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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98화 (98/201)

98화

“당연히, 복수할 겁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악마들도 말이죠.”

아크의 말은 당연했다. 같은 종족이 다른 세계에 가서 전부 죽었는데 멍청하게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물론 그들이 먼저 침략했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동족이 죽은 게 중요했으니깐.

김진석은 그의 말에 한숨을 쉬었다. 이 세계에 와서 단 한 번도 쉽게 간 적이 없었으니 이렇게 될 줄 알았지만 그래도 정작 그 상황이 되니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크는 손목에 착용한 시계와 목의 넥타이를 풀며 주섬주섬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 현대에서는 평범했지만 악마의 세계에서는 오히려 흔치 않은 모습이었다.

김진석보다 작았지만 큰 키에 정장이 잘 어울리는, 평범한 직장인같이 생긴 아크는 옷을 하나하나 풀어헤치고 있었다.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김진석을 보고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변명하듯 말했다.

“변하면 옷이 다 찢어져서 말이죠.”

그렇게 말하면서 온몸이 부풀며 피부가 파충류와 같은 가죽이 도드라지고 있었다. 그런데 점점 커지는 게 멈추지 않았다.

2미터. 5미터. 10미터.

“…더럽게 크네.”

최종적으로 30미터에 다다르는, 그가 다니던 건물보다 조금 더 작은 수준인, 지금껏 보았던 생명체 중 압도적인 괴물이었다.

말 그대로 흑룡. 검은색 서양의 용의 모습을 한 아크는 그 거대한 날개를 펼치며 압도적인 위용을 펼쳤다.

김진석은 처음으로 갑갑했다.

“저걸 어떻게 잡냐…….”

건물보다도 큰 몬스터를 도대체 어떻게 잡고 죽여야 하는 건가. 심장을 노리려고 해도 왼쪽에 있는지, 오른쪽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김진석이 지금껏 죽였던 몬스터 중에서 이렇게 거대한 몬스터는 없었다.

“악마의 위용을 똑똑히 봐라!”

귀에 쩌렁쩌렁 울리는 아크의 목소리. 피부에 찌릿찌릿 느껴지는 압박감은 평범한 인물이 들으면 오줌을 지릴 수준이었다.

그런 모습에 김진석은 아크를 죽일 힌트를 얻었다.

흑룡이 갑자기 악마의 세계에 나타나자 민간인 악마들이 나타났다. 정작 아크가 말한 악마의 위용은 온데간데없고,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는 그들이었다.

아크는 신경 쓰지 않고 날개에 문양이 생기며 입에서 마기로 된 브레스를 뿜어냈고, 김진석을 덮치기 직전.

김진석은 아크가 일하던 건물의 창문을 깨고 들어가 평범한 악마 직원의 뒤로 도망쳤다.

아무리 마기라도 이 정도라면 일반 악마에게는 치명적인 수준이었다. 김진석에게 향한 마기의 브레스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바로 그의 앞에서 멈췄다.

“감히!”

위협적인 모습이었지만 다른 악마들에게는 손도 못 대는 그의 모습은 과연 방주라고 할 만했다.

김진석을 위협하듯 소리치고 있었지만 정작 방패막이로 사용한 악마에겐 손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민간인을 이용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지 않으면 이길 수 없으니.

물론 이용한다고 이긴다는 보장도 없지만.

“어디 한번 해 보자고.”

“이런 더러운……!”

그의 말을 김진석은 슬프게도 부정할 수 없었다.

* * *

리차드와 세라스는 바포메트의 뒤를 따라갔다. 바포메트는 세라스에게 들은 바로는 몬스터들을 다루는 악마라고 했으니 소수 정예보다는 여럿이 맞다고 판단해 더 많은 전력이 바포메트의 뒤를 따라갔다.

물론 세라스가 붙은 이상 최대의 전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판단은 미스였다.

“음? 굳이 저를 따라오셨군요.”

같은 모습이라 헷갈렸지만 오히려 여유로운 건 시험의 탑 바포메트였다. 그가 소환한 몬스터들은 로스트 월드의 바포메트가 소환한 몬스터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로스트 월드의 바포메트가 나온 게이트에서 그를 따르는 다른 악마들도 나오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기괴하고도 온갖 능력을 가진 시험의 탑 바포메트의 몬스터들에겐 역부족이었다.

