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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63화 (63/201)

63화

“왜 이곳에 왔는지, 왜 이곳에 있는지는 물어봐야겠습니다. 그것만 알려 준다면 살려 주지.”

김진석은 노라가 발을 잡고 끌고 오는 충족에게 말했다. 그의 말에 노라와 진정하고 있던 다이아도 깜짝 놀랐다.

충족은 혹시 김진석의 말이 바뀔까 급히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왕이 인간 왕국을 점령할 계획을 세웠어. 자세한 건 나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곳은 아니야! 검은 땅이 즐비한 곳이었는데?!”

놈은 말하면서도 허둥지둥하고 있었다. 김진석에게 따지려던 노라와 다이아조차도 놈의 말에 얼어붙었다.

아무리 다이아가 놈을 쉽게 제압했어도 절대 무시할 놈은 아니었다. 게다가 계속해서 숨어 있던 거로 보이는데, 셋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었다.

적어도 숨는 능력 하나만큼은 수준급인 녀석이었다.

“그게 무슨……?!”

“놓아 주세요.”

“야! 김진석!”

다이아는 놈의 말에 당황했고, 김진석은 약속대로 녀석을 놓아주라고 말했다. 노라는 놈의 발을 잡은 채로 그대로 김진석을 노려봤지만 김진석은 굳건했다.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고마워, 고마워!”

흉측한 얼굴을 드러내며 연신 고맙다고 말하는 놈을 보고 노라는 결국 손을 놓아 버렸고, 놈은 하늘로 날아오르며 말했다.

“어차피 인간들에겐 관심이 없는 곳이라 다른 인간들은 신경 안 쓸 거라 했어!”

그 말을 끝으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노라와 다이아가 김진석에게 따지려고 한, 순간 하늘에서 유유히 날아가던 충족이 사라졌다.

어느새 김진석의 손에는 처음 보는 단검이 들려 있었다.

[더크. 공격력 48. 레벨 제한 40.]

김진석이 자주 사용하던 패링 대거의 길이는 50센티 정도였지만 더크의 길이는 70~80센티 정도로 보였다.

“한동안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을 얻었군요.”

더크는 날아가다가 사라진 충족에게서 나온 아이템이었다.

김진석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는 흑호가 순식간에 놈을 죽이고 아이템을 수거해 온 것이다.

“인간의 모습을 했다는 건 인간의 껍질을 뒤집어썼다는 겁니다. 즉, 최소 한 명 이상의 인간을 죽였다는 뜻입니다.”

김진석은 당연히 놈을 곱게 보내 줄 리가 없었다. 마족이라면 몰라도 몬스터랑 절대 협상은 없었다.

처음부터, 놈과 대화를 나눈 건 정확한 정보를 김진석 자신이 얻는 건 물론이고 노라와 다이아에게 알려 주기 위해서이다.

노라와 다이아는 심각한 표정으로 김진석을 바라봤다.

“저게… 무슨 뜻이죠?”

“말 그대로겠지……. 검은 땅이 즐비한 곳이 어딘지 알아?”

“인간들의 관심이 없는 곳이라고도 말했습니다.”

김진석은 이미 답을 알았지만 그녀들에게 맡겼다.

“검은 땅이라면… 가이크 성?”

“아무리 몬스터들이라도 생각이 있다면 그곳을 침략할 생각을 안 하겠죠.”

“인간들의 관심이 없는 곳이…….”

“…설마?”

노라와 다이아는 답을 도출해 냈다.

“아디스.”

전에 김진석이 방문하려고 한 범죄자들의 왕국이었다. 범죄자들이 모인 만큼 질이 나쁜 건 기본이었다.

당연히 범죄자들이 모여 만든 왕국인데 토벌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 있다.

결과만 보자면 토벌이 성공했었다. 하지만 그 주변은 인간과 같은 생명체가 살기 어려울 정도로 척박했고, 몬스터들이 즐비했다.

그곳을 지키기 위해 기사들을 배치했지만 워낙 척박한 환경이었고, 기사들도 아디스에 배치되면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나 생각할 정도였다.

게다가 숨어 있던 범죄자들이 나와 난리를 치니 결국 그곳을 포기한 것이다.

“멸망하라 그래. 나도 용병이지만 거긴 용병 중에서도 질이 안 좋은 놈들만 가는 곳이야.”

“몬스터나 범죄자나 그게 그거입니다.”

노라와 더불어 다이아까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진석은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다.

게임 속에서 아디스가 멸망한 적이 없었으니 만약에 멸망한다면 앞으로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갈지 몰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디스를 다스리는 범죄자들의 왕, 용병의 왕을 만나야 했다. 그는 후에 악마들의 침공에 큰 도움이 될 자였다.

“아디스로 가야 합니다.”

“뭐? 안 돼!”

“안 됩니다!”

김진석의 말에 노라와 다이아가 깜짝 놀라 그를 저지했다.

“네가 잘 모르나 본데, 그곳은 절대 사람이 갈 곳이 아니야!”

“노라의 말이 맞습니다. 그들에게 동정심을 가지지 마세요. 인간임을 저버린 자들입니다.”

