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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75화 (75/201)

75화

자신의 대검이 쳐 내졌음에도 불구하고 다렌보다 노라와 다이아가 더욱 놀랐다.

그녀들은 다렌의 레벨을 알고 있다. 가이크 기사단 중 어떻게 보면 가장 유명한 기사였다. 엘프가 기사단에 들어가는 경우도 거의 없었고, 거대한 대검까지 다루는 자는 다렌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그의 무력도 당연히 정평이 나 있었다. 레벨이 60이 넘는 괴물 같은 그런 다렌을 단번에 무력화한 것이다.

노라와 다이아, 그리고 김진석을 아는 엘리온은 동공이 커지며 깜짝 놀랐지만 이내 1년이란 시간이 적지 않았다는 걸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렌은 아니었다.

간신히 손에 힘을 줘 대검이 날아가는 불상사는 없었지만 손에서 느껴지는 얼얼함은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 느끼게 해 줬다.

“…레벨 40이라 하지 않았나?”

다렌은 노라와 가이크의 말을 옆에서 들었다. 키잔이란 이름과 레벨이 40이란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걸 순순히 믿진 않았다.

“글쎄…….”

김진석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의 신분증을 믿는 순진한 자는 이곳에 없었다.

다렌은 김진석이 강하다는 걸 알았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어째서 저 여자에게서 마기가 느껴지는 거지?”

레벨이 높은 자들은 각자 최소 하나의 사연을 가지고 있었고, 이곳에 온 자들은 전부 마족에게 가족과 연인, 친구를 잃은 자들이 대부분이다.

마족의 마나와 같은 마기라면 저들에겐 역린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건 다이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김……! 키잔, 마기를 가진 자라니. 무슨… 속셈이죠?”

다이아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김진석은 단지 저 여성에게 속고 있고 이용당했을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김진석의 다음에 오는 말은 그녀의 생각을 간단히 부숴 버렸다.

“그녀는 이곳의 그 누구보다도 비명의 숲을 건너는 데 도움이 될 거다. 마기를 가졌건 말건 상관없다.”

김진석은 그녀가 마기를 가졌다는 걸 이미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곳에 데려온 것이다. 그때 가이크가 걸어왔다.

“그건 안 되겠는데. 그녀가 마족이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가 있나? 마기를 가진 존재는 마족과 몬스터를 제외하고는 본 적이 없는데. 게다가 그게 인간이라고? 믿을 수 없군.”

가이크가 정면에서 김진석의 의견을 반박했지만 김진석은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세라스의 힘을 밝힐 순 없었다.

[비네. LV:78]

지금 그녀의 레벨은 78.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사실상 김진석의 비수였지만 너무나 불안정했다.

세라스가 힘을 사용할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주름짐과 동시에 성격이 난폭해졌다. 최근 그녀의 아이 중 하나가 김진석을 공격하기도 했으니.

김진석이 그녀보고 자신의 몸은 알아서 지키라고 했지만 정작 다렌의 공격을 막아 낸 건 김진석이었다.

그녀의 목숨이 위험해진다면 몸속에 잠재된 마기가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말만 그렇게 했지 사실상 지금 김진석이 세라스의 호위 기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가이크를 비롯한 기사와 마법사를 설득시킬 방법은 지금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의 레벨을 밝힌다고 한들 마족으로 몰리겠지.

“범죄자라고 한들 마족에 대한 반감은 있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결국엔 범죄잔가.”

가이크는 자신의 몸의 두 배는 될 법한 거대한 배틀 엑스를 꺼냈다. 가이크는 하프 오우거. 2미터는 넘는 거구임에도 불구하고 배틀 엑스는 그보다 훨씬 거대했다.

게다가 가이크가 배틀 엑스를 꺼내는 경우는 단 하나, 적을 만났을 때다.

그를 본 주변의 모든 기사와 마법사들이 무기와 스킬을 사용하려고 했다. 범죄자들도 김진석의 중심으로 모여 무기를 꺼냈다.

일촉즉발의 상황.

거기서 나선 건 엘리온이었다.

“오랜만이군, 세라스.”

“음……? 아, 엘리온이구만. 변한 게 없으니 알아보기 쉽군.”

엘리온은 세라스를 알고 있는 듯했다. 가이크는 배틀 엑스를 여전히 세라스에게 겨눈 채 엘리온을 힐끗 쳐다봤다.

