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 * *
공격대는 죽은 자들의 성에서 나오는 검은색 무언가를 보고 패닉에 빠졌다.
“이란?”
“칼리?!”
그들은 과거, 마족의 계략에 속아 비명의 숲으로 들어간 첫 원정대였다. 그리고 그중에는… 공격대가 알고 있는 자도 있었다.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친구, 연인, 가족까지도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알고 있던 모습과 전혀 달랐다. 그들은 하나같이 전부 피부가 새까맸다. 마기를 받아들이지 못한 부작용이었다.
그리고 온몸에 가죽 같은 걸 두르고 있다든가, 팔이 네 개라든가, 벌레 날개를 등에 달고 있다든가 하는, 인간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들은 침을 질질 흘리며 공격대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고 있었다. 지성이라곤 없어 보였다. 그냥 무작정 달려들었다.
“정신 차려, 이란!”
“칼리! 제발… 이러지 마.”
공격대는 실험체의 공격을 가볍게 막았다. 실험체들의 레벨은 비교적 높았지만 지성도, 이성도 아무것도 없는, 그저 공격만 하는 그들의 공격을 최정예 군단인 공격대가 맞아 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도 공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공격하려 해도 다른 곳에서 앞의 실험체의 이름을 부르며 막아섰다.
다이아는 그 와중에도 자신의 친구인 다나를 찾으려고 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노라는 그런 다이아를 말리고 있었다.
혼란의 도가니였다.
세라스는 그제야 김진석이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깊은 한숨을 쉬며 최강의 기사, 하지만 나이는 어린 가이크에게 향했다.
가이크는 인간의 나이로 치면 스무 살도 되지 않았으니 어리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는 비명의 숲 근처, 레벨이 높은 몬스터가 나오는 가이크 성에 파견될 때부터 재능이 뛰어났다.
무력은 물론이고 상황 판단부터 모든 게 완벽했다. 하지만 그도 지금 이 상황을 어찌할 방법은 없어 보였다.
적군도 적이 아니고, 아군도 아군이 아니었다. 죽이려고 하면 공격대가 막고, 실험체는 자신들을 죽이려 한다.
“저들의 모습을 봐라! 더는 그대들이 알고 있는 자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외침은 그들의 귀에 닿지 않았다. 그때 세라스가 나섰다.
“내가 막을 테니깐 내가 벌인 일을 네가 전부 책임져라.”
가이크는 이 상황에도 여유로운 세라스를 보고 의아해했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을 가지는 것도 사치였다.
“알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곳곳에서 고함과 비명이 들렸다. 공격대가 당한 게 아니었다. 실험체의 공격을 막으려다가 실수로 팔을 베거나 한, 공격대를 막으려고 하는 공격대들의 소리였다.
자칫하면 공격대끼리 서로 싸울 수도 있는 상황.
세라스는 손짓 한 번으로 그 상황을 종식 시켰다.
“…어?”
세라스의 손짓으로 실험체들의 몸에 있던 마기가 전부 사라졌고, 이내 그들은 쓰러졌다. 그게 가능한 이유, 바로 마기가 강자를 따르기 때문이다.
마족들이 사는 이곳. 게임 속에선 마계로 불린 이곳이 약육강식인 이유. 그건 바로 강자가 모든 걸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
하지만 마기가 몸에서 빠져나간 실험체들은 일어나지 못했다. 강제로 빠져나간 마기를 버티지 못한 것이다.
그건 아마 인간도 마찬가지겠지. 누가 강제로 마나를 뺏어 간다고 생각하면 아마 그건 신체 일부가 강제로 뜯겨 나가는 거랑 같은 고통일 것이다.
게다가 마족이 고작 인간 실험체에게 잘 대해 줬을 리가 만무. 제대로 먹고 자지도 못한 실험체들은 그대로 죽어 버렸다.
하지만 그들은 빛으로 변해 사라지지 않았다.
게임 속이었다면 한낱 마족의 실험체로 취급돼 빛으로 변해 사라졌을 거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몸에서 마기가 빠져나간 순간부터 그냥 인간으로 돌아온 것이다.
인간으로 죽은 것이다.
