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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76화 (76/201)

76화

【 비네, 그리고 세라스 】

아이가 성불하니 아이가 살린 원혼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있었다.

“후… 한시름 논 건가.”

이제 범죄자는 물론이고 원정대원들도 최소 비명의 숲에서 죽진 않을 것이다. 그 이후 일은 나중에 생각해야겠지.

비명의 숲 안에는 흑호가 나오지 못했고, 김진석은 터덜터덜 숲을 걸어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분명 아무 생명체도 없을 이 숲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쫓아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을 텐데.”

김진석은 흑호를 타고 비명의 숲으로 오면서 계속해서 확인해 봤지만 다른 이들은 자신이 가이크 성을 나갔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혹은 무관심이거나.

소리가 나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가려는 찰나에.

검은색 형체가 어디론가 달려가는 게 김진석의 눈에 포착됐다.

원혼들로 인해 벌레 하나 살지 않는 이 숲에서 생명체가 있을 리 만무했다.

[까마귀 깃 활. 공격력 62. 레벨 제한 60

까마귀의 깃털로 만든 활이다. 생각보다 무겁다.]

김진석은 새로 구한 까마귀 깃 활로 화살을 쏘아 냈다.

고작 까마귀의 깃털로 만든 화살이 왜 레벨 제한이 60이나 되는가.

그건 까마귀의 레벨이 58이기 때문이다.

아디스에서 까마귀는 죽음을 상징한다. 다른 의미 없이, 그냥 까마귀를 보면 죽기 때문이다. 몰려다니고 새까매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 까마귀는 범죄자들에겐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김진석에겐 아니었다.

김진석이 쏘아 낸 화살은 적중했다. 그런데 형체는 잠깐 멈칫하더니 다시 어디론가 달려 나갔다. 하지만 그 방향은 가이크 성이 있는 곳이 아닌 반대편이었다.

그렇다면 잡아야겠지.

“기교.”

노라의 스킬 기교. 지금의 김진석도 그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다. 원래 그녀는 아디스에 몰래 들어가서 배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용병의 쉼터에도 밀론의 귀가 있었고, 바가지를 좀 많이 쓰긴 했지만 그래도 범죄자가 되는 것보단 나으니 그녀는 비싸게 기교를 사서 사용한 것이다.

물론 김진석은 거의 공짜에 가깝게 금화를 주고 샀지만 말이다.

김진석은 가히 흑호와 비견될 속도로 일직선으로 달려갔다. 울창한 나무와 수풀은 아무런 방해도 되지 못했고, 말 그대로 전부 몸으로 부숴 버리며 달려 나갔다.

“…히익!”

전차처럼 모든 걸 부수며 달려오는 김진석을 보며 검은색 형체는 신음을 내더니 더더욱 발을 박찼지만 그에게 벗어날 순 없었다.

“크악!”

김진석은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은 채 그대로 검은색 형체를 들이받았고, 형체는 땅바닥을 구르고 구르다 나무에 박혔다.

하도 굴러서 몸에 박힌 화살이 상처를 헤집었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하지만 김진석은 개의치 않은 채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뭔가에게 다가갔다. 전혀 봐줄 생각이 없었는데도 살아남았다는 거는 꽤나 레벨이 높다는 거다.

[몰. LV:45]

그 예상은 어중간하게 맞았다. 레벨이 높다고 하면 높지만 김진석에 비하면 턱없이 낮았다. 그러나 김진석은 놈의 상태창을 보고 있지 않았다.

“마족인가.”

검은색 형체의 정체는 마족이었다. 인간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온몸이 피부가 아닌 검은 가죽으로 뒤덮여 있는 모습이었다.

몰.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마족임이 분명하지만 김진석의 기억에 없는 걸 보면 그리 중요한 인물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김진석이 묻는 건 자기 공격에 어떻게 살았냐는 질문이 아니었다. 분명 비명의 숲은 마족조차도 함부로 올 수 없는 곳인데 말이다.

마족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인간이… 여기에? 아니, 원혼들은 어디로 갔지? 인간이 왜 저리 쎈 거지?”

조금 모자란 마족 같았다. 레벨이 45인 마족은 마족 세계에서 높은 레벨이 아니다. 레벨이 높은 마족은 가끔 비명의 숲을 건너오지만 고작 45에 불과한 이 마족이 어떻게.

비명의 숲에서 비교적 멀쩡한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가. 그게 의문이었다.

김진석은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몰이라는 마족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갑자기 땅속으로 꺼지듯이, 마족이 사라졌다.

급히 다가가 보니 땅속으로 꺼진다는 건 비유가 아니었다. 진짜 땅에 구멍이 생겼고, 그 안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생각보다 구멍은 깊어 보였지만 김진석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그 구멍 안으로 몸을 던졌다.

