 들어갔다가 정신병원에서 치료받는 플레이어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정정할 기회를 주지. 로스트 월드가 맞나?”

루크의 말에 김진석은 한숨을 쉬었다. 김진석은 사실 이곳에 온 이유는 하나였다. 편의점 사장님을 쉽게 찾아보려고.

6년이 지난 지금도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몬스터까지 나왔으니 안 좋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범죄자로 몰리고 심문하는 듯한 모양새까지.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하나.

“로스트 월드가 아니면 어떻게 할 거지?”

“…두들겨 패고 쫓아내야겠지.”

김진석의 기세가 바뀌자 루크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플레이어들은 S급 플레이어의 수준을 잘 모른다.

하지만 이지현은 다르다. 그녀가 있는 길드의 길드장인 이미리가 S급 플레이어인데 잘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 그녀가 S급 플레이어 같다고 한 자였다. 물론 착각일 수도 있지만 아니라면…

그리고 게임 속 세계에서 갓 벗어난 자는 흥분하고 격앙되어 있다. 특히나 싸움이 많은 세계에 있었던 자들은 더더욱.

루크는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딸이 있으니 자리를 바…….”

“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루크는 김진석을 바라봤는데 김진석은 그저 뒤를 가리킬 뿐이었다. 루크는 뒤를 돌아봤지만 그곳엔 전경이 모두 보이는 거대한 창문일 뿐이었다.

무슨 짓이냐고 따지려고 할 때. 밀폐된 이 공간에서 절대 느껴지지 않을 바람이 그의 뒤로 불어왔다.

루크는 급히 다시 뒤로 돌았고 자세히 보니 창문에 아주 조그마한 바람구멍이 뚫려있었다.

“아빠? 피 나는데?”

딸의 말에 루크는 손을 뺨에 가져다 댔고 손을 보니 피가 베어 나왔다. 루크는 그제야 뺨에서 쓰라림이 느껴졌다.

“…….”

“내가 로스트 월드에서 살아왔건 아니건 그쪽이 알 바 아니지.”

김진석의 말에 루크는 시선을 그에게 돌렸다.

“6년 전의 편의점 정장님을 찾고 있는데 찾을 수 있나?”

* * *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신경을 눈앞의 남자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길드장. 아니 사실상 루크 본인이 주로 사용하는 이 방의 창문은 특수 제작된 것으로 A급 플레이어 이상만이 부술 수 있는 단단한 재질이었다.

절대 보수가 안 돼서 부서지는 재질이 아니었다.

“…6년 전?”

“그런데.”

루크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루크는 길드장인 이미리와 같이 다니며 많은 S급 플레이어들을 만나왔다. 자신 또한 S급 플레이어가 되기 직전이었으니.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다르다.

“위치를 특정할 수 있다거나 편의점에 이름을 기억하는 게… 있나?”

“…아. 잠시만.”

남자는 허공에 손짓하더니 손에서 구형 핸드폰이 생겨났다.

“쯧. 배터리가 다 됐네. 그거 충전하면 다 나올 거야. 워낙 별의별 일이 많다 보니 나도 까먹어서.”

남자의 말대로 6년 전에서나 볼 법한 핸드폰이었고 그걸 충전할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루크는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찾으면 연락을… 줄 방법이 없군.”

그렇게 말하며 루크는 책상 서랍에서 신형 스마트폰을 하나 꺼내 그에게 던져주었다.

“우리 황혼 길드의 비상 연락망이다. 그쪽으로 연락을 주겠다.”

“어떻게 사용하는 건데?”

“…밖에 이지현 플레이어를 대기시켜두었으니 그녀에게 물어보면 된다.”

루크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볼일이 끝났다는 듯 뒤로 돌아 걸어 나가려고 했다.

“잠깐.”

“…?”

그러고 보니 루크는 가장 중요한 걸 물어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름이 뭐지?”

“김진석.”

그 말을 끝으로 눈앞의 남자. 김진석은 문을 열려다가 자동문인 걸 보고 신기해하며 나갔다.

“…후.”

루크는 그제야 한숨을 돌리며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몸에서 간신히 긴장을 풀 수 있었다.

“괜찮아?”

딸 아이의 물음에 루크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고 답했다.

세간에는 루크를 S급 플레이어인 이미리에게 붙어먹으며 성장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물론 극히 일부인 소문이었고 루크의 힘을 아는 자라면 그 소문이 루크를 시기해서 난 소문이란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루크. 그가 최상위 A급 플레이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 육감이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으로 그는 온갖 역경을 헤쳐나갔다.

