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튜토리얼…….”
흔히 MMORPG에서 플레이어들이 말하는 것이 있었다. 만렙, 최고 레벨부터 시작이라고. 그전까지는 전부 튜토리얼이라고.
“어이가 없군.”
김진석은 고개를 저으면서 주변을 살펴봤다. 5년 만에 보는 곳이지만 익숙했다.
숲.
김진석이 어렸을 때 안 좋은 소문이 자주 들려왔던 그 숲이었다. 즉, 이곳은 김진석이 살면서 평생 복수를 꿈꿔왔던 곳.
보육원의 근처 숲이었다.
“…그러고 보니 숲으로 도망쳤다가 로스트 월드로 들어갔었지.”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분명 스산한 기운이 느껴졌던 숲이었는데 지금은 주변의 뭔가 기척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그때 김진석의 위에서 익숙하지만 이 세계에 있어선 안 될 생명체, 고블린이 김진석을 습격해왔다.
나무 위에 숨었다가 급습하는 고블린이었지만 당연히도 김진석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직 집어넣지 않은 고요한 카인의 활의 활대로 가볍게 쳐냈다.
하지만 그 위력은 가볍지 않았다.
고블린의 몸이 휘어 나무를 죄다 부수며 날아갔다. 폭탄이 폭발한 것 같은 굉음과 함께 날아가서 그런지 주변 기척이 전부 이곳으로 모이고 있었다.
“이놈들이 왜…….”
고블린이 모여 사는 특성 때문인지 숲에서 나는 기척은 전부 고블린들이었다.
[고블린 LV:20]
상태창도 평범히 작동하고 있었고, 로스트 월드에서 보았던 고블린들과 생김새도 똑같고 레벨도 똑같았다.
단검과 방패 등등 고블린이 주로 사용하는 무기를 들고 김진석을 포위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진석은 그저 한숨만 나왔다.
“검은색 글씨가 거짓을 말할 리는 없을 테니 여기는 지구가 맞을 텐데 말이지.”
김진석은 고요한 카인의 활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인벤토리도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것도 확인했다.
눈앞의 고블린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 * *
고블린들은 이상했다. 분명 인간을 사냥하려고 왔는데 눈앞의 인간은 너무나도 여유로웠다. 자기들의 숫자는 적어도 서른 마리는 되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눈앞의 인간이 갑자기 사라졌다.
키릭?
고블린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한 고블린의 손에서 단검이 빠져나감과 동시에 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급히 그 고블린을 바라봤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또다시 다른 고블린에게 비명이 들렸고, 시선을 돌렸지만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다시 비명이 들렸다.
고블린들은 공포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 * *
“시체가… 남네?”
김진석은 고블린의 시체에 손을 가져다 댔다. 피가 전부 빠져나온 고블린의 시체는 싸늘했다.
절대 죽은 척을 한 게 아니었다. 실제로 죽은 것이다.
김진석은 지구의 몬스터들은 로스트 월드와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고 혼란스러웠지만 우선 이 숲을 나섰다.
어차피 몬스터가 있건 없건 만약 이 숲이 그가 도망쳤던 보육원의 숲이 맞다면 이 근처엔 그들이 있을 것이다.
김진석을, 아이들을 끝도 없이 괴롭힌 그 마을 사람들.
“처음으로… 즐길 수 있을 것 같군.”
김진석은 언제나 자신보다 강력한 괴물들을 상대해 왔다. 자신보다 약한 자를 상대한 적은 없다시피 했다.
그는 그게 적성에 맞았다. 처음엔 자신이 눈에 띄게 성장하는 것이 즐거웠지만 나중에 가선 강자와의 싸움 그 자체가 즐거웠다.
그렇기에 그는 자기보다 약한 자를 상대하는 건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자기보다 약한 자들을 죽이는 게 즐거울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번은 아니다. 방금까지 고블린을 죽일 때도 별 감흥이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처음으로 약자를 죽이는 게 즐거울 것 같았다.
* * *
“…하.”
김진석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지금 그의 몸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복수를 완료한 게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의 피가 아니라 고블린들의 피였다.
마을이 있어야 할 이곳엔 고블린들이 들이닥쳤는지 거리에는 마을 사람들로 보이는 시체가 즐비했다.
