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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62화 (62/201)

62화

“저는… 펜리르의 환영을 선택해 보겠습니다.”

다이아는 펜리르의 환영을 선택했다.

“만약 제대로 다룰 수만 있다면 제 약점인 근접전을 보완할 수 있을 겁니다. 다루지 못해도 스킬을 사용하고 도망만 친다면 시간을 벌어 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노라는 그녀의 의견에 불만은 없었다. 어차피 그녀가 사용할 궁극기고, 선택은 본인이 했으니.

다이아는 스킬북을 열어 펜리르의 환영을 읽었다.

그녀가 전부 읽자 스킬북은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바로 시험해 보러 가자!”

* * *

셋은 몬스터를 잡으러 칼라 성에서 나왔다.

시험 해 본다고 하면 훈련장이나 다른 인적이 드문 곳에서도 할 수 있었지만 셋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명색에 궁극기인데 몬스터를 상대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가 셋의 의견이었다.

“그런데 굳이 또 이놈을 잡으러 온 이유가 뭐야?”

“저격이 통하지 않는 상대니깐요. 펜리르의 환영이 얼마나 쓸모 있는지 여기서 밝혀지겠죠.”

그들이 잡으러 온 몬스터는 바로 왕딱정벌레.

비교적 최근에 잡았던 몬스터 중 저격이 안 통하는 대표 몬스터였다.

레벨은 39. 지금의 김진석과 같은 레벨이었다.

“만감이 교차하지? 레벨 업 참 빠르네.”

“아뇨, 딱히.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네요.”

“…….”

노라와 다이아는 김진석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김진석도 자신의 레벨 업이 매우 빠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어떤 사람도 자기 목숨을 위협하는 몬스터와 싸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게임 속 세계라 그런지 레벨 업을 하면 할수록 강한 몬스터를 훨씬 더 많이 잡아야 했다.

그렇게 한계를 맞이하는 거다.

하지만 김진석은 자신의 레벨 업 속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혼자 다닐 때는 본의 아니지만 정말 죽기 직전까지 자신의 몸을 몰아치면서 싸웠다.

엄청난 레벨 업 속도를 보여 줬지만 기사 학교에 입학한 이후 상대적으로 느려진 것이다.

남들이 보면,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노라와 다이아의 반응만 보면 알다시피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당장 다이아와 노라만 봐도 오랫동안 특정 레벨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김진석을 만나 미친 듯이 몬스터를 잡았고, 결국 레벨 업을 한 것이다.

사실상 둘이 김진석에게 어울려 주고 있던 것이다.

인내심이 부족한 노라가 먼저 지쳐 가고 있을 때쯤에 레벨 업을 해 환기를 시켰고, 다이아도 힘들어질 때 또 레벨 업을 한 것이다.

자신들도 레벨 업할 수준으로 몬스터를 잡고 있는데 김진석은 아직 부족하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뭐 얼마나 더 잡으면 네가 만족을 할까, 도대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힘을 가질 때까진 부족하죠.”

그녀 둘은 아쉽겠지만 지금 김진석은 슬슬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미 칼라 성 근처에는 더 잡을 만한 몬스터가 거의 없었다.

더 멀리 나아가야 했다.

그때 형형색색의 왕딱정벌레 무리가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김진석은 이젠 가볍게 단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놈들을 처치할 수 있었지만 지금 목표는 그게 아니다.

“사용해 보시죠.”

“펜리르의 환영.”

스킬과 달리 궁극기는 사용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사용이 가능했다. 다이아가 화살을 하늘에 쏜 순간 그 화살이 푸른색으로 변하며 사라지더니, 거대 늑대의 환영이 나타났다.

흑호와 비슷한 크기의 환영은 영체의 모습이었다. 유령처럼 나타난 펜리르의 환영은 왕딱정벌레의 무리를 말 그대로 갈아 버렸다.

펜리르의 환영은 그저 왕딱정벌레 무리를 지나갔을 뿐인데 놈들은 몸이 갈려 죽어 버렸다.

도대체 저걸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김진석은 감이 안 왔다.

노라와 김진석은 일부러 왕딱정벌레들을 몰아왔는데, 적어도 열 무리의 왕딱정벌레가 순식간에 갈려 버린 것이다.

모든 몬스터를 죽인 펜리르의 환영은 다이아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김진석과 노라는 침을 꿀꺽 삼키며 환영을 바라봤지만 다이아는 뭔가 통하는 게 있는지 환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잠시 교감을 나누는 것 같더니 이내 환영은 사라졌다. 그런데 환영이 사라지기 전에 김진석을 힐끔 쳐다보고 갔다.

“……?”

김진석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미 사라진 환영이었다. 다이아를 쳐다봤지만 다이아도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성능은 확실하네. 어때? 네가 보기엔.”

노라는 자신도 50레벨 찍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내며 다이아에게 물었다.

“음… 솔직히 나쁘진 않긴 한데 궁극기로는 아쉽네요.”

어차피 다이아도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 순식간에 열 무리 정도의 왕딱정벌레는 잡을 수 있었으니깐.

그래도 대량 살상 능력이 뛰어나다는 건 입증되었으니 이제는 대상 살상 능력을 확인해 보아야 했다.

“내일 다른 곳으로 가 보죠.”

김진석이 그렇게 말한 그 순간, 어디선가 거대한 벌레 같은 게 하늘로 솟아올랐다. 셋은 전에 보았던 보스 왕딱정벌레인 줄 알고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김진석은 벌레의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팔과 다리가… 인간의 것 같은데……?”

