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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78화 (78/201)

78화

가이크에게 마족이 있다는 정보를 전달한 히포그리프 기사는 그 이후의 말을 듣지도 않고 마족들에게 달려드는 원정대를 보고 당황했다.

“마족들이 누군가와 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외침은 그들의 열기에 밀려 묻혔다.

* * *

가이크를 필두로 달려간 원정대는 또다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히포그리프 기사가 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이곳엔 마족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마족은 온데간데없고 웬 거구의 남성만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채 서 있는 그 남자가 고개를 돌려 원정대를 바라봤다.

원정대는 고작 한 남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흠칫하며 한 발짝 물러섰다. 가이크조차도 알 수 없는 압박감을 느끼며 물러섰다.

그런데 피로 점철되어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남자의 얼굴은 익숙했다. 요주의 인물이었으니 잘못 봤을 리가 없었다.

“키잔인가?”

키잔, 김진석의 또 다른 이름. 노라와 다이아조차도 눈앞의 남자가 김진석임을 인지하지 못했지만 가이크가 먼저 알아차린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세라스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쿨럭.”

피를 토할 것처럼 기침했지만 피 대신 검은색 연기가 흘러나왔다. 그녀가 제어하지 못한 마기였다.

그때 고개를 삐걱거리며 귀신처럼 이곳을 보고 있던 김진석이 움직였다.

“참을게요!”

그와 동시에 세라스는 소리쳤다. 어느새 그녀의 목에는 김진석의 츠바이핸더가 닿아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가이크를 제외하곤 아무도 반응하지 못했다.

가이크조차도 배틀 엑스를 꺼내 들었을 뿐 휘두르지는 못했다.

“버텨… 보겠습니다.”

세라스의 말을 끝으로 김진석은 츠바이핸더를 거두었다. 그녀의 목에서 살짝 피가 나오고 있었지만 그 뒤로 바람이 불며 핏방울을 날려 보냈다.

세라스는 김진석이 자신을 단두대에 올려 둔 상황이란 걸 알고 있었다. 죽일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녀는 사람의 시선에 민감하다. 설령 새어 나오지 못한 살기라고 한들 그런 살기가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면 그녀가 아니더라도 알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세라스는 마기를 다룬다고 한들 김진석을 이길 수가 없었다.

김진석의 온몸에 아직 말라붙지도 못한 피들은 피부에 빨려 들어가더니 사라졌다. 아무도 그에게 함부로 다가가지 못했다.

마족을 죽이겠다는 의지로 달려오던 원정대의 열기가 급격히 사라져 버렸다. 누가 말하기도 애매한, 고요한 상황.

그 상황에 노라와 다이아가 김진석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김진석이 먼저 둘을 힐끗 보더니 먼저 말했다.

“원혼들이 사라진 이상 마족들이 계속 들이닥칠 겁니다.”

“급해서 말씀 못 드렸는데, 이분이 마족을 전부 상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실험 삼아 하늘에 올라가 마족이 있다는 정보를 알려 줬던 히포그리프 기사가 내려오며 말했다.

가이크는 여러모로 김진석이 의심스러웠지만 혼자서 마족을 상대했다는 게 확인되었으니 적어도 자신들에게 해가 되는 자가 아니란 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원혼들이 사라진 이상 마족들이 들이닥칠 건 분명한 사실. 김진석의 의견에 동조해 가이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려고 했다.

“당신이 김진석이군.”

노라와 다이아는 김진석의 곁에서 흠칫 놀라 뒤를 돌아봤다. 정작 이름을 불린 당사자인 김진석은 무덤덤하게 그 말을 한 당사자를 바라봤다.

다렌과 찰스. 가이크 기사단에서도 이단으로 취급받는 둘이었다. 유일하게 가이크의 말을 거부할 수 있는 둘이다.

“오랜만이군요. 찰스 씨, 그리고… 다렌.”

김진석은 숨길 마음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밀론이 범죄자들을 이렇게 따라 보낼 때부터 숨길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어차피 범죄자한테까지 도움을 요청한 이들이었으니.

그런데 정작 다가라를 비롯한 범죄자들이 보이지 않았다. 가이크와 김진석의 얘기를 들은 그들은 비명의 숲에 들어간 순간 습격이 있을 거란 걸 깨달아 버린 것이다.