당연히 그 사실을 김진석이 제일 잘 알았다. 그런데 그녀들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범죄자들의 왕국 아디스는 생각보다 통제가 잘되고 있었다. 범죄자들이 모인 곳인데 어떻게 통제가 잘되는 것일까.

바로 그곳의 왕 때문이다.

“자세히 설명해 드리기 어렵지만… 아디스가 멸망하게 내버려 둘 순 없습니다.”

만나 본 적도 없는 아디스의 왕을 두둔할 순 없으니 그저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범죄자들의 왕, 그는 플레이어의 강력한 우군이 될 자였다.

하지만 언제나 김진석의 말이라면 대부분 들어주었던 그녀들도 이건 양보할 수 없었다.

“다시 생각해 봐. 가 봤자 좋은 거 없어. 죽어도 싼 놈들이야.”

“언제 침공한다고 말한 적도 없습니다. 우선 엘리온과 레온하르트 님께 도움을 요청하면…….”

노라와 다이아는 처음으로 김진석을 극구 말리고 있었다. 하지만 김진석은 의견을 굽힐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만 두 분이 안 가시면 저 혼자서라도 갈 겁니다. 절대 동정심이나 그런 게 아닙니다.”

다이아의 말과 노라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김진석도 강력 범죄자들에겐 인권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다.

레벨이 높아 후에 악마들과의 싸움에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뒤를 맡길 수 있는 믿을 만한 자가 아니라면 아무짝에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범죄자들의 왕, 그는 달랐다.

“우리는… 못 가. 아니, 애초에 너도 못 가. 거기 주변 국경을 엄중히 경계하고 그 어떤 생명체도 들어갈 수 없고, 나올 수도 없게끔 관리하고 있어.”

“카이, 아니 김진석 씨.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설령 간다고 한들 그 주변을 관리하는 엘츠 성주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엘츠 성. 아디스 근처에 급히 세워진 성이다. 그리 크진 않았고, 게임 속에서도 중요한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곳의 도움 없이는 들어갈 수가 없었고,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했다.

문제는 몬스터들의 침공도 언제 시작될지 불투명하다는 것.

그런 사실을 아는 김진석은 더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김진석은 땅을 박차고 한 방향으로 달려갔다. 노라와 다이아는 직감적으로 그 방향이 아디스란 걸 알 수 있었다.

“…야!”

“당신……!”

노라와 다이아는 급히 그의 뒤를 쫓으러 달려갔다. 하지만 김진석도 이제는 레벨이 39나 되었고, 쉽게 따라잡히지 않았다.

“흑호!”

게다가 어느새 나타난 흑호가 김진석을 태우고 달려가니 그녀들은 결국 김진석을 놓쳤다.

* * *

“아, 씨발! 진짜 미치겠네. 쟤가 왜 저러는지 넌 알아?”

“…아뇨, 모르겠습니다.”

노라와 다이아는 사색이 된 채 김진석을 쫓아갔지만 흑호의 속도를 따라갈 순 없었다. 마나를 사용하면서까지 속도를 내면 웬만한 명마보다도 빠른 그녀들이었지만 흑호에겐 역부족이었다.

“도대체 범죄자 새끼들을 왜 구하려고 하는 거야?! 사람이 착해 빠져도 정도가 있지.”

노라는 애꿎은 땅을 발로 차며 격분하고 있었다.

“그도 생각이 있겠죠.”

“범죄자가 되면서까지?”

“…….”

노라의 말에 다이아도 침묵했다. 레온하르트의 총애든 뭐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아디스에 들어가는 모든 생명체를 범죄자라고 낙인찍는다.

안에 있던 자도, 밖에서 들어가는 자도 전부 똑같았다.

노라는 솟아오르는 짜증에 머리를 헝클이며 말했다.

“어쩔 거야. 쟤도 저러는 거 보면 생각이 있는 거긴 한데, 우리도 함부로 도와줬다간 범죄자로 낙인찍혀.”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순 없습니다. 아무리 지금 그가 강해졌다고 한들 아디스에서 살아남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아니, 그건 쟤도 알 텐데 말이야. 애초에 몬스터들이 침공하는데 혼자 가 봤자 무슨 도움이 된다고……. 신분증도 있는 놈이… 하.”

노라는 이해할 수 없는 김진석의 행동에 깊은 한숨을 쉬었다.

“우선 엘리온과 레온하르트 님에게 도움을 요청하죠.”

“…과연 도와줄까?”

* * *

김진석은 흑호를 타고 아디스로 향하며 범죄자들의 왕을 생각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강한 약자, 그 자체다.”

그는 범죄자들의 대부였다. 마나를 각성하지도 못한 일반인이었지만 모든 범죄자가 그를 따랐다.

이유는 하나. 이 세계에서 모든 범죄의 시작이 그였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김진석이 범죄자로 오해받았던, 포션을 상처에 직접 뿌리는 방식. 그걸 창안한 게 바로 그였다.

