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79화 (79/201)

79화

* * *

김진석의 주변엔 그가 지키는 세라스와 다렌과 찰스가 그를 감시하듯 서 있었고, 그 주변을 노라와 다이아가 서성이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김진석이었지만 범죄자의 신분으로 만날 줄은 몰랐다. 1년 전 밀론과 엘츠 성에서 만났을 때 새 신분증을 얻었다고 했는데 별 의미가 없어졌다.

물론 지금 그의 무력은 범죄자라고 한들 무시할 수 없었다. 설령 그가 살인을 저질러도 사형은 안 하겠지.

지금처럼 똑같이 아디스에 떨어지겠지만 지금 김진석은 사실상 아디스의 두 번째 왕이었다.

다렌과 찰스가 그를 막을 수 있을지 제대로 된 그의 무력을 보지 못해 잘 모르겠지만 가이크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두 기사를 보낸 것이다.

그리고 그걸 같이 한다는 핑계로 다이아와 노라도 주변에 있었다.

“…어떻게 그리 강해지신 겁니까?”

[찰스. LV:55]

그걸 물어본 찰스도 레벨이 55였다. 김진석을 처음 만났을 때 레벨이 몇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레벨도 절대 낮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 김진석을 생각해 보면 지금의 무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설령 김진석 열 명, 백 명이 있어도 찰스를 이기긴 어려웠을 거다. 그런데 지금은 찰스가 열 명이 있어도 김진석을 이기긴 어려울 거다.

원정대. 이젠 공격대가 돼 버린 그들은 김진석의 무력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지만 예사롭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아무리 자신들과 히포그리프한테 허무하게 죽어 나갔다고 한들 마족의 무력을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공격대가 마족들을 처리하고 있을 때 김진석은 구경만 하고 있었다. 마치 공격대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마족 한 마리가 그들을 빠져나와 김진석을 공격하려 했다.

마법사같이 보인 그 마족은 일반적인 화염구인데 색이 더 짙은, 검은색에 가까운 화염구를 김진석에게 던졌다.

김진석은 그 검은색 화염구를 그저 맨손으로 쳐 냈다.

화염구는 옆의 나무에 박혀 폭발이 일었다. 그 마족을 놓친 자가 바로 달려와 마족의 목에 칼침을 놓았고, 마족은 금방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하지만 마족은 빛으로 사라질 때도 멍한 얼굴로 김진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방금 그 기행을 보고 있던 공격대도 마찬가지.

나무 밑동이 폭발에 사라질 정도로 꽤 강한 스킬이었는데, 김진석은 그저 손등이 살짝 붉어지는 것만으로 상처가 없었다.

그나마 그것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기행은 설령 가이크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할 수 있다고 한들 그런 위험한 짓은 훈련 때는 몰라도 이런 현실에서는 절대 하지 않을 거다.

그런데 김진석은 해냈다. 일말의 표정 변화도 없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

“가리지 않고 죽였습니다.”

“……? 그게 무슨 소리죠?”

찰스의 물음에 김진석은 자신이 강해진 이유를 간단히 알려 주었다. 정말 간단히.

“몬스터, 인간 가리지 말고 다 죽였습니다. 레벨이 높건 말건.”

김진석은 아디스에서 수많은 인간을 죽였다. 범죄자들이라 죄책감 따위는 없었다. 그리고 김진석은 이미 알고 있었다. 몬스터보다 인간을 죽이는 게 훨씬 편하다는 걸.

실제로 그는 아디스에 처음 갔을 땐 몬스터보다 인간을 훨씬 많이 죽였다.

상대 레벨은 고려하지도 않았다. 그저 할 수 있을 것 같으면 했다.

“그건…….”

“범죄죠. 그런데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아디스에 떨어졌는데.”

이 세계에서 아디스에 떨어지는 건 최대의 형벌이다. 물론 아디스는 아디스 나름대로 규칙이 있었지만 결국엔 범죄자 집단.

온갖 범죄가 가득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슨 짓이라도 해야 했다.

물론 김진석은 자발적으로 들어갔지만.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을 죽여도 레벨 업을 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한낱 범죄자인데 악마가 들이닥친다고 한들 그들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까? 제 대답은 아니오, 입니다. 그러면 차라리 레벨 낮은 유망주에게 레벨 높은 범죄자를 죽이게 시키면 훨씬 레벨 업이 빠를 텐데요.”

