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73화 (73/201)

73화

“잘 되셨습니까, 대장님?”

“잘 되고 말고가 어딨나. 내가 선택한 거니 후에 올 결과는 달게 받아야지.”

찰스는 다렌의 말에 한숨을 쉬었다. 원래 같았으면 다렌이 찰스에게 한숨 쉰다고 뭐라 했을 테지만 다렌도 같은 심정이었다.

과거, 둘이 검은 대지를 순찰할 때 비명의 숲 근처에서 한 마족을 만났다. 그 마족은 겉으로는 아무 상처도 없었지만 피부가 창백했고,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게다가 겉모습도 아이의 모습이었으니 아무리 마족이라고 한들 그대로 죽게 내버려 두긴 그랬다.

아이는 잘못이 없었으니.

다렌과 찰스는 마족을 지켜 줬다는 게 들킬 수 있으니 몰래 마족의 아이를 살리려고 했다. 어쩌면 마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비명의 숲을 건너왔으니 그 방법을 알아낼 수만 있다면 베스트였다.

하지만 가이크도 마찬가지로 마기에 민감했으니, 다렌과 찰스의 몸에서 나는 희미한 마기를 감지하고 결국엔 들켰다.

그래도 가이크는 악마의 침공을 겪어 보지 못한 자였으니 마족에 대한 반감이 그리 크진 않았기에 다행이었다.

원하는 것도 있고, 아이가 죽는 것도 보고 싶지 않았기에 지극정성으로 돌봤지만 일주일도 버티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

마치 귀신 들린 것처럼 조현병 증상을 보이며 자기가 하는 말도 기억하지 못하고 자꾸 헛것을 보더니 결국엔 숨을 거뒀다.

안타까운 감정이 들었지만 그래도 둘은 얻은 게 있었다. 제일 중요한, 비명의 숲을 건너는 방법을 말이다.

바로 그 비명의 숲의 원혼인 귀신을 성불시키는 방법을.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그 원혼에게 물어보면 된다. 무엇을 원하는지. 그걸 들어주고 비명의 숲을 건너면 끝.

하지만 마족 아이는 비명의 숲을 건넜는데도 죽었다. 그 이유도 간단했다. 마족 아이는 귀신을 성불시켜 줬지만 다른 귀신이 달라붙은 것이다.

다렌과 찰스는 그 사실을 가이크에게 알렸지만 결국 다른 귀신이 달라붙으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말을 했다.

하지만 다렌과 찰스는 마족 아이가 비명의 숲을 건넜다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발견했다. 마족이 비명의 숲을 건널 수 있었던 이유.

사실 알 것도 없었다. 마족은 대체적으로 레벨이 높았으니 귀신을 그저 정신력으로 버텨 낸 것이다.

그렇다는 건 즉, 레벨이 높은 인간도 비명의 숲을 건널 수 있다는 것.

그런데 그때 하필 김진석이 비명의 숲에서 발견된 것이다. 비명의 숲을 건너고 온전히 제정신을 유지하는 인간은 김진석뿐이었기에 둘은 김진석에게 비명의 숲을 어떻게 건넜는지를 물어보려 했지만 도망가 버렸다.

하지만 마족 아이에게 들은 것이 있었기에 둘은 일부러 적극적으로 김진석을 찾지 않았다. 그저 기다렸다. 레벨이 높은 인간들이 많아지기를.

그리고 지금.

“가시죠, 대장님. 마족과의 질긴 악연을 이젠 끝낼 때입니다.”

* * *

“어디서 이상한 정보를 가지고 비명의 숲에 가면 안 되는데 말이지.”

김진석은 비명의 숲을 건너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다. 바로 김진석이 처음 비명의 숲에 들어섰을 때 만난 아이. 최초의 원혼인 그 아이가 성불해야 비명의 숲에 있는 모든 원혼이 사라진다.

지금 김진석은 아디스에서 밀론을 만나러 가고 있었다. 신분증을 갱신하기 위해.

“진짜… 괴물이 다 됐군.”

레벨이 60이 됐다는 사실은 딱히 밝히진 않았다. 이리저리 떠벌리고 다니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하지만 아디스 지역에 있는 모든 곳에는 밀론의 귀가 있었고, 당연히 늑대 인간의 존재도 알고 있었다.

