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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80화 (80/201)

80화

【 전쟁 】

세라스가 아무리 마기를 다룰 줄 안다고 한들 부작용은 남아 있었다.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면 아마 남은 생은 2년도 채 안 됐겠지만 마기를 다룰 줄 알게 됐으니 조금 늘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김진석이 그녀에게 한 편치 않을 거란 말, 그건 김진석만이 알고 있었다.

“학장님의 실험체를 데려와야 해!”

“그건 우리가 다룰 수 있는 게 아니…….”

“똑바로 봐! 저 눈앞의 인간 여자는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어떻게든……?!”

그때 그 말을 한 리치의 가슴이 뚫렸다. 리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갑자기 자신의 가슴에 구멍이 뚫렸는가.

답은 김진석의 손에 있었다.

“세계수님의 인정을 받은 자!”

엘프들의 외침. 김진석은 세계수의 인정으로 화살을 쏘아 냈다. 엘프들은 계속 긴가민가했다. 분명 얼굴은 똑같았는데 무력은 차원이 달랐고, 게다가 범죄자였다.

하지만 세계수의 인정을 꺼내자 그제야 그들은 김진석에게 다가갔다. 뭔가 사정이 있겠거니, 하면서 말이다.

김진석이 지금껏 숨겼던 세계수의 인정을 꺼낸 이유. 그건 지금 자신의 말을 100퍼센트 믿어 줄 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엘우드의 엘프분들. 마기에 민감한 당신들이 해 줄 일이 있습니다.”

김진석이 가이크 성에 왔을 때부터 엘프들을 보고 맡길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마족들은 인간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명체는 별 감흥이 없었다. 인간과 비슷한 엘프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우선순위가 떨어졌다.

그리고 세계수의 인정을 받았다고 한들 그의 명령을 무작정 들어줄 리는 없었다. 엘우드의 엘프들 말고는 말이다.

그들은 인간과의 교류 없이 세계수를 그 누구보다도 그리워하는 자들. 게다가 자발적으로 숨어 사는 게 익숙한 그들에게 적합한 일이었다.

“지금부터 이곳에 오는 단 하나의 마족이라도 있으면 제게 보고하세요. 생김새와 함께. 들킬 것 같으면 온다는 보고만 하시면 충분합니다.”

김진석은 고작해야 레벨 59의 마족 바포메트 하나 막지 못하던 그들이었지만 지금 그들의 레벨을 보고 살짝 놀랐다.

최소 45에서 50이 넘는 강자들까지. 몬스터도 잡지 않고 숨어 지내던 그들이 아니었다. 세계수의 인정을 받은 자, 김진석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몬스터까지 잡아가며 레벨 업을 한 그들이었다.

김진석의 말을 듣고 20여 명의 엘우드의 엘프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바로 흩어졌다.

아직 하늘에는 리치가 뻔히 있는데도 말이다.

과거 악마를 막아내고 끝내 소멸해 버린 세계수의 인정을 받은 자. 그들은 일말의 의심도 없이 김진석을 믿었다.

그리고 김진석은 그 믿음에 보답했다.

“차징 샷.”

활을 쓰는 모든 직업군의 스킬과 동시에 김진석의 메인 캐릭터, 카이의 스킬. 김진석의 레벨이 높아진 만큼 강해진 차징 샷이었다.

그 화살은 마치 음속을 돌파할 때 나는 소리처럼 엄청난 굉음을 내며 날아가 리치를 꿰뚫었다.

열두 마리의 리치, 아니 처음 김진석이 죽인 한 마리의 리치를 제외하고 열한 마리의 리치는 차징 샷에 휩쓸려 이젠 여섯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스킬 하나에 평균 레벨이 60이 가볍게 넘어가는 리치 다섯 마리를 죽여 버린 것이다. 게다가 남은 여섯 마리도 온전치 못했다.

“…실험체 전부 다 풀어!”

혼비백산으로 도망치는 리치들이었지만 놈들이 도망가는 방향은 죽은 자들의 성이었다. 놈들은 죽기 직전인 상황임에도 자신들의 연구가 제일 중요했다.

살아만 있다면 연구는 얼마든지 다시 할 수 있으니 죽은 자들의 성에 널려 있는 자료들을 가지고 도망치려 했다.

