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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72화 (72/201)

72화

하지만 인간들은 부들부들 떨면서 제대로 된 대답도 못 하고 있었다.

늑대 인간인 그들에게 뼛속까지 들어선 공포감 탓이었다. 사육된 인간들은 말조차도 제대로 못 하고 그저 주는 음식만 받아먹는 진짜 가축이 되어 버린 것이다.

샤칸은 혀를 차며 뒤에서 멀뚱멀뚱 서 있는 늑대 인간들에게 말했다.

“주변을 둘러봐. 난 가룰에게 가지.”

“뭔 일인지 모르겠네… 알겠다.”

늑대 인간들이 언더월드 사방으로 퍼지는 걸 잠시 바라보다가 샤칸은 가룰이 머무르는 곳으로 향했다.

“인간?”

그런데 왕좌에 앉아 있는 건 가룰이 아니라 작은 늑대 인간이라고 착각할 수준의 인간 남자였다.

손에는 어디서 난지 모를 거대한 대검을 들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그 남자는 샤칸이 알고 있는 남자였다.

가룰이 머무르는 이곳에 올 때까지 늑대 인간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분명 눈앞의 남자가 한 짓임이 분명했다.

남자는 허공을 보는 걸 멈추고 왕좌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생각보다 빨리 왔군.”

“…무슨 짓을 한 거지?”

샤칸은 분명 월등한 늑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인간 남자에게서 위압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동안 만난 인간들은 눈앞의 남자에 비하면 인간도 아니다.

…아니면 눈앞의 인간이 인간이 아닌 것인가.

“이젠 너희의 땅이다.”

“…뭐?”

“말귀를 못 알아듣나? 이제 이곳은 너희의 땅이라는 말이다. 늑대 인간은 더는 남아 있지 않아.”

인간 남자의 말에 머리가 따라가질 못하고 있었다. 아니, 믿는다는 것부터가 이상했다. 강한 인간들이 많다고 한들 혼자서 늑대 인간 전부를 죽이는 건 설령 가이크라고 한들 불가능할 것이다.

이곳까지 오면서 가축을 제외하고 인간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으니 동료 따위도 없었다.

그때 흩어졌던 늑대 인간들이 샤칸의 뒤로 몰려들고 있었다.

“샤칸, 가룰은 어딨지? 저 인간은 또 뭐고.”

샤칸도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생각할 때.

인간 남자가 등에 멘 거대한 대검을 자신들에게 겨누며 말했다.

“가룰은 이제 없다. 여긴 이제 너희의 땅이다. 알아서 살아.”

하지만 늑대 인간들도 인간 남자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건 똑같았다. 그러자 그 남자, 김진석은 똑바로 이해시켜 주었다.

“이게 가룰이다.”

“…뭐?”

“놈을 죽이고 나온 아이템이다.”

김진석은 자신의 몸보다 큰 대검을 고작 한 손으로 들고 흔들며 말했다.

“이것들은 다른 놈들 죽이고 나온 거.”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인벤토리에서 늑대 인간을 죽여 버리고 나온 갖가지 금화와 아이템을 꺼내 땅바닥에 던졌다.

늑대 인간들도 마찬가지로 몬스터를 죽이면 아이템이 나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걸 줍지 않았다.

자신의 신체만 믿기에 무기는커녕 방어구조차 입지 않는 그들이었고, 그들이 몬스터들을 죽이고 나온 아이템은 땅바닥에 방치된 채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게임 속 시스템과 같이 아이템을 오랫동안 방치하면 그대로 빛으로 변해 사라지는 것이다.

즉, 김진석이 지금 꺼낸 아이템들이 뭘 뜻하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는 얘기다.

전부 5티어 아이템. 50레벨 이상이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으며 6티어인 아이템도 많았다.

“다… 죽었다고?”

샤칸을 비롯해 늑대 인간들은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지 않았다. 저 아이템들이 자신들을 잡아서 나온 것이라고 증명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때 한 늑대 인간이 김진석에게 달려들었다.

“고작해야 인간이 감히 우릴 능멸해?!”

인간을 동정할지언정 동등한 관계로 인정하지 못했다.

김진석은 달려드는 늑대 인간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츠바이핸더를 휘둘렀다.

서걱.

“크아악!”

그러자 늑대 인간의 팔이 마치 두부 잘리듯 잘려 나갔다. 그 모습에 늑대 인간들은 흠칫하며 뒤로 물러섰다.