한참 떨어지다가 착지한 김진석은 곧바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구멍 속은 마치 도로처럼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의 뒤로는 막혀 있었고, 앞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몰이란 마족은 다시 도망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차피 피가 땅에 떨어져 있으니 뒤쫓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도로처럼 나 있는 구멍의 방향은 가이크 성의 정반대 방향이었다.

정확히는 그 방향부터 가이크 성 쪽으로 굴을 파고 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저 마족은 손에 몸 절반 수준의, 엄청나게 긴 발톱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두더지처럼.

김진석은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었다.

“이 세계는 게임이 아니다.”

인간들이 비명의 숲을 공략할 방법을 찾고 있듯이 마족들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들이 찾은 방법은 바로 저 두더지 마족을 통해 비명의 숲 아래로 굴을 파는 것.

그걸 깨달은 김진석은 곧바로 마족을 뒤쫓았다.

* * *

“미친… 저 괴물은 뭐야?!”

두더지 마족, 몰은 인간에게서 도망치고 있었다. 몰은 마족들의 강제 아닌 부탁에 귀신이 나오는 숲 밑으로 땅굴을 파고 있었다.

강한 마족들조차 꺼리는 엄청난 원한을 가진 귀신이 있는 숲이었으니. 몰은 땅을 파면서도 위에서 느껴지는 원한과 가끔 들려오는 흐느끼는 소리는 소름 끼쳤다.

그렇게 평소처럼 땅굴을 파던 도중 갑자기 으슬으슬한 한기가 사라진 것이다.

무서워서 절대로 위로 올라갈 생각도 안 했는데 호기심이 동해 저지르고 말았다. 그런데 그곳에 귀신은 온데간데없고 저 괴물 같은 인간을 본 것이다.

혹여나 들킬까 다시 돌아가려 할 때 갑자기 뒤에서 화살이 날아와 가슴에 박혀 버렸다.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마치 멧돼지처럼 달려오는 인간에게 몰은 공포를 느꼈다.

“알려야 해. 도망쳐야 해!”

굴 안에는 몰을 감시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오는 마족들이 있었다. 그들에게까지 도망쳐야 했다. 설령 한낱 인간에게 도망쳤다고 놀림받을지언정 여기서 죽을 순 없었다.

그때 눈앞에 세 명의 마족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여기……!”

“이레이저.”

하지만 그걸 끝으로 세상이 한 바퀴 돌아갔다. 몰은 그에 의문을 가졌지만 이내 자신의 몸이 눈앞에 보이고 그 뒤로 단검을 든 인간이 서 있는 걸 보았다.

그걸 끝으로 의식이 끊겼다.

* * *

[어쌔신 대거. 공격력 63. 레벨 제한 60.

길이가 그리 길지 않지만 절삭력이 매우 뛰어나다.]

마찬가지로 까마귀 깃 활과 함께 새로 구한 아이템이다. 길이는 고작 50센티 정도였지만 설명 그대로 절삭력이 매우 뛰어났다.

날을 아래로 땅에 떨어뜨리면 날 전부가 땅에 박힐 정도의 예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 어쌔신 대거로 노라의 추천으로 배운 스킬, 이레이저를 사용해 두더지 마족의 목을 베어 버렸다.

그대로 절명한 두더지 마족이었지만 문제는 뒤로 걸어오는 세 명의 마족이 있었다.

“…음?”

[LV:61] [LV:60] [LV:63]

생각보다 레벨이 너무 높았지만 그들은 김진석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림자 밟기 LV:max]

땅굴인 만큼 그림자로 가득 차 있는 이곳은 김진석의 영역이나 다름없었다.

“이건… 피?”

“뭐, 땅굴 파다가 손톱 까진 거 아니야?”

마족들은 비웃음을 흘렸다. 약육강식인 마족의 세계에서 레벨이 낮은 마족은 육식 동물 앞의 초식 동물일 뿐이었다.

김진석에게 순식간에 죽어 빛으로 변해 사라진 몰의 흔적은 피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다행히 들키지 않았지만 그것도 시간문제다.

김진석은 곧바로 땅의 피를 확인하고 있는, 가장 레벨이 높은 마족에게 스킬을 사용했다.

“급습.”

[급습. LV5: 대상을 대상이 알아차리지 못할 속도로 공격한다. 공격력 500%

대상이 알아차리지 못할 시 공격력 800%]

아디스에서 배운 스킬. 레벨 50 이상의 도적만이 배울 수 있는 스킬이다. 스킬 이름 그대로 갑작스럽게 공격하는 스킬답게 대상이 알아차리지 못하면 공격력 보너스가 붙는 스킬이다.