그들은 꽤나 잔인하게 죽어있었다. 시체의 표정만 봐도 매우 고통스럽게 죽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쯧.”
그들이 아이들에게 한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잔인하고 잔혹하게 죽었어야 했는데 김진석은 그게 아쉬웠다.
혹시 생존자가 있을까 싶어 집안으로 들어섰는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달력이었다.
“2028년 2월 22일…….”
김진석이 마을에 찾아갔을 때가 바로 2022년 2월 22일, 6년 전이다. 아무래도 로스트 월드에서 있었던 시간이 그대로 적용된 것 같았다.
“최소 6년 동안 잘 먹고 살았다는 건가.”
그걸 생각하니 또 짜증이 났다. 그리고 또 문제가 있었다.
“…이젠 뭐 한담.”
지구에 몬스터가 있건 없건 별 감흥이 없었다. 게다가 죽여도 금화나 아이템이 떨어지는 게 아니었으니 죽일 이유도 없었다.
물론 먹고 살려면 돈을 벌어야 하니 일을 해야 할 텐데, 그럴 바에 로스트 월드에 있는 게 더 좋았다.
지금 인벤토리엔 셀 수 없이 많은 금화가 있었고, 아디스에 가면 뭐든 할 수 있었으니.
그러고 보니 김진석이 아직 확인하지 않은 게 있었다.
검은색 글씨.
- 로스트 월드를 구하라.
“아직 그대로네.”
검은색 글씨는 저거 하나만 남아 있었다. 지구에 돌아와서도 딱히 별다른 변함 없이 그대로였다.
아무런 안내도 없었다.
김진석은 어차피 마을 사람도 다 죽었겠다, 그냥 로스트 월드로 돌아가려고 했다.
“단탈리온.”
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물론 김진석도 이미 예상하고 있었고, 또 한숨이 나왔다. 현대에 오니 한숨이 많아진 김진석이었다.
“그러고 보니 사장님은 괜찮으신가.”
로스트 월드로 다시 못 돌아가니 그제야 생각이 났다. 이 마을에서 도망쳤을 때 많은 도움을 받았던 편의점 사장님.
처음에는 무뚝뚝하고 막 부려 먹는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지만 사장님은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돌봐준 것이다.
신분증은커녕 출생 신고조차 안 된 김진석의 신분증을 직접 만들어 주고, 나중에 가서 알았지만 양아들로 받아 주기까지 하셨다.
결혼도 안 하시고 배만 불뚝 나온 그였지만 그 배에는 인정과 양심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고 보니 금화인데, 녹이면 금인가?”
김진석의 인벤토리에는 수많은 금화가 있었다. 그가 진짜 금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지만 이름 자체가 금화이니깐.
“흑호?”
혹시나 해 흑호를 불렀지만 녀석은 김진석의 그림자에서 얼굴만 빼꼼 나온 채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봤다.
김진석은 그 모습에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가자, 사장님이 있는 곳으로. 길은…….”
그때. 갑자기 주변에서 인기척이 느껴지고 있었다. 살아남은 마을 사람인가 싶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정확히 고블린이 점령한 이 마을로 다가오고 있었다.
“일곱 명.”
적어도 100미터는 넘는 거리에 있었지만 김진석은 그들의 숫자까지도 정확히 알아차렸다. 김진석은 흑호를 다시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고, 그림자 밟기를 유지한 채 그들을 기다렸다.
* * *
이지현은 플레이어였다.
플레이어란 2027년 2월 22일. 게이트로 빨려 들어가 게임 속 세계에서 튜토리얼을 끝내고 빠져나온 자들을 뜻한다.
갑자기 2027년 2월 22일 날 수많은 실종자가 생겨났다. 그런데 그들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그 실종자들이 바로 플레이어다.
그들은 게임 속 세계에 강제로 빨려 들어가 자기가 했던 게임의 튜토리얼을 진행했다. 이지현도 그 플레이어 중 하나였다.
그녀가 했던 게임은 바로 생존 게임. 그것도 하필 식인종이 나오는 숲에 버려져서 생존하는 게임이었다.
튜토리얼 중 목숨은 총 세 개가 주어진다. 목숨이 세 개지만 처음은 계산하지 않으니 총 네 개의 목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다양한 방법으로 죽었다. 탈수로 죽고, 독이 든 음식을 먹고 죽고 등등.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잔인하게 죽은 건 바로 식인종에게 죽은 것이다.