이제는 노라도 질투할 만한 미모를 가진 세라스가 손가락으로 리치를 가리켰다. 손가락 끝에서 마기가 뿜어져 나와 리치들에게 향하려는 순간.

김진석이 세라스의 손가락 앞을 자신의 손으로 막았다. 세라스는 그 손바닥을 보고 눈썹을 꿈틀거리며 김진석을 바라봤다.

“놈들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가만히 내버려 둬도 30분은 성에서 떠나지 않을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내버려 두진 않을 거니……. 세라스. 당신은 이곳에 올 혼란을 막아 주세요.”

“…혼란?”

“금방 알게 될 겁니다.”

그 말과 동시에 김진석은 사라졌다.

* * *

“…오래 살았는데도 저렇게 신비로운 남자는 처음이야.”

세라스는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모르게 사라진 김진석을 생각하며 말했다. 그의 말뜻은 잘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이곳을 맡겼다는 건 분명했다.

가이크조차도 리치를 단번에 죽여 버리는 김진석의 무력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는 지금, 세라스는 김진석의 눈을 기억하고 있었다.

살기, 언제나 숨겨져 있었지만 눈치챈 순간 피부를 찌를 듯이 몰려드는 살기가 더는 없었다. 세라스는 아무런 편견 없이 자신을 바라봐준 김진석을 기억하고 있었다.

분명 몬스터와 같은 힘을 쓴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자신을 인간으로 불러 주었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던 그녀에게 그 말은 희망이었다.

그 이후로 세라스는 변했다. 아디스에서조차 숨어서 만약의 때를 대비해 악질 범죄자만 죽여 자신의 아이로 만드는 것을 멈췄다.

그녀는 당당해졌다. 하지만 그만큼 늙어 가고 있었다.

그때 자신의 마음속에 있던 마기가 속삭였다.

인간의 영혼을 탐하라고.

하지만 세라스는 하지 않았다. 자신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늙어 가자 김진석의 눈에서 살기를 읽을 수 있었다. 어쩌면 그도 자신의 외모 때문에 자신을 살린 게 아닐까, 자괴감이 들었다. 외모를 제외하곤 이렇게 쓸모가 없는 나였나 자책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을 죽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마기를 다룰 수 있게 도와주기까지 한 지금. 이젠 그가 자신의 도움을 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기가 다 죽여 놓고 뭔 혼란이래…….”

물론 스켈레톤은 자신이 전부 죽였지만 리치는 김진석 본인이 다 죽여 놓고 이곳에 올 혼란이라니.

1년을 함께했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남자였다.

우선 세라스는 김진석을 예사롭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는 두 여성에게 다가갔다. 두 여성 중 엘프, 다이아는 다가오는 세라스를 보고 뒷걸음질을 쳤다.

그 모습에 세라스와 적발의 여성, 노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노라도 세라스가 예사롭지 않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았다. 그런데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뒷걸음질을 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다이아는 엘프. 마기에 민감한 엘프다. 그런데 그녀는 지금 세라스에게서 그 어떠한 마기도 찾지 못했다.

분명 마기를 가지고 있다고도 말했고, 엄청난 마기가 그녀에게 들어가는 것 또한 보았다. 그런데 마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니.

마기를 가졌는데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악마, 혹은 고위 마족만이 가능한 일이다.

“당신은 도대체…….”

“세라스.”

그때 다이아의 머리를 손으로 살짝 툭 치며 엘리온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다시 전성기로 돌아온 그녀의 모습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저주가… 도졌나?”

하지만 세라스는 홀가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 반대야. 이제 내게 저주란 없어.”

“…미안하다.”

엘리온이 사과를 하는 이유. 세라스가 지옥과 같은 삶을 사는 동안 과거 그녀의 동료는 무얼 했는가. 그걸 생각하면 간단했다.

악마의 침공이 끝나자마자 그들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고, 전 동료에게 소홀해지는 건 당연했다. 아니, 사실 관심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어딜 가든 그들은 악마의 침공을 막았다고 칭송받았으니깐.

전 동료인 엘리온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볼 생각도 못했다. 그녀가 그런 취급을 받았을지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그건 전부 변명이다.

엘리온은 세라스에게 사과했고, 그녀는 엘리온의 사과를 무덤덤하게 받았다.

“됐어, 그것보다 저 남자에게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준비하라 그래.”