가이크의 공문의 허점, 비명의 숲 안에서 일은 책임지겠다. 즉, 그 외에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을 정확히 알아차린 그들은 원정대에 참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지금 비명의 숲에 들어온 김진석에겐 해당하지 않는 말이다.

“김진석, 카이, 그리고 키잔까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김진석이 노라와 다이아를 힐끗 본 걸 다렌은 눈치챘다. 그가 알고, 그녀들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녀들도 김진석을 알고 있다.

둘은 칼라 성에서 기사 학교의 교수 일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나의 학생을 가르쳤다. 김진석과 매우 똑같은, 아니 완벽히 같은 얼굴을 한 카이라는 자를.

그리고 김진석은 비명의 숲을 건너오는 방법을 알고 있을 거로 예상했는데, 지금 비명의 숲에는 원혼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정도까지 정보를 줬는데 못 알아차리면 그게 멍청한 거다.

하지만 김진석은 다렌을 보고 있지 않았다. 아니, 원정대 전원이 김진석과 같은,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장님, 그럴 때가 아닙니다.”

“무슨 소리지……?”

그때 피부를 바늘로 찌를 것 같은 기운이 몰려들었다. 그건 익숙하지만 혐오스러운 감각, 마기.

“마족입니다.”

* * *

“아쉽네. 먼저 간 놈들은 벌써 즐기고 있겠지?”

마족은 인간과 거의 비슷한 생김새를 하고 있다. 인간의 외형에 다른 생명체를 섞은 듯한 모습.

그런 마족이 인간을 죽이는 이유. 그건 별거 없다. 그저 즐겁기 때문.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것과 마찬가지.

뒤늦게 귀신이 사라진 마족들은 아쉬운 마음으로 털레털레 숲을 걷고 있었다.

그들이 귀신이 사라진 것을 늦게 알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약했기 때문.

마족의 말단에서 다른 마족들에게 치이며 살던 그들은 늦었지만 남은 인간이라도 가지고 놀기 위해 숲을 건너고 있었다.

그때 펄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음? 이 숲에 생명체가 있네……?!”

그 말을 한 딱정벌레같이 생긴 마족은 그대로 사라졌다. 닭 날개 같은 것이 달린 마족은 갑자기 옆에 서 있던 마족이 사라진 것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의 몸이 뭔가에 잡혀 하늘로 끌려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위를 바라보니 거대한 갈색 몸통과 독수리같이 날카로운 발톱이 자신을 잡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내 독수리도, 말도 아닌 얼굴이 불쑥 내려왔다. 마족의 생각은 거기서 끊겼다.

* * *

“마족이… 이렇게 약했었나.”

가이크는 배틀 엑스에 묻은 피를 휘둘러 털며 말했다. 김진석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비명의 숲 원정대는 각자 자신의 무기와 몸에 묻은 피를 털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많은 마족을 죽인 히포그리프 기사단은 히포그리프의 몸에 묻은 피를 닦아 주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냥 히포그리프가 마족을 낚아채 물어뜯기만 해도 허무하게 죽어 버린 것이다.

원정대는 입맛을 다셨다. 피가 튀기는 혈투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 허무하게 끝나니 그것도 그거 나름대로 허탈했다.

당연한 결과긴 했다. 방금 죽인 마족들은 마족의 말단. 하지만 인간은 최정예가 모였으니.

그들에게 밀렸다면 인간에게 희망은 없었다. 고작해야 레벨 4~50의 마족이었으니. 하지만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이미 강한 마족들은 김진석이 죽인 지 오래였다.

“계속 진행합니까?”

“…가자.”

가이크는 뭔가 꺼림칙한 느낌은 들었지만 마족들이 예상보다 약하다는 건 나쁘지 않았으니 계속 진행하려고 했다.

김진석의 말이 아니었다면.

“이대로 계속 나간다면 마족의 성이 나올 겁니다.”

그의 말은 위험했다. 범죄자들의, 비명의 숲에서 일어난 일은 가이크가 책임지지 않겠다고 했고, 지금 김진석도 범죄자의 신분이었다.