인간 전력 중 최강의 정예들을 모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동료, 연인, 친구와 가족의 시체를 끌어안고 아기처럼 울고 있었다.
가이크는 그들을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다. 그는 악마의 침공을 겪어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을 이해했다.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가이크도 수많은 자신의 기사를 잃어 왔으니깐.
그리고 자신의 한심함을 탓했다. 설령 공격대가 자신을 공격한다고 하더라도 눈앞의 적을 베었어야 했다.
하프 인간이긴 하지만 인간의 최고 전력이라 불리는 자신이 뭐가 무서워서, 놈들을 왜 공격하지 못했을까.
다행히 세라스가 제때 나서 주어서 아무런 피해는 없었고, 결과적으론 최고의 선택이었겠지만 가이크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건 변함이 없었다.
그 범죄자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자도 엄청난 힘을 선보였는데도 말이다.
그때 그 수장을 따라나선 엘프 중 하나가 가이크에게 다가왔다.
“세계수님의 인정을 받은 분께서 말씀을 전하라고 하시더군요.”
세계수의 인정을 받은 자. 범죄자들의 수장을 눈앞의 엘프들은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전쟁을 벌이고 싶으면 그만한 전력을 갖추고 와라. 소수 정예 같은 말 같지도 않은 말 하지 말고.”
소수 정예. 말은 좋았다. 하지만 그것도 마족과 비교하기엔 미안할 정도로 미약한 수준이었다. 뛰어난 몇몇을 제외하곤 1:1로 진짜 정예 마족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레벨 60의 마족은 정예도 아니다. 직급으로 따지면 십인장, 백인장 정도. 고작 병사 열 명에서 백 명 다루는 수준이란 것이다.
정예라면 정예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 공격대에 모인 전력에 비하면 가소로운 수준이다. 성주가 되고 싶다면 될 수준의 그들이었다.
즉, 마족의 십인장, 백인장 수준이 인간 성주급이란 소리다.
하지만 인간이 마족보다 월등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숫자.
레벨이 높은 인원은 마족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아니, 더 많겠지. 하지만 일정 레벨 이상의 인원은 인간은 월등히, 훨씬 더 많았다.
“최대한 많은 인원을 데리고 와라. 어차피 마족은 숫자가 더 많은 인간 쪽에 몰리게 될 테니 최소한의 인원만 두고 오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원혼이 사라진 비명의 숲을 건널 때도 그들이 숨지 않았다면 마족들이 그들에게 몰려들었을 것이다.
물론 공격대를 못 보고 지나간 마족들은 김진석의 인벤토리에 들어와 있었다.
흑호. 원혼이 사라지고 비명의 숲에서 나올 수 있게 된 흑호는 마족조차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게 죽일 수 있었다.
김진석은 마족조차도 가볍게 죽이는 흑호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굳이 알려 하지 않았지만.
“돌아가세요. 그리고 그만한 전력을 가지고 다시 오세요. 그때까지 이곳을 지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혼자서 말인가?”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곳에 마족이 엄청나게 들이닥칠 것이 뻔한데, 혼자서 지키겠다는 말은 만용이나 다름없었다.
김진석도 혼자서 지킬 생각은 없었다.
“세라스 님, 남아 달라는 부탁이 있었습니다. 혹시 거절하신…….”
“아니, 남을게.”
“…예.”
김진석은 세라스가 혹시 거절할 경우 차선책도 말해 뒀지만 세라스는 시원하게 바로 대답해 주었다.
초록색 장발의 엘프, 엘우드 마을의 부사령관 오르페는 세라스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선을 다시 공격대에 돌리며 말했다.
“무섭다면 전쟁을 안 해도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돌아가세요.”
김진석은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해야만 했다. 그래야 후에 있을 일에 대비할 수 있었으니깐.
오르페가 한 말은 아직 인간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어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나온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오히려 공격대에 도발로 들려왔다.
“…알겠다. 최대한 빨리 돌아오지.”
한낱 범죄자들의 수장인 김진석이 제일 최전방에 남는데 자신들이 무서워서 오지 않는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순순히 말하는 가이크를 안 좋게 보는 공격대원도 있었다.
