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 * *
기사 학교에선 난리가 났다.
가이크 다음 희대의 재능이라고 알려진 김진석이 범죄자로 전락한 것이다. 게다가 그는 레온하르트가 직접 데려온 인재.
그가 데려온 인재가 범죄자로 전락한 전적이 몇 번 있긴 했지만 아디스에까지 들어간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가 바로 다가라였고, 지금 희대의 재능이라 불린 김진석이 두 번째였다.
자신의 교수 둘을 제외하곤 그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으며 다른 교수를 이기고 온종일 몬스터를 잡으러 가는 별종.
그게 김진석이었다.
아무리 신분 제도가 없는 기사 학교라고 한들 여러 귀족과 기사단이 그에게 처음을 제외하곤 다가가지 못한 이유는 극성인 노라와 다이아도 있겠지만 그의 성격이 가장 큰 문제였다.
기사단도 귀족도 결국 집단이다. 협조적이지 않은 김진석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쓸모가 없었다.
결국 그들은 자기 말만 잘 듣는 충성심 높은 기사를 원하는 거였으니.
하지만 재능은 재능. 희대의 재능을 놓친 칼라 성, 기사 학교와 레온하르트에게 엄청난 질타가 몰아쳤다.
가이크에 준하는 재능을 가진 자가 범죄자라면 개인의 강함이 중요한 이 세계에서 모든 게 망가질 것이다.
그리고 그때를 노려서 악마들이 다시 침공할 것이다.
1년. 1년이 지난 후 칼라 성의 레온하르트는 위상이 많이 떨어졌다.
가이크에 준하는 재능을 가진 자를 범죄자로 떨어지게 내버려 둔 결과였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칼라 성의 성주였고,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팔라딘이었다.
하지만 노라와 다이아는 아니었다. 그녀 둘은 기사 학교에서 교수로서 파면당했다. 물론 둘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노라는 용병이었으며 다이아는 원래 하던 일인 기사 학교를 감시하는 일을 똑같이 하고 있었으니깐.
노라도 마찬가지로 용병의 일로 돌아갔으며 둘은 다시 만날 일은 없었다. 하지만 둘은 지금 김진석이 머물던 기숙사, 505호에 모여 있었다.
“겁나 삭막하네. 아니, 원래 얘가 짐 같은 건 없었으니 똑같나?”
노라의 말에 다이아는 그의 방이었던 곳을 둘러봤다. 그의 흔적이라곤 남아 있지 않는 이 방은 말 그대로 삭막했다.
처음에 있었던 가구가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 아무것도 바뀐 게 없고, 변한 것도 없다.
“확실히 그답네요.”
둘은 김진석이 사라졌다고 슬퍼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마음 한구석이 헛헛할 뿐이었다.
노라와 다이아가 이곳에서 만난 이유는 하나. 김진석의 소재를 알고 있는 자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아디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다는 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둘은 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하… 밀론. 그 할배는 참… 하…….”
뭔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김진석의 소재를 알고 있는 자, 그는 기숙사장 앙골라스였다.
앙골라스는 원래 아디스에 들어가 있었다. 거기서 밀론의 손녀, 밀리는 외모만큼은 아름다웠고, 게다가 할아버지가 범죄자들의 대부였으니 앙골라스의 표적이 되었다.
앙골라스는 자기 얼굴도 꽤 생겼으니 밀리의 환심을 받고 그의 할아버지인 밀론의 재산을 먹으려고 하다가 밀론에게 걸린 것이다.
그 이후로 밀론의 세작으로 활동, 밀론 덕분에 아디스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고,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를 다른 범죄자들이 자신을 죽일지도 몰랐기에 앙골라스는 그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김진석이 포션을 상처에 뿌리는 방법을 보고 깜짝 놀란 이유도 바로 그가 밀론을 따르는 범죄자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기숙사장이 된 이유도 밀론의 말을 어쩔 수 없이 따르며 정보를 모으고 있을 때 엘리온의 눈에 띄었고, 그렇게 기숙사장까지 된 것이다.
물론 기숙사장이 되면 밀론의 영향력이 자신에게까지 안 올 줄 알았기에 한 것이지만 그건 그의 착각이었다.
“…그래서 무서운 아가씨들, 뭘 알고 싶은데?”
