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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67화 (67/201)

67화

아무리 김진석이라도 검날을 맨손으로 치니 상처가 날 수밖에 없었다.

손바닥이 찢겨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본능적으로 공격을 막은 자신의 손을 쳐다보고 있었다.

언제나 사람 좋은 웃음을 짓던 다가라가 처음 보는 진중한 표정으로 김진석을 바라봤다.

“왜 그녀를 감싸는 거지? 몬스터라 하지 않았나?”

김진석은 그런 다가라를 잠시 바라보다가 품속에서 포션을 꺼내 손바닥에 뿌렸다. 그 모습에 밀론과 다가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금 그녀가 몬스터로 보입니까?”

“그럼 뭐지? 리치의 힘을 사용하는 인간이라고?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밀론 님은 아십니까?”

“…아니, 나도 모르겠군.”

한때 마녀라고 불렸던 세라스는 그 힘으로 인해 마을과 도시, 성, 전부에서 배척당했다. 겉모습이 아름다운 건 아무짝에 쓸모가 없었다.

몬스터가 아무리 예뻐 봤자 몬스터. 그 외견으로 사람을 꾀어내 죽이는 몬스터도 많았으니 경계하고 배척할 수밖에.

하지만 김진석은 타의가 됐건 아니건 그녀를 살리겠다고 마음먹었다.

“적어도 제 눈에는 인간으로 보이는군요.”

* * *

세라스는 눈앞의 남자, 김진석을 바라봤다.

면식이 없는 남자임이 분명하지만 괴물 같은 자신을 지켜 주고 있었다. 악마의 침공 때 이 힘을 얻은 이후 몬스터들의 싸움에 도움이 된 그녀였지만 악마가 사라지고 난 이후 늙지 않는 그녀는 몬스터 취급을 받았다.

실제로 그녀와 같은 힘을 사용하는 몬스터까지 있었으니, 시간이 가면 갈수록 과거였던 악마의 침공이 잊힘과 동시에 그녀에게 도움을 받았던 사실까지도 잊히고 있던 것이다.

그녀의 외모에 혹해 친절하게 대해 주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녀의 힘을 알자 바로 경계하고 배척했다. 마치 몬스터 보듯이 말이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 김진석은 달랐다. 애초에 그녀의 힘을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런데도 손바닥이 찢기면서까지 자신을 구해 준 것이다.

“적어도 제 눈에는 인간으로 보이는군요.”

그리고 그는 자신을 인간으로 인정해 주고 있었다.

“왜지?”

“…음?”

세라스가 일어나자 다가라는 밀론의 앞을 가로막으며 방패까지 들었지만 그녀의 눈은 김진석을 향해 있었다.

“왜 내가 인간이지?”

사실 세라스는 자기도 자길 몬스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몬스터들도 악마의 힘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도 똑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악마의 침공이 끝난 이후로 항상 숨어 살았고, 그저 자신에게 달려드는 범죄자 몇몇을 죽이다가 오해가 겹쳐 추방돼 결국 아디스에 정착한 것이다.

그런데 눈앞의 남자는 자신의 삶을 통째로 부정하고 있었다.

그녀는 궁금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말 자신이 인간이 맞는지 말이다.

김진석은 당황스러웠다.

다가라가 갑자기 세라스를 공격했고, 그걸 막아냈다. 상처 난 손바닥을 치유하며 그녀를 인간이라고 말했는데 어느새 일어난 세라스가 왜냐고, 울 것만 같은 얼굴로 묻고 있었다.

왜냐고 물어봤자… 대답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제가 인간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뭐?”

동문서답 같은 말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남이 뭐라 생각하든 상관없습니다. 제가 인간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딱히 생각해서 한 말도 아니었지만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누가 뭐라 하든 신경 안 쓰는 김진석 자신의 성격을 반영한 말이었다.

세라스는 김진석의 말을 듣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 눈을 감았고, 김진석은 그런 그녀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데 밀론이 말했다.

“우릴, 아디스를 구해 줘서 고맙네. 혹시 원하는 게 있나? 그… 이름이 뭐지?”

김진석은 가명인 카이라는 이름을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아디스에 들어온 이상 카이란 신분도 범죄자가 되어 버렸다.