사실 김진석과 세라스가 없었더라도 죽은 자들의 성쯤은 가볍게 점령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험체로 몰락한 자신의 동료와 연인, 친구들을 보고 자신의 마음이 약해졌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었다.
김진석은 오르페에게 실험체들이 쓰여 있는 자료들을 건네주었고, 오르페는 그걸 공격대에 전해 주었다.
그 사실을 안 공격대원들은 형용할 수 없는 분노에 휩싸였지만 혹여나 또 그 실험체들을 본다면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들은 여러모로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도……!”
“그리고!”
노라와 다이아는 이제 만난 김진석과 다시 헤어지는 게 싫어 외쳤다. 하지만 그걸 이미 김진석은 예상하고 있었다.
“두 분에겐 크게 실망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아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말이죠. 그리고 그건…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지금 오르페조차도 레벨이 53이다. 궁극기를 배우지 않아 실질적인 무력은 다이아가 더 높겠지만 중요한 건 노라는 물론이고 다이아조차 레벨이 따라잡히다 못해 넘었다는 사실이다.
오르페가 보기엔 그들은 한계에 마주해 더 레벨 업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은 자들이다. 고작 그 레벨에 만족한 것이다.
절대 그들의 레벨이 낮은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는 고작 마족의 일반 병사들이랑 비슷한 급이다.
“떠나세요.”
그 말을 끝으로 오르페는 다시 모습을 감췄다. 다이아와 노라는 오르페가 있었던 자리를 허망하게 바라봤고, 가이크를 포함한 공격대는 이를 악문 채 동료들의 시체를 수습해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 * *
“사실이야?”
“뭐가 말이죠.”
세라스는 김진석의 말에 따라 죽은 자들의 성에 남았다. 성안에 숨어 있는 모든 마족을 처리한 김진석은 성벽 위에 서서 말을 나누고 있었다.
“그녀들에게 실망했다는 거.”
세라스는 궁금했다. 김진석이 안전하게, 그리고 이 세계에 정착할 수 있게 해 준 게 바로 그녀들이다.
설령 실망했다고 한들 이렇게 직설적으로, 그것도 타인에게 말해 전달까지 해야 했던가. 트러블이 있는 걸 싫어하는 김진석이 이렇게까지 말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건 그녀들에게만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거기 있는 전원에게 말한 겁니다. 벽에 부딪혔다고 바로 포기하는 자들, 그들이 바로 저들입니다.”
김진석은 떠나는 공격대를 보고 말했다.
“어쩌면 그들도 노력했을 겁니다. 몬스터를 계속해서 잡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포기했죠. 고작 그 정도로는 앞으로 있을 일을 헤쳐 나갈 수 없을 겁니다.”
“…마족과의 전쟁?”
“그것도 있겠죠.”
김진석은 로스트 월드에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고 있었다. 스토리의 최종장은 아몬을 죽이는 거다.
그렇게 기본적인 스토리가 끝난다.
그리고 시작된다. 악마들의 침공이.
인간들이 사는 이곳엔 마기가 너무 부족했고, 마기와 한 몸이며 마기로 인해 태어난 악마들의 힘은 점점 약해져 갔다.
그리고 힘을 되찾고, 다시 악마들의 침공이 시작된다.
정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곳곳에 게이트가 생겨나며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들과 악마들이 다시 한번 침공을 개시한다.
게임 속에서는 그저 플레이어들이 가서 레이드 보스인 악마와 그 하수인들인 몬스터들을 잡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겠지.
한곳에 멍청하게 있으며 플레이어들을 기다릴 악마가 아니다.
그때 인간들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레이드 몬스터는 기본적으로 레벨이 전부 99다. 다음 레이드 보스를 잡기 위해선 전 레이드 보스를 잡고 나오는 아이템을 장비해 가야 하는 시스템이다.
그렇기에 게임 속에선 레이드 보스가 차례대로 나왔다. 그런데 현실에선 과연 그럴까.
노라와 다이아뿐만이 아니다. 공격대, 아니 인간 전체가 강해져야 했다. 그러려면 그들도 마족을 죽여야 했다.
레벨 업의 경험치를 얻기 위해, 앞으로 있을 마족과의 전쟁이 아닌 악마와의 전쟁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