김진석이 그들의 왕국으로 들어섰고, 그 이후로 늑대 인간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즉, 몰살당한 것이다. 고작 하나의 인간에게.

그런데 김진석은 레벨도 밝히지 않는데 왜 신분증을 갱신하려고 할까. 이유는 간단했다.

“이 세계는 레벨이 높으면 뭐든 할 수 있다.”

이제는 숨길 이유도 없다. 레벨이 60이 넘어선 김진석은 그 어떤 범죄를 일으켜도 기껏해야 아디스에 수감되듯 쫓겨날 뿐.

레벨이 높은 자에겐 사형이란 제도는 없었다. 게다가 지금의 김진석이라면, 가이크조차도 승패를 장담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레벨이 높은 것도 단점이 있으니.

“내가 뭘 하든 감시가 붙겠지.”

물론 감시를 전부 죽여 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말짱 도루묵. 레벨을 밝힐 이유가 없다는 거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키잔, 레벨은… 40 정도로 부탁합니다.”

이름과 레벨을 속이는 것. 가장 기본적인 본인을 숨기는 방법이다. 밀론은 자세히 보면 들킨다고 했지만 그건 신분증을 만드는 마법사들에게나 해당하는 말.

범죄자 중 최고의 신분증 위조자가 만드는 신분증은 일반인은 절대 알 방법이 없었다.

“키잔… 말인가?”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니, 딱히 없지.”

그렇게 김진석은 이름이 세 번 바뀌었다. 김진석이었다가, 카이였다가, 이제는 키잔까지.

“처음으로 양지에서 우리 음지에 공문을 보내왔다. 강한 자를 가이크 성으로 보내 달라는 것. 비명의 숲을 공략한다고 하더군.”

“알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김진석의 목표는 그곳이었다. 사실상 지금 김진석이 잡을 만한 몬스터는 없었다. 레벨 높은 몬스터를 쓸어 담다시피 죽였고, 레벨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더 많은 몬스터를 잡아야 레벨 업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게임 시스템 때문에.

이제는 비명의 숲 너머에 있는 몬스터와 마족을 잡을 차례였다.

“자네가 간다면 다가라를 비롯해 아이들을 보내 주지……. 아, 그리고 세라스가 자네를 찾던데.”

“…알겠습니다.”

익숙한 이름 세라스, 아니 비네. 그녀는 1년 전부터 병상에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김진석은 세라스가 머무르고 있는 병상에 도착했다. 그런데 세라스는 병상에 있는 것과 달리 매우 멀쩡해 보였다. 고작해야 1년 전보다 피부가 조금 거뭇해진 정도.

하지만 문제는 그 피부다.

지금 그녀는 악마의 힘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김진석은 고민하고 있었다. 게임 속 세라스가 악마의 힘에 잠식당해서 비네로 변한 것인지, 아니면 이겨 내서 비네로 변한 것인지.

아무 정보도 없는 그녀였다. 1년이나 됐지만 아직도 그녀의 생사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떠날 건가요?”

세라스는 1년 전부터 김진석에게 존대했다. 아디스의 범죄자들과 같이 왠지 모르겠지만 김진석을 은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야죠. 아마 다시 아디스에 올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이었다. 이젠 신분증까지 발급했으니 아디스가 아닌 다른 성이나 도시에서 스킬과 아이템을 살 수 있다.

아디스에 당연히 스킬북을 살 수 있는 수단은 없었고, 아이템은 김진석이 몬스터를 잡아서 나온 것보다 안 좋았다.

사실 가이크 성을 제외하곤 그 어느 곳의 아이템도 김진석을 만족시켜 줄 순 없을 거다.

아니, 어쩌면 가이크 성도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아디스에서 벗어나면 다른 성이나 도시를 이용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따라가도 되나요?”

세라스의 말에 김진석은 마음이 약해졌다. 김진석이 1년 동안이나 그녀를 살려 준 이유. 세라스는 더는 처음의 아름다운 여성이 아니었다.

악마의 힘에 잠식당하고 있는 그녀는 점점 본래 나이에 걸맞은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1년 사이에 그녀는 폭삭 늙어 지금 40, 50의 나이로 보였다.

만약 이 상태로 1년이 더 지나면… 아마 더는 살아 있지 못할 것이다.

“상관없습니다만… 본인 몸은 본인이 지키십시오.”