“너희들이 부르는 은인의 전부.”
“하… 내 은인은 아니지만 뭐, 됐어. 어려운 것도 아니니.”
앙골라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김진석의 정보를 둘에게 털어놓았다.
* * *
김진석은 지금 아디스에 있지 않았다.
아디스에 있는 몬스터 중 가장 레벨이 높은 몬스터는 블랙 스콜피온. 검은색 전갈이다. 하지만 당연히 일반적인 전갈이 아닌 6, 7미터. 건물 2층 크기의 전갈 몬스터였다.
몬스터들과 인간들의 피가 섞인 검은 땅속에서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모든 생명체를 집게로 찢어발기는, 말 그대로 괴물이었다.
[블랙 스콜피온. LV:62]
자그마치 레벨 62의 몬스터다. 하지만 놈은 홉 고블린과 달리 단독 개체였다. 홉 고블린은 부락도 있을 만큼 많은 개체가 모여 살았지만 블랙 스콜피온은 다르다.
물론 그렇다고 쉽게 볼 몬스터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김진석은 아디스에 있지 않았다. 범죄자들의 대부 밀론이 1년 전 노라와 다이아에게 말했듯이 그는 아디스에 있는 모든 몬스터를 잡을 기세였다.
그리고 그건 끝마쳤다.
[김진석. LV:59]
김진석. 그는 고작 1년 사이에 레벨 59에 다다랐다.
* * *
“그 이후론 나도 몰라. 신분증을 가지고 아디스에서 떠난 것 같은데.”
둘은 앙골라스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1년 동안 둘의 레벨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기껏해야 노라의 레벨이 47. 하나 더 오른 게 전부.
김진석이 없으니 몬스터들을 잡을 이유가 없었고,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깐. 진작에 한계에 다다랐던 둘이었지만 김진석이 강제로 끌어 올린 것이다.
그리고 둘도 레벨이 오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몬스터를 잡으러 나섰지만 전과 달랐다. 김진석의 어디서 났는지 모를 몬스터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새로운 몬스터를 잡으러 가는 게 두려웠다.
그런데 김진석은 둘과 달랐다. 1년 사이에 자신의 레벨을 넘어 엘리온과 레온하르트의 레벨마저 뛰어넘는 몬스터를 혼자서 잡았다는 거다.
둘은 그제야 다가라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진짜 우리가… 막은 거야?”
뭘 막았는지 뒷말은 삼켰다. 그걸 말했다간 자신들이 비참해지기에. 앙골라스는 둘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대충 알 것 같기에 그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몬스터들의 왕국으로 갔다던데. 어디로 가는지 밀론 할배에게도 안 알려 줘서 몰라.”
하지만 결국 김진석이 어디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노라와 다이아는 1년 동안 소식이 없는 김진석이 괘씸해 직접 찾아보려 했지만 결과는 도루묵.
믿을 수 없는 얘기였지만 앙골라스가 둘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살아 있어서.”
“그래… 이젠 우리가 동시에 달려들어도 못 이기겠는데.”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 섞이지 못할 것만 같았던 둘이 이렇게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도 김진석 덕분이었다.
김진석이 없는 지금도 노라와 다이아는 사라진 김진석을 찾고 있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인데, 빨리 나가지 그래? 기숙사에 외부인은 원래 못 온다.”
물론 앙골라스는 자기 알 바 아니었으니 명백한 축객령을 내렸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죽일 수 있는 앙골라스였지만 노라와 다이아는 순순히 물러나 주었다. 1년 동안이나 연락이 없었던 김진석의 정보를 알려 주었기에.
안다고 변한 것은 없었지만 말이다.
노라와 다이아는 기숙사를 나섰다. 김진석이 있던 때와 다르게 그 누구도 그녀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둘은 파면당한 교수였으며 노라는 용병이었으니 그럴 줄 알았다는 상황이었고, 다이아는 처음과 같이 평범한 학생 1로 변장한 상태였다.
1년 전 김진석이 있던 때와는 달랐다.
“어떻게 할 거야?”
“…뭘 말입니까?”
학교 앞 정문에 서서 각자 헤어지기 전, 노라가 다이아에게 말했다.
“다나였나? 네 친구, 구하러 갈 거야?”
“…예.”
