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66화 (66/201)

66화

“꼬마야, 어떻게 내 정체를 알았니?”

“…….”

그 거대한 김진석을 세라스는 꼬마라고 불렀지만 김진석은 반박할 수 없었다. 그녀의 나이는 90살. 김진석을 충분히 꼬마라고 부를 수준이었다.

악마의 힘으로 인해 저주이며 축복인 노화되지 않은 힘을 가진 세라스는 힘을 받은 그때 당시 이후로 전혀 늙지 않았다.

충족들은 갑자기 땅속에서 솟아오르는 엄청난 숫자의 뼈다귀들에 당황했다. 하지만 충족의 왕은 그로 인해 정신을 차렸고, 이내 충족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해골들은 몬스터들에게 맡기고 빠져라!”

충족들은 자신들이 이끌고 온 몬스터들에게 맡기고 아디스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세라스는 아디스에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죽어도 아무도 모를 범죄자들을 자신의 외모로 꼬드겨 죽이고 자기 아이로 만들었다.

하지만 말만 아이였지 세라스는 그 뼈다귀들을 딱히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그 증거로 뼈다귀들과 몬스터들의 전쟁은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김진석에게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김진석이 그녀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한 가지.

그녀는 게임 속에서 끝까지 자신의 목적을 밝히지 않는 NPC였다.

대부분 게임 속에서 악당이든 주인공이든, 아니면 흔히 지나가는 엑스트라든 자기 목적이 뚜렷했다.

세계를 멸망시킨다든지, 아니면 아내를 구한다거나 농사가 대박이 나길 기도하는 등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세라스는 달랐다. 게임 속에서 아디스를 구한 건 플레이어의 덕도 있었겠지만 세라스의 도움이 컸다.

밀론도 그녀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그녀는 플레이어의 존재에 관심을 가져 먼저 정체를 드러냈고, 플레이어를 도왔다.

후에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가 직접 그녀에게 왜 도왔는지 물어봤지만 그녀는 그저 변덕이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렇게 세라스는 스토리에서 다신 등장하지 않았다.

게임사의 입장에서는 그저 일회용 캐릭터였을 뿐일 수도 있었겠지만 현실이 된 이 시점에선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다.

“전 오히려 당신이 궁금하군요.”

“…음?”

하지만 김진석은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드러낼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세라스의 정체를 잘 알고 있는 듯이 말했다.

“당신이라면 아디스를 혼자서도 점령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정체를 숨기고 지내던 이유가 있었습니까?”

“…호오.”

김진석의 말에 세라스는 재밌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세라스는 혼자서 아디스를 점령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고, 조용히 범죄자 몇몇을 죽여 자기 아이로 만들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힘을 키우고 뭔가를 기다리듯이 말이다.

김진석은 그녀를 살펴보고자 스킬, 감정을 사용했다.

그런데 드러난 결과는 김진석조차 예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비네]

비네. 게임 속에서 레이드 몬스터이자 최종 보스 중 하나. 즉, 악마인 존재였다. 모든 악마 중 유일한 인간의 모습을 한 비네는 지금의 세라스처럼 해골을 다뤘다.

수많은 몬스터와 인간의 모습을 한 해골을 전부 부수며 나아가면 비네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본신의 무력은 약한 비네는 플레이어에게 허무하게 토벌당한다.

그런데 마지막에 그녀가 죽을 때, 그녀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이내 빛으로 변해 사라졌었다.

그녀의 유언은…….

“지옥을 끝내 줘서… 고맙다, 였나?”

무심결에 내뱉은 김진석의 말에 세라스, 비네는 눈을 크게 떴다.

“네가… 그걸 어떻게…….”

하지만 그때 세라스의 아이, 뼈다귀들이 몬스터들을 전부 죽였을 때쯤 도망갔던 충족들이 다시 나타났다.

뼈다귀들이 꽤 많이 희생당했고,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을 보고 충족의 왕이 충족들을 이끌고 다시 나타난 것이다.

물론 그건 충족의 착각이었다.