자신들의 강인한 신체가 고작 파리 쫓듯이 휘두른 대검에 잘려 나가다니.

그제야 그들은 김진석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김진석은 발톱을 감춘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샤칸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정해라, 샤칸.”

샤칸은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 알고 있는 김진석을 고개를 삐걱거리며 바라봤다. 그는 공포심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게 아니었다.

“여기서 조용히 살 건가, 아니면…….”

샤칸이 가진 감정은 분노. 고작해야 가축에 불과한 인간을 믿고 그의 말을 따른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인간을 동정한다고 한들.

“동족을 전부 죽인 나를 죽일 것인가.”

동족만큼은 아니었다.

“크헝헝!”

샤칸은 마치 짐승과 같은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온몸의 골격이 바뀌며 엄청난 고통이 올 게 분명했지만 샤칸의 울부짖음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라이칸스로프. LV:72]

샤칸은 라이칸스로프로 진화했다. 이름조차 사라진 샤칸은 이성을 잃은 채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샤칸! 왜 그러나?!”

늑대 인간의 말은 더는 샤칸의 귀에 들리지 않았고, 결국 늑대 인간은 라이칸스로프에게 일족이 몰살당했다. 자신의 동족이 죽은 것에 분노한 샤칸에 의해서 말이다.

하지만 김진석은 어느새 그림자에 숨은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김진석의 목표는 처음부터 라이칸스로프였다. 늑대 인간들이 인간을 동정하지만 그건 가축으로서지 인간 자체를 동정하는 건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게임 속에서도 동족이 전부 죽은 것에 분노해 진화한 샤칸이었다.

“늑대 인간들이 전부 죽은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뭐.”

자그마치 레벨이 72. 인간 중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 가이크와 같은 레벨이었다. 하지만 김진석은 웃고 있었다.

[김진석. LV60]

‘레벨 60 달성. 보상이 주어진다.’

김진석은 언더월드에 있는 늑대 인간을 전부 죽였고, 검은색 글씨가 갱신되었다. 동시에 레벨 업이 되었고, 이미 보상은 받은 지 오래였다.

허공을 보고 있던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라이칸스로프가 늑대 인간을 전부 죽인 것을 보고 그제야 김진석은 그림자 밟기 스킬을 Off 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주변을 전부 파괴하다 못해 다른 파괴할 것을 찾아다닌 라이칸스로프가 엄청난 속도로 김진석에게 달려들었다.

그 속도는 지금껏 보았던, 노라가 기교를 사용했을 때와도 비교도 안 되는 속도였다.

하지만 김진석은 츠바이핸더를 들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허공의 푸른색 글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키잔과의 동기화율 35%.]

키잔, 김진석이 로스트 월드에서 키웠던 두 번째 메인 캐릭터다. 직업은 버서커. 거대한 대검을 한 손으로 휘두르는 광전사 컨셉의 직업이다.

과거 메인 캐릭터 카이의 직업, 카인의 성능이 워낙 좋지 않았지만 애정으로 키웠었다. 그리고 부캐릭터를 키웠는데, 그 캐릭터의 성능이 압도적이었다.

방어력이 거의 제로에 가깝지만 공격력에 전부 투자한 근접 딜러. 유리 대포인 직업, 버서커. 압도적인 대미지로 몬스터를 말 그대로 갈아 버리는 직업이다.

그만큼 그 캐릭터를 다루는 데 난이도가 매우 높았지만 그건 김진석에겐 아무런 제약이 없는 수준이었다.

카이는 애정으로 키웠다면 키잔은 성능 때문에 키운 직업이다.

검은색 글씨가 레벨 60 달성으로 주어진 보상, 그건 바로 김진석이 키웠던 다른 캐릭터와의 동기화였다.

게다가 동기화율이 30퍼센트가 넘어가니 스킬을 하나 배울 수 있었다.

“광기.”

버서커의 버프 스킬, 광기. 노라의 기교 스킬을 보고 버프 스킬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김진석의 온몸에 붉은색 아우라가 같은 게 일렁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김진석은 엄청난 분노가 들끓었다.

무심코 지나쳤던 스킬 설명의 텍스트.

[분노가 최대로 차 폭주 상태가 된다.]

게임 속에선 아무 의미도 없는 스킬 설명이었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스킬 이름대로 김진석은 광기에 물들었다.