그의 말에 일행 중 가장 눈이 좋은 다이아가 다시 하늘을 쳐다봤고, 유심히 본 그녀가 한 행동은 바로 화살을 쏘아 내는 것이었다.

그 화살은 정확히 날아가던 놈의 날개를 꿰뚫었으며 놈은 비틀비틀 날아가더니 결국 땅바닥에 떨어졌다.

다이아는 그걸 본 즉시 놈이 떨어진 곳으로 달려갔다.

김진석은 그녀가 꽤나 흥분하고 있던 것으로 보였고, 바로 그 뒤를 따라갔다.

“에휴…….”

노라는 이미 그런 상황이 익숙했는지 한숨을 푹 쉬고 뒤를 따라갔다.

* * *

김진석이 숲을 헤치고 나아가 본 광경은 다이아가 거대한 벌레를 발로 밟고 위에서 화살을 겨누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이아 씨!”

“마족입니다! 오지 마세요!”

다이아의 말에 김진석과 어느새 뒤따라온 노라는 발에 밟혀 있는 놈을 바라봤다. 마치 바퀴벌레가 인간이 된 것 같은 모습이었다.

평범한 인간의 모습과 같았지만 등에는 바퀴벌레처럼 갑각이 있었고, 그 안에는 곤충 날개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팔과 다리에도 갑각 같은 게 있었지만 그리 크지 않아 눈치채기는 어려웠다.

캬아악!

놈이 짐승 같은 소리를 내자 다이아는 밟고 있던 팔에 화살을 박아 넣었다.

“같잖은 짐승 소리는 집어치워, 마족.”

다이아의 목소리는 차갑다 못해 주변이 얼어 버릴 것만 같았다. 언제나 상대를 존중하는 그녀는 없었다.

그저 마족만을 혐오하는 엘프만이 눈앞에 있을 뿐.

나머지 팔 하나도 마저 화살을 박아 넣은 걸 본 김진석과 노라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다이아 씨, 무얼 원하시는 거죠?”

김진석은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이아는 자신의 친구를 잃게 만든 장본인인 마족을 혐오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바로 죽여 버려도 모자랐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뭔가 원하는 게 있다는 거다.

“비명의 숲을 건너는 방법입니다.”

김진석의 말에 극도로 흥분하던 다이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흥분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하지만 놈을 밟은 발에선 힘을 빼지 않았다.

그녀의 말에 김진석은 그녀의 발에 밟혀 있는 마족을 바라보았다.

[로치. LV:44]

레벨이 높았지만 마족치고는 레벨이 낮았다. 아마 다이아의 스킬을 본 녀석이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생각해 도망치려고 했던 것 같았다.

게임 속에서도 본 적이 없는 자였다. 하지만 놈의 종족은 김진석의 기억에 남아 있었다.

“충(蟲)족인가.”

김진석의 말에 놈은 눈을 번쩍 떴다.

충족, 벌레 종족이다. 놈들은 마족이 아니라 몬스터다. 인간처럼 지능이 뛰어나고 강력한 벌레가 있는가 하면 약한 벌레가 있었다.

눈앞에 있는 충족은 중상위 수준이었다.

“인간! 네가 어떻게 우리 종족을……!”

짐승 같은 소리를 내던 놈이 갑자기 인간의 말을 했고, 그 즉시 다이아의 화살이 또 한 번 놈의 손에 꽂혔다.

“묻는 말에만 대답……!”

“놈은 마족이 아닙니다.”

김진석의 말에 소리치려던 다이아가 말을 멈췄다. 아름다운 그녀의 백은발에 초록색 피가 튀어 있었고, 감정이 없는 그녀의 눈은 소름 끼칠 정도였지만 김진석은 말을 이어 나갔다.

“마족이 아닙니다. 몬스터 종족입니다. 악마와는 관계가 있지만 마족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다이아는 김진석의 말에 활을 힘없이 놓았다.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다이아의 말 속에서 흐느낌이 느껴졌다. 마족에게서 비명의 숲을 건너갈 방법을 찾고 자신의 친구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희망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녀의 말에 김진석은 죄책감이 짙어졌다.

김진석은 비명의 숲을 건너갈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

바로 처음 보았던 아이의 유령을 성불시켜 주는 것.

그렇지만 지금 그곳에 쳐들어간 순간, 설령 레온하르트와 엘리온이 함께 간다고 한들 몰살당할 것이다.

김진석은 그녀를 위해서라도 말을 아껴야 했다.

그때 놈을 밟은 다이아의 발에 힘이 빠진 순간, 날개 달린 충족이 발에서 빠져나와 엄청난 속도로 하늘로 날아갔다.

하지만 날개가 망가진 상태로 제대로 날아갈 리 만무했고, 놈의 뒤로 허공을 박차며 날아간 노라에게 금방 발을 붙잡혔다.

“마족이 아닌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서! 죽여도 되는 거야?!”

노라는 순식간에 놈을 제압하고 남은 날개마저 잘라 낸 뒤 행동과 달리 상큼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이아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김진석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아뇨, 잠깐만요. 놈에게 알아볼 게 있습니다.”

김진석은 충족이 미래에 무슨 일을 벌이는지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곳은 칼라 성을 벗어나 김진석의 다음 목적지였다.

아디스, 범죄자들이 모여 만든 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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