안 그래도 다렌의 말을 기억한 원정대는 수상쩍은 김진석을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마족으로 의심될 법한 말을 한 것이다.

하지만 김진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곳은 인간들을 가장 많이 수용하고 있는 곳입니다. 가장 거대한 성이기도 하고요. 어쩌면 마족 최고의 전력이 그곳에 모여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이었다. 게임 속에선 죽은 자들의 성. 마족 중에서도 흑마법을 다루는, 마치 세라스 같은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들 개인의 신체 능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지만 그들이 무서운 점은 네크로맨서와 같은 엄청난 물량이다.

게다가 그들의 물량은 대부분 인간이다. 정확히는 인간을 개조한 것들. 마치 프랑켄슈타인처럼 인간의 팔다리를 이어붙여 매우 기괴한 모습이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속도도 빠르지 않았지만 그 힘 하나만큼은 잡힌 순간 김진석도 뼈도 못 추릴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이 알고 있는 자도 있을 수 있겠지.

“마족과의 전면전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마족들이 인간 세계를 침공하는 건 그저 즐겁기 때문이다. 약한 놈들 괴롭히는 게 제일 재밌는 놈들이니.

하지만 그 약한 놈들이 기어올라 자신의 성과 도시를 침공하면 어떻게 될까. 볼 것도 없이 바로 전쟁이다.

게임 속에선 이미 모든 인간과 엘프들이 합심해서 마족과의 전쟁을 선언한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은 비명의 숲을 공략하는 걸 목표로 뒀지, 마족과의 전쟁까지는 아니었다.

물론 마족이 나올 걸 예상해 최정예로 소집하고 범죄자들까지 꼬드기긴 했지만 전쟁이 벌어지면 감당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김진석은 인간들의 마족에 대한 분노를 잘 모르고 있었다.

“이미 각오한 일이다.”

가이크는 단호하게 말했다. 김진석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원정대도 딱히 이견은 없는 것 같았다.

“설령 전쟁이 벌어진다고 한들, 여기 있는 인원이 전부 죽는다고 한들, 이미 각오한 일이다.”

김진석은 밀론에게 공문이 어떻게 왔는지 이미 확인했다. 별 내용도 없었다. 그저 비명의 숲을 공략할 방법을 찾았으니 강한 자만 오라고, 그렇게 쓰여 있었다.

그 안에 무슨 숨은 내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들은 고작 그 공문만 보고 전부 죽음을 각오하고 온 자들이다.

“진입한다. 마족과의 전쟁은 오히려 바라는 바다.”

김진석에 대한 의심은 아직 거두지 않았지만 혼자서 마족을 죽인 자다. 왜, 어째서 이 시간에 비명의 숲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무력만으로 도움이 되니 우선은 데려갔다.

“마나 사용은 최대한 자제한다. 설령 마족을 발견하더라도 무시할 수 있으면 무시한다. 목표는 마족의 성이다.”

하지만 김진석의 말을 무시할 수 없으니 비명의 숲 공략 원정대에서 마족의 성을 점거하겠다는 목표로 바꿔 버렸다.

김진석은 그들의 무모함에 박수를 쳐 주고 싶었다.

지금 이들은 너무 고양되어 있다. 생각보다 마족이 약한 것과 눈앞에 마족의 성이 있으니 제대로 된 사리 분별이 안 되는 것이다.

김진석은 이해할 수 없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이들일 텐데 왜 이리 쉽게 정하고 감정에 휘둘리는 걸까.

하지만 오히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이들이기에 마족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 산전수전을 겪게 만든 이들이 악마와 마족이었으니.

“그렇게 되면 가이크 성으로 마족들이 향할 텐데?”

“제가 가이크 기사단을 그리 쉽게 키우진 않았습니다, 이사장님.”

엘리온은 마족을 무시한단 말에 답했지만 가이크는 자신이 키운 기사단을 믿었다. 게다가 악마의 침공이 있을 때조차 최후의 보루로 버텨 낸 곳이 가이크 성이다.

고작 악마의 하수인 격인 마족에게, 가이크가 없다 한들 뚫릴 리가 없었다.

“히포그리프 기사 최정예 셋만 남고 전부 철수해. 많으면 들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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