물론 오랫동안 함께했던 노라와 다이아, 레온하르트와 엘리온은 김진석을 감싸 주겠지만 그렇게 되면 그들도 곤란해질 것이다.

“당신이라면 바깥과 연결되어 있겠죠.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 * *

노라와 다이아는 무턱대고 아디스로 향한 김진석을 돕기 위해 레온하르트와 엘리온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했다.

“엘츠 성의 성주에게 연락은 해 보겠지만… 아마 불가능할 거다.”

하지만 그 둘조차도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그 어떤 이유로도 아디스에 들어간 자는 사면받을 수 없다.

게다가 둘의 말을 들어 보면 아디스를 구하러 갔다고 했다.

“왜 그가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안타깝군. 재능은 물론이고 인성까지 좋은 인물이었는데…….”

엘리온은 이미 그를 포기한 상태였다. 레온하르트도 그 의견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하지만 노라와 다이아는 포기하지 않았고, 괜히 둘의 눈치를 보며 엘리온과 레온하르트는 적극적으로 엘츠 성에 연락을 취했다.

당연하지만 연락이 하루 이틀 사이에 되는 것이 아니었고, 노라의 인내심이 바닥나기 직전인 3일 차에 엘츠 성에서 연락이 왔다.

그런데 그 연락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아디스의 왕, 밀론이 모습을 드러냈다.”

레온하르트와 엘리온이 동시에 칼라 성을 비울 수 없었으니 레온하르트가 칼라 성에 남고 엘리온과 노라, 다이아가 엘츠 성으로 향했다.

“전쟁이라도… 일어나려는 건가?”

셋이 엘츠 성에 도착하고 가장 먼저 본 것은 엘츠 성의 성벽 뒤 검은 대지 위에 모여 있는 수많은 범죄자였다.

범죄자들은 아디스에 들어간 이후 조용히 살았기에 엘츠 성은 물론이고 다른 도시나 성에서 전혀 간섭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그들이 진을 치고 성벽의 주변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범죄자들이라 지휘 체계도 없었으니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그 숫자가 너무 많았다. 이미 이곳에 모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협적인 그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전부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엘츠 성의 기사들도 극도로 긴장한 상태. 그때 한 남자가 셋에게 달려왔다.

“노라와 다이아가 누굽니까?!”

“저희입니다만… 당신은 누구죠?”

“성주님의 전령입니다. 당장 성벽 위로 올라가세요. 그곳에 가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셋은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전령의 말대로 성벽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곳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 백발의 할아버지가 있었다.

“거기 아름다운 처자 둘이 노라와 다이아인가?”

그 할아버지, 밀론은 정장을 입고 신사 모자를 쓴 채 여유롭게 서 있었다. 마나에 민감한 엘프, 다이아는 눈앞의 할아버지가 일반인임을 바로 알아차렸지만 그의 여유는 알 수 없었다.

“대부, 밀론인가?”

“자네가 엘리온인가. 엘프 대마법사 엘리온. 유명한 인물을 만나니 영광이군.”

엘리온과 밀론, 둘은 서로를 알고 있었다. 노라와 다이아도 대부 밀론의 이름은 알고 있었다.

“범죄자들의 왕, 아디스의 왕 밀론이… 일반인이었나?”

다이아의 말에 노라도 깜짝 놀랐다. 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모든 악질적인 범죄자 중의 왕인 그가 고작해야 일반인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밀론은 그런 둘의 반응을 재밌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 모습은 마치 자애로운 할아버지가 손녀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상상하던 범죄자들의 왕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둘은 물론이고 엘리온마저도 눈을 크게 뜨며 그를 쳐다봤다.

“아, 미안하군. 나도 손녀가 있어서 말이야.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요즘 감성에 자주 젖어.”

밀론은 신사처럼 신사 모자를 벗으며 그녀들에게 사과했다.

“우리의 은인께서 아름다운 여성 두 분에게 전할 것이 있다고 했지.”

“…은인?”

엘리온은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다이아와 노라는 그 말뜻을 알 수 있었다.

“결국엔… 구해 줬구나.”

“그래서, 무슨 말이죠? 그는 어딨나요?”

