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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99화 (99/201)

99화

* * *

아크는 눈앞의 인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죽을 게 뻔했다. 아니, 자신에게 싸움을 건 이상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 처음에는 그가 혼자서 자신을 죽이러 왔을 때는 뭔가 있나 싶었다.

물론 정보로만 알고 있던 인간치고는 훨씬 강했다. 대악마들도 그에겐 상대가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은 아니다.

흑룡 아크. 그는 설령 모든 대악마가 덤벼들어도 이길 수 없는 괴물이다. 그런데 고작 한낱 인간을 죽이지 못하고 있었다.

과연 자신만만한 이유가 있던 것일까. 아크가 마기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고 있다면 그는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온갖 스킬을 사용하며 아크의 마기에 대항하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시간?”

아크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는 시간을 끌고 있었다.

어째서? 시간을 끌면 끌수록 자기의 몸에 상처만 늘어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후!”

갑자기 김진석의 몸에 푸른빛이 들기 시작했다. 그 빛은 금방 사라졌지만 빛이 사라지고 나온 김진석은 상처 하나 없이 말끔했다.

레벨 업.

시험의 탑 악마들도 결국엔 김진석의 스킬. 그들이 다른 악마를 죽이고 몬스터를 죽이면 마찬가지로 김진석에게 경험치가 들어온다.

김진석의 레벨에 가장 크게 관여하고 있는 게 바로 비네였다. 세라스와 마주치지 않게 하며 레벨 높은 몬스터와 악마들을 쓸어버리라고 지시했다.

로스트 월드 전역에 게이트가 열려 몬스터와 악마들이 나왔고, 그 게이트 하나하나에 전부 대악마가 있는 건 아니었으니.

김진석은 노라와 다이아, 세라스가 떠나고 난 뒤 비네에게 따로 말해 레벨이 높은 악마들과 몬스터들을 쓸어버리라고 지시했다.

혹여나 있을 아크에 대비해.

[김진석 LV:92]

지금 그의 레벨은 92. 상태창이 보이진 않지만 계속해서 경험치가 쌓이고 있을 것이다.

“다시 간다.”

* * *

[김진석 LV:93]

[김진석 LV:94]

김진석의 레벨은 94. 흑룡 아크의 날개에 고작 구멍이 몇 개 더 뚫렸을 뿐이다.

* * *

[김진석 LV:95]

김진석의 레벨은 95. 드디어 아크의 몸에 생채기가 나기 시작했다. 레벨 업을 해서 그런 걸까?

* * *

[김진석 LV:96]

김진석의 레벨은 96. 꼬박 이틀은 싸운 것 같은데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 * *

[김진석 LV:97]

김진석의 레벨은 97. 무아지경이었다. 김진석은 자기가 지금 싸우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레벨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레벨 업 하는 속도가 느려졌고, 하루를 꼬박 싸웠는데도 레벨 업을 하지 못했다.

* * *

일주일. 자그마치 7일 동안 흑룡 아크랑 죽기 직전까지 싸웠다.

죽을 뻔한 적도 수십 번. 레벨 업을 통해 여러 번 살아남았지만 이제는 단 한 번의 기회만이 남아 있었다.

[김진석 LV:98]

검은 드래곤, 아크의 거대한 몸에도 관통상과 창상, 자상 등 온갖 상처와 흉터들이 가득했다. 처음의 위용에 찬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더더욱 노련한 늙은 용과 같이 보였고, 실제로 경험이 별로 없던 아크도 한낱 인간이라 얕보지 않고 김진석을 적으로 인정해 진심을 다하고 있었다.

인간의 모습일 때의 아크는 정중함 그 자체였지만 용으로 변한 그는 판타지에 나오는 그 용과 비슷한 성격이었다.

그런 아크가, 대악마들조차도 그에게 덤벼들지 않을 수준의 괴물인 아크가, 김진석을 인정한 것이다.

“인간계에 간 악마들이 걱정되는군. 너 같은 인간들이 많다면 인간계를 점거하는 것을 포기했을 거다.”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는 흑룡 아크보다도 더 괴물 같은 김진석을 보고 질리기는커녕 용의 모습으로 그를 인정했다.