쪼그려 앉아 피를 조사하고 있던 마족은 자기 목이 단검에 그일 때까지 김진석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뭣……?!”

쪼그려 앉은 그 마족은 그대로 엎어져 빛으로 사라졌고, 마족 위에서 김진석이 까마귀 깃 활을 든 채 나타났다.

그림자 밟기는 패시브형 On/Off 스킬이지만 공격하는 순간 풀리기에 나머지 마족 둘은 김진석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관통 샷.”

그 순간 이미 김진석은 스킬을 사용한 상태였고, 순식간에 날아간 화살은 레벨 60인 마족의 머리를 꿰뚫었다.

5초도 안 되는 순간에 60레벨이 넘는 마족 둘이 죽어 버렸다.

남은 마족은 상황 판단이 매우 빨랐고, 곧바로 뒤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땅에서 폭발이 일었다.

폭발 덫. 과거 다이아가 배우라고 준 스킬이었다. 도망갈 걸 예상한 김진석은 덫을 밟자 발이 떨어져 나가며 하체를 잃은 마족에게 다가갔다.

“쿨럭… 인간 중에 이런 강자가 나타났을 줄이야…….”

이미 삶을 포기한 듯한 음색인 마족은 허탈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김진석은 들을 것도 없이 바로 죽이려고 했지만 갑자기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렸다.

“하지만 혼자 죽을 순 없지. 마족의 수치니깐.”

그 말을 들은 즉시 김진석은 바로 뒤돌아 두더지 마족이 뚫은 지상으로 통하는 구멍을 향해 달려갔다.

하체를 잃은 마족은 마법사였다.

김진석이 사용한 폭발 덫의 폭발 때문에 굴이 한 번 흔들린 상태였다.

그런데 하체를 잃은 마족이 그 위로 스킬을 사용한 것이다. 폭발형 스킬을. 굴을 무너뜨릴 기세로 말이다.

…펑!

뒤로 들리는 엄청난 폭발 소리를 듣고 김진석은 더욱 강하게 땅을 박차며 구멍을 향해 달려갔다.

그와 동시에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굴이 무너지고 있었다. 스킬까지 사용하며 김진석은 지상을 통해 뚫린 구멍에 간신히 닿을 수 있었다.

비명의 숲으로 나온 김진석은 뒤를 돌아봤다.

우르르 굴이 무너지며 땅이 폭삭 가라앉았다. 문제는 이곳만이 아닌 굴이 이어진 곳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쭉 무너지며 지반이 가라앉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소리가 너무 컸다. 가이크 성까지도 들릴 수준이었다. 그렇다는 건 마족이 있는 곳까지 들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마족들이 비명의 숲으로 올 것이고, 원혼들이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 순간 바로 침공이 시작되겠지.

게다가 하필 비명의 숲 근처에는 있었다.

마족의 가장 큰 도시가 말이다.

곧바로 김진석은 비명의 숲 출구, 가이크 성의 방향으로 달려가며 인벤토리에서 새로운 단검을 꺼내 손에 상처를 냈고, 이내 도착한 다음 외쳤다.

“흑호! 이 단검을 노라와 다이아에게 전해 줘.”

김진석의 손에 상처를 낸 단검은 바로 패링 대거다. 아마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내장된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자가 김진석이고, 김진석만이 계속해서 사용했을 거다.

과거 많이 사 놨던 패링 대거는 조금이나마 남아 있었고, 자신의 피를 묻힌 채 흑호에게 맡겼다.

눈치가 빠른 그녀들은 아마 그것만으로도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잠깐 사이에 손에 난 상처는 포션도 사용하지 않고 나았다.

흑호는 단검을 거대한 입으로 물고 가이크 성으로 향했다.

김진석은 흑호를 잠시 바라봤다. 그런데 뒤에서 엄청난 마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마기까지.

마족들이 비명의 숲에 원혼들이 사라졌다는 걸 알아차리고 바로 비명의 숲을 넘어 침공하려고 하고 있었다.

너무나 빨랐다. 최초의 원혼인 아이를 성불시키고 비명의 숲 밖으로 나오니 이미 해가 지고 달빛만이 있는 어둑어둑한 밤이었다.

지금 마족들이 가이크 성으로 향하면 수많은 강자가 희생될 것이다. 오히려 비명의 숲이 인간을 마족들에게서 지키고 있던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김진석이 그 울타리를 없애 버린 게 되어 버린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위험할 때만 사용한다고 했는데… 바로 왔네.”

김진석은 멀리서 보이는 인간 형체들을 보며 단검과 활을 집어넣고 인벤토리에 츠바이핸더를 꺼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키잔과의 동기화율 35%]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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