김진석이 사라지고 1년 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레벨이 높은 자들, 한계를 맞이한 자들에게는 고작 1년이었겠지만 레벨이 낮은, 한계를 맞이하지 못한 자들에게는 아니었다.
수많은 재능이 있는 자들이 튀어나왔으며 기사 학교에서도 졸업해 성장해 나갔다. 새로이 한계를 맞이한 자들과 맞이하지 못한 자들이 나타난 것이다.
전체적으로 인간의 전력이 한 단계 높아진 지금, 다시 한번 비명의 숲을 공략하자는 소리가 나왔다.
과거, 비명의 숲을 공략했던 때와는 달랐다. 그때는 숨어든 마족들이 인간들을 꼬드겨 비명의 숲으로 가게 한 것이지만 지금은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했다. 제대로 된 계획도 없이 그냥 레벨만 높은 사람들만 모아 비명의 숲을 공략하려 한 것이다.
누구도 넘어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비명의 숲을 말이다.
그 이후로 동료와 가족, 연인을 잃은 자들은 마족을 혐오했고, 비명의 숲 너머에 있다는 마족의 도시를 쳐부수는 걸 염원했다.
하지만 레벨만 높아진다고 한들 비명의 숲의 비밀을 모르는 이상 들어갈 순 없었다.
그런데 가이크 성의 기사, 다렌과 찰스가 비명의 숲을 건널 방법을 찾았다고 가이크 성의 성주, 가이크가 공문을 퍼트린 것이다.
- 한 달. 한 달 동안 비명의 숲을 공략할 용사들을 모집한다.
공문엔 고작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가이크가 공문을 보냈다는 건, 즉 본인이 전부 책임지겠다는 뜻이다.
비록 가이크는 성주이기에 성에서 멀리 벗어날 순 없었지만 그의 가이크 기사단이 직접 최전방에 나설 것이다.
가이크 기사단은 기이하리만큼 강함을 숭배하는 경향이 강했기에 그 누구보다도 강한 가이크의 말이라면 사지로도 몸을 집어 던질 것이다.
한 달의 유예 시간 중 2주가 지난 지금, 다이아는 슬슬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공문이 내려오자마자 다이아의 선택은 정해져 있었다.
“갈 겁니다. 다나를 구하기 위해선 제가 가야죠.”
죽은 줄만 알았던 친구가 살아 있다는 걸 안 이상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려 준 자는 지금 이곳에 없다.
“같이 가 줄까?”
그런데 노라가 갑자기 같이 가 주겠다는 말을 했다. 그녀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아는 사람이 있으면 좋고, 그 사람이 강하면 더 좋겠지만… 진심이신가요?”
“그럼 아니겠어? 걱정하지 마. 나도 원하는 게 있으니깐.”
그 말에 다이아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뒤에 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비명의 숲을 공략한다고 했으니 걔도 찾아오겠지. 그땐 뺨이라도 한 대 갈겨야 분이 좀 풀릴 것 같은데.”
“갈길 수 있다면 말이죠.”
노라와 다이아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 * *
김진석은 지금 꽤나 곤란한 상황이었다.
“진짜 도움이 안 되네.”
“조용히 해라, 인간.”
지금 김진석은 철창 같은 곳에 갇혀 이동 중이었다. 그리고 이동시켜 주는 건 바로 몬스터. 판타지 게임에서 흔히 나오는 늑대 인간이다.
[샤칸. LV:66]
자그마치 레벨 66이나 되는 괴물 같은 몬스터였다. 하지만 인간의 말을 할 줄 알고 지능은 인간보다도 뛰어났다.
충족과 같은 하나의 종족이었고, 늑대 인간이 김진석을 이송 중인 곳이 바로 늑대 인간의 왕국, 언더월드였다.
기본적으로 레벨이 60이 넘어가는 종족인 늑대 인간은 아무리 김진석이라고 한들 손쉽게 상대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지능도 인간보다 뛰어나니 김진석은 최소 레벨은 60을 찍고 찾아가려 했다.
눈앞에 나온 검은색 글씨가 나오지 않았다면.
- 언더월드로 향해라.
김진석 자신이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를 제외하곤 언제나 몇 레벨을 달성하라, 가 대부분인 검은색 글씨가 자신에게 명확한 목적을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