김진석은 건물 잔해에서 일어나 어깨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며 일어났다.

“…난 그 세계에서도 이레귤러라. 네 걱정은 쓸데없는 걱정이란 걸 알려 주지.”

“고맙군.”

일주일간 쉴 새 없이 서로를 죽이기 위해 싸워 왔지만 그만큼 둘에겐 알 수 없는 유대감이 쌓였다.

김진석도 민간인을 이용하지 않고, 흑룡 아크도 인간계로 가려 하지 않았다. 오로지 둘만의 싸움이었다.

그렇게 일주일.

김진석은 포션도 다 떨어졌고 모든 무기도 다 싸우다가 부서졌다. 이제는 그의 손에 들린 건 마지막 하나, 고요한 카인의 활뿐이었다.

“도대체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지? 왜 자신의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인간들을 구하려고 하는 건가. 너라면 우리의 세계에서도 평범히 지낼 수 있을 텐데.”

아크는 어쩌면 이 세계에서 그 누구보다 김진석의 전력을 알고 있는 자였다. 그림자 밟기의 스킬을 정확히는 모르고 있지만 그가 처음에 민간인 악마를 이용했을 때 그 악마들은 김진석을 눈치채지도 못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들에겐 치명적일 지옥의 마기를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으니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만약에 지금 그가 인간계를 포기하고 악마의 세계에서 살아가겠다고 한다면 아크는 받아들일 거다.

실제로 그렇게 김진석에게 물었고, 김진석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었다.

“퀘스트 깨야 해.”

그 말은 아크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게 거부한다는 말이란 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김진석은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크의 몸에 상처가 생긴 이유는 대부분 궁극기의 연계 덕분이었다. 갈증과 광전사의 분노. 몸이 멀쩡해지자마자 곧바로 사용했지만 아크는 아무렇지도 않게 버텨 냈다.

그리고 지금, 또다시 궁극기의 쿨타임이 돌아왔다.

곧바로 사용해야 했다. 곧 있으면 레벨 업을 할 것만 같아 그때 또 사용하려면 지금 사용해야 했다.

김진석은 아크와 싸우며 알아낸 것이 있었다. 버프형 스킬이라면 굳이 무기를 들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고요한 카인의 활을 든 채 김진석은 스킬을 사용했다.

“기교.”

단검을 들어야 사용할 수 있는 줄 알았던 스킬.

“광기. 갈증.”

대검을 들어야 사용할 수 있는 줄 알았던 스킬.

하지만 김진석은 활을 든 채 사용했다. 그리고 갈증은 다음에 사용할 스킬을 강화하는 것. 고요한 카인의 활을 든 채 김진석이 사용할 스킬, 궁극기는 하나였다.

“스나이핑.”

최강의 무기인 고요한 카인의 활과 단일 대상 한정으로 최고의 궁극기인 스나이핑. 그리고 그 궁극기를 강화하는 궁극기 갈증까지.

무기가 전부 부서지고 난 이후에야 알아낸 최고의 연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숨긴 이 연계를 흑룡 아크에게 사용했다.

김진석의 몸에는 붉은색 연기, 정제되지 않은 살기와 분노가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살기와 분노가 전부 활시위의 화살에 모이고 있었다.

마기와 같은 검은색의 활. 분명 화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붉은색 연기가 그 화살에 모이며 형상이 보이고 있었다.

그의 모습에 아크도 최고의 스킬, 판타지의 용이 흔히 사용하는 최고이자 최강의 스킬, 마기로 된 브레스를 사용했다.

동시에 김진석의 손에서 화살이 쏘아졌다.

마기 그 자체인 브레스와 김진석의 모든 것을 건 스킬이 맞부딪혔다.

* * *

로스트 월드의 세피드는 궁지에 몰리자 모든 악마를 소집했다.

모든 악마라는 건 인간계에 있는 대악마들을 비롯한 악마의 세계, 지옥에 있는 악마들까지 전부였다.

시험의 탑 세피드는 그저 기다렸다. 어차피 그들이 모인다는 건 그의 동료인 다른 악마들도 모인다는 거니깐.

가장 먼저 온 건 비네였다.

“악마건 몬스터건 죄다 죽였는데…….”

“잘했어.”