김진석의 말은 지금도 적용됐다. 김진석을 따라나선 범죄자들은 그가 사라진 것을 알자 비명의 숲 원정대에 참가하지도 않고 가이크 성에 머무르고 있었다.

거기서 도망칠 기회만 엿보고 있겠지. 그럴 바에 그냥 그들을 죽여 빠르게 레벨 업을 하면 더 좋은 거 아닐까.

“그만. 궤변이다.”

찰스가 김진석의 말을 유심히 듣고 있자 다렌이 말을 끊었다. 궤변이라면 궤변이고, 아니라면 아니었다.

범죄자들을 죽여 쉽게 레벨 업을 하면 그만큼 경험이 부족할 테니깐 레벨만 높은 그들이 도움이 될지는 생각해 볼 문제였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범죄자보다 도움이 될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김진석이 굳이 말을 이렇게까지 많이 하면서 찰스에게 알려 주는 이유는 별것 없다.

그의 게임 속 최대 레벨은 60이었다.

낮은 레벨은 아니었지만 그 레벨로 최후까지 살아남진 못할 것이다. 찰스는 보기 드문 정의로운 자. 레온하르트만큼 꽉 막혀 있지도 않은 젊은 피였다.

그리고 김진석은 그의 허망한 최후를 이미 알고 있었다.

밀론의 손녀, 밀리의 배신으로 등 뒤에 칼이 꽂혀 죽는다. 한낱 범죄자를 지키다가 말이다.

“잡담은 그만. 성이다.”

가이크의 말에 공격대는 곧바로 주변 엄폐물에 몸을 숨겼다. 김진석은 고개를 내밀어 그 성을 바라봤다.

죽은 자들의 성. 가장 거대한 성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가장 강한 마족이 있는 건 아닌 곳이다.

아니, 게임으로 따지면 마족 지역의 튜토리얼을 넘어가기 위한 관문 같은 곳이다. 그 성이 큰 이유는 그저 많은 실험체를 수용하기 위해서였다.

죽은 자들의 성에 사는 마족들은 다른 마족들에게도 배척받는 자들이었다. 마족들에게도 미의 기준은 있었고, 죽은 자들의 성의 마족은 리치와 같은 해골의 모습이었으니.

“히포그리프 기사가 하늘을 날아서 정찰할 경우 들킬 위험이 있나?”

가이크는 김진석에게 적극적으로 물어봤다. 김진석이 왜 이곳 지리를 잘 아는지는 노라와 다이아에게 들었다.

그 말을 믿을지, 말지는 가이크의 선택이었지만 가이크는 믿는 걸 선택했다. 하지만 늦었다.

“전투 준비!”

“이미 들킨 것 같군요.”

김진석의 말을 듣기도 전에 가이크가 외쳤다.

땅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파삭.

그 소리와 함께 땅 밑에서 공격대의 발목을 잡는, 엄청난 숫자의 스켈레톤이 솟아올랐다. 순식간에 땅에서 올라온 스켈레톤들은 공격대를 둘러쌌다.

공격대원들은 발목을 잡는 스켈레톤의 손을 부수며 가이크를 중심으로 원형 대형으로 재빨리 섰다.

히포그리프 기사 셋은 최정예답게 날뛰려는 히포그리프를 바로 진정시키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스켈레톤. LV:40]

평균 레벨이 40이나 되는 스켈레톤들이었다. 공격대에 비하면 그리 높은 레벨은 아니었지만 숫자가 너무 많았다.

공격대의 숫자는 최정예로만 백여 명. 하지만 스켈레톤들은 적어도 열 배는 될 법했다.

끼에엑!

그때 갑자기 히포그리프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기수의 말을 듣지 않았다. 공포에 질린 듯한 소리를 내며 히포그리프는 기수가 어찌할 새도 없이 멀리 날아가 버렸다.

김진석은 히포그리프를 공포에 질리게 한 원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좋은 실험체들이 이렇게나……. 학장님은 아쉽게 되겠네?”

인간의 모습이었지만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간, 마치 과거 사산에서 보았던 리치 질린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리치. LV:69]

하늘에는 열둘의 리치가 둥둥 떠 있었다.