“뭐… 뭐지?”

범죄자들은 갑자기 땅이 흔들리는 것에 깜짝 놀라며 중심을 잡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김진석은 중심을 잡으면서도 땅이 흔들리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도… 도망……!”

충족의 왕은 자신의 발밑을 보고 뭔가를 깨달은 듯이 충족들에게 도망치라고 외치는 그 순간.

아무것도 없는 검은 땅에서 엄청난 크기의 기둥들이 충족을 중심으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워낙 거대해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그 엄청난 크기의 기둥은 손가락이었다.

땅에서 손바닥이 솟아올라 충족들을 집어삼켰고, 다시 땅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살아 있는 충족과 몬스터는 없었다.

그때 갑자기 세라스가 몸에 나 있는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를 쏟아 내며 쓰러졌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밀론과 그를 지키려 한 다가라, 그리고 밀리와 다른 범죄자들은 급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김진석은 세라스, 비네를 쳐다봤다. 그녀는 악마였다. 하지만 감정으로 본 그녀는 악마가 아니었다.

[비네. LV62.]

바로 그녀의 레벨. 김진석의 감정을 속일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그녀의 레벨은 실제로 62인 것이다.

게임 속 비네의 레벨은 당연히도 최고 레벨인 99. 하지만 눈앞의 비네, 세라스는 62이다. 게임 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눈앞의 그녀는 인간이다.

김진석은 고민했다. 눈앞의 그녀를 죽일지, 아니면 살릴지. 죽이면 후에 죽여야 할 악마를 쉽게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살려서 은혜를 입히면 후에 도움이 될지 몰랐다. 레벨 99가 될 인재인 것이다. 그녀가 악마의 힘에 잠식당해서 보스가 된 것이라면… 죽여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죽이는 게 맞는데 말이지…….”

위험성이 너무 컸다. 그녀의 유언만 생각해 봐도 악마의 힘에 잠식당해 악마로 변했거나 그런 것 같은데, 살려 두더라도 악마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문제는 탈진한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없다는 거다. 게임 속에서 그녀가 탈진한 적은 없었지만 김진석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레이드에서 가디언을 잡았었지.”

가디언, 김진석이 이 세계에 처음 왔을 때 게이트에서 나온 악마다. 기본적으로 레벨이 90이 넘는 괴물이다.

땅에서 솟아오른 손바닥은 아마도 가디언이겠지. 하지만 지금 그녀의 레벨은 61. 분수에 맞지 않은 스킬을 사용한 부작용인 거겠지.

어떻게 사용했는지 모르겠지만 사용했다는 게 중요했다.

“가디언이 소환된다면 이 세계에서 잡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녀가 악마가 없는 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김진석은 결국 결정했다.

“죽여야…….”

“저 처자에게 포션을 주게. 아마도 그녀가 우릴 도와준 것 같으니.”

하지만 그때 상황 파악을 끝낸 밀론이 말했다.

결국 세라스도 아디스의 범죄자 중 하나였으니 그녀를 감싸 주기로 한 것이다.

김진석은 밀론의 눈앞에서 그녀를 죽일 수 없었으니 가장 먼저 그녀에게 달려가 하급 포션을 손수 먹여 주었다.

죽인다는 선택지가 사라진 이상 우선 그녀에게 잘 대해 줘야 했다.

* * *

김진석은 세라스를 안고 밀론과 범죄자들을 따라 아디스로 들어갔다. 포션을 네 개 정도 들이부으니 상태가 호전되었고, 김진석은 일부러 직접 그녀를 안고 아디스로 들어섰다.

이내 금방 밀론의 거처에 도착했고, 그는 손짓하며 범죄자들을 물리고 가장 강력한 호위인 다가라만 옆에 두었다.

“뭐야? 할아버지, 나도!”

물론 여전히 철이 없는 밀리가 끼려고 했지만 밀론은 단호하게 거절한 후 그녀를 돌려보냈다.

