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71화 (71/201)

71화

“…조건?”

“딱히 어려운 조건도 아닙니다. 그저 내가 이후에 할 일을 눈감아 주는 것. 그게 전부.”

인간 남자의 말은 도저히 샤칸은 이해할 수 없었다. 흔히 말하는 사기꾼이 이런 것일까. 원하는 것 없이 원하는 걸 들어주는 건 성인군자도 안 해 줄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진심으로 보였다.

“거점도 마련해 주겠습니다. 그쪽은 그저 일행을 데리고 언더월드에서 하루만 빠져나가 있으면 됩니다.”

샤칸은 인간 남자의 말에 고민했지만… 금방 선택할 수 있었다.

“하루만 눈감아 주지.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겠지만 하루 뒤에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면 언더월드를 샅샅이 뒤져 그쪽을 찾아 죽여 버릴 것이다.”

하지만 샤칸의 살벌한 경고에도 인간 남자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부디 그러길 바라죠.”

샤칸은 인간을 동정하고 안타깝게 보긴 하지만 늑대 인간인 만큼 기본적으로 인간을 깔보는 감정이 있다.

늑대 인간이 인간보다 우월하다는 선민의식으로 인해 태어난 감정이 바로 인간을 동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눈앞의 남자는 너무 기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우월한 늑대 인간이니 참으며 말했다.

“…나 말고 다른 늑대 인간에게 걸리면 죽을 테니 조심하게.”

“알겠습니다.”

끝까지 여유로운 인간이었지만 샤칸은 혀를 찬 채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는 늑대 인간을 모아 언더월드를 빠져나갔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그 인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 * *

김진석은 떠나는 늑대 인간과 샤칸을 그림자 속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땅속에 있는 언더월드에는 그림자밖에 없었고, 즉 김진석에겐 숨을 공간이 언더월드 전체라는 것이다.

[그림자 밟기 LV max :그림자 속에 숨어 대상을 물색한다.]

김진석의 메인 캐릭터. 카이의 직업인 카인의 스킬이다.

김진석이 레벨이 40이 되던 때 검은색 글씨가 그에게 보상을 주었다.

그건 바로 스킬을 선택하라는 것. 하지만 어떤 스킬을 선택하라는 건지 아무 설명도 없이 그저 선택하라고만 쓰여 있었다.

언제나 불친절한 검은색 글씨였으니 개의치 않았다.

이 세계에 카인이라는 직업이 없다는 걸 확인한 김진석은 실험 삼아 카인의 직업 스킬 중에서 가장 쓸모 있을 스킬인 그림자 밟기를 원했고, 검은색 글씨는 그걸 들어 주었다.

설명상으로는 매우 간결하지만 현실에서 그 스킬의 효용성은 차원이 달랐다.

그림자 속에 숨는다는 설명이지만 스킬의 이름과 같이 그저 밟기만 해도 사용이 되는 패시브형 스킬.

On/Off가 되는 스킬이었으며 김진석은 기본적으로 Off로 해 두고 있었다.

On으로 바꾸면 마나가 지속적으로 들지만 김진석이 움직이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

설령 움직인다고 한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그림자가 일렁이는 게 전부이니 대부분 눈치채지 못했다.

게임 속에서 방어력이 약한 카인은 이 스킬을 사용해 먼저 기습하는 용도로 사용하곤 했다.

그리고 그건 현실인 이곳에서도 마찬가지.

김진석의 눈앞에서 기감이 뛰어난 늑대 인간 샤칸이 지나가는데도 그는 눈치채지 못했다. 샤칸이 눈치채지 못한 이상 단 한 놈을 제외하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언더월드가 왕국으로 불린 이유. 바로 왕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진석은 놈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가룰. LV:68]

지금의 샤칸보다도 레벨이 높은 늑대 인간의 왕이었다. 놈은 전형적인 늑대 인간이었으며 인간은 한낱 가축으로밖에 생각 안 하는 자다.

그의 레벨은 혼자서라도 시간이 걸릴 뿐 아디스를 점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건 게임 속 이야기.

늑대 인간은 태생적으로 뛰어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태어났기에 인간이 동레벨이라면 아마도 더 많은 경험을 한 인간이 더 강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늑대 인간이 약하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언더월드에 있는 모든 늑대 인간이 나서서 아디스를 치면 충분히 잡아먹을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아디스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을 늑대 인간인 자신들이 막아야 했다.