하지만 놈들은 이름조차 받지 못한 리치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리치들에게 맡기고 학장이라 불린 리치는 비명의 숲의 원혼이 사라진 것을 보고 곧바로 떠났으니깐.

학장. 흑마법을 다루는 마족의 학장은 죽은 자들의 성에 최고 위치에 있는 자다. 성주이기도 했지만 그는 지금 이곳에 없었다.

그가 있었다면 고작해야 스켈레톤 따위가 공격대를 포위하고 있지 않겠지.

김진석은 인벤토리에서 한 아이템을 꺼냈다.

[애드몬드의 두골.

마기를 가득 담고 있는 두골이다. 마기의 양을 보아 생전에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자… 말인가?”

학장 애드몬드. 레벨 78인 애드몬드는 죽은 자들의 성의 성주. 그리고 게임 속에서 마족의 영토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만나는 보스이다.

“……?”

리치들은 여유만만하게 말하다가 고개를 삐걱거렸다. 지금 놈들은 상황을 머리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공격대도 마찬가지. 리치들과 김진석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지만 지금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두골에 엄청난 마기가 담겨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애드몬드의 두골도 징표였다. 과거 고블린 족장을 잡았을 때 족장의 머리가 떨어진 것처럼 말이다.

징표를 가지고 있으면 아이템이 할인되는 등 게임 속에선 다양한 혜택이 있었다.

물론 지금 이곳에선 아무짝에 쓸모가 없는 아이템이었지만 마기가 담겨 있다는 특수성이 있었다.

“세라스, 이것을 활용할 방법을 찾으십시오. 제게 도움이 되건 아니건 괜찮습니다. 가지셔도 좋습니다.”

김진석은 세라스에게 애드몬드의 두골을 주었다. 마기를 잘 다루지 못하는 그녀는 마기를 다루는데 특화되었던 애드몬드의 두골에서 뭔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분명 괜히 이 아이템을 준 게 아닐 것이다.

세라스는 두 손으로 두골을 받아 조심히 바라보더니 이내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마치 원효대사가 해골 물을 마시듯이 두골에 있는 마기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김진석의 눈에는 그녀의 상태가 정확히 보였다.

[비네 LV:78]

[비네 LV:79]

[비네 LV:80]

레벨이 78이던 그녀가 급격히 레벨 업을 해 80이 된 것이다. 근처에 있던 다렌과 찰스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엄청난 양의 마기가 그녀에게 모이고 있어 본능적으로 칼을 그녀에게 겨눴다.

김진석을 제외한 가이크도 포함한 공격대원. 심지어 리치들마저도 엄청난 마기에 세라스에게 각자 자신의 무기를 겨눴다.

공격대원은 수천 마리의 스켈레톤보다, 리치들에겐 한낱 인간인 세라스가 위험하다고 느낀 것이다.

김진석도 침을 꿀꺽 삼켰다. 레벨 78인 그녀도 김진석은 죽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80은 다르다. 로스트 월드에서 레벨 80은 레이드에 참가할 수 있는 레벨이다.

일반적인 몬스터는 상관없다.

그런데 레이드 몬스터, 보스는 달랐다. 엄청난 체력과 공격력, 스킬이 다양했다. 플레이어 여럿이 모여 잡아야 하는 레이드 보스는 일반적인 몬스터와는 궤를 달리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세라스, 아니 비네는 게임 속에서 레이드 보스. 그것도 최종 보스 중 하나인 악마로 나왔다.

[비네. LV:82]

최종적으로 레벨이 82가 된 그녀는 이젠 완벽히 할머니가 되었다. 겉으로 드러난 얼굴부터 손까지 주름으로 자글거렸다.

“…후.”

하지만 그녀가 한숨을 내뱉으니 마법같이 주름이 사라지며 전성기 시절 가장 아름다웠던 그녀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마기의 부작용으로 늙지 못한 그녀가 마기를 받아들여 다시 늙기 시작했지만 이젠 마기를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돌아가라.”

세라스의 손짓 한 번에 주변의 모든 스켈레톤이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이제는 늙어서 색이 빠져 흐릿한 백발이 아닌, 윤기가 흐르는 아름다운 백발의 그녀는 그 외모만큼이나 아름다운 웃음을 지으며 애드몬드의 두골을 김진석에게 다시 건네주었다.

“고마워요. 남은 생은 편하게 보낼 수 있겠네요.”

“…아마 그리 편친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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