그 육감이 처음으로 경종을 울리며 루크에게 경고를 보내왔다. 수많은 몬스터와 플레이어를 상대해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미리의 몬스터와 S급 플레이어를 상대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루크는 뺨에 난 상처를 다시 한번 어루만지며 김진석이란 의문의 남자를 상기했다.

“진짜 괴물인가…….”

* * *

“안녕하세요?”

“…….”

김진석과 이지현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시 만났다. 그녀의 팀원은 어디 가고 그녀만이 남아서 김진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네가 데려온 남자. 김진석을 극진히 모셔라. 해달라는 건 전부 해줘. 내가 허락하지.”

부 길드장인 루크가 직접 그녀에게 전화해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녀도 찔리는 것이 있었기에 알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루크는 그저 간단히 생각했다. 이지현이 꽤 나 반반하게 생겼으니깐. 예쁜 여자 싫어하는 남자는 없었으니깐.

단발머리의 이지현은 이목구비 뚜렷한 전형적인 한국형 미녀였다.

“…….”

게다가 그녀의 성격은 사글사글해서 그 누구와도 친하게 지냈지만 눈앞의 김진석은 뭔가 거북했다.

말도 잘 안 하고 허공만 보고 있는 김진석의 모습은 뭔가 무서웠다. 그리고 루크의 말도 한몫했다.

한국 1위 길드의 부 길드장인 루크는 설령 대통령에게도 저렇게 극진히 모시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언제나 1위 길드의 자부심을 잊지 말라고 하는 루크였지만 눈앞의 남자. 김진석에겐 달랐다.

“저기…….”

“이지현 씨? 맞죠?”

뭔가 거북했지만 말을 걸어보려고 하는 순간 김진석이 먼저 말을 걸었다.

“네…? 네. 말씀하세요.”

“제가 머무를 곳이 없는데 말이죠.”

이지현은 그제야 김진석이 6년 만에 현대로 돌아왔다는 것을 생각했다. 6년 중 1년은 몬스터가 침공했기 때문에 많은 게 바뀌었으니.

“아! 잠시만요.”

그녀는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를 끊었다.

“빌딩에 남는 곳이 하나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 머무르실래요?”

“그러죠.”

김진석은 고민하지도 않고 승낙했다. 여기서 해준다는데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이지현을 따라 김진석은 자신이 한동안 머무를 곳을 찾아갔는데 거절할 걸 그랬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여기가 길드장님이 사용하셨던 곳이에요. 워낙에 여행을 좋아하시고 돌아다니셔서 없으니깐 그냥 자유롭게 사용하시라고… 부 길드장님이 말씀하셨어요.”

이지현도 긴가민가하면서 말하고 있었다. 과연 길드장이 사용하는 곳이라 그런지 빌딩의 크기를 생각해서도 매우 큰 방이었다.

웬 방만 5개였고 화장실은 2개인 김진석은 난생처음 보는 곳이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김진석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이지현을 보냈고 그는 마저 방을 둘러보았다.

5개의 방 중 하나에서는 그 길드장이 사용하는 방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들어왔다. 여성형 옷과 속옷이 있으니 맞겠지.

김진석은 그녀가 사용하는 만큼 방이 가장 넓었으니 그냥 거길 사용하기로 했다. 침대도 무슨 2명이 사용할만한 퀸사이즈 침대였다.

용병의 쉼터에서도 비슷한 사이즈의 침대를 사용하긴 했지만 차원이 다른 질감이었다. 김진석은 오랜만에 편안히 누워서 생각을 정리했다.

아무리 4~5년이 지났어도 편의점이 어디 있는지 알고는 있었다. 물론 6년이 지난 지금에도 편의점이 같은 위치에 있는지 점장님이 살아는 계신지도 몰랐다.

물론 자신이 찾는 건 귀찮으니 남에게 맡기면 됐다.

“최상위 A급 플레이어가 레벨이 57이라…….”

생각보다 수준이 너무 낮았다. 한국이 낮은 건지 아니면 모든 플레이어가 이런 건지. 어차피 뭐든 상관없었다.

로스트 월드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강해졌지만 현대에 오니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무기력해졌다고 해야 할까.

게임은 괜히 직접 겪어보니 꼴도 보기 싫어졌고 죽이려는 마을 사람들은 이미 고블린들에게 전부 죽어버렸다.

“점장님 만나기 전에 돈이나 벌어둘까?”

그때. 밖에서 벨이 울렸다.

김진석은 이지현에게 인터폰의 사용법을 전부 들었지만 귀찮아서 그냥 직접 문을 열었고 밖에는 이지현이 있었다.

“부 길드장님이 정신이 없어서 못 물었다는데 혹시 왜 그 시골에 있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에 김진석은 뭐라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죽이러 갔다가 말할 순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지현은 그걸 다르게 생각했는지 본인이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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