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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102화 (102/201)

102화

김진석은 2022년 2월 22일. 게임 속 세계인 로스트 월드로 들어갔다.

그리고 자그마치 6년이 지난 지금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다른 플레이어들은 2027년 2월 22일에 끌려 들어갔고 고작해야 다음 날 거기서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

김진석은 저들의 레벨이 낮은 이유가 고작 하루만 그 세계에 있어서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다른 플레이어도 게임 속 세계에 오랫동안 있었던 자들도 많았다. 눈앞의 이지현도 그러했다. 그녀는 식인종이 있는 세계에서 적어도 한 달은 넘게 버텼다. 하지만 게임 속 세계에서의 시간은 현실에서도 적용되진 않았다.

“사실입니다. 전 지구에 이 고블린들이 있는 것부터가 이해가 안 되네요.”

“…거짓말하는 것 같이 보이진 않는데.”

김만덕은 김진석의 의심스러웠다.

“이 팔찌를 차 보시겠습니까?”

그때 한 팀원이 김만덕에게 검은색 팔찌를 건넸고 김만덕은 그걸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김진석에게 건넸다.

뭔가 이상해 김진석은 그 팔찌를 확인했다.

[억제 수갑.

팔찌처럼 보이는 수갑으로 플레이어의 힘을 최대한 억제하게 개발됐다.]

팔찌에도 적용되는 감정이었다. 지구에서 개발된 아이템으로 보였는데 설명을 읽어보니 대충 감이 왔다.

수갑이라고 칭한 것 보면 범죄자들에게 차는 것이겠지. 그것도 플레이어인 범죄자에게.

하지만 김진석은 내색하지 않고 그 팔찌를 오른손에 착용했다. 수갑처럼 쇠의 차가움이 느껴지는 팔찌였다.

김진석이 순순히 차자 김만덕은 그제야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두고 사실을 전했다.

“죄송합니다. 그건 수갑의 일종으로 우리 같은 플레이어의 힘을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무례한 행동을 한 점 죄송합니다.”

김만덕은 정말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김진석의 말이 사실이라면 일반인에게 수갑을 차게 한 거나 다름없었으니 무례할 만했다.

김진석은 자연스럽게 그 팔찌를 풀며 도로 건네주었고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하며 그의 사과를 받았다.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김진석을 보고 팔찌를 건네준 김만덕과 이지현. 그리고 그녀의 팀원들은 눈을 크게 치켜떴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지만 이 세상에 저희 같은 플레이어가 생길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선 저희 황혼 길드로 가시죠.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김진석은 그들을 따라 숲을 빠져나갔고 군대를 가지 않은 김진석은 처음 보는 트럭을 향해 올라탔다.

* * *

두돈반을 운전하는 김만덕에게 옆에 앉은 이지현이 물었다.

“…아저씨. 저 수갑…….”

“맞아. A급 플레이어도 풀 수 없는 수갑이지.”

수갑이 본인이 풀 수 있으면 그게 수갑이겠는가. 착용하는 순간 강제로 귀속되는 아이템인 억제 수갑은 남이 풀어 주지 않으면 혼자서 풀 순 없었다.

최상위권 A급 플레이어도 저리 쉽게 풀 수 없었다.

“최소 S급 플레이어다.”

“…괴물이군요.”

* * *

김진석은 오랜만에 지구의 공기를 맞으며 트럭 뒤에 올라타 있었다. 이지현과 김만덕은 최대한 조용히 말하고 있었지만 김진석의 귀에 들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김진석은 능청스럽게 마찬가지로 뒤에 탄 이지현의 팀원들에게 물었다.

“플레이어의 등급을 따로 매기는 것 같은데요?”

대충 알 것 같은 이유로 김진석의 곁에는 아무도 앉지 않고 구석에 박혀있던 그 팀원들은 그의 말에 흠칫 놀라며 말했다.

“아… 예. D급 플레이어부터 S급까지 다양합니다.”

자신을 어려워하는 그들을 보고 김진석은 이참에 지구가 어떻게 변했는지 그들에게 하나하나 전부 다 물었다.

그렇게 1시간.

워낙 시골이라 그런지 빠져나가는 것만으로도 오래 걸렸고 김진석은 궁금한 것을 물어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확실히 지구는 많이 변한 것 같았다. 딱히 김진석이 주변을 돌아다니지 않고 집에 콕 박혀 게임만 해서 정확한 건 모르지만 건물이 부서져 있는 곳이 많았다.