안 그래도 숫자가 부족한 늑대 인간은 하나라도 죽으면 큰 전력의 손실이었으니 몬스터들의 상대를 바퀴벌레처럼 많은 인간에게 맡긴 것이다.

그리고 지하 세계에 왕국을 만든 생각을 처음 한 것이 지금 김진석의 눈앞에 있는 늑대 인간 가룰, 그였다.

4미터에 다다르는 거구는 늑대 인간 중에서도 거대했고, 특이하게도 붉은색 털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왕임에도 그를 지키는 늑대 인간이 없었으니, 이유는 당연히 늑대 인간 중에서 가장 강하기 때문이다.

놈의 덩치만큼 거대한 왕좌에 앉아서 서류 같은 것을 보고 있는 가룰은 인간과 다름없었다.

늑대 인간에게는 최고의 왕이자 현명한 왕이었지만 인간이 보기엔 그저 인간을 잡아먹는 식인 몬스터일 뿐이었다.

김진석은 그림자 밟기의 스킬을 Off 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음?”

가룰은 인간인 김진석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간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그저 물어보는 것이었지만 가룰의 모습은 왕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압력이 있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떨궈 서류를 보며 말했다.

“돌아가라.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건지 모르겠지만 그 용기가 가상해 돌려보내 주겠다. 아직 배고프지도 않으니.”

인간인 김진석에게 자비를 베푸는 모습은 가히 자애로웠다. 하지만 김진석이 모습을 드러낸 이유가 있었다.

“인간과 공존하지 않는 이유가 있는 겁니까?”

“공존하고 있지 않은가. 너희는 우리에게 좋은 영양분이다. 레벨이 높은 인간을 먹으면 몸에도 좋지.”

그는 김진석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식으로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김진석에게 다가왔다.

“너희는 돼지나 닭, 소 등에게 물어봤나? 공존이 가능하냐고? 너희는 한낱 가축일 뿐이야. 얌전히 우리로 돌아가라.”

김진석은 가룰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의 모습에 가룰은 눈을 꿈틀거렸다.

“뭐가 웃기지.”

“아니, 게임과 똑같아서 말이야.”

1년도 더 된 네크로맨서와 싸울 때, 그는 죽더라도 네크로맨서와 싸우는 걸 선택했다. 이유는 하나. 게임에선 몬스터들과 엮이면 좋을 게 없었다.

그건 지성을 갖춘 늑대 인간도 마찬가지.

그래서 김진석은 웃었다.

“고맙군.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너희를 몰살시킬 수 있겠어.”

그 주제넘은 말에 가룰은 거대한 발톱을 휘둘렀다.

“……?”

가룰은 갑자기 온몸이 뭔가에 묶인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는 것을 느꼈다. 꽉 묶여 있었으며 입도 움직여지지 않아 말조차도 할 수 없었다.

이를 꽉 물고 어떻게든 머리를 움직여 눈앞의 인간을 찢어발기기 위해 올린 손을 바라본 가룰은 눈을 크게 치켜뜰 수밖에 없었다.

땅바닥에서부터 올라온 검은색 무언가가 자신의 손과 몸을 꽉 붙잡고 있었다. 어떻게든 움직여 보려 하는 순간.

“대단하군. 지금껏 만났던 그 어떤 몬스터도 움직이지 못했는데 말이야.”

그에 가룰은 고개를 삐걱거리며 돌리려 했다.

하지만 갑자기 가슴에 구멍이 뚫리더니 땅속으로 몸이 빨려 들어갔다.

“레벨 업… 하겠지?”

그게 가룰이 들은 생전 마지막 소리였다.

* * *

쉐도우 트랩. 한국말로 그림자 덫.

김진석이 레벨 50이 되었을 때 검은색 글씨를 통해 배운 카인의 궁극기다. 레이드 몬스터를 제외하곤 모든 상대를 강제로 홀딩하는 스킬이다.

로스트 월드에선 레이드가 컨텐츠의 대부분인데 레이드 몬스터에게 통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레이드 몬스터에겐 홀딩이 아닌 매우 강력한 대미지를 주는 스킬로 변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강력한 홀딩과 더불어 대미지까지 선사하는 스킬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이건 김진석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기분 좋은 일임에는 분명했다.