그들에겐 같은 악마란 시험의 탑에서 같이 지낸 악마들. 로스트 월드의 악마들은 동족이기만 한 악마일 뿐이었다.

시험의 탑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생전 모르는 악마를 죽이는 건 별 감흥이 없었다. 그들도 결국 대악마, 괴물들이다.

그렇게 하나둘 모여 총 일곱의 대악마들이 모였다.

“신기하군. 진짜 너희가 둘이야.”

시험의 탑 세피드는 신기하다는 듯 대악마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일하게 비네만이 대립되는 악마가 없었다.

“인간 중에는 그대랑 똑같이 생긴 자가 있더군.”

“뭐?! 어디!”

바포메트의 말에 비네는 당장에도 죽여 버리겠다는 마음으로 날아가려 했지만 세피드가 막았다.

“아무래도 이 세계에서 너는 악마가 아닌 인간인가 봐……. 아니, 맞나? 마기가 느껴지는데…….”

넬은 바포메트의 말에 세라스를 바로 발견했고, 비네에게 말했다.

세피드는 흥분한 비네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우리를 불렀을 때 바로 너를 안 부른 거 보면 저 인간은 죽이면 안 될 듯한데. 같은 인간은 웬만하면 건드리지 말자.”

비네는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로스트 월드의 대악마들은 눈앞의 자신들이 이상했다.

마치 친구처럼 지내는 자신들이었다. 로스트 월드의 대악마들은 대악마라는 지위가 있으니 같은 대악마라더라도 친구는커녕 서로 간의 대화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눈앞의 자신들은 달랐다.

시험의 탑의 그들도 로스트 월드의 악마들과 같은 적이 있었지만 오랫동안 시험의 탑에서 갇혀 강대한 적인 김진석을 상대하기 위해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갈라졌다.

인간들은 이제 그 현상이 무엇의 전조 현상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대악마들이 전부 모인 지금, 또다시 게이트가 열리고 있었다.

그런데 게이트가 열림과 동시에 시험의 탑 악마들의 몸이 빛나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아는 게 있어, 세피드?”

“아니, 나도 모르겠는데.”

“야! 너 사라진다……?”

그 말과 같이 시험의 탑 악마들의 모습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그들은 눈치챌 수 있었다.

김진석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그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다. 시험의 탑 악마들은 로스트 월드에서 사라졌다.

인간들은 대화 한 번 나눠 본 적 없지만 협동하던 악마들이 사라지자 당황했다. 그리고 하늘을 보고 경악했다.

그 어떤 게이트보다 거대한 게이트가 열리더니 그 안에서 파충류를 닮은 거대한 손이 아직 완전히 열리지 않은 게이트를 찢고 나왔다.

“돌아와라! 악마들이여! 우리의 세계가 위험하다!”

게이트 안에선 로스트 월드의 인간들은 본 적이 없는 생명체. 웬만한 성의 크기인 괴물, 검은색 드래곤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 괴물의 가슴에는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괴물의 목소리에는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감이 느껴짐과 동시에 괴물의 고통까지도 전해져 왔다.

인간들에게도 느껴지는데 악마들에게는 안 느껴질까. 악마들은 그 괴물이 나온 게이트로 자신들의 세계로 돌아갔다.

“…끝난 거야?”

누가 말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거기에 있던 모든 자가 그 말에 침묵으로 동의했다.

그렇게 허무하게, 악마의 침공이 끝났다.

고작 일주일 만에 인간들은 또 한 번 그들의 침공을 막아낸 것이다.

하지만 그걸 해낸 장본인은 이 세계에 없었다.

* * *

“…뭐지?”

분명 김진석은 흑룡 아크의 몸에 구멍이 나는 것까지 확인했다. 제대로 먹혔다는 생각에 뒤이어 화살을 쏘려는 순간.

그의 눈앞에 검은색 글씨가 나타났다.

- 레벨 99 달성. 보상이 주어진다.

보상의 선택이 아닌 곧바로 주어지는 형태의 보상. 거부권은 없었다. 언제나 강제로 주어지는 보상이었지만 언제나 김진석에게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 튜토리얼 클리어. 본래의 세상으로 돌아간다.

지금 김진석은 지구, 그가 살던 현대로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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