“그는…….”

* * *

“자네는 양지의 사람이었군. 그럴 것 같긴 했다만.”

밀론의 말, 양지라는 건 아디스가 아닌 바깥을 말하는 것이다. 반대로 아디스는 음지.

“왜 양지를 포기하고 음지를 구해 준 거지?”

다가라도 밀론의 말에 동의했다. 아디스에서 사는 범죄자들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양지에서 음지로 떨어진 작자들이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는 없었고, 그들 전부가 음지에 오고 싶어서 온 건 아니었다.

그런데 김진석은 자의로 양지를 포기하고 음지로 들어온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그 어떤 것도 음지가 양지보다 나은 것이 없었으니깐.

하지만 김진석에겐 달랐다. 그에겐 음지가 양지보다 나은 것이 딱 하나 있었다.

“강한 몬스터가 있는 곳을 알려 주십시오.”

“…몬스터?”

김진석은 기사 학교에 다닌 6개월 동안 대부분 칼라 성 근처를 돌아다녔지만 노라와 다이아와 함께 멀리까지 나가서 몬스터를 잡기도 했었다.

이유는 하나. 스토리에 관여된 곳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그리고 엘우드와 같이 도와줘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기에.

사실 있었다기보단 김진석이 노리고 간 곳은 전부 그의 도움이 필요했고, 눈에 띄지 않게 노라와 다이아와 함께 몬스터들을 죽이고 떠나갔다.

물론 그로 인해 김진석도 성장하긴 했지만 급한 불은 전부 껐으니 이젠 자기를 위해 성장해야 했다.

혼자서.

“굳이 혼자 다닐 이유가 있나?”

“혼자 다니는 게 레벨 업이 더 빠릅니다.”

이 세계에선 몬스터를 잡을 때 혼자 잡는다는 건 상상도 해선 안 될 일이었다. 높은 레벨의 인재는 드물었으니 몬스터들에게 죽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현실 세계에 있는 군대와 같이 전우조, 최소 두 명 이상의 인원이 몬스터를 잡는 게 이상적이었다.

그래서 레온하르트조차도 대부분 문제를 일으키는 용병들의 거주지, 용병의 쉼터를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레벨 높은 인재를 보존하기 위해서다.

후에 악마들의 침공이 다시 이어질 때를 대비해.

물론 악마들이 침공을 다시 할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김진석은 알고 있었다. 그도 언제 악마가 다시 침공하는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대충은 알 것 같았다.

“게임 속에서 시간이란 개념은 없지. 오로지 플레이어의 레벨에 따라 스토리가 진행됐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다행히 아디스의 충족들은 멍청했고, 단순했기에 쉽게 상대할 수 있었다곤 하지만 세라스가 없었다면 김진석도 아디스를 구할 순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엘우드. 세계수의 인정과 카이와의 동기화된 스킬인 차징 샷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이겨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즉, 이 세계는 플레이어의 레벨이 아닌 시간에 따라 스토리가 진행됐고, 김진석은 진행되는 스토리에 비해 레벨이 낮다는 것.

그것도 처음에 카이와의 동기화로 인해 가디언을 잡고 레벨을 20부터 시작했기에 그나마 비슷한 레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레벨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레벨 업의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아디스에 도착했을 때면 이미 레벨이 50 가까이는 돼야 했었다. 너무 느려.”

그 누구보다 빨리 강해져야 했다. 아디스 근처엔 김진석이 잡을 만한 몬스터들이 넘쳐흘렀다. 게임 속과 달리 현실은 몬스터를 죽이면 다시 생성되지 않는다.

칼라 성 주변은 김진석이 청소하다시피 죽여 버렸기에 거의 몬스터의 씨가 말랐다.

하지만 아디스는 척박한 환경이기에 인간이라곤 범죄자밖에 없었고, 자기들끼리 싸우기 바빴기에 몬스터들에게 시선을 돌리는 건 밀리 정도밖에 없었다.

물론 아디스가 아닌 다른 곳에도 김진석이 잡을 만한 몬스터들은 많았지만 아무 제약 없이 잡을 순 없었다.

“둘에겐 죄송하다고 전해 주십시오. 범죄자는 잊어 달라고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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