마치 라이칸스로프처럼 주변에 모든 것을 파괴하고 싶은 감정으로 가득 찼고, 여전히 한 손에 거대한 츠바이핸더를 든 채 라이칸스로프와 부딪혔다.

* * *

“…위험할 때만 써야겠는데.”

버프 스킬 광기의 지속 시간은 1분이다. 1분 동안 공격력과 공격 속도가 높아지는 스킬인데, 광기가 꺼지자마자 김진석도 제정신을 차렸다.

주변을 둘러볼 필요도 없이 자신의 몸을 바라보니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따끔거리긴 했지만 온몸에 말라붙지도 못해 흐르는 신선한 피에 비하면 없는 고통이나 다름없었다.

가룰이 머물렀던 이 방은 사방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라이칸스로프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땅에 금화가 떨어져 있을 뿐.

“아이템은 없네. 아쉽군.”

피 칠갑을 한 채 김진석은 금화를 주웠다. 아쉽게 레벨 업은 안 했지만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곧 있으면 레벨 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을.

그때 그림자 속에서 흑호가 나왔다. 마치 자신의 역할을 뺏긴 것처럼 김진석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게 뭔가 웃겨서 김진석은 흑호를 쓰다듬어 주려다가 멈칫했다.

“피가 너무 많이 묻었네.”

온몸에 피 칠갑을 했고, 당연히 손에 가장 많은 피가 묻어 있었다. 흑호에게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기에 그저 괜찮다는 식으로 고개를 저으며 쳐다봤다.

금화에도 피가 묻는 게 똑같았지만 왠지 모르게 인벤토리에 들어갔다가 다시 꺼내면 피 같은 이물질은 전부 없어졌다.

인벤토리가 그건 허용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김진석은 가룰이 머무르는 곳에서 나와 언더월드를 둘러봤다.

그는 지금 한 종족을 멸족시켰다.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전부.

하지만 죄책감 따위는 없었다.

“몬스터랑 엮여 봤자 좋은 일은 없다.”

게임 속 플레이어가 만든 격언. 김진석은 샤칸과 그를 따르는 늑대 인간들이 인간을 동정하는 건 알았지만 가축으로서 동정하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늑대 인간이 진짜 인간을 하나의 종족으로서 동정했다 하더라도 그의 결정은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이제 비명의 숲을 공략할 땐가.”

아디스에서 주야장천 있긴 했지만 스토리가 어떻게 될지 몰랐기에 밀론을 통해 바깥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전부 알고 있었다.

다행히 별일 없었지만 갑자기 가이크 성에서 비명의 숲 공략을 주도하려고 하는 것이다. 게임 속에선 플레이어의 주도하에 비명의 숲을 공략했는데, 많은 것이 바뀌어 버렸다.

“준비는… 뭐, 딱히 할 것도 없지. 레벨은 조금 아쉽네.”

하지만 1년 사이에 레벨 60을 찍었는데도 김진석은 아쉬웠다. 레벨은 상대적인 것이었으니 비명의 숲 너머에 있는 마족의 도시와 성에 비하면 아쉽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레벨 60이 넘는 마족은 우습게 있었으니…….”

태생적으로 악마의 피를 물려받았고 약육강식이 기본인 마족 사회에 약한 마족 따위는 살아남지 못했다.

비명의 숲을 넘어 곧바로 마족의 성과 도시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비명의 숲을 공략한 순간 마족들이 눈치챌 것이 분명했다.

그때 수많은 마족이 비명의 숲을 넘느라 심신미약 상태인 인간들을 학살할 것이다.

그걸 막아야 했다.

“가자, 흑호야. 비명의 숲으로……. 아, 우선 아디스에 들려서 좀 씻고.”

* * *

“다렌, 괜찮나? 네 말대로 공문을 내놓긴 했지만… 넌 그렇게 되면 엘프와 인간 사이에서 제대로 지내지 못할 것인데.”

“괜찮습니다. 2년 가까이 그 남자를 찾지 못했으니……. 그 남자만 아니었다면 더 빨리 비명의 숲을 공략했을 겁니다.”

가이크와 다렌은 가이크의 집무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자칫하면 자네가 마족과 내통한 것으로 알려질 터인데.”

“그래서 그 친구 얘기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까지 숨길 수만은 없을 텐데.”

“그때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가이크는 과거의 친구, 지금은 자신의 기사인 다렌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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