“긴가민가했는데… 이제 그 저주는 풀린 건가?”

“모르겠네.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지 갑자기 늙기 시작했어. 살 만큼 살았으니 죽기 전에 비명의 숲은 건너야 하지 않겠나?”

엘리온도 세라스의 힘의 비밀을 알고 있는 듯했다. 가이크는 배틀 엑스를 내리고 그에게 물었다.

“아는… 분입니까?”

“아아… 과거의 인연이지. 악마가 침공했을 당시 악마의 힘에 잠식됐지만 이겨 낸 유일한 인간이다.”

이곳에서 수많은 강자가 모여 있지만 악마의 침공을 겪은 자는 몇 없었다. 레벨이 높다고 나이가 많다는 건 아니었으니.

“세라스 공이었군요. 저 알카입니다. 혹시 기억하십니까?”

그때 뒤에서 최강의 마법사인 알카가 나섰다.

“그… 나한테 고백했다 차인 놈?”

“하하… 과거입니다, 과거.”

알카는 김진석도 알고 있는 NPC다. 그는 마족과 악마를 제외하곤 유일무이하게 전 속성을 다루는 최고이자 최강의 마법사다.

60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웬만한 기사보다도 몸이 좋았으며 특이하게도 언제나 손에 책을 들고 다녔다.

키는 172로 비교적 작았지만 그 탄탄한 몸 때문에 키가 작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게 하는 자였다.

“그때도 아줌마의 나이인데도 날 좋아해 주는 게 부담스러웠는데… 할머니가 되니 그때 받아 줄 걸, 하고 생각했지. 지금 고백하면 받아 줄지도?”

세라스는 장난삼아 말했고, 알카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비록 사별했지만… 아내도 있었고 지금은 손자도 있습니다.”

“오, 그 요만했던 꼬맹이가 이제는 손자도 가지다니. 멋지네.”

엘리온의 이어서 알카까지 그녀의 신분을 증명하니 기사와 마법사들은 뻘쭘히 무기를 내렸다. 용병들은 싸움이 일어날까 싶어 구경하려던 차에 탄식을 흘렸다.

“알카, 자네도 세라스를 알고 있었군?”

“엘리온 님, 당연합니다.”

“저 녀석이 내 저주를 풀어 주겠다고 난리 쳤던 게 엊그저께 같은데 말이야…….”

셋은 오랜만에 만난 회포를 풀고 있었다. 가이크도 마찬가지로 배틀 엑스를 자신의 아공간에 집어넣으며 상황은 끝이 났다.

“오해해서 미안하군.”

그 말을 끝으로 가이크는 다시 단상 위로 돌아갔다. 다렌과 어느새 다가온 찰스는 김진석을 힐끗거렸지만 무시했다.

“소란이 있었다. 미안하군. 그래서 더 질문 있나?”

아무도 답이 없었다.

“원래는 당장 바로 가려고 했지만…….”

가이크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움직였다. 그 시선이 가는 곳엔 여전히 회포를 풀고 있는 엘리온과 알카, 세라스가 있었다.

“하루만 쉬고 내일 간다. 더는 소란이 없길 빌지.”

범죄자와 그들을 노리는 자들을 겨냥하는 말이었다.

“가이크 성은 언제나 강자를 환영하니 어디든 들어가서 쉬면 된다.”

그 말을 끝으로 가이크는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가이크의 말이 끝나자마자 노라와 다이아는 김진석을 찾았다.

그런데 세라스의 옆을 지키듯이 서 있던 그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찾으려고 범죄자들한테까지도 물었지만 그들도 모르고 있었다.

“그분이 딱히 저희한테 뭘 말하고 행동하시는 분이 아니라서요. 일행이시라면 알지 않습니까?”

노라와 다이아가 김진석의 전 일행이었다는 걸 안 범죄자들은 최소 그 둘에겐 잘 대해 줬다. 하지만 도움 되는 건 없었다.

“하긴, 걔가 어디 가는 걸 누군가에게 보고할 스타일은 아니니……. 그럼 어딜 간 거야, 도대체?”

* * *

마찬가지로 김진석은 가이크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비명의 숲으로 향했다. 다렌의 계획을 안 이상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단순히 유령을 성불시키는 것으론 안 돼.”

최초의 원혼인 아이의 유령을 성불시켜 줘야 했다. 흑호를 타고 비명의 숲으로 가는 도중에 김진석은 검은 대지를 둘러보았다.