게다가 궁극기는 인간 고유의 것. 몬스터들이 인간보다 레벨이 훨씬 높은데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김진석 본인보다 레벨이 9나 높은 가룰이었지만 쉐도우 트랩으로 홀딩하고 혹시 몰라 차징 샷까지 사용했다.

가룰은 쉐도우 트랩에 의해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림자는 이내 금화와 아이템을 뱉었다.

“이게 바로 나오네.”

[츠바이핸더. 공격력 85. 레벨 제한 70.

엄청난 크기의 대검이다. 그 크기와 무게만큼 강력한 대미지를 자랑한다.]

자그마치 레벨 70 이상의, 대검을 사용하는 직업이 쓸 수 있는 무기였다. 언더월드가 하나의 던전답게 가룰의 레벨보다 높은 아이템이 나왔다.

게임 속에선 가룰 혹은 샤칸을 잡으면 낮은 확률로 드랍이 되는데 단번에 나온 것이다.

“이거 얻기 위해 이 던전을 몇 번 뺑뺑이 쳤는데…….”

김진석의 덩치보다도 큰 2미터 50센티 크기의 츠바이핸더는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수준이었다.

게임 속에서 최고 레벨이 되기 전까지 츠바이핸더를 사용할 정도로 엄청난 공격력을 자랑했다.

실제로 많은 플레이어가 츠바이핸더를 사용했고, 김진석도 사용했으니 말 다 했다.

그런데 그때 늑대 인간들이 몰려왔다.

차징 샷이 가룰과 함께 벽까지 뚫어 버렸기에 그 소란을 보고 몰려온 것이다.

특히나 늑대 인간은 절대 활을 쓰지 않으니까.

“가룰! 무슨 일……?”

하지만 그곳엔 김진석이 있었다.

“인간이 왜 여기 있지?! 우리로 돌아가라!”

늑대 인간이 김진석에게 다가오는 순간, 검은색 그림자가 그들을 옭아매고 땅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카인의 궁극기, 쉐도우 트랩은 일정 시간 동안 범위로 지속되는 스킬이다.

가룰이 머무르는 이 방은 늑대 인간의 무덤이나 다름없었다.

김진석은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늑대 인간들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폭발 덫과 같은 큰 소음을 내는 스킬을 사용해 일부러 늑대 인간을 끌어들였다.

* * *

“샤칸, 소 떼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왜 아무것도 없지?”

샤칸은 자신과 생각이 똑같은 늑대 인간들을 꼬드겨 언더월드 밖으로 나오게 만들었다.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인간의 말을 따랐다는 건 그들에게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깐.

그러기 위해서 소 떼를 발견했다는 거짓말을 했다. 늑대 인간 사이에서도 소는 별미로 알려져 있어서 다들 잘 따라왔다.

12시간 가까이, 샤칸은 그들을 이끌고 이리저리 돌아다녔지만 더는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이런… 이미 도망간 것 같군. 여기 몬스터들의 흔적을 보니 놈들에게 쫓긴 모양이야.”

샤칸은 땅바닥에 있는 수많은 몬스터의 흔적을 보고 말했다. 늑대 인간들은 정작 소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 고개를 갸웃했지만 샤칸이 거짓말할 이유가 없고, 몬스터들에 의해 지워졌거니 하고 언더월드로 돌아갔다.

“아쉽군. 오랜만에 소고기로 폭식하나 했더니…….”

늑대 인간들은 고개를 저으며 아쉬움을 토로하며 언더월드로 들어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왜… 아무 소리도 안 들리지?”

원래 언더월드는 조용했다. 원래부터 늑대 인간들은 사담도 잘 나누지 않고 그저 자기 할 일만 묵묵히 다 하는 종족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샤칸과 더불어 늑대 인간들이 기이함을 느끼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갑자기 어디선가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살이 통통하게 오른 인간들이 뒤뚱거리며 그들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정확히는 출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고, 늑대 인간인 자신들을 보고 희망을 잃어버린 듯한 표정으로 절망하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늑대 인간들은 영문을 알 수 없었고, 샤칸이 대표로 늑대 인간들에게 사육당하던 인간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우리에서 나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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