세라스의 눈을 따라가 보니 그곳엔 가이크가 공격대를 이미 다 추스르고 죽은 자들의 성으로 향하려고 하고 있었다.

“…왜지?”

“뭔가가 올 거야. 뭔진 내게 묻지 마. 나도 모르니깐.”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죽은 자들의 성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검은색 형체들이 우르르 나오는 것을 보고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 * *

김진석은 그림자에 숨어 리치들을 뒤따라갔다.

리치들은 실험실로 보이는 곳에서 널려 있는 서류들을 쓸어 담고 있었다. 그 모습은 교수가 불러 마치 급히 서류를 정리하고 있는 대학원생이 보였다.

실험실 안은 철제 감옥 같은 게 널려 있었는데, 문이 전부 열려 있어 아무것도 없었다.

김진석은 주변을 잠시 바라보다가 서류 몇 개를 몰래 들어서 확인해 봤다.

[실험체 0-15

인간 기사로 보이는데 생각보다 실험을 잘 버티고 있다. 레벨이 인간치고는 높아서 그런지 초기 실험체치고는 나쁘지 않다.]

[실험체 1-1

초기 실험체들이 전부 이성을 잃고 만든 두 번째 실험체. 초기 실험체보다 레벨은 낮은데 아직도 살아 있다. 마기를 조금 더 주입해도 될 것 같다.]

수많은 실험체의 정보가 담겨 있었다. 그 실험체는 바로 인간. 마나를 가진 그들에게 마기를 주입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실험하는 곳이었다.

비명의 숲 근처에서 흘러들어 온 인간들 대부분이 이곳에 잡혀 실험에 사용됐다. 그때 김진석의 눈에 가장 많은 글자가 적힌 서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실험체 0-0

유일하게 마기를 잘 받아들인 인간. 레벨도 꽤 높았다. 새하얗던 피부가 검게 변하지 않는 걸 보니 실험은 성공적이다. 얼굴도 꽤나 반반하니 아몬 님에게 바치면 좋아하실 거다…….]

등등 수많은 글자가 보였지만 김진석은 하나의 이름에 집중했다. 아몬. 스토리상 레이드 몬스터를 제외하곤 최종 보스다.

마족의 왕, 또는 신이라 불리는 아몬. 레벨 90의, 차원이 다른 괴물이다.

악마의 피를 가장 진하게 받은 아몬은 웬만한 악마보다도 강한 괴물이었다. 그리고 실험체 0-0, 아마도 이건 다이아의 친구, 다나일 것이다.

“서브 퀘스트 중 하나에서 나올 다나가… 왜 아몬에게…….”

“끕.”

“칵.”

숨이 막혀 죽는 것 같은 소리. 김진석의 쉐도우 트랩에 당한 리치들의 목소리였다. 그들은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고, 김진석은 서류를 보고 있었다.

아몬. 어차피 만날 자이니 이름이 보일 건 예상했지만 다나가 그에게 바쳐질 거란 건 예상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 서류 또한 꽤 오래된 것으로 보이니 이미 바쳐진 것으로 보였다. 이렇게 된 이상 그녀는 포기해야 했다.

김진석이 굳이 그림자 밝기까지 사용하고 세라스를 막으면서까지 이곳에 온 이유가 바로 다이아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았다.

김진석은 실험체 0-0이라 쓰여 있는 서류 전부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다이아가 그녀가 살아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이상 이 서류를 보여 줄 순 없었다.

물론 살아는 있을 거다. 그녀가 알고 있던 다나가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설령 부질없는 희망이라고 한들 나아갈 거다.

그때 어디선가 풀피리 소리가 들렸다.

“…금방 오는군.”

그 소리는 엘우드의 엘프들이 김진석에게 마족들이 오고 있다고 알려 주는 소리였다.

김진석은 자신을 찾지 못하고 있을 엘우드의 엘프들에게 모습을 드러냈고, 한 녹색 장발의 엘프가 곧바로 그에게 다가왔다.

“이곳으로 오는 마족은 셋뿐입니다. 아마도 큰 소리가 나서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찰병인가. 그나마 다행이네.”

큰 소리는 공격대와 죽은 자들의 성에 있었던 실험체들이 싸우는 소리일 것이다. 물론 실험체들은 그들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다른 문제가 분명 있을 거다.

“가이크를 비롯해 공격대에 알려라.”

김진석은 녹색 장발의 엘프에게 무언가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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