처음 이 세계에 들어왔을 때 헬 하운드를 잡고 기절한 틈에 다렌과 찰스가 김진석 자신을 가이크 성으로 옮겨 주었다.

거구인 자신이었지만 기사였고, 레벨도 높은 그들은 옮기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감상에 빠진 그때.

땅이 갑자기 꿈틀거리더니 피를 내뿜었다.

다행히 흑호와 김진석에게 튀진 않았지만 김진석은 그걸 보고 표정이 심각해졌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군.”

그와 동시에 흑호를 재촉하며 비명의 숲으로 최대한 빠르게 달려 나갔다.

비명의 숲 앞에 도착하니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수많은 인간의 형체들이 둥실둥실 떠다니며 김진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비명의 숲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정체는 원혼. 비명의 숲에 갇혀 죽은 자의 유령이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흘러나왔겠군.”

그 순간 유령이 물밀 듯이 전 세계로 퍼지게 될 것이다. 유령의 파도가 범람하는 순간, 악마가 뭘 할 필요도 없이 손쓸 새도 없이 멸망할 것이다.

죽은 자와 산 자는 공존할 수 없다. 그게 기본이었으니.

김진석은 멀리서도 보이는 조그마한 유령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처음 이 세계에 들어왔을 때 본 그 유령 아이가 맞았다.

원혼은 대부분 흐릿하게 보이지만 이 아이만이 선명하게 보였다. 처음엔 그저 인간 아이인 줄 알았으니 그만큼 원한이 강하다는 것.

하지만 고작해야 여덟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의 유령이 어떤 원한을 가지고 있을까.

김진석은 아이의 시선에 맞춰 한쪽 무릎을 꿇고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땐 도망가서 미안하다. 정신이 없었어. 네 덕분에 이 숲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는 건 알아. 이젠 그 빚을 갚아 줄게.”

김진석이 이 비명의 숲에서 멀쩡히 나갈 수 있었던 이유. 이 아이의 원혼이 직접 자신을 이끌고 비명의 숲 출구까지 안내해 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젠 빚을 갚을 때다.

아이의 원혼은 김진석의 옷소매를 잡고 어디론가 이끌었다. 주변의 모든 원혼은 그저 꿈벅꿈벅 쳐다만 보다가 같이 따라갔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는 큰 나무 하나와 그 아래에 두 개의 해골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김진석은 그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이 아이의 부모다.

아이가 숲에서 실종되자 부모가 찾으러 나섰지만 불의의 사고로 인해 사망했다. 하지만 아이만이 이 비명의 숲에 원혼으로 남아 있었다.

이유는 하나. 고작 여덟 살인 아이가 자신 때문에 부모가 죽었다는 걸 알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숲에서 죽은 자들을 전부 원혼으로 되살리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부모는 없었다.

그렇게 수십 년, 지금에 이른 것이다.

아이의 원혼은 김진석의 옷소매에서 손을 빼고 먼지로 변하기 직전인 두 해골의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김진석을 바라봤다.

아이는 부모가 보고 싶다. 하지만 그게 안 된다는 건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진석은 무기를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그 나무 아래에 맨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고작 맨손이지만 그 성능은 거의 포크레인 같았다.

하지만 아이의 부모 해골에 손상이 가지 않게 조심히 팠고, 마찬가지로 조심히 두 해골을 땅속 구멍에 옮겼다.

그리고 흙으로 위를 덮었다.

김진석은 제사 같은 걸 지내 본 적이 없지만 미디어에서 자주 접했기에 어떻게 하는지는 약식으로나마 알고 있었다.

“편히 쉬십시오.”

그 위로 세 번의 절을 했다.

한 번.

두 번.

마지막 세 번.

그리고 김진석은 아이의 뒤로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두 유령의 형체를 바라봤다. 부모의 유령이었다.

원혼이 아닌 혼인 상태로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희미하게 들려오는 두 젊은 남녀의 목소리. 그렇게 둘은 하늘로 올라갔다. 영문을 모르는 아이의 원혼이었지만 어렴풋이 느낀 것인지 눈에서 피로 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김진석은 원혼이기에 만질 수 없었지만 아이에게 다가가 눈물을 쓸어 주며 말했다.

“네 잘못이 아니다.”

아이는 김진석을 바라봤다.

“고생했다.”

그 말을 끝으로 아이는 성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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