말할 것도 없었다. 식인종에게 죽었다는 건 어떻게 죽었는지 다들 알 테니깐.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정신력은 대단했다. 식인종에게 죽었을 당시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지만 오히려 그녀의 머릿속에는 복수가 가득 차 있었다.
결국엔 그녀는 처음에 나무를 베라고 주어진 도끼로 식인종의 목을 베며 튜토리얼을 마치며 그녀는 플레이어로 각성했다.
그런 이지현과 같은 플레이어들이 전 세계에 우후죽순 나타났다. 전 인류의 인구 중 1/3이 플레이어로 변한 것이다.
그들은 정말 고작 1분 실종됐다가 발견된 자들도 있었고, 가장 길게 사라진 자가 바로 다음 날에 발견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2027년 2월 22일, 그때부터 지구엔 게임 속에서 볼 법한 괴물들이 생겨났다. 다행히 인간의 화기들이 통했기에 큰 피해는 없었지만 문제는 놈들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첫날인 2027년 2월 22일 날 많은 플레이어와 사람들이 희생되긴 했지만 다음날부터 총을 든 군인들과 함께 효과적으로 괴물들에게 대응하면서 괴물들을 몰아냈다.
그렇게 지구는 다시 인간의 것으로 돌아갔지만 괴물들이 언제 어디서 다시 나타나는지를 알 수 없었으니, 그들에게 대항하며 나타났다 하면 바로 달려가는 직업이 새로 생겨났다.
게임 속 세계에 들어갔다 나온 그들의 특성을 따라 플레이어라 이름을 붙인 것이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강한 몬스터들이 나타나며 화기도 통하지 않는 괴물들까지 나타났다.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그들과 같이 강해진 플레이어들만이 가능했다. 그렇게 지구의 인간들은 체계적으로 몬스터들을 상대했고 그렇게 1년.
이지현은 한국의 플레이어 중에서 상위권에 있는 플레이어였다. 식인종이 살던 세계에서 빠져나온 그녀는 뛰어난 정신력을 바탕으로 지구에서도 나온 괴물들을 죽이며 성장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녀는 플레이어로서 버는 돈이 훨씬 많았기에 회사에서 퇴사했고, 플레이어로 직업을 변경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플레이어들은 목숨을 걸어가면서 괴물을 죽이기 때문에 그만큼 수당이 대단했다.
정부에서도 지원해 주기 때문에 대부분 게이트 속에서 살아나온 자들은 플레이어로서 살아갔다.
하지만 플레이어도 급이 있었고, 이지현은 B급 플레이어였다.
플레이어는 D급 플레이어부터 S급 플레이어까지 다양했다. 전 세계적으로 S급 플레이어는 얼마 없었으며 이지현의 등급인 B급도 그리 많지 않았다.
가장 많은 숫자가 있는 D급 플레이어들의 대부분은 게임 속 세계에서 겪은 PTSD로 정부에서 지원해 준 정신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자들이 많았다.
이지현만 해도 식인종에게 죽었을 당시를 생각하면 치가 떨렸는데 당연했다.
그리고 지금 이지현은 한 시골에서 고블린들이 발생했다는 정보를 받았다. 플레이어들은 게임 속에서처럼 길드를 창설했고, 이지현은 한국의 1위 길드, 황혼 길드에 가입되어 있었다.
지금 그녀는 황혼 길드의 동료들과 함께 고블린을 퇴치하려고 차를 타고 이동했다.
“여기 근처야. 내려서 가자.”
트럭이긴 했지만 일반적인 자동차는 고블린들에게 해체당할 테니 그들은 차를 버리고 고블린이 나왔다는 마을로 향했다.
이지현을 합쳐 여성 두 명, 남성 다섯 명인 그룹으로 근접형 딜러 세 명과 탱커 두 명, 원거리 딜러 하나와 힐러 하나.
완벽한 조합이었다.
힐러로서 게임 속 세계를 평범히 나아갈 수 없었으니 대부분 PTSD에 걸려 정신 병원에 있었으니, 지금 그녀의 그룹의 있는 여성 힐러는 매우 귀중한 인재였다.
B급 두 명, C급 다섯 명이었지만 C급 몬스터인 고블린에게는 과분한 전력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본 광경은 충격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