다가라는 김진석이 충족의 왕을 가지고 놀다시피 하는 걸 보고 호위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밀론은 고개를 저었다.

“내게 뭔가 원하는 게 있으니 우리 아디스를 구해 주었겠지. 그렇지 않나?”

밀론은 방구석에 있는 소파에 세라스를 얌전히 눕히고 있는 김진석을 보며 말했다. 김진석은 세라스의 숨소리가 안정되어 있는 거로 보아 금방 깨어날 것을 알고 최대한 친절히 대해 주고 있었다.

원래 김진석은 민폐 덩어리인 밀리를 구해 주고 동시에 아디스를 구해 주면 밀론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물론 그건 게임 속 이야기긴 했지만 적어도 호의적일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밀론은 처음부터 끝까지 김진석을 의심하고 있었다. 아무리 김진석 자신이 손녀의 손에 구멍을 뚫었다고 하지만 그것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나조차도 잘 모르고 있던 저 처자의 정체를 알고 있었지. 분명 밖에서 흘러들어 온 자인데 내 이름은 물론이고 처자의 이름과 다가라까지 알고 있었다.”

김진석이 상황이 급해 그들의 이름을 부른 걸 밀론은 정확히 캐치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고함과 비명, 전장의 소리는 일반인인 밀론에겐 주변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밀론은 김진석의 그 조그마한 말소리도 들은 것이다. 가는귀가 먹는다는 그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김진석은 계속해서 고민했지만 변명거리는 없었다. 사실 그도 대책 없이 아디스로 달려온 것이긴 했다.

설령 아디스에 숨은 최강자인 세라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해도 그녀가 아디스를 구한다는 선택지를 선택한다는 보장이 없었으니깐.

무작정 달려왔고,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그 뒷일이 다가오니 김진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 한숨을 다르게 해석한 것인지 세라스를 제외하면 아디스의 최강자, 다가라가 밀론의 앞을 호위하듯 서며 말했다.

“아디스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제야 밀론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추궁하듯 말해서 미안하군. 무슨 목적이 있든 결국 우리 아디스를 도와주었으니. 아디스와 내 손녀 밀리까지 구해 줘서 고맙네.”

자신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가 고개를 숙이니 김진석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저 지나가다가 들렀을 뿐입니다.”

“…지나가다가?”

“아디스를?”

당연히 아디스가 지나가다가 들를 곳은 아니었다. 바깥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고, 주변은 몬스터들이 깔려 있었으니.

“…알겠네. 굳이 묻지 않겠네.”

말하고 싶지 않다는 걸 완곡히 말한 것이고, 밀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가 어찌 됐든 김진석은 아디스를 구해 줬으니깐.

“그럼 저 여자는 뭐지? 저 정도 미모의 여자라면 내가 모를 리가 없는데.”

그때 다가라가 물었다. 세라스의 정체는 김진석도 잘 몰랐으니 딱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아는 걸 토대로 말할 수밖에.

“그녀는 마녀입니다. 네크로맨서. 리치의 존재를 알고 계십니까?”

“싸워 본 적은 없지만 유명하지. 몬스터를 되살려 부리는 몬스터잖아. 리치는 그 몬스터를 뼈다귀로 만들어……?”

다가라는 자신이 말하면서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아디스에 몬스터들과 충족들이 들이닥쳤을 때 땅속에서 뼈다귀들이 일어났다.

“예. 리치지만 인간인 존재, 바로 그녀입니다.”

그 말에 예쁜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다가라가 순식간에 검을 뽑아 세라스에게 휘둘렀다.

“다가라!”

밀론이 뒤늦게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김진석도 다가라가 죽이게 내버려 두면 훨씬 일이 수월해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검날을 손으로 쳐 내 방향을 바꿨다.

다가라의 검은 세라스의 목 바로 옆 소파에 꽂혔다.

그때 세라스가 눈을 떴다. 그녀가 눈을 뜨자마자 보인 광경은 자신의 옆에 꽂힌 검과 자신을 지키듯 서 있는 남자.

그리고 그의 손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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