온몸에 촉수가 달린 몬스터는 그 촉수에 닿은 순간 순간접착제처럼 꽉 달라붙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고.

도마뱀처럼 생긴, 입에서 독으로 된 안개를 뿜는 몬스터는 독에 면역이 없는 악마들에겐 꽤 치명적이었다.

인간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머리가 다섯 개 달린 몬스터는 상대가 누구든,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전부 파악해 머리에 있는 더듬이로 같은 몬스터들에게 정보를 공유했다.

온갖 형용할 수 없는 괴물이 나타난 전장은 끔찍했다.

저 몬스터들이 전부 김진석의 캐릭터들을 분석하고 죽이기 위해 태어난 몬스터다. 대악마 넷이서 머리를 뭉쳐 생각해 만들어 낸 몬스터들은 고작해야 일반 악마나 몬스터들에게 당할 놈들이 아니었다.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저것들은 피아 구분이 없거든요.”

같은 몬스터들끼리는 알고 있지만 자칫하면 바포메트에게도 달려드는 진짜배기 괴물들이다. 인간들이 저곳에 껴 봤자 도움이 될 건 하나도 없었다.

로스트 월드의 바포메트는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시험의 탑 바포메트에게 달려들었지만 정작 시험의 탑 바포메트는 여유롭게 그를 받아치고 있었다.

바포메트는 대악마 중 세피드를 제외하고 본신의 무력이 가장 강한 자다. 어떻게 보면 세 악마가 전부 마법사 형 악마이긴 했지만 바포메트는 그중에서도 전투형 마법사다.

그는 몬스터들을 다루는 만큼 본신의 무력도 강해야 했다. 그리고 그는 시험의 탑 안에서 수많은 시간을 보내며 김진석을 상대해 왔다.

그 괴물 같은 김진석의 캐릭터들을 상대해 온 것이다. 설령 전부 죽어서 한 번도 이겨 본 적이 없었다고 한들 그건 모두 경험이다.

레벨이 높은 자들은 하나의 예외 사항도 없이 모두가 경험이 풍부하다. 몬스터들을 잡고 죽여 왔기 때문에 그들이 경험이 부족할 순 없었다.

하지만 악마들은 다르다. 기본적으로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났으며 그건 대악마들도 마찬가지.

로스트 월드의 바포메트는 괴물 같은 힘을 지녔지만 경험이 부족했다.

시험의 탑 바포메트는 그보다 조금 약할지언정 경험이 풍부했다.

게다가 그 경험은 분명 본인보다 무력은 약한 자였는데도, 그는 지는 경험을 해 왔다. 대악마로서의 자존감이 전부 무너진 지 오래.

한 인간을 죽이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건 시험의 탑 바포메트뿐만이 아니었다.

* * *

“이… 무슨?!”

로스트 월드의 세피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눈앞의 자신은 자기보다 약했다. 그런데 이길 수가 없었다.

날개로 갑옷을 만드는 것은 그에겐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다. 악마의 상징과 같은 날개를 갑옷으로 만들다니.

그 갑옷이 부서지면 날개는 어떻게 되는 건가.

하지만 악마의 상징인 만큼 단단했고, 시험의 탑 세피드는 그걸 이용해 웬만한 공격을 무시하며 들어갔다.

로스트 월드의 세피드는 자신의 기사단인 트리니티 기사단에 손을 뻗으려고 했지만 그것도 만만치 않았다.

인간의 기사단이 생각보다 분전하고 있었다. 악마의 세계에는 몬스터들이 있긴 하지만 그걸 다루는 자는 바포메트 하나였다.

일반적인 말이 악마의 세계에선 검은색 페가수스였다. 물론 검은색 페가수스가 약한 건 아니었지만 히포그리프에 비하면 부족했다.

그저 세피드의 이클립스가 예외였을 뿐.

“이 세계의 나는 경험이 없군. 안타까워. 내가 너였다면 그를 훨씬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시험의 탑 세피드는 로스트 월드의 세피드를 인정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안타까웠다. 자신이 그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었으면 김진석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물론 확신할 순 없었다.