그들의 말로는 2027년 2월 22일부터 몬스터들의 침공이 있었고 그날의 흔적은 아직도 남아있었다.

1년밖에 안 지났으니 전부 복구하기에는 어려워 보였다.

2시간이 더 지나고 황혼 길드라는 곳의 지부에 도착했다. 과연 한국 1위 길드였는지 새로 지은 듯한 깔끔하고 높은 빌딩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김만덕은 자랑스러운 듯했다. 김진석도 게임을 했으니 길드의 존재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플레이어들끼리 길드를 만들 줄은 몰랐다.

물론 혼자서 게임 하는 김진석은 그 어떤 길드에도 들어가 있지 않았고 혼자서 돌아다녔기에 현실에서 보는 게 신기했다.

그런데 김만덕과 이지현의 일행은 김진석을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타더니 맨 위층으로 올라갔다.

김진석은 잘 모르지만 적어도 맨 위층이 가장 좋은 층이란 건 알고 있다. 자연스럽게 맨 위층으로 인도한 그들은 누가 봐도 높은 사람이 있을 것만 같은 거대한 문을 앞에 두고 비서로 보이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길드장님 계신가요?”

“아뇨. 지금은 부재중이셔서 부 길드장님이 대신 있으십니다. 무슨 일이시죠?”

오래 걸리는 걸 보고 김진석은 굳이 비서가 있어야 하는지 생각했다. 이미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그 엘리베이터 안에는 직원이 있었다.

직접 층을 누를 수 있는 게 아닌 그 직원을 통해 어떤 층을 가는지 말해야 하는 매우 귀찮은 시스템.

근데 그게 뭐 외부인을 거르는 것과 관련이 있다면 알겠는데 굳이 꼭대기 층에 비서로 보이는 자가 왜 또 있는 건가.

어차피 올라왔다는 건 볼일이 있다는 건데, 말이다.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비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무슨 버튼을 누르니 거대한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김진석에겐 오랜만에 보는 최첨단이었다.

“들어가세요. 부 길드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거의 5분을 기다려서 들어간 문 안쪽은 개판이었다.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 개판.

왈왈!

컹!

“길드장님이 워낙 개를 좋아하셔서 말이야.”

평범하게 말하는 김만덕이었지만 김진석에겐 평범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투견과 싸워온 김진석은 개가 싫었다.

이렇게 큰 개들은 더더욱.

그런데 본능적으로 감정을 사용한 김진석은 이 개들이 평범한 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LV:42]

[LV:44]

전부 몬스터라고 불릴만한 레벨이었다. 이지현과 김만덕보다도 레벨이 10이나 더 높은 괴물들.

하지만 김진석은 개들이 몬스터건 아니건 상관이 없었다. 개처럼 생기기만 했어도 싫어하는 김진석이었으니.

몬스터와 같은 개들은 익숙한지 김만덕과 이지현의 일행들에게 달려들어 냄새를 맡으며 친한 척을 하고 있었다.

한명 한명 확인하고 김진석의 차례였다. 하지만 김진석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깨갱!

그저 김진석이 노려보는 것만으로 개들은 반항조차 할 생각도 못 한 채 방에서 그를 구경하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꼬마 아이에게 도망쳤다.

“…처음 보는 반응이군.”

그때 누가 봐도 상석이라고 떡 하니 있는 자리에서 한 남성이 말했다.

검은색 정장을 빼입고 김진석과 같은 스포츠머리. 정장을 입었음에도 겉으로 드러나는 탄탄한 근육질은 대단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분명 한국 1위 길드라고 했는데 눈앞의 남자는 흑인이었다.

[루크 LV:57]

“반갑군. 황혼 길드의 부 길드장. 루크라고 한다.”

그의 한국말은 매우 유창했다.

* * *

루크는 자유분방한 황혼 길드의 길드장을 대신해 거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사실상 길드장으로 봐도 무방했다.

루크라면 길드장에게 단 한 번도 쓴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

원래 미국에서 살던 루크였지만 그는 길드장을 따라 한국에 왔다. 그는 게이트 속에서 돌아왔을 때 곧바로 몬스터에게 습격을 받았다.

하지만 몬스터는 운이 없었다. 습격한 것이 바로 루크였기에. 그는 뛰어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몬스터를 압살했다.

그러나 그에겐 가족이 있었다.