“…알겠어요.”

* * *

가이크 성에 인간의 모든 전력이 모두 모였다고 해도 무방한 기사와 마법사, 용병과 심지어 엘프들까지도 모여 있었다.

하지만 엘프들은 구석에 옹기종기, 인간을 제외하고 자기들만이 모여 있었다.

그들을 제외하고 성안에서 노라와 다이아를 비롯해 김진석이 보기엔 수많은 네임드 NPC들이 모여 있었다.

그 누구도 이 인원을 모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자인 가이크를 제외하곤 말이다.

자신의 이름을 딴 가이크 성에서 이 세계에서 알려진 가장 강한 몬스터들을 막아내면서도 단 한 번의 도움 요청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악마가 나타났다는 말과 함께 도움을 요청하는 공문을 다 돌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악마의 흔적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다들 돌아갔다. 그런데 1년 하고도 반년 뒤, 가이크가 자신의 기사단원이 비명의 숲을 건널 방법을 찾았다는 거다.

뭔가 미심쩍긴 했지만 가이크가 전부 책임진다는 말과 비명의 숲을 건널 방법을 알아낸 자가 엘프란 것을 알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자기 레벨이 높다고 생각한 자들이 몰려들게 된 것이다.

“그래서… 비명의 숲을 어떻게 건너겠다는 거지?”

엘프의 대표, 엘리온은 사람들을 전부 모아 놓고 단상 위에서 기사 다렌과 찰스와 이야기하고 있는 가이크에게 물었다.

엘리온은 비명의 숲을 건너기 위해 모인 인원 중에서 최상위 레벨이었다.

“오랜만이네요, 엘리온 이사장님. 그런데 엘프에게 공문을 보낸 적은 없는데… 어떻게, 그리고 왜 온 겁니까?”

가이크는 딱히 엘프의 마을인 엘우드에 공문을 보낸 적이 없었다. 어차피 보내봤자 안 올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런데 어떻게 알고 온 것이다.

아마도 인간에게 있는 혐오감보다 마족에 대한 분노가 더 깊었기에 엘리온의 힘을 빌려 온 것 같았다.

“그들도 원하는 것이 있기에 온 것이지.”

“……?”

하지만 가이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뭔가 다른 게 있는 것 같았다.

“됐고, 내 질문에 대답하진 않은 것 같은데.”

그 누구보다도 강한 가이크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자는 이곳에 엘리온밖에 없었다. 가이크는 칼라 기사 학교의 학생이었을 적에 엘리온과 레온하르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깐.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엘리온이 말이 날카로웠다.

가이크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바로 그의 동생이 이 비명의 숲을 건너는 원정대에 참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가이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전부 모이면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무슨 소리지?”

엘리온은 주변을 둘러봤다.

더글라스, 레벨 50의 레온하르트와도 비견될 거구의 기사다.

앤드류, 레벨 52. 최고의 속도를 자랑하는 쌍검을 사용하는 기사다.

클라우드, 레벨 58의, 레온하르트와 라이벌이라고 불리는 최강의 기사 중 하나다.

길티안, 레벨 65. 평범한 검과 방패를 들고 있었지만 순수 인간 중에서는 최고이자 최강의 기사다.

세드릭, 레벨 56의 화염 계열 마법사이다.

소피아, 레벨 62의 보기 드문, 전격을 다루는 마법사이다.

알카, 레벨 69의 가이크가 기사 중 최강이라면 전 속성을 전부 다루는 최강의 마법사이다.

이외에도 수많은 강자가 이곳에 모여 있었다. 설령 악마들이 몰려와도 해볼 만할 것 같은 전력이 이곳에 모였는데 아직 전부가 모이지 않았다니?

“저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온다고 하더군요……. 마침 저기 오네요.”

가이크의 말에 집중하고 있던 이곳에 있는 전원이 그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봤다.

“혹여나 말하는 거지만… 지금은 같은 원정대원이니 트러블은 허용하지 않습니다.”

경고와 같은 그의 말에 그들은 의문을 표했지만 멀리서 보이는, 어쩌면 이곳에 모여 있는 인원수만큼 걸어오는 인원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들의 맨 앞에서 걷고 있는 거구의 남자를 보고, 조용히 있던 노라가 앞으로 달려가며 외쳤다.

“야, 이 개자식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