로스트 월드의 세피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했다. 창에서 마기를 뿜어내고, 이클립스를 통해 곡예비행도 하고.

최종에는 비장의 수인 한 손에는 창, 다른 손에는 거검을 들고 싸우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눈앞의 자신은 모든 걸 대처했다. 아니, 대처한 게 아니라 모든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 똑같은 방법으로 상대했다.

거기에 날개 갑옷, 그리고 순식간에 적응하는 노련함까지 겹치니 같은 세피드라고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분명 힘도, 체력도, 마기도 무엇 하나 딸리는 게 없는 로스트 월드의 세피드였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신이 밀리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 * *

“넌 바둑을 잘 못 두나 보네?”

“…….”

시험의 탑 넬은 로스트 월드의 넬과의 바둑을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었다.

로스트 월드의 넬은 초조하게 악마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둑에 집중 못할 수밖에 없었다. 악마들이 인간들에게 밀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인간들의 조직력이 뛰어났고, 악마의 수장인 자신이 강제로지만 바둑이나 두고 있으니 제대로 된 싸움이 될 리가 없었다.

가이크를 비롯한 소수 강자가 넬의 환각을 버텨 내기 위해 찾아왔지만 정작 로스트 월드의 넬이 시험의 탑 넬에게 잡혀 있으니 비교적 싸움이 쉬웠다.

인간들은 악마들과 협력 아닌 협력을 통해 악마의 침공을 잘 막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악마의 세계, 지옥이었다.

* * *

2시간 동안 김진석은 흑룡 아크를 두드렸다.

말 그대로 두드렸다. 단검을 사용해도, 활을 사용해도, 대검을 사용해도 마치 돌을 두드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최후의 수단인 갈증과 더불어 광전사의 분노는 아직 사용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것까지 통하지 않는다면 그를 죽일 수단이 없었기에.

하지만 그걸 제외하고 모든 수단을 사용했지만 그에게 눈에 띄는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아크가 김진석 또한 민간인 악마들을 이용하는 걸 꺼린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그리고 김진석의 목표는 아크, 자신이란 걸.

그 순간부터 아크는 아예 인간계에 있는 악마들을 도와 인간계를 멸망시키기 위해 게이트를 열려고 했다.

그때부터 김진석은 민간인 악마의 뒤에 숨을 수가 없었다. 일부러 시선을 끌기 위해 민간인 악마를 죽이기까지 해 봤다.

하지만 아크는 이를 악물면서도 억지로 그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게이트를 열고 인간계로 가 모든 인간을 죽여 버리기 위해. 지금 김진석이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쩔 수 없이 김진석은 민간인들을 방패막이로 사용하는 걸 멈춰야 했고, 그의 앞에 서야 했다.

그때부터 김진석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흑룡 아크는 과연 최종 보스답게 온갖 마법을 사용했다.

로스트 월드에서 용이란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설계된 것이 아예 없었다. 과거에도 없었고, 아무런 자료도 없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

김진석은 처음으로 게임사를 향해 화가 났다.

“게임이면 깰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아크의 모든 공격은 마기를 통해 만들어졌다. 마치 마기가 그의 말을 따르듯 형체를 스스로 만들어 김진석을 공격해 왔다.

사방에서 온갖 무구가 공격해 오는 건 물론이고 용의 아류종인 와이번의 모습으로 변해 마기가 공격했다.

만약 김진석이 아닌 다른 레벨이 높은 자였다면 이미 마기의 침식으로 인해 온몸이 망가졌을 거다.

하지만 그것도 이미 한계다.

김진석의 몸은 이미 걸레짝이나 다름없었다. 궁극기 연계를 사용할 몸도 안 됐다. 온몸에 뼈가 부러지고 붙은 건 물론이고 팔이 잘려 나가기도 했다.

초인과 같은 몸과 포션으로 인한 재생력으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지만 그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속에서 올라오는 피를 내뱉고 김진석은 아크를 바라봤다.

여전히 압도적인 포스를 펼치는 흑룡 아크였다. 날개에 구멍이 송송 뚫려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는 멀쩡했다.

“…괴물이군.”

김진석은 이 세계에 들어서서 처음으로 좌절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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