자기가 습격당했다는 건 가족도 그럴 수 있다는 것. 곧바로 가족에게 달려갔지만 그의 가족은 전부 몰살당했다.

단 한 명. 딸을 제외하고.

그 당시 고작 4살인 딸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 지금의 황혼 길드장이 지나가다가 딸을 구해줬기 때문이다.

루크는 몬스터들이 딸을 공격하려는 줄 알고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길드장인 그녀가 나타나 그를 말렸다.

자기가 테이밍한 애들이라고.

루크는 처음엔 그녀를 원망했다. 딸을 구해준 것처럼 자신의 가족들을 구해줄 수 있는 것 아니었냐고.

그에 그녀는 미안하다고. 자신이 늦었다고.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그녀도 루크와 마찬가지였다. 방금 막 게임 속 세계에서 나왔을 뿐인데 자신을 습격한 몬스터를 죽이고 딸까지 구해준 것이다.

그 이후로 루크는 딸과 함께 그녀의 고향인 한국까지 따라나섰다.

황혼 길드의 길드장. 이미리. 그녀는 한국에 몇 없는 S급 플레이어였다.

이미리가 했던 게임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게임이었다. 바로 공 같은 걸 던져서 몬스터를 포획하는 게임.

현실에 나온 그녀는 마찬가지로 공을 던져서 몬스터들을 길들였고 그걸 바탕으로 성장해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몸을 지킬 힘이 부족했고 그걸 루크가 전부 보완해주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지금. 루크는 최상급 A급 플레이어. 이미리는 S급 플레이어가 되었다. 지금 눈앞의 개들도 전부 그녀가 포획해 길들인 아이들이었다.

언제나 딸을 지켜주던 용맹한 아이들이었는데 고작 눈앞의 남자가 노려보는 것만으로 깨갱거리며 도망치다니.

“그러니깐… 방금 게임 속 세계에서 풀려났다 이 말인가?”

엄청난 신체 능력을 가진 루크는 밖에서 비서와 이지현이 하는 말을 전부 들을 수 있었다.

“네. 맞아요. 이분은 고블린들을…….”

“그대에게 묻는 게 아니다. 이지현. 돌아가라.”

“…알겠습니다.”

이지현은 기대하는 신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렵게 모신 힐러 하나를 탈퇴시켰다.

그에 실망한 루크는 그녀의 팀원들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단둘. 아니 딸까지 셋이 남은 상황.

“그대가 미등록 플레이어가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있나?”

“미등록 플레이어가 뭔지부터 설명해줘야 할 것 같은데.”

그의 말에 루크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A급 최상위 플레이어이며 황혼 길드의 부 길드장에게 이렇게 뻗대며 말하는 자는 없었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옆에 강아지들한테 둘러싸인 자신의 딸을 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구에 돌아왔더니 이런 상황입니다. 당신도 마찬가지였던 거 아닙니까? 설명을 해 주시죠.”

딸을 보고 한 발짝 물러난 그는 악인처럼 보이진 않았다. 괜히 이지현이 S급 플레이어 수준이라고 말해서 혹해서 데려왔지만 눈앞의 남자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루크도 한숨을 내쉬며 옆에 딸이 있기에 눈앞의 남자에게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 * *

루크는 처음엔 김진석을 미등록 플레이어로 의심했다. 미등록 플레이어란 말 그대로 플레이어로서 등록하지 않고 범죄를 일으키는 범죄자다.

“어이가 없군요. 전자 발찌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김진석이 이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게임 속에서 나온 자들. 통칭 플레이어는 정부에 의해 관리된다.

정확히는 플레이어로서 등급을 심사하고 받는 등록증 같은 것이 있다. 하지만 그 등록증에는 위치 추적기가 담겨 있었다.

누가 봐도 감시하겠다는 소리였다.

“어쩔 수 없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도 동의한 일이야.”

하지만 루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지난 1년간 범죄율이 엄청나게 올랐다. 전 세계적으로 통계를 내린 결과 10배는 더 올랐지. 왜일까.”

전부 플레이어가 벌인 범죄였다.

“플레이어가 되는 조건은 그저 운이다. 그리고 몬스터들이 침공하는 틈을 타 온갖 범죄가 성행했지. 어쩔 수 없다. 전 세계의 플레이어들도 동의한 일이야.”

플레이어들은 갑자기 힘을 얻자 격앙돼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구는 이들이 많아졌고 그렇게 범죄로 이어졌다.

루크의 말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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