그걸 필두로 온갖 범죄에 연루되어 있는 그였고, 김진석은 그걸 전부 알았지만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는 절대 선을 넘지 않았다. 도둑질하고 빼앗고 노예를 다루고 사람을 죽이는 건 기본이었지만 절대 그 선을 넘지 않았다.

그 이상의, 장기 매매를 하지 않는다는 등 자기만의 선을 지켜서 그 안에서만 행동했다.

자기 식구들은 잘 챙기고 배신하면 어떻게든 척결하는 그의 행동은 범죄자들의 환심을 사기 충분했다.

고작 일반인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범죄자가 그를 따르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게다가 그의 나이는 85. 몬스터가 즐비한 이 세계에서 마나가 없는 일반인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았다고 해도 무방한 나이였다.

그리고 그의 아들과 아들의 아내가 범죄에 연루돼 죽고 손녀가 태어난 이후로 그는 모든 범죄에서 손을 뗐다.

“몬스터들의 침공이 있다면 가장 먼저 죽는 자가 바로 그자가 되겠지.”

고작 일반인인 그가 몬스터들의 침공에서 버틸 리 만무했다. 그가 죽는다면 아디스에 모여 있는 범죄자들이 이 세계에 전부 퍼져 날뛰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를 구한다면 그 아래에 있는 범죄자들이 김진석의 전력이 될 수도 있었다.

“노라와 다이아는 그래도… 내 편을 들어 주겠지.”

아디스에 들어가는 자가 전부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건 김진석도 알고 있었다. 설령 그렇다고 한들 아디스를 포기할 순 없었다.

노라와 다이아가 잘 말해 줄 것이다. 아마도 말이다.

그때 김진석과 흑호는 아디스와 엘츠 성의 경계에 도착했다. 경계에는 성벽처럼 벽이 쭉 이어져 있었으며 기사들이 빼곡히 배치되어 있었다.

과연 엄중히 관리되고 있는 것 같았다.

“가자, 흑호야.”

하지만 김진석과 흑호에겐 열려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김진석은 흑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고, 흑호는 눈을 감고 잠시 그의 손길을 느끼다가 순식간에 땅을 박찼다.

마치 하늘을 나는 것처럼 허공으로 뛰어올라 성벽을 가볍게 넘어갔다.

“음……?”

성벽을 지키고 있던 기사는 뭔가 기척이 느껴져 하늘을 쳐다봤지만 이미 흑호와 김진석은 사라지고 없었다.

“뭔가가 있다!”

하지만 넘어서 달려가는 흑호와 김진석의 뒷모습을 다른 기사들이 발견했다. 김진석의 뒤로 화살이 쏟아져 내렸지만 흑호는 단 하나의 화살도 맞지 않고 깊숙이 들어갈 수 있었다.

김진석은 아디스로 향하면서 단 하나의 몬스터도 발견하지 못했다.

“…미치겠군.”

이유는 하나, 충족들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것이다. 혹은 이미 침공이 시작됐거나.

충족들은 몬스터들을 침공에 이용했다. 마족과 달리 몬스터인 그들은 다른 몬스터들을 지배하거나 말을 따르게 하기 어려우니 일부러 몬스터를 죽여 주의를 끌어 아디스로 향한 것이다.

“빨리 가자, 흑호야!”

* * *

“대부님! 피하셔야 합니다!”

아디스는 지금 난리가 났다. 온갖 몬스터들과 인간처럼 생긴 벌레들이 아디스를 침공해 왔다. 범죄자들이 열심히 막아 봤지만 결국엔 범죄자. 그들이 모인다고 한들 통솔이 되지도 않고, 체계가 제대로 잡힐 리가 없었다.

그래도 사방에서 몬스터와 범죄자들이 싸우고 있는 와중에 그들은 대부를 구하러 온 것이다.

“밀론 님!”

범죄자들의 왕, 대부 밀론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늙어서 색이 다 빠진 백발의 머리와 아직 죽지 않은 총명한 눈빛. 주름진 피부였지만 산전수전을 다 겪은 듯한 엄청난 흉터들이 즐비했다.

“난 됐다. 밀리부터 챙겨라.”

밀리. 밀론의 손녀였다. 부모가 전부 죽고 삐딱선을 탄 그녀는 밀론의 말도 잘 안 들었다.

그녀에게 부모 둘은 자신들의 범죄 때문에 죽었으니 원한이라든가 그런 건 없었다.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할아버지가 최고의 범죄자이다 보니 할아버지도 언제 죽을지 몰라 일부러 피하며 정도 안 주고 있던 것이다.

가족이지만 정을 주면 부모님이 죽었을 때처럼 엄청난 슬픔을 느낄 것만 같았기에 그녀는 자신의 할아버지인 밀론을 피해 다녔다.

밀론은 언제나 그걸 안타깝게 여겼다.

“그게…….”

그런데 눈앞의 범죄자는 말하는 걸 꺼려 하고 있었다.

밀론은 갑자기 몰려오는 불안감에 그를 다그치며 말했다.

“무슨 일이지? 빨리 말해!”

“…밀리 님은 대가리를 먼저 쳐야 한다며 가장 강해 보이는 몬스터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 말에 밀론은 의자를 내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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